<한 권으로 읽는 세계 고전 명작선>

Book 2019. 7. 29. 22:56

고전 명작 소설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분명히 현실에서 한발 떨어져서 현실을 보게 하고 때로는 마음의 안정을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살다보면 바빠서 점차 고전 소설과는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서 시간을 투자해서 소설을 읽다보면 읽은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한 권으로 읽는 세계 고전 명작선>은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마지막 수업>, 톨스토이(Lev Tolstoi)<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바보이반>, 오 헨리(O Henry)<마지막 잎새><크리스마스의 선물> 그리고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검은 수사><상자 속의 사나이>가 실려있다.

모두 대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들이고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그 대가들의 간판 작품이기 때문에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쁘고를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 요즘 세태와 관련해서 인상깊게 보았던 작품은 <마지막 수업>이다. 소설의 배경은 프랑스 알자스(Alsace)지방의 어느 학교에서 벌어진다. 알자스 지방의 대표적인 도시로는 스트라우스브루크와 꼴마르가 있는데 독일과 인접한 곳이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프랑스와 독일이 싸우는 데 독일이 이기고 원래 프랑스지역이었던 알사스 지역이 독일로 넘어가면서 더 이상 프랑스어 수업을 할 수 없게 되어 참담한 심정을 묘사한 소설이다. 그렇다면 왜 프랑스와 독일을 싸우게 되었는가?

<마지막 수업>의 배경이 된 전쟁은 1870년에서 1871년까지 있었던 Franco-Prussia War이다. 전쟁의 원인은 스페인 국왕이었던 이사벨이 퇴위하고 그 자리를 독일에 있었던 레오폴드라는 사람이 즉위하게 되었다. 이 상황을 보고 있던 프랑스입장에서는 독일사람이 스페인왕으로 가게 되면 프랑스가 위협을 받을 것을 여긴다. 그 와중에 독일(당시 프러시아)의 수상이었던 비스마르크는 계책을 세워서 문서를 조작하여 프랑스를 격분하게 만든다. 당시 프랑스 국왕이었던 나폴레옹 3세는 전격적으로 프러시아에 쳐들어간다.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던 프랑스군의 생각과는 반대로 프러시아는 매우 강했다. 오히려 프랑스는 완전히 패배하고 수도인 파리까지 내주고 만다. 그리고 강화조약을 맺고 전쟁은 끝나게 되고 나폴레옹 3세는 퇴위하게 되고 프랑스의 왕정은 종식된다.

<마지막 수업>에 나오는 교사나 학생은 프랑코-프러시아 전쟁이 휘말린 것이다. 민초들이 고달픈 것은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리고 <마지막 수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과연 이웃나라끼리 친하게 지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가 하는 점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을 가깝지만 먼나라라고 부르기도하고 때때로 극한의 앙숙지간임을 보일 때가 있다. 이것은 비단 우리의 경우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와 독일이 그렇고, 칠레와 페루가 그렇고, 그리스와 터기가 그렇고, 파키스탄과 인도가 그렇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그렇고, 아일랜드와 영국이 그렇다. 과연 친하게 지낼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나라와 칠레는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칠레가 일본정도의 거리에 위치한다면 반드시 좋지 않은 관계였을 것이다.

또 궁금한 것이 마치 한중일관계의 오묘함이 있듯이, 유럽에서는 영프독관계도 오묘한지 여부이다. 분명한 차이는 한중일관계에서 중국은 몹시 큰데, 유럽의 영프독은 적어도 영토적인 면에서는 나름 고만고만하다. 과연 이러한 차이가 어떻게 그들 사시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 궁금하다. 또한 유럽에는 가까이에 벨기에, 네델란드, 이탈리아, 덴마크 등이 붙어있기 때문에 한중일과는 또다른 느낌일 수 있다고 추측한다. 또한 나름 영프독도 서로 치고받고 싸워왔는데 어떻게 화해를 했고 그들의 관계를 적어도 겉보기에는 원만한 것처럼 보이게 했는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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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나의 마법을 풀어줄 사랑의 공주님이야>

Book 2019. 7. 25. 22:38

처갓집에 가서 아내가 아마도 초등학교 때 읽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집을 발견하고 읽었다. <넌 나의 마법을 풀어줄 사랑의 공주님이야>라는 시집으로 시집을 모두 읽은 결과 대략 93~94학번의 연극영화과 학생인 김서희씨가 쓴 글이다. 한편으로는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았고 한편으로는 그 때는 그랬었지하면서 90년대 때일을 회상하게 되었다. 2019년인 지금 아마도 작가는 4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있을 탠데 지금 이 시를 읽으면 어떠한 느낌일지 모르겠으나 20대 초반에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시들이었다.

90년대 생각이 물씬 나는 시는 <노래방에서>이다.

 

                                                           노래방에서

노래방에 갔어.

우린 서로에 대한 마음을 노래로 표현하기로 했지.

내가 먼저 이승환의 너를 향한 마음,

헌데 너는 변진섭의 미워서 미워질 때...,

장난이려니 하고

난 듀스의 나를 돌아봐를 불렀더니

넌 홍서범의 구인광고,

아니 세상에 나를 옆에 두고 어떻게 그런 노래를...?

내가 마지막으로 부른 질투

넌 김수철의 정신차려 이 친구야로 마무리를 했지.

 

씩씩대며 노래방을 나오며 혼잣말로,,

(두고 봐라! 다음에 오면

현철 아저씨의 싫다 싫어를 불러줄 테다.)

 

이승환, 변진섭, 듀스, 홍서범까지 이름을 듣기만해도 90년대 초반이 느낌이 물씬 나는 이 시를 보면서 예전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김치

 

김치를 무지 싫어하는 너

그래서 나중에 자기 부인될 사람은

김장 안해도 도리 거라고 생각해왔다나.

 

하지만

나는

김치를 너무 좋아하는걸.

김치볶음밥, 김치찌개, 김치라면, 김치햄버거까지

 

너무 맛있지 않니?

-아니 전혀...

김치에 손도 안대던 너

어느 날부턴가 김치볶음밥을 너무 잘 먹는 거 있지.

 

웬일이야?

-사랑은 입맛까지 변화시키나봐.

 

김치 취향을 통해서 상대방에 대한 생각을 말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요즘은 많이 하지 않는 김장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약간 옛날 느낌이 났다. 그것도 부인이 김장을 할 필요가 없다는 예전치고는 나름대로 신식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를 문구가 흥미로웠다. 이 외에 도 보면 솔직하고 옛날 생각 듬뿍나는 시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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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국민보고서>

Book 2019. 7. 24. 01:26

논쟁이 심하게 있었던 한미 FTA2012년 시행되었다. 지금 7년이 흘렀고 한미 FTA는 좋든 싫든 영향을 미쳤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한 편으로는 어느 정도는 한미 FTA가 우리 경제에 좋은 면도 끼쳤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물론 트럼프가 지금도 미국이 훨씬 이익을 많이 보는데 더 보려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한미 FTA가 흥미로운 것은 시행은 이명박 정부때였지만 그 시작은 노무현 정부때였다. <한미 FTA 국민보고서>2006년에 출간되었는데 그 당시는 참여정부시절로 한미 FTA가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을 경제는 물론이거니와 환경, 노동, 지적재산권, 교육, 보건, 통신, 예술 등등 다각도로 살펴보았다.

한미 FTA관련하여 가장 미스터리로 생각하는 부분은 왜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FTA를 추진하였는가이다. 만약에 한미 FTA를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이 밀어붙여서 노무현 대통령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입장이라면 이해가 가겠는데 우리쪽에서 먼저 한미 FTA를 하자고 이야기한 것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이다(“한미 FTA 졸속 추진이 미국의 압력이라기 보다는 한국 정부의 주도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71). 책에 김세균의 주장처럼 노무현 정부는 경제기술관료에 의해서 주도되어서 한미 FTA가 이루진 것일까? 아무리 대통령이 힘이 없다지만 국민적인 지지도 크지 않았던 한미 FTA를 적극적으로 한 이유가 경제관료들 때문일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책에서는 이구동성으로 한미 FTA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장밋빛 미래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가열차게 비판을 한다. 나도 이에 대해 어느 정도는 동조를 한다. 분명히 한미 FTA가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분명히 있을 악영향에 대해서 세세하게 논의가 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비판이 너무 극단적으로 흘러서 비판의 신빙성이 떨어질 정도였다. ‘2의 한일합방이라든지 미제국의 통치권에 저당 잡히는 참혹한 결과를 야가할 것이라든지등의 한미 FTA가 우리 경제를 끝장낼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이 역시 너무 과하지 않았나 싶다. 한미 FTA에 대한 모든 것이 부정적이어서 장밋빛 이야기만 하는 한미 FTA만큼이나 믿음이 가질 않았다. 오히려 정제된 언어를 통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떠했을 까한다.

이 책은 20066월에 발간되었다. 그러니 글을 쓸 당시에는 노무현 정권때였다. 그래서 인지 노무현 정권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 주를 이룬다. 예를 들어, ‘노무현 집권기를 통한 자본의 사보타주가 극에 달했다라고 말하는데 이후에 집권할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어떠한 수식어로 표현을 할지 궁금하다. 적어도 한미 FTA와 관련해서는 비판하는 사람의 입장에는 노무현 대통령이나 이명박 대통령은 별 차이없는 사람일 것이다. 물론 먼훗날 한미 FTA를 기억하려는 입장에서는 시행이 이명박 대통령때이므로 아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이 문제의 평가는 덜 각광을 받을 것 같기는 하다.

한미 FTA가 시행된지는 이제 7년이 지났다. 안그래도 한미 FTA 7년을 맞이하여 산업통상자원부에서는 한미 FTA7년을 평가했다. 적어도 거시적인 지표에 있어서는 건실한 모습을 보였다(이런 것을 보면 문재인 정부에서도 한미 FTA에 대해서는 크게 반대하지 않은 느낌도 든다). 하지만 이러한 거시적인 지표 속을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특히 이 책에서 문제점으로 지적하였던 양극화 문제라든지, 공공성(물론 공공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측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이 어떻게 감소 혹은 증가하였는지 면밀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재협상이라든지 혹은 비슷한 류의 무역협상에 타산지석을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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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Book 2019. 7. 23. 00:20

이름은 이미 익숙하게도 들었으나 이제야 제인에어(Jane Eyre)를 읽었다. 나는 이 제인에어를 읽고 이것이 어떻게 초등학교 고학년을 위한 필독서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혹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을 너무 미성숙하게 보던지 아니면 제인 에어의 내용이 너무 파격적이라서 크게 놀라고 말았다.

제인에어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줄이면 다음과 같다. 제인 에어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외삼촌에게 자라다가 그 외삼촌도 죽고 다른 친척들에게 엄청나게 구박받으며 살다가 고아학교에 보내져서 양육되는 데 그 고아학교도 굉장히 억압적인 분위기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히 성장한 제인에어는 손필드에 가서 가정교사를 일하는 데 그곳의 주인인 로체스터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래서 로체스터랑 결혼하려고 하는데 로체스터에게 이미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충격을 받은 제인에어는 손필드를 떠나고 여차저차해서 선교사랑 사랑을 나누는데 선교사가 청혼하는데 거절하고 로체스터에게 돌아간다. 돌아갔을 때 손필드는 로체스터의 광인인 아내가 불을 내고 자살해서 로체스터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이를 극복하고 그와 잘되는 것으로 소설을 끝이 난다. 이 내용만 보면 지금 나오는 웬만한 막장 드라마 뺨치는 시놉시스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을 읽고 초등학생에게 사랑의 아픔과 기쁨을 느껴보라는데 내 딸에게 제인에어를 초등학교때 보여줄 용기가 전혀 없다. 특히 중간부분에 저택에 나오는 미친 웃음소리를 내는 여자가 로체스터의 아내인 것은 정말 깜짝 놀랐다. 지금 읽어도 꽤나 반전포인트인데 그 당시에는 상당한 충격있을 수도 있겠다. 미쳤던 로체스터의 아내가 나중에 방화하고 자살하는 것도 꽤 충격이었다. 더 충격인 것은 제인에어가 로체스터에게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물론 자기의 인생을 자기가 선택하고 살지만 조금 아쉬웠다. 이러한 파격적인 전개를 보면 근래 나오는 드라마의 전개도 꽤나 이해가 되었다.

1800년대 중순 소설답게 그 당시의 배경도 많이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그 때나 지금이나 많이 변하지 않은 것은 고아의 어려운 처지이다. 부모님이 없는 아이들은 운이 좋은 경우에는 친척에게 맡겨지거나 좋은 곳에 입양을 가게 된다. 하지만 평범한 경우에는 시설에 맡겨진다. 시설의 환경이 좋으면 좋겠지만 어려서부터 군대같은 단체생활을 하게 되면서 삭막하게 살아간다. 현재 우리는 저출산 시대에 돌입했다. 하지만 버려지는 아이들이 부지기수로 있다. 조금은 갑작스럽기는 하지만 <제인에어>를 읽으면서 현재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어떻게 되고 어떻게 키워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제인에어>를 읽으면서 몇 번 빵터지게 웃었던 포인트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번역때문이었다. 내가 본 책은 강선영씨가 번역했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번역해서 읽는 내내 불편함이 없었다. 그런데 가끔 초월번역을 해서 나를 웃음짓게 하였다. 예를 들어, “넌 공자님 딸이니? 아니면 맹자님 조카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니?”라는 부분에 아주 많이 웃었다. 원전에 공자님이니 맹자님같은 이름이 나올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원래 어떻게 말을 했길래 공자님이니 맹자님같은 이야기가 나왔는지 궁금하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번역은 제2의 창작으로서 외국서적을 읽을 때 매우 중요하다. 번역하는 사람이 어떠한 단어를 어떻게 쓰냐에 따라서 내용의 질감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자님과 맹자님이라는 단어를 쓰는 순간 화자가 무슨 말을 쓰려는지 가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러한 초월번역은 나름대로 위험한 면도 있다. 자칫 잘못하면 아예 뜻을 바꾸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번역에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잘된 번역과 그렇지 못한 번역이 있다. 제대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두 언어에만 정통한 것이 아니라 두 사회의 배경에 대해서도 정통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인에어가 잘 이해된 것은 번역가 덕분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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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건축만담>

Book 2019. 7. 21. 20:41

 

<서울건축만담>은 건축가 2명이 서울에 있는 어느 건물이나 공간에 대해 자신의 느낀 점을 쓴 것이다. 그런데 건축가라고 해서 건축에 대한 지식을 기대했다면 매우 실망할 수 있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글쓴이가 건축가가 아니라고 해도 무방하다는 것이었다. 반면 감수성있는 작가가 글을 쓴 것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읽을 만하다. 서울의 여러곳에 대한 개인의 상념을 이리저리 적었기 때문에 정보를 건지기 보다는(물론 내가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는 있다) 타인의 생각과 느낌을 읽을 수는 있다.

글을 읽다보면 아마도 글쓴이들이 대략 70년대 초반 정도의 나이로 추정된다. 이제 50에 가까워진 나이이다. 이 즈음이면 자신의 커리어도 어느 정도 단단해지고 어쩌면 어느 정도 지나온 세월을 돌아볼 여유도 조금 생기는 나이일 수 있다. 그래서 서울의 여러군데 돌아다니며 건축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흘러가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런 것을 보면 어쩌면 우리 인간이라는 것, 정체성이라는 것은 기억이 거의 대부분 결정 짓는 것 같다. 그리고 건축물도 개인의 기억을 투영하여 인식하는 것은 아닐 까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도 그러한 건축물이라든지 공간이 있음을 기억한다. 예를 들어 내가 청소년기에 오래살았던 반포미도아파트라든지 하교하면서 가끔 들른 고속터미널이라든지 대학교때 자주가던 강남역이라든지 하는 공간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가끔 반포에 가게되면 겉모습은 그대로인데 주위의 환경이라든지 내부 인테리어가 많이 바뀌면 마치 성형수술을 해서 예전모습을 잃어버린 친구를 보는 것 같은 아쉬움도 있다. 이제는 없어진지 오래되었지만 고속터미널에는 반포시네마라는 영화관이 있었다. 센트럴시티가 들어오고 그곳에 신식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들어오기 전에는 반포사람이라면 주로 가는 영화관이었다. 새로운 영화가 개봉되면 손수 직접 그려진 영화간판이 올라가고는 했다. 내가 고등학교 때 디지털 카메라가 널리 보급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찍어 놓지못해 아쉽기는 하지만 마지막으로 본 수제영화간판은 미션임파서블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았던 영화들도 생각난다. 학창시절 보았던 쥬라기 공원이, 다이하드부터 고등학교 CA시간에 보았던 스타워즈도 생각난다. 심지어 사복을 입고 갔다가 선생님에게 혼이 나고 교복으로 갈아입고 왔던 기억도 난다. 가끔 고속터미널 건물에 가면 이제는 흔적조차 없어진 그곳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세대 차이도 느껴진다. 글쓴이들이 70년대 초반의 사람들로서 90년대 대학생활을 보낸 X세대로서의 건축에 대한 공간에 대한 감회가 느껴졌다. 예를 들어, 가로수길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글의 제목이 아예 <응답하라 1994>인데 1994년은 바햐흐로 젊은이들의 전성시대였다. 일단 문민정부가 들어섰고(물론 삼당합당을 통해서 김영삼이 정권을 잡았지만 일단 군인출신은 아니고 들어서고 하나회 척결 등의 노력을 했으므로), 대중문화는 융성했고,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외국문화도 많이 들어왔다. 결정적으로 1997년 하반기 이전의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대체적으로 호황이었기 때문에 대학생들은 취업의 걱정도 지금처럼 어렵지 않았다. 정말 X세대는 젊은이들이 군사독재도 아니면서 만성적인 저성장 시대를 맛보기 전인 단 몇 년간의 달콤함을 누린 세대이다(물론 그 후 혹독한 경제위기로 고생을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인지 그 당시를 젊은 시절을 그리는 X세대들이 많은 것 같다. 전람회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 전 세대는 감히 하지 못했던 유럽배낭여행을 떠났던 그 때에는 가로수길이 지금처럼 융성하지 못했는데 이 꼭지의 글을 쓴 최준석씨는 그 당시가 꽤나 그리운 모양이었다. 세대에 따른 기억법은 세대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이제 X-세대가 무려 50줄에 접어들어 나 때는 말이야를 이야기하고 자녀취업걱정을 하는 나이가 되었다. 아마 X-세대의 자녀들은 같은 공간과 건물도 완전 다르게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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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입문>

Book 2019. 7. 19. 00:37

 

학부 다닐 적에 <법학입문>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 때 교재로 썼던 교과서를 다시 한번 보았다. 그 당시에는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면 많이 외우고는 했는데 사람인지라 많은 부분은 망각해버렸다. 확실히 배운 내용을 내재화하기 위해서는 반복해서 보고 능동적으로 스스로 지식을 이용해야하는 것 같다. 다신 본 <법학입문>은 여러모로 또다시 도움이 되었다. 모든 시민이 법학 공부를 할 필요는 없지만 법은 사회를 움직이는 규칙으로써 고등학교 때 이 정도의 법학입문은 누구나 다 배웠으면 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중요하지만 여러 인상깊었던 부분을 다시 음미해본다. 우리나라는 불과 3년전 촛불혁명을 통해 권력을 교체했다. 이는 처음있는 일이 아니라(대한민국역사에서는) 4.19혁명, 광주민주항쟁 등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시민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에 시민불복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데 이 저항이 합리화되기 위한 4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저항하는 것만이 시민이 자신의 정의관점을 합법적으로 관철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더 이상 남아있지않고(보충성), 둘째, 불복종은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공익을 위한 것이며, 셋째, 불복종에 의해 야기되는 손해가 그로써 극복하려는 상태보다 더 중대한 것이어서는 안되며(비례성요건), 넷째, 불복종하는 시민이 이러한 요건의 충족 여부를 충분히 심사숙고하였어야 한다는 점이다. 촛불혁명은 이 모든 요건에 해당한다. 많은 기성세대들이 합법적인 절차를 따라서 불의를 극복하라고 한다. 그런데 권력의 최상부가 썩었을 경우에는 합법적 법적 절차에 대한 신뢰가 전혀 있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이다. 다행이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우리는 국민이 승리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민주사회 구현에 한발자국 더 가까이 가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는 윤리, 도덕, 그리고 법과의 관계에 대해서 명확하게 구분지어준다. 사실 우리는 윤리, 도덕, 그리고 법이 무엇인지 대개 안다고 생각하는데 대충 느낌만 알뿐이고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저자에 따르면 윤리는 각 개인이 양심을 기초로 하여 선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규범이다. 지극히 개인적이기 때문에 전체주의 사회가 아닌 이상에야 보편적 윤리라는 말은 틀린 것이 된다. 그리고 도덕은 윤리적으로 올바른 것에 대한 공적인 견해이다. 그리고 사회규범은 한 공동체 내에 도덕적으로 선한 행동에 관한 일정량의 공통된 직관을 말한다. 이 도덕이나 사회규범은 세월에 따라 변한다. 문제는 세대에 따라서 도덕이나 사회규범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윤리의 영역, 사회규범의 영역, 그리고 법의 영역이 다를 때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면 흥미로운 것은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사회규범이나 윤리라고 말하는 데 있어서 그 어느 흠잡을 때가 없다. 그렇지만 법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어려운 이웃을 매몰차게 도와주지 않았다고 구속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엄청나게 욕을 한다. 어느 행동이 사회적으로 용인받는 종류에 따라서 그 영역을 달리하는 데 사람마다 이에 대한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상호 갈등을 겪을 수 있다.

이 외에도 알아두어야 할 여러 가지 개념들이 책에 즐비하게 설명되어 있다. 예를 들어 정의의 3 측면평등,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이라든지 민사책임(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손해와 이익을 형평성 있게 분담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함)과 형사책임(규범의 준수를 유도하고 그 효력을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의 차이라든지, 헌법상 무죄추정원칙(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으로 인하여 형사책임에서는 개연성만 있다고 피고를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라든지 알아야 할 내용들로 가득하다. 물론 모두 깊게 알 수는 없겠지만 기초지식은 시민으로서 갖추어야할 덕목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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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akonomics>

Book 2019. 7. 18. 02:28

경제는 중요하다. 매일 같이 언론에서는 경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GDP, 실업률, 물가 같은 나라적 경제 뿐만 아니라 저축, 이율, 소득 같은 개인적인 경제도 매우 중요하다. 이 자본주의를 살아가면서 경제를 신경쓰지 않고 살기는 정말 공기없이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리고 경제학은 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연구를 한다. 그런데 경제학은 꼭 실물경제에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방식이라든지 경제 외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추론 방식을 제공한다. 그래서 적어도 사회과학에서는 경제학에서 기반한 여러 통계기법으로 여러 예측을 하기도 하고 일어난 일에 대해서 분석을 하기도 한다. <Freakonomics>는 실물경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경제학적인 사고방식으로 사회문제를 파악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경제학에서 주로 쓰이는 수식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말로 서술을 마치는데 이는 아마도 경제학자인 Levitt과 저술가인 Dubner가 공저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 둘은 세상돌아가는 일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경제학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답을 구하려고 한다. 그 경제학적 사고방식 중 중요한 가정의 하나가 인간은 유인(incentive)에 반응한다이다.

저자들은 어떻게 학교선생들이 학생성적을 올리려고 사기를 쳤는지 차분하게 보여주었다. 미국 부시대통령 시절, 학업성취도를 올리고자 학생들의 성적에 따라 교사들의 성과급을 주었다. 이러한 변화는 교사들의 행동에도 변화를 주었는데 특히 시험답안을 고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작태에 대해서 충분히 비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정책 입안자의 경우에는 충분히 이러한 부작용을 고려해서 변화를 주어야 한다.

경제학에서는 다른 사회과학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인과관계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왜냐하면 인과관계가 명확히 파악되면 원인을 조절해서 결과를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책에서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소위 깨진 창문 이론(Broken window theory)에 따르면 소소한 문제를 내버려 두면 큰 문제로 번지다는 것이다. 이 이론의 깨진 창문을 고치지 않고 내버려두면 사람들은 거기에 쓰레기도 버리고 더럽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창문이 번듯하게 잘 고쳐져 있고 깨끗하면 사람들도 깨끗하게 쓴다는 것이다. 이를 연장시켜서 생각해보면 일반 환경을 제대로 해야 범죄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즉 깨끗한 환경(거꾸로 작은 범죄)이 원인이고 범죄가 결과이다. 이론은 이 두 변수들과의 관계를 보는 것인데 사회과학에서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자연과학에서야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여러 요인을 통제할 수 있는데 사회과학에서는 그런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범죄에 영향을 주는 것이 경제상황이 될 수도 있고, 교육이 될 수도 있고, 심지어 날씨도 될 수 있다. 이런 가능한 모든 변인을 통제하고 관심있는 변수들간 인과관계를 보아야 한다. 다행히 여러 통계기법의 발전으로 인하여 통제하는 방법이 고안되었고 경제학자들은 경제문제는 아니지만 사회여러 문제에 대해서 어느 변수가 범죄를 줄이는 지에 대해 과학적인 연구를 했다(물론 경제학자 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의 연구자도 경제학의 기법을 빌려서 연구를 했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은 것이 어느 부분을 대상을 했냐에 따라 그 인과관계가 달리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같은 문제를 미국을 대상으로 연구한 것과 이탈리아를 대상으로 한 것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과관계 자체가 확실한 경우를 내적 타당성이 높다고 이야기할 수 있고 그 인과관계가 어느 정도 일반화될 수 있냐의 문제는 외적 타당성문제가 된다. 그런데 내적 타당성이 높다고 외적타당성이 모두 높은 것은 아니다. 경제학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사회의 여러문제에 대한 답을 하는 스타일을 이 책은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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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시선 하나의 공감>

Book 2019. 7. 17. 00:46

<두 개의 시선 하나의 공감>이라는 책은 대북정책, 지방분권, 교육, 복지, 세계화, 고용에 대해서 보수적 그리고 진보적 입장을 가진 학자들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궁금적으로 우리 사회가 더 잘 살게 하자는 공감대를 가지고 건설적인 토론을 한 것을 모은 것이다. 2011년 이명박 정부때 나온 이 책은 8년이 지난 지금도 읽어볼만하다. 아마도 그 이유 중 하나는 많은 문제가 아직도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고 둘째는 기본적인 관점의 차이는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데 이 가치관이라는 것이 8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박효종 교수가 이념을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써 타인과 더불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공동체와 사회는 어떤 원칙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적절할지, 인간과 자연은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공존할지 등의 문제에 관한 신념과 가치관의 조합(52)”이라고 정의했는데 수긍이 갔다. 신념과 가치관의 조합이 핵심인데 이것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공존하는지가 중요하다고 하겠다.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이슈마다 어느 쪽의 신념과 가치관이 더 편한다고 생각한 바가 있다. 그것이 아마도 그것이 나의 이념이라고 볼 수 있겠다. 특히 교육문제에 있어서 예나 지금이나 형평성보다는 수월성을 강조한 교육이 더 와닿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핵심은 대학입시이다. 그리고 그 대학입시를 둘러싼 사교육 문제는 건국이래로 단한번도 이슈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 각 정권에서는 여러 이유로 교육 정책을 바꾸어왔는데 그 중 하나가 평준화 정책이다. 우리나라의 입시에 대한 열기가 너무 심하여 그동안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입시를 차례로 없앴다. 김규원 교수는 학교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지금의 사회 불평등을 보다 학화시킬 조치입니다(153).”라고 이야기했다. 평준화 정책은 모두 군사독재정부시절의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그 때의 사회불평등보다 지금이 나아졌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나는 사회적 불평등을 일으키는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입시를 통해서 좋은 학교에 가는 것이 사회적 이동의 가장 쉬운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평준화를 해버리면 부모의 경제적 자본, 문화적 자본에 의해서 아이들의 성패가 더 결정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21세기에 평준화라는 이름으로 획일화된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맞는 가 싶다. 다양한 학교에서 각기 다른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다양성을 중시하는 현시대에 더 맞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어느 쪽에 더 설득력을 느끼는 지 알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대화를 책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읽기 쉬웠고 생동감있었다. 그리고 내 생각과 달리하는 부분에서는 발끈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의 생각이 지난 8년간 변화가 있었음을 느꼈다. 예를 들면 무상급식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나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반대를 주장했을 때 긴히 동조했었다. 이성호 교수가 여유가 있는 집 아이까지도 세금으로 급식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저는 반대합니다라고 이야기 했는데 나도 그런 생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무상급식을 기본소득제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점점 양극화가 심해지는 이 시대 속에 세금을 부유한 사람으로부터 좀 많이 걷고 무상급식이라는 이름으로 평등하게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기본소득제에 대한 기본 인식에 공감을 하다보니 무상급식도 괜찮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김호기 교수가 이념이란 현실의 반영이자 조타수(38)”라고 이야기했는데 이 점에 대해서도 공감한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신념의 조합도 세상이 변하면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에 맞는 이념을 가지고 사는 일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다른 사람의 이념에도 귀를 기울일만한 여유를 가지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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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Book 2019. 7. 15. 19:17

 

니콜로 마키아벨리. 그가 <군주론>을 썼을 때 그는 그의 이름이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정치사상이 되었을지 알았을까. 지금 생각해도 파격적인 1469년생인 그의 생각은 놀랍게도 아직도 유효하다. <군주론>을 읽으면서 고개를 꽤 많이 끄덕였다. 그리고 읽다보면 명언이라고 생각되는 글귀들로 넘쳐난다. 아쉽게도 당시의 이탈리아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지금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생각이 매우 많았다.

어중간한 조치는 결단코 피해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안아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읽으면서 갑자기 존 윅(John Wick)이 생각났다. 자기 여자 혹은 개에게는 무한한 애정을 표하지만 자신의 것에 해를 가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무자비로 응징한다. 존 윅은 킬러 업계에서도 전설로 통하는 압도적인 업무수행력을 보인다. 구차하게 말을 건네지도 않고 이미 총에 맞은 상대방의 머리를 한번 더 쏘아서 다시 일어날 여력조차 주지않는다. 이러한 존윅을 보면 마키아벨리 생각이 난다. 어중간하게 동정을 표하면 자기 자신이 죽는 것을 알고 있는 그가 킬러세계에서 장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마키아벨리즘적 사고방식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마키아 벨리는 식민지 건설정책은 고도로 효과적인 반면, 군사 주둔책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로마인들에게 영감을 받은 것 같은데, 일반 군대를 점령지에 보내면 일단 비용이 많이 들고, 그 지역에 피해를 끼치기 때문에 민심이 흉흉해진다고 보고 있다. 이는 아마도 미국정도되는 초강대국이 생각해볼 전략이다. 우리나라나 일본의 경우에는 미국을 좋아하는 우방국이기 때문에 문제가 덜하나, 이라크 같은 중동국가의 경우에는 미국에 대한 반감이 심한데 거기에다가 군대를 주둔시키는 일은 효과적이지 않은 일이 되겠다.

그는 또 타인을 강하게 하는 자는 자멸을 자초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문구 중 하나가 “Vis Pacem, Para Bellum.” 이다. 즉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해라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누구가 평화를 원치 않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이란 간악해서 약해보이는 상대를 보면 약탈하려고 한다. 타인에게 호의를 기대하기 보다는 강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혹은 타인이 강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래야 두 발 뻗고 잘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속성을 일찍부터 간파했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이란 박해를 예상했던 사람으로부터 우대를 받으면 시혜자에게 더욱 애정을 느끼기 마련이다.”라고 썼다. 나는 이 문구가 단순히 국가적 차원에서만 생각해볼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생각해볼만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평소에 착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10099착하고 1을 나쁘게 하면 상대방은 1을 보고 저 사람 왜이래라고 보는데, 오히려 99은 무뚝뚝한데 1을 착하게 하면 상대방은 생각보다 다정한 사람이라고 보기도 한다. 가령 유재석씨가 1번짜증내면 사람들은 유재석 생각보다 별로라고 생각하는데 박명수씨는 1번만 다정한 이야기를 해주면 박명수 생각보다 따듯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이것은 아마도 마키아벨리의 기본적인 인간관을 반영한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자인데다가 기만에 능하며, 위험을 피하고 이득에 눈이 어둡다고 보았다. 그래서 사랑을 받는 것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더 안전하다!!”라든지 술책이 진실을 이긴다라든지 어떻게 보면 통렬한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마키아벨리가 생각하는 인간상은 아니겠지만 국정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 외에도 근면함은 운명의 신을 물리칠 수 있다.” “당신 자신을 아첨으로부터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진실을 듣더라도 당신이 결코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라든지 살아가면서 인생의 모토로 삼아야할만한 이야기도 하였다. 실제로 마키아벨리가 마키아벨리즘의 입각해서 삶은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파격적인 주장은 현재는 물론이거나와 미래에도 생각해볼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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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으로 본 한국사회 100년>

Book 2019. 7. 12. 14:55

 

20세기의 우리나라 역사는 격동 그 자체였다. 물론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국사람으로서 우리나라의 20세기의 역사를 보자면 드라마가 따로 없었다. 조선의 망국부터 시작해서 식민시대, 6.25 전쟁, 독재, 경제발전, 민주화를 위한 투쟁까지 그 어느 해 하나 쉬운 해가 없었다. 물론 이렇게 큰 맥락을 잡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중간의 세세한 부분을 채워넣는 것도 중요하다. <논쟁으로 본 한국사회 100>은 역사교과서에는 다루어지지 않거나 간단히 다루어졌지만 상당히 중요했던 첨예하게 대립한 문제를 60여건의 주제로 잡아 썼다. 내가 80년대 생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이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고 아니면 내가 어렸을 때 일어난일이기에 잘몰랐던 부분이 많았다.

내가 전혀 몰랐지만 중요하고도 흥미롭게 읽었던 사건은 한글간소화 파동이었다.1950년대 초반에 있었던 한글간소화 파동의 중심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있었다. 1949년 한글날 담화에서 이승만은 당시 한글 표기방식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였다. 이유는 이승만은 오랜 시간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그가 익숙한 한글 표기방법은 구한말 때 한글 표기법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광복 후에 쓰이던 표기법은 1933년 제정된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의거한 것이라고 한다.

사실 지금쓰는 한글은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한글과는 용법이 꽤나 다르다. 한글이 1446년에 반포된 후에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쓰는 방법이 바뀌어 왔다. 물론 나같은 경우에 직접 목도한 변화는 “~~읍니다.”에서 “~~습니다로 변화한 것 뿐이지만 알게 모르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승만이 미국에 가있는동안 한글은 또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이승만은 한글 표기를 간호화하려고 했으나(예를 들어 있었다잇엇다로 바꾸거나 앉았다안잣다로 바꾸는 식임), 교육계, 문화계, 언론계 등의 반발로 인하여 끝내 그의 뜻을 관철시키지 못했다. 때는 광복한지 불과 5년 밖에 안되었던 해였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한글을 쓴지 오래되지 않은 데다가 문맹률도 높았었다. 만약에 이승만의 뜻대로 한글이 간소화되었다면 지금 우리가 쓰는 언어는 또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알고는 있었지만 또 읽으면서 가슴이 아팠던 부분은 한국전쟁기 도강파와 잔류파이야기였다. 6.25 전쟁 후 북한군이 빠르게 서울로 진주하면서 제대로 피난가지 못한 사람들은 서울에 남을 수 밖에 없었다. 특히 그 당시 한강철교가 폭파되면서 강을 건너지 못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그런데 928일 서울이 수복된 이후 다시 국군이 들어온 후에 피난을 가지 못했던 사람들은 인민군에게 부역한 사람으로 치부되어 죽음을 비롯한 갖은 고초를 당하였다. 20세기 우리의 역사의 비극의 3중주는 첫째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이고 둘째가 남과 북이 전쟁을 한 것이고 셋째가 군사독재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 어느 것 하나 슬프지 않은 일이 없지만 같은 동족이 죽이는 전쟁은 정말 슬픈 일이라고 하겠다. 그것도 광복이 있은 후 불과 5년 후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원래도 체제 변경으로 인하여 혼란스러웠는데 전쟁으로 인하여 그 혼란은 극에 달하였다.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인데 네편 내편을 가르면서 상대편을 몰살하려는 살기넘치는 시대상은 형언할 수 없는 끔찍함이었다. 1950625일부터 1953727일까지 3년이 넘는 시간 이 한반도 땅에 비극적인 죽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죽음은 단순한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극한의 적개심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지금 65년이 지금에도 분단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 외에도 이 책에서는 대한제국 평가’, ‘만주동포의 국적문제와 정체성’, ‘국대안 파동’ ‘토지개혁과 농지개혁’, ‘한일회담 반대 파동’ ‘베트남 파병’ ‘한국적 민주주의와 유신체제등 중요하게 곱씹을 일들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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