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을 경영하라>

Book 2019. 9. 28. 23:48

한 때 노키아가 휴대폰 업계를 장악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노키아는 거의 추억의 기업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는 불과 10년도 되지 않은 이야기이다. 스마트폰의 등장이 순식간의 업계 지형을 바꾸어 버린 것이다. 노키아 입장에서는 이럴 줄 알았겠는가 싶다.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했는데 <불확실성을 경영하라>를 쓴 최희갑 교수님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 책을 불확실성을 간파하고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바로 배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는데에는 도움이 될 수는 있다. 만약에 불확실성을 대처할 수 있는 능력, 즉 예지력과 정확한 판단력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총 5장으로 되어있고, 저자가 학자인 관계로 정확히 실무적으로 어떻게 불확실성을 다루어야하는 것보다는 이론과 개념에 대한 설명이 더 많다. 물론 이러한 이론과 개념이 현실에서 바로 도움이 되지는 않을 수 있지는 있다. 예를 들어, 저자는 나름 합리적으로 보이는 우리의 판단도 경도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면서 인지심리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과신, 낙관주의적인 경향, 대표적 속성에 대한 과도한 의존, 보수적 태도, 한 번 형성된 믿음의 장기화, 제한돈 데이터의 의존, 선호의 모순 등을 설명한다. 이러한 개념들은 현상을 이해하는 폭을 넓혀줄 수 있다는 점에서 한번즈음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불확실성을 쓸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카오스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평소에 혼돈의 카오스라고 같은 의미를 두 번 쓰는 농담을 하고는 하는데 카오스란 결정론적 시스템에서 비주기적이지만 일정한 범위에 머무는 동학으로 초기 조건에 민감한 의존성과 안정된 구조를 갖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한다. 풀어서 이야기를 하면 일단 동일한 상태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그리고 시스템의 상태는 일정 범위에 머물며 무한대로 발산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시스템은 확정된 규칙을 따르며 어떠한 확률적 요인도 개입하지 않는다. 또한 초기에 매우 인접했던 두 점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멀어진다. 이를 읽으면서 카오스라 함이 무제한적으로 천방지축 영향이 뻗어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느 틀 안에서 예측이 안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의외였던 것이 임의적으로 데이터가 생성됨에도 일정한 패턴을 낳는다는 것이다. 이 점이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정한 패턴을 산출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카오스가 아닌 느낌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는 초기 조건을 알 수 있으면 그 후에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를 강한 인과관계의 원칙 혹은 라플라스의 결정론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결정론은 세상이 점차 서로 연결됨에 따라서 인간의 능력으로는 때로는 도무지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태까지 오게 되었다. 과학이 발전하기 전에 인간은 점을 보면 안도하고는 했다가 어느 정도 과학이 발달하면서 과학에 의존하여 의사결정을 하였다. 그런데 복잡성이 너무 커지다보면 웬만한 기술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태까지 오게 되면 다시 운에 맡기는 경우도 늘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러니 하지만 고도로 과학기술이 발전했지만 워낙 불확실성이 커서 아예 운에 맡기는 것이다.

그리고 흥미로운 포인트는 불확실이 정상적이 상태이고 혼돈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원천이라는 것이라는 시각이다. 불확실성을 줄일 수 없거나 불확실성을 파악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그것이 정신승리 느낌이 나는데 어쩔 수 없다. 개인이 한 인생을 살면서 뜻하지 않은 일을 가끔 겪게 된다. 그리고 개인이 아니더라도 조직이나 국가도 계산에는 없었던 일이 생기고는 한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을 없애려 노력하기 보다는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대처하는 실력과 마음가짐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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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근현대사>

Book 2019. 9. 27. 00:40

 

 

1986년에 쓰여진 <중국근현대사>1840년에 일어난 아편전쟁부터 1978년 등소평의 집권과 개방정책까지 다루었다. 140여년의 역사를 기록한 책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그 어느 대하 드라마보다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중국이라는 적통을 이어받아서 일구어나가는 것에서 중국이 얼마나 큰 나라인가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청나라가 무너져가는 모습은 안타깝지만 그럴 수도 있는 모습이다. 수많은 왕조들이 그러했듯이 달이 차면 기울는 법, 청나라도 스스로 부패하고 외세의 침입을 받으니 그 위세를 다해버렸다. 이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다만 의미있는 것은 진나라때부터 있었던 왕정이 무녀지고 공화국이 들어서는 터가 잡혔다는 데 의의가 있겠다(물론 잠깐 원세개가 황제를 칭한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는 끝이 나고 중화민국이 들어설 때부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설 때까지의 35년여년의 시간은 아주 파란만장하게 돌아간다(물론 그것이 끝은 아니지만 말이다). 우선 외세, 특히 일본의 침입을 받게 된다. 일본은 우리나라만 점령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교두보를 삼고 만주로 그리고 산동반도 등 연안으로 세력을 확대한다.

이렇게 외세가 들어오고 있는데 중국에서는 군벌전쟁이 격화된다. 일단 슬픈 것은 다민족 국가이기는 하지만 같은 중국인끼리 싸웠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군벌전쟁이 외국의 세력에 의해서 조정되었다는 점이다. 우선 단기서의 안휘파는 일본의 지원을 받았고 조곤의 직예파는 미국과 영국의 지원을 받았다. 그 와중에 장작림의 봉천파도 일본의 지원을 받았는데 이들은 일본의 지원을 받는 안휘파와 대립하였다. , 서로 일본에게 지원을 받으면서 대립한 것이다. 이와중에 직예파와 봉천파가 연합하여 안휘파와 싸운다. 이 와중에 직예파는 순문의 광동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큰 줄기 이외에도 작은지방군벌들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물론 중국에서 중국내에서 싸운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삼국지 시절도 그렇고 춘추전국시대도 그러하였다. 그런데 이번이 조금 달랐던 것은 그 당시에는 외세의 침입은 없었다는 것이다(물론 외세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더욱 가관인 것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군벌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다음에는 국민당과 공산당의 치열한 전쟁이 있었다. 물론 일본이 계속 중국을 침략하고 있었을 때도 말이다. 장개석의 공산당에 대한 증오는 일본에 대한 증오보다 컸는지 일본의 침략을 막아내자고 국공합작을 하고나면 파기하고 또다시 공산당을 공격하였다. 장개석은 먼저 국내의 적을 일소한 다음에 외국의 침략을 막는다라는 기치하래 소위 위초작전을 여러 차례 착수한다. 저장성의 재벌(상해를 본거지로 하는 금융, 산업자본)의 체계적인 자원을 받은 국민당 군대는 가난한 공산당을 쫒아내려고 온힘을 다하지만 민심을 얻지 못하고, 대장정의 위업을 끝낸 공산당에게 패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그리고 일본을 이틈을 이용하여 중국인들을 엄청나게 많이 죽인다. 그 중 하나가 남경대학살이다. 물론 20세기 초중반이 워낙 전세계적으로 광기의 시대였지만 정말 중국인로서는 크나큰 아픔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공산당의 승리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졌지만 그 후로도 많은 인적인 손실이있었다. 중공이 나라를 세운지 1년도 안되어서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나고 중국에서는 순망치한이라면 우리나라에 대규모 군대를 보낸다. 이 때 중공군은 또 꽤나 많은 인명피해를 입는다. 게다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실정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또 죽어나간다. 이러한 굵직굵직한 현대사를 지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는데도 나라가 건재한 것을 보면 얼마나 중국이 거대한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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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야구다>

Book 2019. 8. 31. 00:37

 

우리나라 프로야구는 1982년에 시작되어 이제 38년째를 맞이하였다. 지나온 38년만큼이나 그동안 많은 일이 프로야구에 있었다. 프로야구 출범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프로야구가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것이 야구다>는 스포츠 전문 언론인 스포츠서울에서 2011년에 프로야구 30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있었던 흥미로운 사건을 모은 책이다. 스포츠 전문 언론사에서 낸 책이므로 자료가 신빙성있고 풍성하여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좋아할 만한 책이다.

프로야구 초반에는 지금이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일어났다. 그 중 가장 최고는 역시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최동원 선수가 무려 41패를 한 것이다. 겉보기 기록도 믿을 수 없는데 실상은 더 놀랍다. 그는 1차전에서 무려 완봉승을 거둔다. 그리고 3일 후에 3차전에서 완투승을 거둔다. 이것만으로도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다. 그냥 승리가 아니라 3일 사이로 2경기를 모두 책임진 것이다. 그리고 5차전에 나왔는데 선발패를 당한다. 그리고 바로 6차전에는 구원으로 나와서 승리를 거둔다. 마지막으로 가장 맙소사스러운 부분은 7차전에 또다시 완투승을 거둔다. 7번 경기를 하는데 숏릴리프 선수도 아닌데 5번을 나온 것도 놀라운데 무려 3번이나 완투를 했고 롯데가 우승을 한 4번의 승리를 최동원 선수 혼자서 다 한 것이다. 과장을 조금 붙이면 최동원 혼자 야구를 한 것이다. 아마도 이 기록은 전무후무한 대기록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에 버금가는 기록이라고 한다면 1983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장명부일 것이다. 그는 100경기에서 무려 60경기를 등판했고 성적은 30166세이브를 거뒀다. 지금 선발, 중간, 마무리가 나누어져 있는 프로야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기록이다. 혼자서 선발, 중간, 마무리를 다 한 느낌이다. 30승 중 26승은 무려 완투승이다. 현재 선발투수들이 6회만 넘어가도 힘이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고, 완투승(혹은 패)는 그렇게 쉽지 않은 기록이 되었는데, 무려 26완투승을 거둔 것이다. 아마 이 기록도 전무후무할 것이라고 본다.

나는 프로야구를 꽤나 어렸던 1990년대 초부터 보았었는데 그 당시의 기억이 어렴풋했는데 책으로 읽으면서 확실해지는 것들도 많았다. 1995년도에 OB가 우승할 당시 가장 주력 투수는 김상진이었다. 그는 특히 LG 이상훈과 대결을 펼치면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고, 그 해 18승의 커리어 하이를 달성한 것을 책을 보면서 회상했다. 이 김상진 투수가 99년에 삼성으로 이적했다가 SK에서 은퇴를 한다. OB에 있을 때(91~98)보다 확연히 못했는데 SK코치와 삼성코치를 하고 있는데 왜 두산으로 오지 않는지 꽤 궁금하다.

그리고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역시 선동열 투수인데 1999년에 은퇴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11년 그리고 일본에서 4년을 뛰었는데 더 뛸 수도 있었는데 좋은 이미지로 끝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은퇴를 했다. 그가 뭔가 정상의 자리에서 깔끔하게 물러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몰랐던 사실들도 많이 알게되었다(물론 야구팬이 아니라면 전혀 중요하지 않겠지만 야구팬이라면 알아두면 의미있는 것들). 선동열과 최동원에 가려진 3인자로서 존재감이 적어보일지 모르겠지만 김시진의 활약도 대단했다. 김시진이 84년 한국시리즈 41패의 주인공인 최동원이나 국보투수 선동열보다 100승을 3년이나 먼저한다. 김시진은 왠지 저평가받는 느낌이 항상있다. 1986년 골든글러브 시상식때 유격수 부분에서 김재박이 수상하는데 호명할때는 김재전으로 잘못했다고 하는 데 그 이유는 수상자 표시란에 한자로 으로 잘못써서 그렇다고 한다. 그 당시 한자를 얼마나 많이 썼는지 알게하는 에피소드이다. 이 외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는데 2011년에 발간한 책인 만큼 지난 8년간 지난 이야기는 담겨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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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100장면>

Book 2019. 8. 26. 01:42

<한국사 100장면>은 꽤 두툼하지만 반만년 이어져 내려온 우리나라 역사를 한번 훝어보기에 딱 좋은 책이다. 물론 중고등학교때 역사를 이미 배우지만 역사라는 것은 학창시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읽어주면서 감각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현재를 살아가면서 쏠쏠한 재미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때로는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 우선 고구려를 건국한 사람은 고주몽이다. 그리고 백제를 건국한 사람은 온조이다. 그런데 이미 잘 알려진대로 온조는 주몽의 아들이다. 원래 고구려에서 잘 살고 있었는데 예전에 낳았던 유리가 급작스럽게 나타나면서 온조는 형인 비류와 함께 지금의 서울 쪽으로 내려와서 나라를 건국하게 된다. 이런 것을 보면 고구려와 백제는 한 형제와 같은 국가였을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국가의 정체성이 뚜렷해지고 형제간에도 갈등이 있는 것처럼 나라 간에도 갈등이 생긴다. 그러면서 작게는 외교적인 갈등 크게는 전쟁을 통해서 아픔을 겪기도 한다. 이러한 예는 세계사적으로도 많은데 멀리 찾을 필요도 없고 현재 우리나라와 북한을 생각을 해보면 된다. 같은 언어를 쓰고 불과 70여년 전만 하더라도 같은 사람이 었는데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하고 지금도 분단되어서 총을 겨누고 있다. 먼 훗날 지금을 아마도 남북국 시대라고 부를 날이 올 수 있을 탠데 그 때 지금을 굉장히 한심이 여길 지도 모르겠다. 마치 지금보면 고구려와 백제가 하나가 될 수도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 당시 고구려와 백제는 지금 남북한처럼 진지했을 것이다. 이러한 남북국 체제가 아무 것도 아닐 시기가 어서 도래했으면 한다. 게다가 고구려와 백제가 패망을 하고 많은 유민들이 일본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이 사람들이 가서 아스카 문화를 일으켰다고 한다. 그런데 후에 그 후예들이 우리 나라를 침범하여 살육하고 그 후에는 장기적으로 무단 점령하면서 극심한 고통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한 때 한반도에 살았던 후예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괴롭힌 것이다(물론 모든 일본인이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은 아니다). 이런 것을 보면 사람들이 세력을 형성하고 갈등을 겪고 상대방을 괴롭히는 존재인가 싶기도 하다. 어쩌면 그렇게 다른 존재가 아닐 탠데 말이다.

그리고 책을 읽다보면 예전에는 무심이 모르고 넘어갔던 것들을 알게된다. 예를 들면 혜초는 704년에 신라에서 태어나 723년 중국으로 간 후 인도로 넘어가서 <왕오천축국전>을 쓴다. 아는 이 책을 무비판적으로 암기했는데 천축이라는 것이 당시 인도를 말하는 단어였다고 한다. 지금도 인도를 가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데 700년에 신라에서 중국으로 그리고 인도로 가는 것은 꽤나 벅찬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외로움을 달리기 위해서 페이스북같은 데에다가 글이라도 남기지 그 당시에는 누구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묵묵히 메모를 남겼을 것이다. 물론 혜초가 승려였기 때문에 세속적인 욕망에 연연해 하지는 않았겠지만 네비게이션도 없는 어떻게 인도를 잘 찾아갔나 모르겠다. 게다가 번역기도 없는데 말은 잘 통했을 지도 궁금하다. 그렇다고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가서 알 고 싶지는 않지만 궁금하기는 하다.

그 외에도 현재와 연결지어서 고민해볼 거리들이 있다. 예를 들어 고선지 장군의 서역 원정을 소개하고 있다. 고선지 장군의 아버지 고사계는 고구려 사람이었는데 고구려가 망해서 당나라로 어쩔 수 없이 이주했다고 한다. 고선지는 즉 고구려 유민의 자손이었다. 그런데 이 고선지가 장군까지 올라서 활약한 것이다. 이것을 보면서 고선지는 고구려 사람인가? 아니면 당나라 사람인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가끔 미국에 있는 교포 2세들(한국계 미국인)이 활약하면 뉴스채널에서 보도를 해주는데 그런 것과 비슷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때로는 흥미로운 주제도 있었고 때로는 슬픈 주제도 있었다.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히 잘난 역사도 없다. 다만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잘 알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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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Book 2019. 8. 16. 22:32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유행어를 만든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별내용은 없지만 역시 볼만한 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SINRA>라는 잡지에 1994년부터 1995년까지 게재하였던 글들을 모아둔 책이다. 특히 그가 미국에서 지냈던 1993년부터 1995년의 2년간의 시간의 내용을 담았는데 매우 소소한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했지만 읽는 재미는 소소함을 넘어선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굉장한 소소한 재미라서 소소하지 않다고나 할까.

그 유명한 소확행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135~136)

 

그로부터 3년 뒤에 나는 보스톤의 한 중고가게에서 같은 레코드를 2달러 99센트에 파는 것을 발견했다. 레코드판의 질은 반짝반짝하는 신품과 똑같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이것을 손에 넣었을 때는 정말로 기뻤다. 손이 떨릴 정도의 흥분은 아닐지라도 나도 모르게 싱글벙글 웃음이 새어나왔다. 꾹 참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결국 구두쇠가 아니냐는 말을 들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았다. 개인적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철저한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같은 것이다. “그래 이 맛이야!”하고 혼자 눈을 감고 자기도 모르는 새 중얼거리는 것 같은 즐거움, 그건 누가 뭐래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참된 맛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없는 인생은 메마른 사막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부분에 크게 공감을 했다. 소확행에 필수조건은 때때로 적당한 금욕이다. 아무 것이나 모든 할 수 있고, 매번 하고 있으면 그것은 행복이 되지 않는다. 약간의 방해물이 있고, 그 어떤 것을 극복한 후에 성취할 수 있는 것이라면 긍정적인 감정은 배가 된다. 그가 표현했던 운동을 한 후에 마시는 맥주가 딱 인 것 같다.

이러한 소확행을 누릴 수 있는 것은 하루키씨의 절도있는 생활습관에 기인할 수 있다. 그는 사실 바른생활 사나이의 삶을 살고 있다. 책에 그의 작업 방식이 나와있는데 아침 5시에 일어나 작업에 몰두하다가 밤9시가 되면 잠든다는 것이다. 물론 계속 소설만 쓰는 것은 아니다. 아침을 먹고 10시 반까지 작업을 하다가 수영을 하거나 한시간 정도 달린 후 점심을 먹는 다고 한다. 그리고 오후에는 기분전환의 일을 하는 데 번역을 하거나 간단한 에세이를 쓴다고 한다. 혹은 사무적인 일을 처리하거나 시내를 산책한다고 한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음악을 듣는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바른생활 사나이의 생활패턴이 그가 롱런하는 비결일 수 있다. 혹자는 이러한 바른 생활이 재미없고 불행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바른 생활이 정착된 사람이야 말로 소확행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맥주한잔이라든지 동네에 있는 고양이와 교감을 나눈 다는지 하는 작지만 소박한 행복을 바른 생활 사나이는 만끽할 수 있다. 알코올 중독자는 맥주를 마시지 않으면 죽을 것 같지만 그 행복이 바른 생활 사나이가 열심히 운동을 하고 마신 맥주와 그 결을 달리한다.

이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씨의 생활을 적은 것이지만 미국에 있을 때 쓴 것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미국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러는 의미에서 어떠한 사람의 미국여행기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리고 그와 곁들여진 사진과 순박한 그림은 글을 읽는 데 있어서 즐거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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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페셔널의 조건>

Book 2019. 8. 16. 01:12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사람이 피터 드러커이다. 피터 드러커는 여러 글을 통해서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의 저작 <프로페셔널의 조건>은 경영인이 아니더라도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한번 즈음 읽어야할 수작이다. 서점에 널려있는 수많은 자기계발서보다 훨씬 낫다. 두껍다면 두껍고 얇다면 얇은 이 책에서 피터 드러커는 그의 탁월한 식견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피터 드러커가 경영학에 큰 영향을 미친 죠지프 슘페터를 만난 이야기이다. 이는 마치 리오넬 메시가 디에고 마라도나를 만나서 축구이야기하는 것보다 나에게 더 흥미로웠던 장면이었다. 피터 드러커는 그와 만나서 얻은 교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167~168).

 

첫째,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늙어가면서 그 대답을 바꾸어야만 한다. 그것은 차츰 성숙해 가면서 그리고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바뀌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꼭 기억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한 가지는, 사는 동안 다른 사람의 삶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할지 모를 때 진지하게 물어볼 질문으로 아주 적합하다. 그리고 나름 확신을 가지고 일을 하다가 가끔 회의감이 느껴질 때 이 질문을 다시 한번 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로패셔널의 조건>에서 금과옥조와 같은 말씀을 쏟아 냈는데, 그 중 관심이 가는 것은 시간의 중요성이다. “시간은 철저하게 소멸되는 것으로서 저장될 수도 없다. 어제의 시간은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야말로 단 하나의 참다운 보편적인 조건이다. 모든 일은 시간 속에서 일어나고 그리고 시간을 소모한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한정된, 대체 불가능한, 필수적인 자원을 당연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피터 드러커는 시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시간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 성공함을 주장하고 있는데,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시간을 잘 사용하고 있는가? 그는 효과적인 지식 근로자는 시간과 경쟁하지 않는다. 그들은 편안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쉬지 않고 나아간다.”라고 이야기하였는데, 나도 언젠가 이 경지에 올라섰으면 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거의 모든 부분에 동의를 하면서 읽었는데 한가지 불만이 있었다. 경영학자들의 문제점 중 하나는 어떠한 것을 예측하기보다는 이미 발생한 사건을 잘 풀이해주는 해설자같은 느낌이다. 예를 들어 단점없는 사람이 없다면서 강점이 확실한 사람을 등용하라면서 링컨 대통령과 그랜트 장군의 예를 든다. 링컨 대통령은 그랜트 장군이 알콜 중독자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진 능력을 보고 최고사령관으로 기용하고 북군은 전쟁에서 이긴다. 그리고 피터 드러커는 세상에 나무랄 데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어떤 분야에서 나무랄 데가 겂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을 뿐이다라는 멋진 말을 한다. 나는 이것이 전형적이 경영학자들의 해설가적인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삼국지의 장비가 술에 취해 부하에게 꼬장을 부리다가 살해당한 예부터 술 때문에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긴 결과를 두고 장점을 잘 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너무 경영학자 다운 스토리 텔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페셔널의 조건>은 삶의 도움이 될 읽을 거리가 풍부하고 번역이 아주 잘되어있어서 국어로 읽는 데 아주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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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

Book 2019. 8. 15. 01:24

 

아동교육의 명저라고 불리는 <한 아이>를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계속해서 우울했다. 일단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는 정말 불쌍하다. 이 책은 특수학교에서 술꾼인 아버지에게 학대받고, 어머니는 떠나버린 쉴라를 지켜보는 교사의 이야기이다. 물론 가끔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주인공인 쉴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단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에 다가 아이를 학대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슬프다. 가끔 뉴스에 어린이집 교사가 아이들을 학대하는 것이 나와 시민들의 분노를 사게 한다. 물론 이 문제는 큰 문제이고 반드시 시정되어야 하는 시급한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나는 우리가 또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친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는 아이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학대당하면 아이가 어떤 식으로든 부모에게 알리고(혹은 부모가 알아채고) 교사를 잡아내고 교사는 처벌당할 수 있다(물론 이런 문제도 원천적으로 없어야겠지만). 그런데 부모가 학대하는 것은 양육시설에서 학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잡기 어렵다. 일단 아이의 양육은 부모의 책임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왈가왈부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터부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부모가 게임을 하느라 아이를 굶겨 죽였다는 등, 혹은 홧김에 아기를 던져서 죽였다는 등의 일 정도는 아니지만 아이에게 정신적 혹은 육체적으로 학대하는 일이 꽤나 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막느냐이다. 우선 어디까지가 학대인지를 확실하게 정해야한다. 누구는 뺨을 때리는 것을 학대라고 생각하고 누구는 아니라고 생각하면 국가가 개입하기 아주 어려워진다. 그 후 학대의 기준이 확실하다면, 언제,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미국의 경우에는 일정 연령 이하의 아이가 혼자 있을 경우에 부모는 처벌받는다. 혼자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학대라고 보기 때문인데 이를 인지한 누구나 신고할 수 있고, 이를 알아챈 경찰은 바로 출동하게 된다. 이러한 확실한 프로토콜이 자리 잡혀야 한다. 그리고 학대받는 부모에게서 아동을 구출할 경우 어떻게 보육할 것인지도 제대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학대를 받는 다고 아이를 부모에게서 떨어뜨려 놓은 후 방치해 놓으면 국가가 또 다른 학대를 자행하는 것이다.

<한 아이>를 보면서 가장 슬펐던 장면은 쉴라가 성폭행당하는 것이다. 그 장면에서 너무 놀라 책을 떨어뜨릴 뻔했다. 문제는 이러한 아동 성폭행이 소설의 가상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꾸준히 아동성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응당 그 피해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어떤 것은 민사로 해결되기도 하지만 어떤 일은 형사사건이 되어 재판을 받는다. 세상의 여러 일이 있는 만큼 죄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아동 성범죄는 정말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앞 길이 창창한 인간의 인생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너무 야비하기 때문이다. 자기보다 훨씬 힘이 없는 아이를 꼬셔서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에게는 참형에 처해야 한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참수하여 아동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혹자는 사형제가 범죄률을 낮추지 못한다고 한다. 나는 그 이유가 사형을 안 보이는 곳에서 시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동성범죄(혹은 유괴 같은))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는 저지르면 끝장이라는 것을 반드시 사회가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바로 선다.

책을 보면서 신기했던 점은 중간에 <어린 왕자>를 읽는 대목이 나온다. 소설에서 소설을 읽으니 이 책이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한 아이>1980년에 나왔는데 그 당시에도 <어린왕자><어린 왕자>를 읽었구나 하는 사회상도 조금 느낄 수 있었다. 1943년에 나온 <어린 왕자>가 이미 1970년대에 고전의 반열에 오른 느낌이었다.

<한 아이>는 나레이터인 교사가 쉴라와 헤어지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래서 오픈 엔드 형식을 취하는데, 쉴라가 어떻게 살아나갈지 궁금했다. 검색을 조금 해보니 헤어진 후 7년 후를 그린 <한아이 2>가 있었다. 읽어야 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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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시대의 경제학>

Book 2019. 8. 10. 02:22

 

고령화는 우리나라의 큰 근심거리로 다가오는 문제이다. 고령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의료기술의 발전인데, 이것은 한축이고 다른 한축은 저출산이다. 고령화라고 하면 노인인구의 절대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의 문제인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생존할 수 있는 연령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이거니와 새로운 세대가 유입이 잘 안됨으로 노인의 인구비율이 점차 늘어나는 것이다. George Magnus<고령화 시대의 경제학(The age of aging)>은 우리나라 고령화문제를 이야기 한 것은 아니지만(물론 우리나라 이야기도 나온다)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령화가 어떻게 사회적 변화에 영향을 주고 그것에 대처하는 여러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책을 보면서 이미 아는 내용도 있었고 뻔한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야 할 점도 꽤 많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여성노동의 활용이다. 고령화, 특히 우리나라 사회에 있어서 고령화가 문제가 되는 것은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 경제성장은 더뎌지고 각종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정부에서는 여러 대책을 쓰고 있는데 효과적인 것은 많지 않다. 저자는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를 늘리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나는 이에 크게 동감을 한다. 현재 우리나라 여성들이,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경력단절에 시달리고 있다. 입사를 해서 커리어를 쌓다가 결혼을 한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고 하면 휴직을 하게 되면 그 때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아직도 몇몇의 기업에서는 암묵적으로 퇴사를 종용한다. 그리고 아이 때문에 늦거나 일찍 퇴근하려면 눈치를 준다. 그리고 여성은 이래서 안되다는니 회사에 충성심이 없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궁극적으로는 여성을 채용하는 것을 꺼린다. 회사의 사정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윤을 극대화해야하는 입장에서 근로자가 온힘을 다해 회사일을 하는 것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보니 여성들은 불리한 입장에 쳐하고 일을 선택하거나 가족을 선택해야하는 양자택일의 사정이 봉착하게 된다. 물론 소수의 슈퍼맘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꽤나 예외적이고 많은 여성들이 가정을 택하게 된다.

이 누구나 아는 사실을 푸는 것은 어려워 보이지만 또 쉽게 풀 수 있다.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아기를 맡기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지 애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도록 시설을 확충하고 인력을 채용하는 것이다. 지금도 어린이집에는 대기순서가 길고, 또한 가끔 터져나오는 어린이집 학대사건을 보면 맡기면서도 찜찜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일단 정부는 아기를 언제든지 맡길 수 있도록 해야하면 보육시설에 CCTV를 확충하며, 문제있는 보육교사를 처절하게 처벌해야한다. 그래서 부모들이 안심하고 언제든지(24시간 언제든지!!, 보육퀄리티는 국회어린이집이나 삼성어린이집정도로) 맡길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는 저출산은 물론이거니와 여성들의 경력단절을 줄일 수 있다. 그렇다면 급속한 고령화에도 생산가능인구도 급격하게 줄지 않을 것이다. 각종 저출산 극복 예산이 있는데 이러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만 벗어나도 고령화문제는 많이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고령화 시대의 경제학>에서는 여성문제뿐만 아니라 이민문제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꽤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서 일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업무를 저렴한 비용을 수행해서 좋은 점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들어와서 사회문화적으로 여러 가지 갈등을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외국인 노동자를 인위적으로 막을 필요는 없지만, 특히 기업이 원한다면, 그렇다고 과도한 혜택을 줄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다만, 정당하게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그들의 권리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환경 조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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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Book 2019. 8. 4. 00:50

자유주의에 대한 책을 한권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고를 것 같다. 도무지 1800년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생각이 트여 있는 사람이다. 현재를 사는 우리가 스스로 자유롭게 살고 타인도 자유롭게 살기 위한 금과옥조들이 가득한 책이다.

최고 권력자가 행사할 수 있는 힘의 한계를 규정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권력에 대해 제한을 가하는 것을 바로 자유라고 불렀다.” 우선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부터가 탁월하다. 자유라고 하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하는데 권력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 자유라고 말하는 발상이 너무 마음에 든다. 사실 생활을 하다보면 여러 자유의 제한을 느끼고는 한다. 그 중에 어떤 것은 필요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떤 것은 부당하다가 생각한 것들도 있다. 이럴 때 자유의 제한을 느낀다. 이러한 제한을 풀어주는 것, 반대로 생각하면 정부혹은 다른 권력이 제한을 가하는 것을 줄이는 것이 자유라고 해석할 수 있다.

밀은 정부뿐만 아니라 대중에 의한 다수의 횡포에 대한 주의를 하고 있다. “사회는 이런 방법(사회가 통설과 다른 생각과 습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법률적 제재 이외의 방법으로써 윽박지르면서 통설을 행동 지침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경향)을 통해 다수의 삶의 방식과 일치하지 않는 그 어떤 개별성도 발전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아예 그 싹조차 트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급기야는 모든 사람의 성격이나 개성을 사회의 표준에 맞도록 획일화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분명히 강조하지만, 집단의 생각이나 의사가 일정한 한계를 넘어 개인의 독립성에 함부로 관여하거나 간섭해서는 안 된다.” 밀이 죽은 지 무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사회의 통념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면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다른 의견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들어줄 필요도 있는데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과 다른 의견을 듣기 싫어한다. 밀도 언급하였듯이 이는 말은 쉬운데 실제로 받아들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또 이미 밀은 개인의 독립성과 사회의 통제 사시에서 적절한 접점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밀은 이미 내가 지금하는 생각을 다 해버린 것 같다).

밀은 유명하게도 자유에 대한 원칙을 간명하게 설명한다, “말을 듣지 않는다고 강제하거나 위협을 가해서는 안된다. 그런 행동을 억지로라도 막지 않으면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나쁜 일을 하고 말 것이라는 분명한 근거가 없는 한, 결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행위에 한해서만 사회가 간섭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개인이 당연히 절대적인 자유를 누려야 한다. 자기 자신, 즉 자신의 몸이나 정신에 대해서는 각자의 주권자인 것이다.” 이 문구는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시금석이 되어야할 주옥같은 글이다.

그리고 밀은 지켜져야 할 자유의 영역을 세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우선 내면저 의식의 영역이다. 둘째는 자신의 기호를 즐기고 자기가 희망하는 것을 추구할 자유이다. 셋째는 결사의 자유이다. 생각해보면 이 지구 상에서 생각보다 이 세가지 영역이 제대로 지켜지는 나라가 생각보다는 많지 않음에 이 인류가 갈 길을 아직은 멀다라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밀은 바람직한 사고방식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비교하고 대조하면서 틀린 것은 고치고 부족한 것은 보충하는 일을 의심쩍어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오히려 이를 습관화하는 것이 우리의 판단에 대한 믿음을 튼튼하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탄탄한 생각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열린 자세로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의 생각을 강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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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성장을 위한 새로운 비전과 전략>

Book 2019. 8. 1. 01:44

20061월에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발간한 <동반성장을 위한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읽었다. 최신 연구보고서를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때로 약간 시간이 지난 보고서를 읽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통찰력을 줄 수 있다. 13년 전의 국정운영은 어떠하였을까. 현재 문재인 정부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떤 것은 새로운 것이고 어떤 것은 꽤나 오래된 것이다. 온고지신의 마음으로 책을 읽다보니 전문가들의 13년 전 조언이지만 지금도 상당히 유효했다.

지금 4차 산업혁명과 적폐청산이 키워드인 것처럼 13년 전에는 동반성장과 양극화 해소가 키워드였다. 이 보고서에서 전문가들은 노동, 산업, 교육, 농업, 중소기업, 물류 등 다방면에 걸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하여 진언하였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고용부분이었다. 이미 13년 전부터 우리나라 고용문제에 대해서 근심하고 있었다. 이 글이 작성되었던 2005년은 우리가 경제위기를 겪고 난 후였지만 더 이상 산업화 시대처럼 고성장할 수는 없는 상태가 왔다. 그리고 이미 우리나라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대학을 갔기 때문에 일자리와의 미스매치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에 지식서비스 산업을 키우자는 제안을 했는데 어느 정도는 성공하고 어느 정도는 실패한 것 같다. 그리고 창조적인 중소기업을 발전시키자고 했는데 이는 별로 성공한 것 같지 않다. 이에 대해서 참여정부만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중소기업을 키우지 못한 것은 그 뒤를 이은 이명박, 박근혜 지금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혁신형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대기업과의 상생협력을 이끌 수 있는 많은 정책들이 제안되었고 실행되었는데 아직 결과가 뾰족이 개선되지 않은 것을 보면 어쩌면 답은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와 더불어 정부가 여러 가지 고용촉진과 고용안정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고용절벽과 고용불안을 해소하지 못한 것을 보면 이 또한 답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닌 가 싶기도 하다. 고용유지 지원금같은 것을 주지말고 해고당해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늘리는 것이 더 낳지 않을 까 싶다. 아무리 돈을 기업에게 주어보았자 돈은 돈대로 받고 노동자의 고용은 불안하게 할 것 같다. 차라리 기업에게는 고용유연화를 하게 해주고 다만 노동자가 재기할 수 있는 토대를 지원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는 중소기업에게도 마찬가지 인데, 우리나라에서 창업을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하다가 실패하면 답이 없기 때문이다. 실패해도 살 수 있을 정도의 기반을 지원해주어야 하지 않을 까 싶다. 물론 이러한 생각도 말처럼 현실에 옮기고 의도한 바대로 효과가 나올지는 미지수이지만 말이다. 또한 여러 가지 법을 자꾸 만들고 있는데 차라리 있는 <근로기준법>이라도 잘 지키도록 정부가 제대로된 관리를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국회의원들이 머리를 써서 여러 가지 법을 만들어도 시장은 그것보다 항상 한 수 위에 있다. 어떻게든 법망을 빠져나가서 꼼수를 부릴 수 있다. 그리고 오히려 노동자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는 바뻐서 제대로 도와주지 않는다. 차라리 새로운 법이나 정책을 만들기 보다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 외에도 흥미로웠던 점은 중국의 부상에 대한 경고이다. 중국은 이제 미국 다음의 강국으로 거듭났다. 그런데 13년 전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중국의 비상과 우리의 대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중국의 인력과 시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우리가 비교우위에 있는 산업을 빼앗아 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지난 13년동안 어느 정도 사실이 되었다. 나는 오히려 지금부터가 더 문제라고 본다. 운이 좋게 중국이 스스로 미끄러지지 않는 이상, 그들의 성장은 예견되어 있고 그 성장의 영향은 좋든 싫든 우리에게로 온다. 이 예견된 미래에 어떻게 대처할지가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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