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오랫동안 국민들의 원성의 대상이다. 국민들을 위해 하는 일은 없이 허구헌 날 싸우기나 하는 것 같다. 게다가 선거 때는 머슴이 되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당선이 되고 나면 상전이 따로 없다. 그리고 국민만 바라보겠다는 의원들은 실제로는 공천위원장이나 당내 실세에게 줄서는 것에 여념이 없다. 이렇게 국회가 욕먹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 중 하나는 공천권이 하향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총선이 가까워 질 때마다 국회의원들은 신경이 곤두선다. 국민에 대한 걱정으로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선에 대한 걱정으로 신경이 곤두선다. 그들의 재선에 대한 걱정은 공공선택이론에 따르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공공선택론에 의하면 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급급하다. 안타깝지만 소수의 몇몇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가정이 현실에 더 부합할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공천권자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충성이다. 이러한 줄서기가 어떠한 결과를 가지고 오는 지 김재훈 박사는 연구하였다. 특히 공천제도가 어떻게 입법생산성에 영향을 주었는지 우리나라 국회를 대상으로 조사하였다. 생산성이라는 것이 물건으로 보면 비교적 쉽게 정의내릴 수 있는데 입법활동의 생산성을 정의내리기는 쉽지 않다. 일단 이 보고서에서는 입법생산성을 법안 통과건수와 의원발의비율로 보았다.

연구에서는 상향식 공천제도가 하향식 공천제도보다 더 생산적인지 확인해보았다. 하향식 공천제도의 경우가 더 높은 입법생산성을 보였다. 이는 상향식 공천제도가 정단 내무의 의사결정관정을 민주화하고 정장 내 권력관계를 분권하여 당에 따라 무조건 반대를 하는 상황이 덜 벌어졌다고 볼 수 있다. 혹은 의원들이 더욱 시민들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 따라 법안을 더 만들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상향식 공천제도가 실질적으로 17대 국회의원선거(20045)에만 가동되었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아예 공천제도가 없거나, 내각제였거나(장면정부시절), 하향식 공천제도였다. , 단 하나의 케이스로 더미변수로 넣어서 결과를 냈다. 이럴 경우, 결과를 일반화하기 매우 어렵다. 그래서 17대 국회가 공천제에 의해서 생산적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잘 알 수 없게 된다.

또한 입법생산성을 측정하기 위해서 법안 통과건수와 의원발의비율을 이용하였다. 문제는 이 변수들이 정말 생산성을 측정하는 데 적절한가이다. 이 논리의 기저에는 법안이 시민들의 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것에 있다. 이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시민들의 삶과 유리된 법안들도 많다. 이 경우에는 법안발의가 생산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의원발의비율도 마찬가지이다. 정부발의법안에 비해서 의원발의법안이 더 생산적이라고 보는 것은 그만큼 국회의원이 일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역시 국회의원들이 일을 하는 것이 국민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큰 가정이 있어야만 생산적인 활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입법활동이 국민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국민 모두가 찬성하는 법안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계가 있지만 일단 김박사의 연구처럼 일단 생산적이라고 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2020년 다시 총선이 다가온다. 국회의원이 국민을 위한다는 이야기를 또 할 것이다. 온갖 감언이설로 국민을 현혹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말보다 행동일 것이다. 국회의원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차라리 사리사욕에 사로잡힌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마음이 편할 수 있다. 이러한 사리사욕에 쩌든 국회의원이 국민들을 위해 일할 수 있게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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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매트릭스 읽기>

Book 2019. 4. 18. 22:19

<매트릭스>SF영화의 한 횟을 그은 영화이면서도 그 내용에는 여러 철학적인 질문들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이에 철학자들이 모여서 매트릭스를 철학의 관점에서 쓴 <철학으로 매트릭스 읽기>를 편찬하였다. 철학이라고 해서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고 7명의 철학자가 매트릭스를 보고 느끼고 생각한 영화감상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교과서가 아니므로 난해하지도 않고 영화를 매개로 쓴 것이기 때문에 이해도 쉽다. 다만 매트릭스를 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공감대가 많이 떨어질 수도 있겠다. 반면에 나같이 매트릭스를 DVD를 구매해서 여러 번 본 사람은 내용을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겠다.

 

내가 매트릭스를 보면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은 네오가 오라클과 면담하는데 오라클이 네오보고 인류를 구할 사람이 아니라고 이해했는데 궁극적으로 네오가 인류를 구하게 된다. 나는 이 부분을 보면서 오라클이라는 사람이 왜 틀리는 가 싶었다. 그런데 해석을 오라클은 맞는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네오에게 필요한 말을 한 것이다(18)”라고 하니 이해가 되었다. 이는 어쩌면 결정론이라든지 운명과 관련된 것이다.

 

운명이란 현재의 눈길이 과거의 순간들에 던지는 소환장이다. 네오가 운명을 부정한 것은 운명이란 현재가 과거에 던지는 회고적 눈길일 뿐이기 때문이다. 운명을 받아들일 때 삶의 매 순간은 나의 시간들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17).”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세상에 운명이라는 것은 과연 존재하는 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일상 생활에서도 종종 쓰이는 운명이라는 말, 과연 합당한 것으로 볼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서 결정론 그리고 자유의지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매트릭스 2>에서 느끼한 프랑스 사람 메로빈지언이 나와서 인과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메로빈지언이 내세운 인과론은 모피어스가 말한 선택의 자유의지론과 대치된다. 메로빈지언은 선택을 일종의 환상으로 돌린다. 선택은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에게 심어준 환상이다(31).” 우리가 선택하는 모든 것은 이미 어떠한 원인에 의해서 정해져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면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증명할 수 없다면 나는 자유의지론에 힘을 주고 싶다. “결정론의 세계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다. 그곳에는 선택도 역사도 존재하지 않는다(30).” 이미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어떠한 원인에 의해 정해져 있다면 특별히 고민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매트릭스에서는 매트릭스 안의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요원들은 고통스럽고 추한 실제 현실보다 매끈한 가상현실인 매트릭스가 더 나은 세계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45).” 어쩌면 나도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빨간색 알약을 선택하지 않을 것 같다. 일단 현실을 너무나도 괴롭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도 만약에 현실에 나와산다고 하더라도 그 현실이 또다른 매트릭스가 아님을 증명해야 해야하는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 꿈속의 꿈속의 꿈을 확인하기 어렵듯이 현실이 정말 현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 그럴 바에는 차라리 매트릭스 안에 살 것 같다.

 

사변적인 철학 뿐만 아니라 생활의 철학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온다. 네오의 강력한 힘이 알고자 하는 욕망에서 온다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달성하는 순간 성취감의 쾌락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것을 욕망하게 하는 새로운 결핍이 나타난다. 잉여쾌락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 사람은 끊임없이 더 큰 것을 욕망하며 그것이 달성되면 또 더 큰 것을 욕망한다(205).”라고 이야기하는데 크게 공감하였다. 나는 이것이 인간의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가지면 그것에 만족하기 보다는 더 많은 것을 원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타인을 괴롭히기도 한다. 나 역시 살아가면서 달성한 것에 만족하기 보다는 달성할 것을 생각하면 괴로워한 시간이 더 길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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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러스트레이터이다>

Book 2019. 4. 9. 11:45

 

21세기적 예술노동자의 표상

예술가하면 왠지 창의적이지만 현실감각은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런 나의 고정관념은 밥장님을 접하면서 깨졌다. 그리고 새로운 예술가의 모습에 감탄하였다. 밥장님이 예전에 회사에서 근로를 해서 인지 몰라도 그는 독창적인 예술인이지만 사회성도 충분히 함양한 예술인이다. 여러 가지 모습에서 느껴지는데 그 중 하나가 그림의 가격을 매기는 방식이다.

 

어떻게 그림값을 매길 것인가?

인건비 + 관리비 + 아이디어 및 기술료 + 기타 비용 (37)

 

가끔 예술인은 터무니 없는 높은 가격 혹은 터무니 없는 낮은 가격으로 자신의 그림을 팔고는 하는데 밥장님은 합리적인 견적방식이 있다. 견적의 구성내역은 누가 보아도 납득이 된다. 그의 창의성과 수고로움은 적절히 배합된 견적서에 나타난다. 이로서 21세기 예술인의 근로는 제대로 보상받는다. 21세기는 디자인의 시대이다. 시각적 예술은 생활 속에 녹아 들어가고 있다. 예술에 대한 적절한 가치를 매김을 밥장님이 하고 있는 듯했다.

 

 

매체와 표현

결과보다는 과정을 남기자. (28)

 

예전에는 어떠한 작품을 사람들에게 보일 때는 과정은 숨기고 결과로서만 보여졌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결과뿐 만이 아니라 과정도 충분히 훌륭한 스토리가 된다. 밥장님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서 이를 십분활용하였고, 적절히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그림을 구상하고 준비하고 그리는 작업은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 과정은 결과물과는 또다른 영감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또한 이제는 결과가 결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또다른 과정이 되는 시대이다. 예전에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렸을 때는 그 모나리자로 끝났다. 물론 모나리자의 위대함은 사그러 들지 않지만 21세기는 어떠한 결과물을 토대로 또 다른 결과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결과 그 자체에 국한되기 보다는 끊임없는 과정이 있는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느낀다.

 

 

아이덴티티있는 근로

잘 그린 그림보다 색다른 그림에 욕심내자.(63)

 

예술인으로서 아이덴티티가 있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런데 이를 보면서 이런 덕목이 현재를 살아가는 일반인에게도 필요하지 않을 까하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이 포화상태이다. 누구나 왠만한 수준의 근로수준은 도달해 있고 많은 부분은 컴퓨터나 기계가 대신 해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남들과 다른 업무이다. 그리고 그 다름은 아이덴티티로 규정된다.

혼이 있는 근로가 필요하다. 어떤 일을 보았을 때, 일을 한 사람이 생각날 정도의 근로자가 되어야 한다. 산출물에서 시그니쳐가 느껴져야 한다. 그 대표적인 주자가 아마도 스티브 잡스일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우리 곁을 떠나도 아이폰을 보면 그가 생각난다.

근래 많은 청년들이 스펙쌓기에 열중하고 있다. 물론 스펙이라는 기본적인 조건을 축적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것에만 열중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특히 부화뇌동하여 스펙을 쌓는데 몰입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 과도한 스펙은 남들과 비슷해지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같은 시간을 사용하더라도 남들도 하는 스펙을 쌓기 보다 자신만의 색을 낼 수 있는 노력을 하는 것은 어떨까? 물론 남들과 다른 색을 내는 것은 두려울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생존의 법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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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나는 프랑스 혁명>

Book 2019. 4. 2. 22:52

프랑스 혁명은 단순히 프랑스 역사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 중 하나이다. 그래서 세계사를 다룰 때 필수적으로 다루는 사건일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전반에 있어서 모를 수 없는 사건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아는 것 같지 않다. 기껏해야 1789년에 일어난 일이라든지 혹은 루이16세를 폐위하고 공화국이 세워진 것이라든지의 파편화된 지식만을 가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 만나는 프랑스 혁명>은 프랑스 혁명을 깊이 있지만 쉽게 풀어쓴 책이다.

 

지금이야 프랑스 혁명의 의의를 글로 읽고 이해만 하면 되지만 혁명이 벌어지는 시대에는 정말 혼란의 연속이었다. 왜냐하면 일단 왕이 워낙 오랫동안 있었기 때문에 왕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지금 자본주의 체제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세상을 뒤집는 것과 마찬가지이다(심지어 자본주의는 이미 공산주의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대안을 생각하기 어렵다). 지금이야 공화국의 개념이 공기처럼 당연한 개념으로 다가오지만 천년이 넘게 왕이라는 존재가 있던 사회에서 왕을 제거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서 실제로도 혁명이 일어나자마자 왕을 사형시키지는 못하고 얼마의 시간 후인 1793년에 루이16세를 제거할 수 있었다.

 

책을 보면서 곰곰이 생각한 점은 온건파와 강경파의 대립구도이다. 구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 생각은 동일했다. 하지만 어떻게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견이 있었다. 이를 보면서 예전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무단으로 점령을 당할 시절에 독립운동을 하시는 분들도 노선이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뉘었다. 조국독립이라는 공통된 목표가 있었지만 그것을 구체화하는 데 있어서는 다른 생각을 가지신 것이다. 지롱드(Girondins)파와 몽태뉴(Mountains-영어로 마운틴이라고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산처럼 회의장에서 높은 자리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파로 나뉘어 프랑스 혁명 후의 일을 처리하고 프랑스의 미래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평원파(La Plaine)도 있었다. 몽태뉴파가 급진적인 성향을 가졌고 지롱드가 그에 비해 온건적인 입장을 가졌다. 이들이 옥신각신하면서 정치인 마라 등이 암살당하는 와중에 나라를 이끌어 가고 있는데 외국의 침략까지 받는다. 이러한 것을 보면 혁명이라는 것이 말처럼 쉽지도 않고 혁명이 성공한 후에도 깔끔하게 세상이 정리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도 알 수 있다. 이 혼란의 여정이 끝나는 것은 나폴레옹이 등장하면서 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오히려 프랑스 혁명 자체가 아니라 혁명 후에 나폴레옹의 등장이다.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후 혼돈의 시기가 지나고 로베스 삐에르의 공포정치를 지나고 나폴레옹이 등장한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실권을 잡는 것은 1799년이고 황제에 오르는 것은 1804년이다. 불과 혁명이 일어난 후 15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왕을 폐위시키고 황제가 나타난 것이 불과 15년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물론 나폴레옹과 루이 16세는 성격을 달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이 황제에 오른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보다 37년이나 먼저 태어난 조지 워싱턴은 독립전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황제에 자리에 오를 수도 있었을 탠데 8년간 대통령을 하고 물러난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것이 없지만 만약에 나폴레옹이 대통령의 위치에 올라서 10년 정도만 했으면 어떠했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만약에 그렇게 했다면 아마도 프랑스의 민주주의는 더 빨라 정착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워싱턴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지금이야 임기가 정해진 최고통수권자를 생각하지만 200년 전만 해도 왕같은 존재가 사람들에게 더 익숙했으니 말이다. 이 책에는 나폴레옹이야기까지 나온다. 나폴레옹 실각 후에도 여러 일들이 있었다. 200여년 사이에 얼마나 세상이 바뀌었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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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콘>

Book 2019. 3. 25. 03:55

진중권 교수의 글을 즐겨 본다. 글을 재미있게 쓴다기 보다는 읽으면 지적으로 포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공기를 마시지 않으면 수분 만에 죽고 단식을 하면 길어야 한달이면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 그런데 진교수의 글을 읽지 않는다고 죽을 일은 없다. , 그의 글은 살아가는 데 직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으면 빈곤했던 머리가 촉촉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안타깝게도 읽은 후 나의 탁월한 망각능력으로 인하여 그가 글에서 무엇을 말했는지는 얼마지 않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치 점심에 피자를 많이 먹어서 배불렀지만 저녁에 또다시 배고픈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다행인 것은 먹은 피자는 배에 들어가서 똥이 되어 다시 먹을 수는 없지만 진교수의 글은 까먹으면 다시 보면 된다. 진교수의 <아이콘>5년 전에 읽었다. 그리고 5년 후에 다시 읽었는데 새책처럼 유익하게 읽을 수 있었다.


진교수의 글이 매력적인 이유는 우선 그는 훌륭한 안내자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어렵다. 특히 철학에서 나오는 개념은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오롯이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철학이 우리의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생각하는 곳에 철학이 있다. 그래서 철학이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삶에 대한 이해도 풍족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깊어 질 수 있다. 그래서 철학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많은 철학과 교수들은 너무 이론에 치우쳐 평범한 사람들과 거리가 멀어졌다. 진교수는 그러한 면에서 그동안의 한계를 극복하였다.


그는 평소에는 절대 쓸 일이 없는 파타피직스(pataphysic)부터 쓸 수도 있는 범주의 오류까지 다양한 주제를 현실의 소재와 잘 연관지어서 설명을 한다. 파타피직스는 우리말로 사이비 과학을 말한다. 이 개념만 들으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그는 예를 잘 들어서 설명한다. 예를 든 것이 섭지니어스 교회(Church of subgenious)이다. 밥 돕스라는 사람에 의해 설립되었다고 주장되는데 밥돕스라는 사람은 만화 캐릭터라고 한다. 그리고 이 교회는 세상의 각종 종교를 페러디한다고 한다. 그리고 신도들이 이단종교를 만들도록 장려된다고 한다. 그는 이런 것을 파타피지컬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개념만 보면 잘 와닿지 않을 것이 그의 예시로 인해서 조금은 이해가 되는 지경까지 내려온 것이다.


범주의 오류의 경우에도 예전 민주노동당의 북한 세습에 대한 견해를 예를 들어 설명한다. 북한 3대 세습에 침묵하는 민주노동당은 북한과의 외교적 관계를 유지하려면 체제에 대한 비판은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에 대해 진교수는 북한과 남한의 외교적 관계를 관리하는 것은 민노당이 아니라 외교부의 역할인데다가 3대 세습에 비판적 견해를 갖는 것과 3대 세습에 비판을 삼가는 것이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이 두 범주를 섞음으로써 공당의 이념적 성향을 대중에게 은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게다가 비판한 점은 신앙고백을 강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정에서 묵비권이 행사되는 것처럼 개인은 원하지 않는 질문에 답변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정당은 그렇지 않다. 개인과 정당은 범주가 다른 것이다. 개인에게는 자신의 양심을 말하지 않을 자유가 있지만 공당에게 그러한 자유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범주의 오류를 이용한 궤변론적인 예라고 진교수는 이야기한다. 이 부분을 읽는데 그동안 답답했던 부분이 시원하게 해결이 되었다. 안그래도 대기업의 세습은 맹렬히 비판하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하는 정치인을 의아해 여겼는데 말이다. 책을 다 읽고 갑자기 부자가 된 것은 아니지만 시야가 넓어진 것이 느껴질 수 있었다. 이것이 독서의 순기능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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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천재 이제석>

Book 2019. 3. 18. 19:04

광고천재 이태백이라는 드라마를 방영되었다. 이 드라마의 이야기는 광고천제 이제석 모티브를 삼어서 만들었다. 광고천재 이제석이라는 책을 2년 전 즈음 읽었는데 즐거운 경험이었다. 물론 책 한권으로 어떻게 사람을 모두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매력에 심취한 기억이 있다.

 

 

굴욕의 힘

 

좋다, 미국가자. 못 먹어도 고다. 이왕 가는 거 뉴욕으로 가자!”

그동안 속된 말로 내세울 만한 스펙이 없어서 얼마나 밀렸던가.

진짜 실력으로 세상과 한번 부딪쳐보자!

남들이 죽었다 깨도 못 따라올 실력을 갖추자!

그렇게 내 안의 독기가 이글이글 타올랐다. (12~13)

 

사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가진 것이 없기에 더 힘들다. 게다가 흔히 좋은 대학이라는 스펙이 없는 청년들은 더 힘든 시기를 거친다. 이제석씨는 지방대를 졸업하였는데 그는 실력에 비해 턱없이 못미치는 대우를 받으며 오기를 느꼈다. 어떠한 청년은 이 오기로 인해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고, 어떠한 청년은 이러한 오기를 뒤로한채 그저 그러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는 독기를 품고 광고의 본산, 자본주의 총아 미국으로 건너가기로 결정한다.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있는 이제석씨는 모든 것을 걸고 미국을 간다. 그렇게 그의 신화는 탄생한다. 물론 어떤 사람은 그가 성공했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가 미화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가 좋지 못한 성과를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책이 금방 나오지는 않았겠지만 굴욕을 자신의 노력으로 승화시키는 힘이 있었다면 시간의 차만 있지 반드시 좋은 성과를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패의 힘

 

인터넷에 이제석을 검색하면 광고천재라는 수식어가 뜬다.

내가 광고 천재라고? 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아마 내 실패작들을 모으면 적어도 트럭 몇 대 분량은 나올 거다.(153)

 

성공은 멋지다. 사람들은 그 화려한 성공 뒤의 수많은 어려운 과정을 잘 보지 못한다. 그리고 불평을 한다. 왜 나는 재능이 없는가? 왜 나는 사회경제적으로 뛰어난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는가? 단언하건데 이런 것은 정말 바보같은 생각이다. 남을 탓할 시간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열정으로 도전해야한다.

물론 도전은 수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어려움을 나만 거치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극도의 소수의 천재를 제외한 사람들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이 시련을 겪는다. 성패의 갈림길은 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이다. 정신적으로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자신의 길이 항상 꽃밭이라는 가정을 하지 말하여 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도전의 길은 가시밭길이라는 생각을 하면 오히려 정신건강에 좋을 수 있다. 자신만 겪는 가시밭길이 아니므로 외로워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스스로를 강하게 하는 좋은 훈련이다.

 

 

실력의 힘

 

살아남으려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실력이다.(205)

 

먹고 사는 일은 원래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드라마에서 멋진 레스토랑에 가고 아늑한 집에서 사는 것은 자신의 실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것은 실력이 있을 때 가능하다. 어떤 사람들은 으로 더 좋은 자리로 승진하고, 어떤 사람들은 운이 좋아서 돈을 많이 버는 것 처럼 보인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해답은 실력에 있다.

실력있는 자에게 세상은 배반하지 않는다. 세상을 불평하기 보다는 우선 실력을 갖추어보는 것은 어떨까?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다. 주머니에 넣은 송곳은 보인다는 말로 실력있는 자는 어떻게든 차별화가 된다. 소극적으로는 살기위해서는 실력이 필요하다.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멋지게 살고 싶다면 실력을 쌓아야한다. 이제석씨가 보여준 실력은 그를 광고천재라는 칭호를 달게 했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타인을 실력으로 설득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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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의 네버엔딩 스토리>

Book 2019. 3. 13. 19:58



금나나는 미스코리아이다. 물론 미스코리아의 지위가 예전만큼 못하다고 하지만 미스코리아는 미스코리아이다. 그러한 미스코리아가 하버드를 가다니 분명 엄친딸이 분명하다. 누구나 부러워 할 만한 외모와 학력이다. 그런데 속을 들어다보면, 부러워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치열한 삶이 숨겨져있었다.

 

쉽지 않은 하버드의 생활

 

아름다운 캠퍼스.

하지만 학생들에게 이곳은 낭만도 아니고 자유도 아니었다.

발붙이고 살아야 하는 현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 남아야 하는 생존의 터. (p.23)

 

사람들은 하버드하면 우와!!’라고 반응하고 아름다운 하버드 교정을 걷는 상상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너무 스트레스가 심해서 탈모고민을 하는 미스코리아를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금나나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으로서 남들보다 2~3배 노력을 더 한다. 또한 의대에 가기 위해서 학점관리를 하는 그의 노력은 글을 읽는 사람의 마음을 놀라게 할 정도이다.

근래 많은 사람들이 우울해 하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 요인 중 하나는 화려한 모습을 갖고는 싶은데 그러한 타이틀을 획득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과정을 도외시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떤 자리에 오르거나,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버드라는 화려한 이름만 보지 말고 하버드생들이 겪어야 하는 여러가지 고충들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문의 의미

하버드에서 질문이란 학문하는 자의 의무이자 특권, 삶의 방식이자 습관이기 때문이다.(p.42)

 

이제 우리나라 대학은 취업의 양성소가 된듯한 느낌이지만, 사실 대학의 원래 목적은 학문을 배우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곳이다. 우리나라 교육은 아주 효율적이다. 짧은 시간에 최대한의 지식을 배우기에 아주 적절한 곳이다. 그래서 선생님 혹은 교수님께 질문하는 것은 낭비라고 여겨질 정도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기존의 지식을 습득하는 데 그치게 된다. 호기심은 새로운 지식의 원천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자리잡은 기존 지식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서 조금 보수적인 면이 있다.

물론 자리잡은 지식이 자리잡은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지식이 더 경쟁력이 있을 때는 아마도 여러 다른 이견보다 타당해서 일 것이다. 그런데 아무런 도전을 받지 않은 지식은 도태될 뿐이다. 이런 면에서 대학은 좀 더 새로운 의견을 독려할 필요가 있다.

학문을 한자로 쓰라고하면 학문(學文)이라고 쓰기 쉬운데 사실 학문(學問)으로 써야한다. 질문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우리나라 대학이 되기를 바래본다.

 

21세기 공부법

 

액커트 교수는 늘 팩트가 아니라 해석을 원했다.

그것도 아주 독창적인 해석을 (p.175)

 

21세기는 무한한 지식으로 넘쳐나는 시대이다. 그리고 모든 지식이 유용한 것은 아니다. 그 때 그 때 사용하기 따라 다르다. , 활용이 중요하다. 이 활용의 가장 중심에는 사람의 두뇌가 있다.

뻔한 지식의 시대는 갔다. 그런데 아직 우리나라 대학은 뻔한 지식을 습득하는데에 주목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걱정이든다. 물론 기존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분명히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에 멈추서는 안되고 그 기존지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스스로의 생각을 더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21세기가 원하는 인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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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의 미래>

Book 2019. 3. 5. 12:41


우리나라의 저널리즘이 위기라고 보는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저널리즘의 미래>는 이러한 위기상황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해본 책이다. 내가 읽어본 저널리즘 책 중 가장 제대로 현실을 직시하고 솔직한 고민을 털어놓은 책이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현재 대한민국 저널리즘의 위기를 4가지로 묶었다. 첫째, 클릭 수를 위한 기사어뷰징 혹은 선정적인 기사의 범람, 둘째, 신문의 고사위기, 셋째, 기자의 처우와 진로의 위기, 넷째, 언론과 권력과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서 다루었는데 그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우선 질 낮은 기사가 범람하는 시민들의 에너지를 빼앗는 데 문제가 있다. 이 글을 쓰는 조금전에 본 기사가 박은X, 휴대폰 보다 떨어뜨려 코뼈 부상 부어올랐다"이다. 텔렌트 박은X씨가 핸드폰을 보다가 코를 다쳤다는 것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그것을 기사화한 것이다. 물론 박은X씨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야 이것이 뉴스가 될 수 있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이런 것까지 알아야하는지는 의문이다. 문제는 클릭수와 비례하여 수익원이 창출되는 온라인 언론의 생리상 일단 사람들이 흥미를 갖을 만한 것을 기사로 만든다. 사람들은 이에 대해 반응하고 에너지를 쓴다. 같은 시간 다른 곳에서는 우리나라 기업이 리투아니아 은행을 통해서 돈세탁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내가 이 기사를 클릭하여 문제의 심각성을 보는 것이나 텔렌트 박모씨가 핸드폰 보다가 코가 다친 이야기나 똑같은 수익원을 창출한다면 기자의 입장에서는 유명인 인스타그램이나 둘러보다가 기사를 만드는 일이나 하는 것이 훨씬 편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이 이러한 연예인의 신변잡기를 기업의 비리보다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점점 연예인의 중요하지도 않은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는 뉴스가 살아남고 사회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할 탐사보도는 점차 자리를 잃게 된다. 방안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중요성을 책에서 논의했다.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언론을 갖는다라는 말이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서 국민이 뉴스선별능력을 함양할 것을 촉구하였는데 크게 공감한다. 초등학생도 쓸 수 있는 기사가 사회적으로 곱씹어볼 만한 좋은 기사를 밀어내는 일은 근본적으로 시민이 할 일이다.


이 외에도 관심을 끌었던 주제는 권력과 언론과의 관계이다. 이 관계는 지금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터넷 언론이 나오기 한참 전부터 있었던 일이고 지금도 문제고 앞으로도 문제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근대언론은 일단 시작부터 일제강점기 때 시작되었고 중간에 오랜 군사독재의 시간을 보내면서 기형화되었다. 문제는 군부의 독재시절이 끝난 후에도 정권교체 때 마다 KBSMBC사장 문제가 논란이 되었다. 아무래도 언론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정치권에서는 워낙 잘 알고 있으므로 이를 어떻게든 이용해보려고 한 것이다. 책에서는 영국의 BBC, 일본의 NHK, 독일의 ZDF의 예를 들면서 독립적인 방송위원회의 구성을 촉구한다. 나도 이에 크게 공감한다. 문제는 아마도 이 방송위원회를 어떻게 뽑냐는 것이다. 중립적인 뉴스와 공정한 뉴스는 같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공정하다고 보는 관점이 자신이 처한 위치와 크게 상관이 있어서 일률적으로 공정한 뉴스를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공정한 뉴스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대답을 먼저 해야하는 것이 급선무인 것 같다.


이 외에도 이 책을 통해서 몰랐던 부분을 많이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연합뉴스>가 정부지원금을 한해에 300억원 넘게 받는다. 나는 미디어의 시장성 악화를 통해서 제대로 뉴스를 보도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서 정부가 돈을 내어서 최소한의 중립적인 뉴스를 보도할 수 있는 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연합뉴스>였다. 문제는 그 <연합뉴스>가 공정한 언론인가에는 의구심이 있다. 역시 돈줄인 정부의 편에 설 수 밖에 없지 않나싶다. 국민의 돈으로 운영되는 KBS도 정권의 영향을 받는데 연합뉴스는 더 말한 것이 없나 싶다. 당장 뾰족한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저널리즘의 미래>는 우리나라 언론의 제반 상황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모색해보는 계기가 되는 아주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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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물건>

Book 2019. 2. 25. 01:21

김정운 작가의 <남자의 물건>은 성적으로 은유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물건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애착하는 물건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소지한 물건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기도 하고, 내적인 욕구를 풀기도 한다. <남자의 물건>에서는 절반은 김정운 박사의 컬럼을 모아둔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사회적 명사의 물건을 보고 인터뷰한 것을 토대로 김정운 작가가 느낀 점을 쓴 것이다. 명사로는 이어령, 신영복, 안성기, 차범근, 조영남, 유영구, 이왈종, 박범신, 김문수, 문재인(당시는 대통령이 되시기 전), 김갑수, 윤광준을 섭외하여 만났다.


부제가 김정운이 제안하는 존재확인의 문화심리학인 만큼 그의 컬럼 곳곳에는 심리학의 내용이 곳곳에 나와있다. “늙어보이면 지는 거다!”에서는 몸과 마음이 무너지면 인상조차 훨씬 나이 들어 보이게 된다고 말하면서 덴마크의 심리학자 크리스텐센의 연구를 말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08년까지의 종단 연구를 통해 같은 나이일지라도 늙어보이는 사람이 먼저 죽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는 것을 논거라 삼는다. 그리고 그 연구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주요 시사점을 알려준다. 이렇게 연구를 보여준다고 해도 눈에 거슬리지는 않고 오히려 그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준다.


연구결과 뿐만 아니라 심리학 개념도 잘 녹여낸다. “시키는 일만 하면 개도 미친다.”라는 글에서는 삶을 주체적으로 살자고 주장한다. ‘실험적 신경증(Experimental neurosis)’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의 개념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나라 남자가 이 신경증과 학습된 무기력에 사로잡혀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전문용어가 많이 나오는데도 글이 지루하지 않는 이유는 그의 글쓰는 스타일 때문인 것 같다. 상당히 구어체이다. 예를 들어 개도 시키는 일만하면 미친다. 이제라도 뭐든 스스로 결정하며 살자는 거다!(27)”이라고 말하듯이 글을 쓰니 심리학 용어가 나와도 그려려니 한다. 문제는 알려준 심리학 용어가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왕왕있다.


명사들의 인터뷰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인물은 김문수 전지사였다. 젊은 세대에게는 소방서에 긴급전화를 걸어 나 도지사요라고 했던 꼰대라고 기억된다. 그러나 그는 한 때 노동운동의 선봉장에 섰던 인물이다. 군사 정권에 맞서고 노동현장의 개선에 힘쓰던 그가 문민정부가 들어와서는 광화문 광장에 이승만, 박정희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을 하니 많은 사람들이 아연실색하였다. 김정운 박사도 이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만났는데 김문수는 수첩을 그의 물건으로 꺼내놓았다. 그의 수첩은 3색 볼펜으로 쓴 메모로 가득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천재의 기억보다 바보의 기록이 정확하다(274)”이라고 말한다. 그의 꼼꼼함과 철두철미함은 그를 강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인터뷰를 보면서 느낀 것은 그는 어떠한 입장이 서든 간에 매서운 추진력을 가지고 지향하는 바로 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가 노동운동가였을 때는 그가 추구하는 가치가 노동운동에 있다고 믿고 맹렬히 활동한 것이다. 그래서 노동운동가로서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그가 40살이 되던 해 사회주의가 무너져 내려버린 것이었다. 사회주의의 핵인 소련이 붕괴하여 러시아가 되었다. 이 때 아마도 그는 그동안 믿었던 신념체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느낌을 받은 것 같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다해 믿었던 사회주의가 패배했을 때 반응은 여러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어떠한 사람은 그러한 패배를 부인할 수도 있다. 또 어떠한 사람은 점진적으로 새로운 신념가치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어떠한 사람은 180도 입장을 바꾸어 맹진할 수도 있다. 김문수 전지사는 아마도 마지막 형태의 모습을 가진 것 같다. 마치 자신이 믿던 종교에 실망하여 급거 개종하여 개종된 종교를 추종하는 것처럼 김문수는 그렇게 그가 그렇게 반대했던 사람들을 찬양하기 시작한다. 그의 맹렬함은 그의 꼬장꼬장한 수첩에서 잘 나타난다. 그가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는 어수룩한 사람이었다면 노동계의 대부도 지금의 김문수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를 보면, 꼼꼼한 적어낸 수첩도 중요하지만 멀리보는 시야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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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매혹당할 확률 104%>

Book 2019. 2. 17. 19:52

뉴욕은 매력적인 곳이다. 그래서인지 동서를 막론하고 뉴욕에 대한 글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탄산고양이의 <뉴욕, 매혹당할 확률 104%>20대 중반의 여성이 뉴욕에서 느꼈던 일을 쓰고 그린 책이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역시 104%였다. 100%도 아니고 50%도 아니고 104%일까라는 의구심이 드는 제목인데 탄산고양이의 따르면 뉴욕이 여행의 100%가 될 것을 확신했다고 한다. 그러면 4%가 남는데 작가에 따르면 베이글을 손에 들고 무단 횡단하는 1%, 정체 모를 미소를 내게 보내주는 예쁘장한 꽃미남의 1%, 광란의 파티를 보내고 엉망이 된 드레스의 1%, 삭막한 정글에서 실패한 절망감의 1%, 다시 발길을 옮기려는 용감한 누군가의 1%, 더러운 도시에서도 아름다움을 찾고 싶은 예술가의 1%”라고 말하는데 이를 다 더하니 104%가 넘는다. 좀 더 읽어보니 뉴욕이 100%,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내 여정의 100%, 나와 이 책을 만들기로 작정한 편집자 선배는 그것을 104%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어쩌면 104%라고 쓴 사람에게 논리적인 이유를 찾는 것을 바란 내가 잘못한 느낌이다. 일단 104%는 작가가 뉴욕을 느끼고 감정적으로 정한 것 같다.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작가의 감정을 잘 적어놓았다. 뉴욕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들을 굉장히 솔직하게 잘 적어둔 일기장 같다. 나 역시 뉴저지에 살면서 뉴욕을 100번 넘게 갔었기 때문에 여러 부분에서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에피소드 102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몇 개의 샌프란시스코이야기를 빼면 모두 뉴욕이야기이다. 전부 읽으면서 작가가 뉴욕에게 느끼는 감정은 짝사랑이었다. 나는 가끔 사람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지탄하면서 뉴욕을 동경하는 경우를 나 스스로도 느꼈고 많이 보아왔다. 아마도 이것은 뉴욕이 워낙 영화(뉴욕의 가을, 다이하드, 스파이더맨 등등)나 드라마(프렌즈, How I met your mother, CSI: NY등등)에 많이 나와서 정신적으로 고향인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리고 타임스퀘어, 자유의 여신상, 브루클린 브리지 등등 워낙 명소가 많고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대국의 가장 핫플레이스이기 때문에 세계의 수도같은 느낌도 든다. 그래서 뉴욕이라고 하면 우선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것 같다. 덕분에 뉴욕에 사는 여러 가지 불편함에도(특히 외국인이라면 더욱 더) 불구하고 뉴욕이라면 초롱초롱해지는 것 같다. 뉴욕에 사는 몇몇의 부유층을 제외한 다면 뉴욕은 잠깐 가서 보기에는 좋지만 오래살기에는 너무 비싸고 불친절한 동네일 수 있다(특히 맨하탄이라면 더욱 더). 더러운 지하철, 극심한 주차난, 몹시 비싼 집세, 불친절, 다른 동네보다 비싼 팁 등, 서민이라면 조여오는 압박감이 장난이 아닌 곳이다. 그래서 탄산 고양이도 책에 여러 곳에 이에 대한 이야기를 써놓았다.


이러한 모든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인 결과는 뉴욕은 뉴욕이다라는 생각이다. 탄산고양이도 이러한 점을 여러 군데에 써놓았는데, 다양한 문화,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현대문화의 총아, 그리고 센트럴 파크같은 자연이 주는 낭만까지 포함한 뉴욕은 수많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뉴욕을 뉴욕이게끔 한다. 이런 점을 탄산 고양이는 잘 표현해주었다.


<뉴욕, 매혹당할 확률 104%>를 읽는 또다른 재미는 그림이다. 그림을 은근히 특색있게 잘 그렸다. 한 에피소드당 글 하나 그림하나 넣었는데 글에 맞는 그림을 그려넣었는데 감각이 잘 느껴져서 좋았다.

이 책은 2005년에 나온 책이다. 이제 2005년도 이제 14년이나 흐른 과거가 되었다. 그래서 읽다보면 예전느낌나오는 아이템들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니콘 쿨픽스 885를 들고 나왔다고 그렸다. 이제 니콘 쿨픽스 정도되는 기능의 카메라는 이미 스마트 폰에 내장되었기 때문에 DSLR 급인 카메라 아니면 그냥 핸드폰으로 찍는다. 작가의 나이가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20대 중반에 썼다면 이제 40대가 되었을 것이다. 40대가 된 작가는 이 책을 보면서 자신의 예전 일기장을 보는 느낌이 들탠데 그 느낌이 어떨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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