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Book 2019. 2. 11. 01:10



서울은 이제 세계 10대 도시 안에 낄 정도로 규모와 세련됨을 갖추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러한 모습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조선시대부터 수도였던 서울은 원래 공식적인 크기는 4대문 안이었다. 그래서 왕십리라고 하면 도성에서 10리의 거리를 말하는 것이었고 도성 외에는 많이 발전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의 최고의 지역이 된 강남은 허허벌판의 논밭이었다. 실제로 압구정 현대와 한양아파트가 들어오던 80년대 초반까지 만해도 아파트 앞에 논이 있을 정도였다. , 서울이 급속히 개발된 것은 불과 기껏해야 50년 정도된 이야기인 것이다. 가끔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도무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들이 서울에 있었는데, <서울도시계획이야기>5권에 걸쳐서 차분하면서도 재미있고 탄탄한 자료를 근거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여준다.


저자인 손정목은 1928년생으로서 1970년대 서울시에서 근무하면서 직접 서울이 개발하는 것을 실행하고 보아온 사람이다. 마치 할아버지께서 그동안 서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손자들에게 이야기하듯 글을 적어놓았다. 5권으로 된 시리즈인데 나는 일단 중간인 3권을 보았는데 아주 흥미로웠다. 3권에서는 능동 어린이공원, 강남개발, 잠실운동장, 고속터미널 등을 다루었다. 잠실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30년 넘게 살았는데도 모르는 것이 아주 많았다. 마치 그동안 몰랐던 과거를 알게 되는 기분이었다.


우선 능동 어린이공원의 경우에는 원래 골프장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서 어린이 대공원으로 바뀌게 되었다. 골프장 근처로 건국대학교와 세종대학교가 들어왔는데 사람들이 골프치는 것을 보는 것이 위화감을 느꼈다고 한다. 게다가 때가 새마을 운동을 한창 할 때라서 근검절약을 덕목으로 삼는데 골프는 새마을 운동의 취지와도 잘 맞지 ㅇ낳았다. 골프장 사장이 쌍용그룹의 김성곤씨였는데 서슬이 퍼런 박대통령의 명령 앞에서는 자신의 사유재산을 헐값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아직도 어린이 대공원에 가면 근처에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여사가 이끈 육영재단이 남아있다. 어린이 대공원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강남이 개발된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사실 강남 3구라고 불리는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는 최근에 만들어진 구이다. 예를 들어, 서초동은 영등포구였고, 삼성동, 대치동, 청담동같은 강남구의 핵심지역은 성동구였다. 그리고 잠실지역은 경기도 광주였다. 심지어 송파구와 서초구는 1988년에 만들어졌다. 즉 강남이 조성된 것은 30년 정도된 것이다. 이촌향도가 심했던 1970, 터질 것 같은 강북은 인구를 주체하지 못하고 강남에 신도시를 만든다. 이것이 영동(영등포의 동쪽이라는 뜻)지역을 개발한다. 그 당시에는 돈이 없어서 미국에서 빌린 돈으로 아파트를 짓기도 했다. 예를 들어, 지금은 힐스테이트가 되었지만 예전에 삼성동 AID차관 아파트도 미국에게 준 돈으로 지어서 AID(Act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돕다라는 뜻의 aid와 중의적으로 쓰임) 차관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다. 이렇게 강남은 시작되었다.


책을 읽다보니 지금 신도시 개발하는 것에도 시의적으로 생각할 만한 사건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잠실에 대단위 단지가 들어섰는데 도심으로 갈만한 마땅한 대중교통이 부족해서 주민들이 불편함을 겪은 모양이다. 지금의 잠실을 생각하면 놀랍겠지만 그 당시에 주요 기업이 모두 도심에 있었고 강남은 지금으로 치면 양평마냥 시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직장에 가려면 움직여야했다. 게다가 지금처럼 도로가 잘 되어 있고 사람들이 차가 많은 것도 아니라서 대중교통에 많은 의존을 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지하철을 놓게된다. 특히 2호선이 잠실을 지나가는 데 우선 신설동과 종합운동장 구간이 개통된다. 지금도 많은 신도시가 생겨나고 있는데 대중교통 부족으로 신음하는 것을 보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차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외에도 다양한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예를 들어, 고속버스터미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아주 재미있다. 계획적으로 때로는 무계획적으로 발전한 서울이 이렇게 성장한 것도 놀라운 일이다. 앞으로 서울이 어떻게 변화, 발전할 지는 모르겠지만 30년 후에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지금을 어떻게 말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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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Book 2019. 2. 7. 22:52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극본으로 보기 전에 먼저 영화로 먼저 보았다.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 비비안리(Vivien Leigh)의 열연이 돋보이는 명작으로 영화로도 충분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지만 더 깊이 세세하게 작품에 대해 알려면 역시 원작을 읽어야 한다. Tennessee Williams<A Streetcar, Named Desire>는 인물에 대한 깊은 감정은 물론이거니와 그 당시 상황을 잘 보여주는 수작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핵심인물은 블랑쉬(Blanche)와 스탠리(Stanley)이다. 블랑쉬는 스탠리의 부인인 스텔라(Stella)의 언니이다. 블랑쉬는 예전에는 잘 살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은 집의 딸로서 엎친데 덮친격으로 결혼에 실패하고 매춘부 생활을 하다가 그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아서 뉴올리언즈에 있는 동생 스텔라의 집에 찾아가게 된다. 블랑쉬는 연거푸 다가온 어려운 일에 제정신이 아닌 상태이다. 특히 지금의 몰락한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이다. 어렸을 적 잘 살았었을 때 영위하였던 고고한 삶의 스타일을 유지하려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 동생인 스텔라를 한심히 여기기도 한다. 블랑쉬의 감정상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인 경우를 겪고 있다. 이러한 간극을 극복하지 못하고 현실을 도피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요즈음 같은 경우에는 현실의 고달픔을 게임으로 잊는 경우도 있고, 드라마에 몰입하면서 잊는 경우도 있다. 블랑쉬에게 현실을 잊게 할만한 조그마한 취미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취미조차도 돈이 든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쉽지 않은 기대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글귀가 대사로 나와있다.

 

Blanche: They told me to take a street-car named desire, and then tranfer to one called Cemeteries and ride six blocks and get off at-Elysian Fields!

Eunice: That’s where you are now.

Blanche: At Elysian Fields?

Eunice: This here is Elysian Fields.

 

세상의 이치에 따르면 욕망을 채워주는 이상향은 죽어서야 가능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게 바라던 이상향이 현재 지금 이 자리에도 가능하지 않을 까한다. 물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같은 이야기같지만 세상을 보는 것은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닐까한다. 왜냐하면 완벽하게 이상적인 곳은 이 세상에 없을태니까 말이다. 이 사실만 깨닫는다면 블랑쉬도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한다. 그리고 이 사실은 현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 적용될 수 있다.


스탠리는 블랑쉬와 아주 다른 가치관과 취향을 가지고 있다. 스탠리와 그의 부인 스텔라는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나름 잘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질적인 취향의 블랑쉬가 들어오면서 갈등이 촉발된다. 스탠리는 블랑쉬가 샤워를 1시간이나 하고 입맛에 맞지 않는 랜턴을 가져와 꾸미는 것을 보면서 못마땅해 한다. 그리고 스탠리가 가지고 있는 취미를 경멸하는 듯한 블랑쉬의 태도를 못마땅해한다. 이를 보면서 취향이 비슷한 사람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취향이 다른 사람끼리 같은 공간에 있으면 짧은 시간은 어떻게든 버텨보겠지만 길게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결혼생활이 어려운 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20년 넘게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 둘이 만나 같이 산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인지 1인 가족의 증가는 어쩌면 개인의 행복추구를 극대화하는 과정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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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Book 2019. 1. 27. 23:12

알베르 카뮈의 명저 <이방인>을 아주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거의 17년 만에 읽었는데 너무 화창해서 살인을 했다는 것 이외에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처음 읽는 느낌이었다. 역시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더니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17년 전에 읽은 후에 어떠한 감정인지도 잊어버렸다. 이번에 읽고 또 잊어버리기 전에 메모를 조금 해두어야 겠다.


기본적으로 <이방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주인공인 뫼르소(Meursault)가 아랍인을 총으로 쏴죽이기까지가 1부이고 2부는 체포된 후에 사형선고를 받을 때까지의 이야기를 그렸다. 나는 이번에 <이방인>을 읽을 때 두가지 점에 관심을 기울였다. 하나는 어머니의 죽음을 대하는 뫼르소의 반응이고 다른 하나는 사이코 패스가 된 뫼르소의 모습이다.


<이방인>은 뫼르소가 어머니의 부고를 듣는 것부터 시작된다. 특이한 점은 뫼르소가 모친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지극히 반응이 없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나는 부모님의 사망을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너무 나도 슬픈 일이기 때문에 사망이라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거쳐야할 과정을 일부로 나는 생각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의 나의 모습도 상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방인>을 보면서 어쩌면 이렇게 평상심을 가지고 소식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다

<이방인>에서는 뫼르소와 어머니와의 관계가 자세하게 나와있지는 않다. 그래서 섣불리 그의 감정상태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한가지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면 그는 현실을 아예 외면해버린 것이 아닌가싶다.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것을 너무도 받아들이기 싶지 않아서 현실을 회피해버리고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지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갑자기 이점이 부각되어서 다가왔는데 갑자기 부모님과의 시간을 많이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 번째로 인상깊게 다가온 점은 뫼르소가 싸이코 패스라는 점이다. 1942년에는 싸이코패스라는 개념이 제대로 발달되어 있지 않아서 뫼르소가 싸이코 패스라고 말하기 어려웠겠지만 그는 싸이코 패스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다. 결정적으로 남의 아픔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기껏따가운 햇살 때문에 방아쇠를 당겼으니 말이다. 그리고 쓰러진 사람에게 4발을 더 쏴서 확인사살까지 했다. 과연 뫼르소가 살인이라는 행동을 꼭 해야했느냐는 둘째치고 그의 살인 후의 감정상태는 더욱 가관이다. 살해당한 사람에 대한 연민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이미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처연히 관조하는 태도를 취한다. 굳이 그에게 줄 수 있는 변명거리로는 아마도 어머니의 죽음에 의하여 크게 정신상태가 나간 것이라고 본다. 어쩌면 그래서 삶의 의미를 잃고 사는 것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고 살인을 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살인을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자살을 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도무지 평범한 사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이 행동과 생각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물론 어떠한 생각을 하든 행동을 하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다. 하지만 그 자유가 타인의 자유를 극단적인 모습으로 침해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사는 것이 힘들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고 말한다. 나는 사는 것이 힘들다는 점에서는 크게 동의한다. 불교에서 생즉고(生卽苦)라는 말이 있다고 하듯이 사는 것은 어쩌면 고통의 연속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점점 그 강도가 더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이 도피의 안식처를 찾기도 한다. 예를 들어, 꽤 많은 남자들이 경우에는 게임을 선택하기도 한다. 나는 이 게임이 상당히 순기능을 한다고 하는데 현실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좌절되지만 게임에서는 여러 가지로 다른 성취감을 느끼고 보람을 느끼고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남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고 현실세계의 근심도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도이기 때문이다. <이방인>을 읽다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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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Book 2019. 1. 21. 00:11

20세기 초중반 우리는 정말 어려운 세월을 거쳐왔다. 공식적인 지배기간이 1910년부터 1945년까지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1895년 청일전쟁 승리와 1904년 러일전쟁 승리 후 일본은 본격적으로 우리나라를 침략해왔고 약탈해왔다. 이러한 과정 속에 나라를 팔아먹은 악질인 사람도 있었지만 반대로 우리의 것을 지키고 보존하여 독립의 디딤돌을 만든 사람도 많았다. 이러한 독립운동가라고 하면 안중근, 김구, 유관순, 안창호, 윤봉길, 이봉창 등과 같은 굵직굵직한 이름들이 금방 떠오른다. 하지만 이러한 빅네임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우리나라를 위해 힘쓰고 있었으니 그 중 한명이 정세권이다.


정세권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된 것은 근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익선동에 가서였다. 익선동 한옥마을 설명해주는 간판에 정세권이 이 지역이 조성했다고 하길래 그런가 보다했다. 그런데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를 읽고 나서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줄을 알게 되었다. 1888년생인 정세권선생께서는 젊었을 때 이미 나라가 기울었다. 그래서 이미 그가 20대 시절, 일본인들은 서울의 중요지역에서 살기 시작했고 그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그리고 지배를 당한지 10년이 넘은 1920년대에는 이미 일본인의 토지소유가 조선인의 토지소유를 넘는 상태가 되었다. 혹자는 어차피 나라가 일본의 소유가 되었는데 무슨 소용인가 싶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개인소유 토지마저 일본인이 한다면 우리나라 사람은 정말 갈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집도 일본화되기 때문에 우리 고유의 집양식은 없어지는 문제가 생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세권은 근대적 의미의 1세대 디벨로퍼로서 한옥마을을 곳곳에 세운다. 이 때 대단위로 공급하다보니 예전보다는 작은 크기로 한옥이 많이 분양되었고 지금의 삼청동, 가회동, 익선동에서 볼 수 있는 스타일이 되었다. 아마 그가 열심히 활동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북촌한옥마을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1919년에 상경하여 크게 성공한 정세권은 건설업자로서 크게 이름을 날린다. 유통왕으로 불리던 박흥식과 광산왕이었던 최창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건축왕으로 불린다. 유통왕 박흥식은 반민특위 1호로 지정될 만큼 죄질이 좋지 않은 친일 기업가였다. 그리고 최창학도 친일단체를 지원하였다. 정세권 선생님이 다른 두 왕과는 다른 것이 친일하지 않았고 독립운동을 후원하다고 심각한 고초를 겪는다는 것이다.


그가 여러 활동에 참여하였는데 대표적인 예가 조선물산장려회와 조선어학회였다. 이미 나라의 국권은 넘어갔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일본물품들이 많이 수입되어서 팔리니 도무지 우리나라사람들은 자립하기 어려운 구조로 가기 시작하였다. 이 때 우리나라에서 만든 물품을 사자는 운동을 일어났는데, 이 운동이 꾸준히 지탱될 수 있었던 것은 정세권선생님의 후원덕분이었다. 그리고 <말모이>라는 영화로도 알려진 조선어학회의 경우에도 사무실을 지원하고 편찬사업을 돕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였다. 이러한 선생님의 활동을 일본이 곱게 봐줄리 만무하였다. 극심한 고문을 받고 선생님의 건강도 읽고 재산도 잃고 사업은 점차 기울어졌다. 선생님의 행적을 보면 감사함도 한편 느끼고 대새의 독립투사가 그렇듯이 고초를 겪으시고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 느낌이라 씁쓸하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담담하게 우리의 지나간 일을 써나간다. 교수출신답게 출처를 꼼꼼히 밝혀서 아주 좋았다. 가끔 역사책을 읽다보면 내용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궁금할 때가 있는데 이 책은 그런 점에서 탄탄하다. 그렇다고 내용이 지루한 논문같은 느낌은 전혀 나지 않는다. 건축왕 정세권의 행적과 그가 살았던 시대환경을 잘 설명해놓았다. 그리고 정세권 선생님의 슬하 자녀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더욱 글의 입체감을 살렸다. 그래서 책이 두껍지는 않지만 정세권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꽤 알 수 있는 느낌을 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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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 평전>

Book 2019. 1. 13. 22:26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독립투사 중의 한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안창호평전>은 그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적어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게 한다. 이 책을 모두 읽고 나서 더욱더 도산선생님에 대해서 알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 느낀 것은 독립투사로서 도산이 아니라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의 도산이다. 독립운동가 중에 결혼한 사람도 있다. 물론 독신으로 독립운동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 수 있겠지만 20세기 초반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지금과 달리 결혼은 필수라는 생각이 지배적일 때라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결혼은 했다. 도산선생님도 마찬가지로 결혼을 하고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도산선생님도 아들걱정이 있었다. 예를 들어, 미국생활을 하는 아들에 대해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필립이가 장사를 못하고 남에게 고용하는 바에 할 수 있으면 그곳 포드자동차 회사에 상당한 잡을 얻어서 일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라고 썼다. 지극히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이런 면에서 인간 도산에 대해서 공감하게 되었다.


선생님께서 그저 평범한 아버지로만 남았다면 도산이라는 이름은 후손인 우리에게 남져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비범하게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서 활동을 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흥사단이다. 선생님께서 열심히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지쳐갔다. 과연 이렇게 힘들게 독립을 위해 투쟁을 한다고 해서 과연 독립이 될지 회의감이 높아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생께서 흥사단을 결성하고 힘을 쓰는데 있어서 비관적인 목소리가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그에 대해서 소크라테스적인 문답법으로 그의 움직임의 중요성을 설파한다(293).


: 어떻게 힘을 쓰는 것이 우리에게 독립의 영광의 날이 오게 하는 길이 되겠소?

: 흥사단을 힘있게 하는 일이오.

: 그까짓 흥사단, 1개 작은 단체에 국가 흥망의 운명이 달릴 수 있겠소. 게다가 흥사단은 정치 단체도 아니요, 독립 운동하는 혁명 단체도 아니고 아직 100명 내외의 단우를 가진 수양단체에 불과하거늘, 이 흥사단이 그처럼 우리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겠소?

: 글쎄요. 그렇게도 생각이 됩니다만 그래도 그 길 밖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 같아요. 역시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완전한 국민이 되도록 수양하면서 그 사람들이 굳게 단결하여서 전 국민을 다 건전한 국민이 되도록 힘쓰는 길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중략)...

: 흥사단은 정치 단체가 아니요, 일개 수양단체인데, 일개 수양단체 따위가 아무리 크기로 어ᄄᅠᇂ게 광복 사업을 성취하고 또 옳은 정치를 할 수가 있겠소?

: 수양한 건전한 인격자가 많이 생기면 그들이 정치가도 되고 교육가도 되고 실업가도 되어서 건전한 국가를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건전한 국민이 많은 나라에서는 부정한 개인이나 당파가 쓰일 일이 없을 것이니, 국민을 건전히 하는 것이 국가를 건전케하는 기초라고 믿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파가 있었다. 도산 선생님은 그 중에서 교육을 중점을 둔 독립투사셨다. 우리 국민이 수준이 있으면(당연히 정치인 포함) 이렇게 일본에게 나라도 빼앗시지도 않았을 것이며 빼앗긴 나라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급진 무장파에서는 선생님을 못마땅하게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양한 부류의 독립운동가들은 각각의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다고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그 영향은 미미할 것이다. 작지만 시작을 하고 동력을 얻어서 점차 사람들을 변화시키면서 궁극적으로 나라의 탄탄한 토대가 된다는 점에 크게 동의한다. 처음부터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영향력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도산선생님께서 뿌린 작은 씨앗이 자라서 일본이 패퇴한 후에도 일본에 복속되어 있지않고 우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지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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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주하는 역사 철도>

Book 2019. 1. 9. 12:02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운송수단이 있다. 그 중 현재 가장 많이 이용되는 수단은 차, , 비행기 그리고 기차이다. 각 운송수단은 각기 장단점이 있다. 그리고 혼자 이동할 때와 여럿이 이동할 때 각기 더 적합한 운송수단도 따로 있다. 나에게 혼자 다닐 때 최고의 운송수단은 기차다. <질주하는 역사 철도>의 저자도 언급하였듯이 나도 열차를 타면 책도 잘 읽힌다. 또한 역이 확실하게 명시가 되어 있어서 처음 가는 곳이라도 불안감 없이 갈 수 있다. 더불어 교통체증이 없는 것도 확실한 강점이다. <질주하는 역사 철도>는 우리나라 철도, 기차, 기차역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인천문화재단이 계획한 책으로서 경인선과 수인선 위주로 글이 쓰여져 있다.


우선 책을 보면서 내가 몰랐던 사실을 아주 많이 알게 되었다. 우선 수인선이 오래 전부터 있었던 노선이었던 것을 처음 알았다. 근래 수인선이라는 지하철 노선이 생겨서 이제 수원과 인천을 연결하는 건가!’라면서 수도권이 엄청나게 확대되는구나!’하면서 경탄했었다. 그런데 원래 수인선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또 몰랐던 사실은 송도(松島)라는 이름이 일본 지역에서 왔다는 것이었다. 근래 송도는 국제도시로서 미국의 대학도 한국에 캠퍼스를 차리기도 하고, 멋진 아파트도 들어오고, 중국과의 교역이 늘어나는데 환황해 경제권의 선두주자로서 21세기적인 도시로 되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데 이 송도가 일본인들이 센다이 근처의 마쓰시마(松島)를 생각하면 지었다고 한다. 원래 이름은 먼우금이라고 한다.


또한 노가다라는 말도 철도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공사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것을 노가다라고 하는데 이 말은 경인성 부설 당시에 인부들이 호흡을 맞추기 위한 구령에서 왔다고 한다. 그 구령이 도가타인데 가타가 일본으로 덩치이가 ()’는 으뜸이라는 뜻으로 합성되어 작업반장이 라고 하면 일꾼들이가타라고 후렴을 부르면서 철도를 깔았다는 이야기이다(179).


책에는 기차역에 대한 배경이야기도 흥미롭게 써있다. 인천역, 주안역, 부천역, 부평역, 노량진역, 고잔역 등 한번 즈음은 들어보았거나 내려서 걸어보았던 곳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마치 친구의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그 중 가장 눈길이 가는 역은 상록수역이었다. 심훈의 소설의 이름에서 따온 명칭이다. 나는 이 역의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든다. 왜냐하면 지명으로 기차역을 짓기에 부족한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의미있게 이름을 짓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선릉역 바로 옆 역이 선정릉역이다. 두 역 모두 선정릉에 붙어 있다. 이미 선릉역이 있으면 선정릉역을 아예 다르게 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그 능이 성종의 묘이므로 성종역이라고 짓고 그 역을 성종이 한 일에 대해서 꾸며 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자의 문제의식과 결을 같이 했던 것은 기차역의 외관이다. 물론 기능적으로야 기차역이 기차를 타는 곳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한 대로 기차역은 그러한 실용주의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문화의 공간이다. 미국의 Grand Central, 일본의 도쿄역, 영국의 King cross는 기차역 그 자체로 문화재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오래된 역을 다 부서버리고 새로 짓는 것은 그렇다치고 너무 천편일률적이다. 서울역, 영등포역, 용산역, 수원역 등의 외관을 보면, 물론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혼이 전혀 담겨 있지 않다. 물론 이러한 미래지향적인 디자인도 스타일이라면 스타일이겠지만 조금 아쉽다. 아니면 역마다 특색 있게 디자인할 수는 없었을 까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미 지어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이런 점도 고려의 대상이 되었으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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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천 프로젝트>

Book 2018. 12. 31. 21:00

우리나라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즈음 들어는 보았을 그 이름 백인천. 그의 이름을 딴 <백인천 프로젝트>가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진 과학자 정재승 교수가 트위터에 왜 1982년 프로야구 원년 이후 4할이 넘는 타자가 없는가라는 호기심을 가지고 시작되었고 이 프로젝트는 한국야구학회라는 결과물로 진화하였다.


미국에서는 세이버 메트릭스(Sabermetrics)라는 이름으로 야구에 통계를 접목하는 분과가 상당히 발전하였다. 이에 비해 우리는 야구와 통계를 비롯한 학술교류가 그에 비해 미진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재승 교수가 쏘아올린 하나의 트윗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전문가는 물론이거니와 야구를 사랑하는 일반인들이 열화와 같은 참여가 있었고 <백인천 프로젝트>는 이에 대한 과정을 소상히 적었다. 1장에서 정재승 교수가 백인천 프로젝트의 개괄을 설명하였다.


2장에서 백인천 프로젝트팀이 그들이 했던 결과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기본적으로 그들이 대답하고자했던 “4할 타자는 다시 나올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문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대답을 했다. 기본적으로 4할 타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에 크게 2가지 가설이 있는데 하나는 타자의 기량하락이고 다른 하나가 야구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안정화되었다는 가설이 있다. 백인천 프로젝트는 지난 30년 동안의 지표를 보면 타자의 기량이 늘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1군무대에서 뛰어난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의 차이가 점차 줄어듬을 발견하였다. 이런 것을 비추어보아서 야구 생태계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안정화된다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가설이 우리나라에서도 검증되었음을 보여주었다.


3장에서는 천관율 기자가 <백인천 프로젝트>가 이루졌는지 생생하게 썼다. 학자들이 모여서 논문을 쓰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리고 어떠한 학회를 새롭게 만드는 일도 상당히 어렵다. 그런데 학회와는 전혀 관계없는 여러 사람들이 열정만으로 굴드의 가설을 우리나라 맥락에서 검증하는 일을 하고 한국야구학회를 창설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또한 일단 야구와 관계없는 생업이 있는 사람들이 때문에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일은 끈기가 필요하다. 때로는 서로 갈등이 있었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끝내 산출물을 내놓는 과정을 잘 그려냈다.


4장에서는 윤신영 기자가 <백인천 프로젝트>를 통해서 야구와 통계 그리고 과학와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백인천 프로젝트> 윤신영 기자가 언급한 것처럼 우리 사회에는 흔치 않은 시민 과학 프로젝트이다. 집단 지성으로 일컬어 지는 대중의 참여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대중이 참여함으로써 전문 과학자들이 생각하지 못한 일을 떠올릴 수도 있고 데이터 수집같은데 많은 수고가 필요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일을 분담하여 빨리 진행시킬 수도 있다. 반면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다보면 오히려 연구의 진행을 더뎌질 수 있고 자료의 신빙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을 수 있다. 다행히 정재승 교수를 비롯해 몇몇의 통계전문가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프로젝트는 성공리에 마무리 지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여러 야구 통계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5장에서는 이민호PD가 양준혁, 김현수, 정근우, 홍성흔, 장성호 등 당대 최고의 타자들을 4할타자라는 주제로 인터뷰를 하였다. 이 부분이 중요한 것이 통계학자들이 현실을 잘 모르고 숫자만 계산하여 나온 결론이 현실과 괴리가 있을 수 있는데 현장의 목소리는 양적방법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준다.


<백인천 프로젝트>는 자발적으로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서 스스로 연구하여 답하는 과정이었다. 이런 것을 보면 연구라는 과정이 (어렵지만) 얼마나 흥미로울 수 있는 가에 대해 알게해준다. 앞으로도 <백인천 프로젝트>같은 연구프로젝트가 더 활성화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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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의 신화>

Book 2018. 12. 25. 02:00




부조리전문가라고 불러도 좋을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를 통해 부조리를 설명한다. 카뮈가 부조리를 이야기하기 위해 시지프 신화를 선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부조리라는 개념이 워낙 난해해서 잘 와닿지 않을 수 있는 데 신화에 나오는 주인공 시지프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부조리에 대한 체감도가 확연히 높아진다.


잘 알려진 대로 시지프는 바위를 산 정상까지 굴려 올리는 형벌이 내려졌다. 시지프가 열심히 바위를 산 정상에 올려놓으면 불행하게도 그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그래서 시지프는 또다시 내려가서 그 바위를 산 정상으로 옮겨야 한다. 문제는 이것이 무한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어떠한 노력이 결실을 이룰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를 보면 마치 현재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워킹푸어(working poor)나 평생 노력해도 아파트하나 제대로 장만할 수 없는 청년들이 생각이 난다. 이는 개인의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부조리가 있는 것이다.


더욱 더 문제가 비극적인 것은 카뮈가 썼듯이 주인공의 의식이 깨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없이 바위를 올리는 루틴을 무비판적으로 수행하면 그렇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구조적인 부조리를 인식하고 이를 수행하는 것은 한순간 한순간이 고욕이다. 그렇다고 이 구조적인 부조리를 극복하기에는 개인의 힘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시지프가 신들을 대항하여 바위를 옮기지 않고 태업할 수도 없는 일이다. 예전에 조선시대 때 노비는 자신의 처지를 많이 비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신분제도가 철폐되고 누구나 신분이 상승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현실의 무게는 이를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이럴 때 사람들은 좌절하고 슬픔에 처한다. 문제는 현재 사회구조는 쉽게 개인이 무거운 일상을 벗어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어느 정도 가난한 현대인들은 시지프와 닮아있다.


이러한 부조리를 타개하지 못하고 현실에 메어있는 사람들은 담배를 피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하면서 일상의 괴로움을 잊어보려고 한다. 하지만 담배나 술은 건강을 해치고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서 나이는 먹어가고 현실을 더욱 더 어두워진다. 그러면서 부조리에 처한 개인은 카뮈가 말한 한가지 질문에 당면하게 된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개인은 자살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평균적으로 하루에도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있다. 그들이 소중한 삶을 스스로 마감짓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 다양한 이유 중 하나가 개인이 느끼는 부조리일 것이다. 아무리 살아도 바뀌지 않은 세상에 차라리 살기보다는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시지프 신화>는 카뮈가 부조리에 대하는 다음과 같은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끝이 난다. “이제 나는 시지프를 산기슭에 남겨둔다! 우리는 항상 그의 짐의 무게를 다시 발견한다. 그러나 시지프는 신들을 부정하며 바위를 들어올리는 한차원 높은 성실성을 가르친다. 그 역시 만사가 다 잘 되었다고 판단한다. 이제부터는 주인이 따로 없는 이 우주가 그에게는 불모의 것으로도, 하찮은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그에게서는 이 돌의 부스러기 하나하나, 어둠 가득한 광물적 광채 하나 하나가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산정을 향해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프를 마음속에 그려보지 않으면 안된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나에게 카뮈의 마지막 말은 갈 때까지 가보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쉽게 변하지 않은 현실이지만 현실의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현실이 바뀔 때까지 지금하는 일을 매우 성실히 하는 것이다. 이는 이 형벌을 내린 신을 위한 것도 아니고 시지프 스스로를 위한 것이다. 이러한 카뮈의 해결책에는 전반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름 개인적인 부조리한 일에는 나름 효과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에 사회적인 부조리하면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연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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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하루>

Book 2018. 12. 21. 21:24



<기나긴 하루>라는 책은 <기나긴 하루>라는 소설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박완서 선생님의 단편소설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빨갱이 바이러스>, <카메라와 워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닮은 방들>을 모아둔 책이다. 이 단편소설 중 가장 인상깊게 있은 것은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였다.


돌아가시기 한 해 전인 2010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아마도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강하게 반영된 자전적인 이야기 같다. 주인공이 아버지를 일찍이 여윈 것처럼 박완서 선생님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다. 그리고 사정에 의하여 할아버지 조부모께서 작가님을 키우시게 되는 것도 동일하게 나온다. 그 때 느꼈던 심정들을 60년이 넘는 시간 전이지만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적어두었다. 부모가 없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큰 부재일 것이다. 나같은 경우에는 부모님께서 건강하게 내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전혀 느낄 수 없다. 이러한 당연한 일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을 두고 채울 수 없는 큰 공백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이러한 감정들을 유난스럽지 않지만 조금은 헛헛하게 잘 표현된 것 같다.


또한 소설에서는 한국전쟁이야기가 나온다. 이 한국전쟁의 경우에는 위의 부모의 문제와는 달리 한국에 살았던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두 큰 충격으로 다가온 역사적 사건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많은 사람들이 남과 북으로 헤어져서 수십년 넘게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살고 있다. 그러한 절대적인 고통이 시간을 지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해외여행도 어렵지 않게 다니는 시절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는 1980년대 생인데 우리나라의 급변하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다. 그런데 작가님같이 1931년생들은 나로서는 도무지 상상하기도 어려운 세월을 보내왔다. 이 소설은 이를 짧게 그려낸다.


우리나라의 20세기는 너무나도 급변하는 시대라서 각각의 연대에 있는 소설가는 아마도 소재걱정없이 살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1,000년전인 10세기에는 930년생이나 980년생이나 비슷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1930년생과 1980년생은 확연히 다른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사회는 변화했다. 1930년생은 태어나자마자 일제 강점기였다. 그리고 나서, 소설에 나온 것처럼 일본어를 배우며 학교를 다녔다. 1940년은 이미 일본에 복속된지 30년이 넘는 시기에 사람들은 점차 우리나라 말을 잊고 일본어를 배우는 것을 너무 당연히 생각했을 시기였을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다행히 일본이 패망한다. 그리고 몇 년 되지도 않은 시기에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갓 성년이 된 나이에 남자들은 전쟁에 참여하고 여자들은 피난을 갔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폐허 속에 열심히 사는데 천착하였을 것이다. 그 와중에 이승만 정권을 끌어내리는 4.19 시민혁명이 있었고, 민주화의 열망을 덮어버리는 5.16 군사쿠데타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경부고속도로도 세우고, 지하철도 들어오고, 아파트도 생기는 변화를 겪는다(이 책에도 수록된 1974년 발표된 <닮은 방들>에서는 아파트에 살 것인지 단독주택에 살 것인지 고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구공탄 이야기도 나온다.) 그리고 나서 박정희 대통령은 암살 당하고 새세상이 오나 싶었는데 또다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시민들은 자유를 크게 제한받은 채 살아간다. 이때가 이미 50대가 된다. 그리고 환갑이 다가올 때 즈음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서 오랜 가난의 시간을 지나 세계적인 축제를 본 다는 것은 크나큰 감동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직선제가 다시 도입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평화적인 정권교체도 된다. 그러나 97년 말에는 외환위기로 나라가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칠순이 가까운 나이에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겪다보면 우리나라 사회를 살았던 것만으로도 상당히 격동적으로 살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작가는 이러한 격동의 시대의 한부분을 토대로 이야기를 써내려가기만 해도 충분히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박완서 선생님은 그가 느낀 바를 토대로 우리의 이야기를 잘 써내려간 좋은 소설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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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Book 2018. 12. 10. 01:07

칭다오에 있는 루쉰공원을 방문하기 전에 루쉰의 대표작인 <Q정전>을 아주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았다. <Q정전>은 단편소설로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의 배경을 알고 읽는다면 더 풍부하게 소설을 이해할 수 있다. 루쉰은 1881년에 태어나 1936년에 숨을 거둔다. 어느 시대가 그렇지 않겠냐만은 당시는 청나라(1616~1912)에서 현대 중국으로 넘어가는 긴박한 전환기에 루쉰은 살았던 것이다. 아마도 루쉰은 당시의 상황을 목도하고 그를 배경으로 이 소설을 썼을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소설의 사건은 역시 1911년에 있었던 신해혁명일 것이다. 청나라는 1840년 영국과 벌어진 아편전쟁, 1894년 일본과 벌어진 청일전쟁 등에서 패하는 등 국운이 기울고 있었다. 하지만 1616년부터 200년 넘게 지속되어온 나라가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일을 상상하는 것을 청나라 국민들은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 일본으로부터 광복되어 대한민국 본격적으로 만들어 진지가 70년이 넘었는데 대한민국이 어렵다고 다른 나라로 변환되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200년이 넘은 나라가 다르게 바뀌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쑨원이 이끄는 새로운 세력은 지금은 당연한 소리를 들리지만 삼민주의를 주창하였다. 특히 삼민 중에 민권은 공화정을 상정하는 것인데 청나라는 물론이거니와 명나라(1368~1644), 원나라(1271~1368), 송나라(960~1270), 510(907~979), 당나라(618~907), 수나라(581~618), 위진남북조시대(221~589), 한나라(기원전 206~기원후 220: 물론 중간에 4~25년까지 신나라가 끼어있음), 진나라(기원전 221~기원전 206),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기원전221), 주나라(기원전 1046~기원전 771), 상나라(혹은 은나라라고도 불림)(기원전 1600~기원전1046), 하나라(기원전 2070~기원전 1598)까지 3,00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일반 사람들에게는 왕이란 존재가 있었다. 그래서 나라는 바뀔지언정 왕은 항상 있어왔다. 그러던 것인 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만든다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혁명파가 이끄는 운동은 사회의 거대한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청나라를 유지하자니 기존 체제는 썩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에 살던 사람들은 구체제인 청나라를 지지하기도 하고 새롭게 등장한 혁명파를 지지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진 이념을 가지고 둘 중의 하나의 세력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지금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글자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무학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Q가 그랬던 것처럼 어느 쪽에 서야 더 자신에게 득이 되는지를 생각했던 것 같다.


루쉰은 이러한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풍자한다. 하지만 나는 전혀 풍자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어쩔 수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생존에 대한 열의가 가득한 것이다. 물론 고고한 선비처럼 대의를 따지지 않고 손익만 계산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배부른 소리라고 본다. 물론 이론적으로야 무슨 말은 못하겠느냐마는 현실에서 대중은 일단 자신이 유리한 쪽에 기대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그런지 아Q의 모습은 일반 대중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아Q에게 닥친 운명 역시 슬프지만 혼란기의 현실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당시 국군이냐 인민군이냐 나누어서 다른 편에 선 사람들을 잔혹하게 죽인 경험이 있다. 그리고 타인을 희생양을 만드는 아픈 경험도 있다. 중국역시 마찬가지로 청나라쪽과 중화민국파쪽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서는 국민당쪽과 공산당쪽이 나뉘어 동족상잔의 아픔을 경험한다. 이러한 갈등과 아픔을 많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험을 했을 탠데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이유는 이 인류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방증한다. 슬프지만 어쩌면 우리가 완전히 기계로 대체되지 않는 한 이러한 아픔은 어느 정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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