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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30 무라카미 하루키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 2019.08.16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 2017.06.26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2017.05.06 <포트레이트 인 재즈>
- 2016.12.22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
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기는 언제나 기대가 된다. 박진감넘치지는 않지만 몰입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는 라오스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그리스 등지에서 하루키씨가 겪고 느꼈던 점을 적었다. 그 중에서 라오스 편이 제목으로 할 정도로 가장 재미 있었다. 특히 하루키의 솔직함이 돋보였다. 사실 유명작가가 라오스를 비하하는 듯한 뉘앙스가 들게 할 것 같은 글(하루키는 전혀 그런 의도가 없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을 쓰기 쉽지 않은데, 누구나 공감할 만 글을 썼다.
내 경우는 중간에 하노이에서 1박을 했는데, 그때 한 베트남 사람이 “왜 하필 라오스 같은 곳에 가시죠?”라고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 말의 이면에는 ‘베트남에는 없고 라오스에만 있는 것이 대체 뭐길래요’라는 뉘앙스가 묻어있었다.
자,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좋은 질문이다. 아마도 하지만 내게는 아직 대답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지금 라오스까지 가려는 것이니까. 여행이란 본래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런 질문을 받고 새삼 생각해보니, 내가 라오스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껏 라오스에 이렇다 할 흥미를 가진 적도 없었다. 그곳이 지도 어디쯤 위치하는지조차 제대로 몰랐다. 당신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상당히 내 맘대로) 짐작해보는 것이지만.
(159쪽~160쪽)
또한 그는 소소하게 이야기하면서 한번즈음 깊게 생각할 만한 거리를 툭하고 던져준다.
루앙프라방의 사원을 느긋하게 도보로 돌아보며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즉 ‘평소 우리는 그렇게 주의깊게 사물을 보지 않는구나’란 사실이다. 우리는 물론 매일같이 여러 가지를 보지만, 그것은 볼 필요가 있기 때문에 보는 것이지 정말로 보고 싶어서는 아닐 때가 많다. 전철이나 차에서 창밖으로 잇따라 흘러가는 경치를 멍하니 눈으로 좆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언가 한 가지를 찬찬히 살펴보기에는 우리 생활이 너무나 바쁘다. 진정한 자신의 눈으로 대상을 본다(관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조차 차츰 잊어가고 있다. (174쪽~175쪽)
그리고 라오스편에서 하루키는 여행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한다.
“라오스(같은 곳)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베트남 사람의 질문에 나는 아직 명확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라오스에서 가져온 것이라고는, 소소한 기념품 말고는 몇몇 풍경에 대한 기억뿐이다. 그러나 그 풍경에는 냄새가 있고, 소리가 있고, 감촉이 있다. 그곳에는 특별한 빛이 있고, 특별한 바람이 분다. 무언가를 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다. 그때의 떨리던 마음이 기억난다. 그것이 단순한 사진과 다른 점이다. 그곳에만 존재했던 그 풍경은 지금도 내 안에 입체적으로 남아 있고, 앞으로도 꽤 선명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 풍경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쓸모가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결국은 대단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한낱 추억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래 여행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181쪽~182쪽)
여행을 통해서 엄청난 깨달음을 얻거나 인생의 전환점이 될만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의 여행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다만, 잔잔하지만 시야를 넓혀주고 다르게 생각해볼 여지를 마련해줄 기회를 주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극적인 경험도 값지겠지만 그렇지 않고 차분하게 진행되는 여행도 나름 값지다. 그것들이 유용하지 않을 지언정 말이다. 인생을 유용하냐 무용하냐를 따지기만하고 살아가지는 않는다.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만약에 이득만 혹은 비용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비즈니스지 여행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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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유행어를 만든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별내용은 없지만 역시 볼만한 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SINRA>라는 잡지에 1994년부터 1995년까지 게재하였던 글들을 모아둔 책이다. 특히 그가 미국에서 지냈던 1993년부터 1995년의 2년간의 시간의 내용을 담았는데 매우 소소한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했지만 읽는 재미는 소소함을 넘어선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굉장한 소소한 재미라서 소소하지 않다고나 할까.
그 유명한 소확행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135쪽~136쪽)
그로부터 3년 뒤에 나는 보스톤의 한 중고가게에서 같은 레코드를 2달러 99센트에 파는 것을 발견했다. 레코드판의 질은 반짝반짝하는 신품과 똑같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이것을 손에 넣었을 때는 정말로 기뻤다. 손이 떨릴 정도의 흥분은 아닐지라도 나도 모르게 싱글벙글 웃음이 새어나왔다. 꾹 참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결국 구두쇠가 아니냐는 말을 들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았다. 개인적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철저한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같은 것이다. “그래 이 맛이야!”하고 혼자 눈을 감고 자기도 모르는 새 중얼거리는 것 같은 즐거움, 그건 누가 뭐래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참된 맛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없는 인생은 메마른 사막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부분에 크게 공감을 했다. 소확행에 필수조건은 때때로 적당한 금욕이다. 아무 것이나 모든 할 수 있고, 매번 하고 있으면 그것은 행복이 되지 않는다. 약간의 방해물이 있고, 그 어떤 것을 극복한 후에 성취할 수 있는 것이라면 긍정적인 감정은 배가 된다. 그가 표현했던 운동을 한 후에 마시는 맥주가 딱 인 것 같다.
이러한 소확행을 누릴 수 있는 것은 하루키씨의 절도있는 생활습관에 기인할 수 있다. 그는 사실 바른생활 사나이의 삶을 살고 있다. 책에 그의 작업 방식이 나와있는데 아침 5시에 일어나 작업에 몰두하다가 밤9시가 되면 잠든다는 것이다. 물론 계속 소설만 쓰는 것은 아니다. 아침을 먹고 10시 반까지 작업을 하다가 수영을 하거나 한시간 정도 달린 후 점심을 먹는 다고 한다. 그리고 오후에는 기분전환의 일을 하는 데 번역을 하거나 간단한 에세이를 쓴다고 한다. 혹은 사무적인 일을 처리하거나 시내를 산책한다고 한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음악을 듣는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바른생활 사나이의 생활패턴이 그가 롱런하는 비결일 수 있다. 혹자는 이러한 바른 생활이 재미없고 불행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바른 생활이 정착된 사람이야 말로 ‘소확행’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맥주한잔이라든지 동네에 있는 고양이와 교감을 나눈 다는지 하는 작지만 소박한 행복을 바른 생활 사나이는 만끽할 수 있다. 알코올 중독자는 맥주를 마시지 않으면 죽을 것 같지만 그 행복이 바른 생활 사나이가 열심히 운동을 하고 마신 맥주와 그 결을 달리한다.
이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씨의 생활을 적은 것이지만 미국에 있을 때 쓴 것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미국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러는 의미에서 어떠한 사람의 미국여행기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리고 그와 곁들여진 사진과 순박한 그림은 글을 읽는 데 있어서 즐거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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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아직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한번도 읽지 않고 여행기만 읽어온 나로서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친절한 선배가 나에게 두런두런 자기가 작가로서 지내온 경험을 이야기해준 느낌이었다.
나는 소설가가 아니지만 논문을 쓰는 학자로서 글을 쓴다는 점에서는 소설가와 비슷한 점이 있다. 하루키님이 서술한 자신의 경험 중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체력의 중요성이었다. 나도 박사과정을 쓸 때 체력이 부족한 경험을 했다. 스트레스를 술로 풀고 패스트 푸드로 끼니를 때우던 날들이 있었다. 그래서 최종심사 전에는 정말 근근이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어떤 날은 눈이 저절로 감겨 어쩔 수 없이 공부를 더하지 못한 날도 있었다. 체력이 좋았더라면 더 나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운동을 하면 시간이 소요된다. 이를 아깝다고 운동을 안하다보면 정작 필요한 일을 할 때 제대로 일을 못할 수 있다. 하루키 작가는 달리기를 매일 같이 한다. 작가도 말했듯이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루에 집중하여 몇시간씩 글을 쓸 수 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글 쓰는 일이 체력과는 별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몸을 쓰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체력이 많이 소모된다. 집중해서 글을 읽고 쓰다보면 눈만 아픈 것이 아니라 몸이 아린다. 이런 "아림"을 덜 받기위해서는 체력을 길러야한다. 하루키님의 이런 조언의 글을 보면서, 공감과 다짐을 다시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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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무리카미 하루키가 재즈에 대해 쓴 에세이 <포트레이트 인 재즈>를 읽은 후 그가 재즈에 조예가 깊다는 생각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이 즐겨 들었던 30명 넘는 재즈 음악가들에 대한 자신의 단상 그리고 자신의 경험과 연결 지어서 맛깔나게 글을 잘 썼다. 물론 무라카미씨의 여러 재즈음악가에 대한 평가에 이견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아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견이 있다고 글을 쓰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는 평가라는 말 자체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의 재즈 평론이 좋았던 것은 그가 전문 평론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가 만약에 재즈전문 평론가였다면 더 깊은 논의를 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같은 대중에게는 그의 지식은 충분히 깊었다. 그리고 평론가의 종종 대중과 유리되는 언어로 범람하는 글이 아니라 사적이지만 공감갈 수 있게 글을 썼다. 그래서 재즈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아쉬운 것은 내가 재즈에 문외한이었다는 점이다. 무라카미 작가의 글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공감하지 못했다. 이럴 때 아는 만큼 보이고, 느낀다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추후 재즈음악을 즐겨보고 이 책을 다시 읽고 싶다. 아마도 글의 풍미가 달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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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논문심사를 마치고 오랫 만에 본가에 와서 아버지께서 읽으신 하루키의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을 보았다. 별 기대 없이 보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여러 재미지고 유익한 글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인간을 피곤하게 만드는 온갖 것들을 자연스럽게 묵묵히 받아들여가는 단계야말로, 여행의 본질일 것이다...(중략)...나는 왜 피곤을 찾아서 일부러 멕시코까지 다녀와야만 했던가? 왜냐하면 그런 피곤은 멕시코에서밖에 얻어낼 수 없는 종류의 피곤이기 때문....(90쪽)”
이 부분이 너무나도 와 닿았다. 그렇다. 언제나 늘 그렇듯 우리는 여행을 동경하지만, 실상 새로움을 접함의 기쁨은 잠시일 뿐이다. 그리고 노곤함에 빠져들고는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그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피곤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 피곤함이 여행을 기억케 만드는 것이다.
이 외에 노몬한 여행기도 흥미롭게 읽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역시 중국에 대한 평가 때문이다. 이런 저런 중국에 대한 이야기하는 데, 한국인인 독자인 나는 아주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중국인이였다면 화가 났을 수도 있겠다. 또한 중국에서 일본인이 벌인 전쟁으로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는데, 확실히 일본인인 작가가 써서 그런지 온도차가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만약에 중국인 작가가 혹은 우리나라 작가가 같은 곳을 가서 썼다면 다른 감상평이 나왔을 것이다. 이런 저런 면에서 국가라든지 사회라든지 그리고 개인의 차이에 따라서 같은 세계도 다르게 조망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은 제목이다. 도대체 원제가 “변경(邊境)과 근경(近境)”인데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로 바꾸었는지 모르겠다. 한국제목만 보면 글쓰기 강좌같은 책인데 내용은 그저 하루키의 여행기이다. 하루키는 이를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원제가 주는 깊은 풍미는 사라지고 싸구려 느낌만 남았을 뿐이다. 다행히 제목의 첫인상과는 내용이 튼실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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