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기는 언제나 기대가 된다. 박진감넘치지는 않지만 몰입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는 라오스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그리스 등지에서 하루키씨가 겪고 느꼈던 점을 적었다. 그 중에서 라오스 편이 제목으로 할 정도로 가장 재미 있었다. 특히 하루키의 솔직함이 돋보였다. 사실 유명작가가 라오스를 비하하는 듯한 뉘앙스가 들게 할 것 같은 글(하루키는 전혀 그런 의도가 없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을 쓰기 쉽지 않은데, 누구나 공감할 만 글을 썼다.

내 경우는 중간에 하노이에서 1박을 했는데, 그때 한 베트남 사람이 왜 하필 라오스 같은 곳에 가시죠?”라고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 말의 이면에는 베트남에는 없고 라오스에만 있는 것이 대체 뭐길래요라는 뉘앙스가 묻어있었다.

,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좋은 질문이다. 아마도 하지만 내게는 아직 대답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지금 라오스까지 가려는 것이니까. 여행이란 본래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런 질문을 받고 새삼 생각해보니, 내가 라오스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껏 라오스에 이렇다 할 흥미를 가진 적도 없었다. 그곳이 지도 어디쯤 위치하는지조차 제대로 몰랐다. 당신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상당히 내 맘대로) 짐작해보는 것이지만.

(159~160)

또한 그는 소소하게 이야기하면서 한번즈음 깊게 생각할 만한 거리를 툭하고 던져준다.

루앙프라방의 사원을 느긋하게 도보로 돌아보며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평소 우리는 그렇게 주의깊게 사물을 보지 않는구나란 사실이다. 우리는 물론 매일같이 여러 가지를 보지만, 그것은 볼 필요가 있기 때문에 보는 것이지 정말로 보고 싶어서는 아닐 때가 많다. 전철이나 차에서 창밖으로 잇따라 흘러가는 경치를 멍하니 눈으로 좆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언가 한 가지를 찬찬히 살펴보기에는 우리 생활이 너무나 바쁘다. 진정한 자신의 눈으로 대상을 본다(관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조차 차츰 잊어가고 있다. (174~175)

그리고 라오스편에서 하루키는 여행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한다.

라오스(같은 곳)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베트남 사람의 질문에 나는 아직 명확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라오스에서 가져온 것이라고는, 소소한 기념품 말고는 몇몇 풍경에 대한 기억뿐이다. 그러나 그 풍경에는 냄새가 있고, 소리가 있고, 감촉이 있다. 그곳에는 특별한 빛이 있고, 특별한 바람이 분다. 무언가를 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다. 그때의 떨리던 마음이 기억난다. 그것이 단순한 사진과 다른 점이다. 그곳에만 존재했던 그 풍경은 지금도 내 안에 입체적으로 남아 있고, 앞으로도 꽤 선명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 풍경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쓸모가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결국은 대단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한낱 추억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래 여행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181~182)

여행을 통해서 엄청난 깨달음을 얻거나 인생의 전환점이 될만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의 여행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다만, 잔잔하지만 시야를 넓혀주고 다르게 생각해볼 여지를 마련해줄 기회를 주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극적인 경험도 값지겠지만 그렇지 않고 차분하게 진행되는 여행도 나름 값지다. 그것들이 유용하지 않을 지언정 말이다. 인생을 유용하냐 무용하냐를 따지기만하고 살아가지는 않는다.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만약에 이득만 혹은 비용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비즈니스지 여행은 아닐 것이다.

posted by ys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