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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두 번째 읽는데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너무 어려워서 니체가 무슨 뜻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짜라투스트라를 통해서 했는지 이해하는 것은 먼훗날로 또다시 미루어 두었다. 니체는 나에게 멋진 카피라이터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지금 만약 살아 있었으면 광고회사에서 강렬한 문구를 고민하고 있을 것 같다. 뜻은 잘 모르겠는데 느낌이 살아있는 문구가 아주 많다.
전에는 최대의 모독은 신에 대한 모독이었다. 그러나 신은 죽었다.
실로 인간은 하나의 오염된 강물이다. 오염된 강물을 받아들이지만, 자신이 오염되지 않기 위해서는 인간은 바다가 되어야 한다.
인간이란 동물과 초인 사이에 놓인 하나의 밧줄이고 심연 위에 놓인 밧줄이다.
악마도 없고, 또한 지옥도 없다. 그대의 육체보다도 그대의 영혼이 먼저 죽을 것이다. 그러니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대 영혼 속의 영웅을 버리지 마라! 그대의 최고의 희망을 신성한 것으로 간직하라!
그대들도 죽음의 설교에 알맞을 정도로 무르익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대들은 자신의 적을 찾아내야 한다. 그대들의 사상을 위하여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국가는 선악에 대해 모든 언어를 동원하여 거짓말을 한다. 국가가 하는 말은 모두가 거짓이면,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은 모두 훔친 것이다.
그대들은 그대들 자신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이웃에게 가며, 그대들은 그것을 덕으로 삼고 싶어한다. 그러나 나는 그대들의 이기심을 간파하고 있다.
이렇게 니체는 문학적이면서도 자극적인 문구로 독자들을 현혹한다.
허무맹랑한 부분도 꽤 있다. 예를 들어, 짜라투스트라가 무화과나무 아래서 자고 있는데 독사가 와서 그의 목을 물었다. 그래서 그가 뱀을 노려보니 뱀이 놀라서 도망가려고 했다. 그랬더니 그가 뱀에게 달아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황당하게도 그는 뱀에게 “너는 아직 내게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지 않았다. 너는 나를 적당한 시각에 깨워 주었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랬더니 뱀이 자신에게 독이 있다며 당신이 갈 길은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니 그가 웃으며 용이 뱀의 독에 의해 죽은 적이 있냐며 독을 다시 가져가라고 뱀에게 말했더니 뱀이 상처를 핥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짜라투스트라가 제자들에게 했더니 제자들이 이 이야기에 무슨 교훈이 있나고 물었더니 그는 나의 이야기는 교훈적인 것은 아니고 악에 대해서 선으로 보답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적이 그대들에게 어떤 선을 행했는지를 입증하도록 하라고 말했다. 나는 이 부분을 보면서 현실적으로 말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포장해서 하는 궤변가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특성은 사이비 종교 지도자나 허무맹랑한 정치인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그 어느 누가 자다가 뱀에게 물렸는데 감사하다고 이야기를 해야하는 지 모르겠다. 마치 폭행당했는데 가해자에게 자신을 깨워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변태적인 인간이 아니고서야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깊은 뜻을 이해를 못했다. 그렇다고 이해하는 것이 꼭 필요한가라는 생각을 한다. 어느 몽상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꼭 내 탓일 수도 있겠지만 아예 다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해를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마치 나는 기독교인이 이슬람인을 이해를 잘 못하고, 이슬람인이 기독교인을 잘 이해를 못하듯이 이해를 못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저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파악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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