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길 <고쳐 쓴 한국근대사>

Book 2020. 5. 3. 20:40

우리나라의 근대사는 어렵다.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다. 특별히 잘 되는 것이 별로 없던 시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사를 잘 살펴보아야지 지금 살아가는데 반추가 될 수 있다. 물론 학창시절에 국사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매우 간단한 사실도 망각하는 경우도 흔하다. <고쳐 쓴 한국근대사>는 예전에 읽었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신선하게 다가 왔다. 아마도 같은 책이라도 언제 읽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우선 조선의 국가경쟁력을 저하시켰다고 여겨지는 당쟁이 눈에 끌었다. 사실 당쟁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고,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사람이 모이면 다른 의견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다른 의견에 따라서 갈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미국정치학계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이슈 중에 하나도 당파성(partisanship)으로 인한 거버넌스의 붕괴인데 이런 것을 보면 당쟁이 우리의 고유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썼듯이 병자호란 이후 조선이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으로 인하여 신진문화의 유일한 수입로였던 중국과의 문화교류를 줄이고, 정치적 탄력성을 잃어버린 것은 앞으로 다가올 아픈 현실의 씨앗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새로운 문화의 도입을 차단한 채 유교주의적 명분을 정권 쟁탈과 그 유지의 수단으로 삼아서 왕위계승의 적서 문제 같은 일에나 골몰하는 등 백성의 현실개선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만 신경을 썼다. 이러한 문제는 지금도 꼭 생각해보아야 한다. 같은 주장이나 정책이라도 단순히 상대방이 주장한다는 일이라고 반대를 하고 트집을 잡아서 방해나 하면 나라의 현실을 암울해진다. 중국 산동성의 인구의 반정도 밖에 되지 않고, 중국 산동성의 크기보다 작은 이 나라에서 서로 편을 갈라서 당파의 이익을 위해 권력투쟁을 하고 있으면 우리의 운명은 예전의 불우했던 시절을 답습할 것이다.

조선시대 역사를 보면 답답한 구석 한두 군데가 아니다. 하지만 21세기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내가 그 때로 돌아가면 아마 어쩔 수 없었음을 느낄 것이다. 일단 신분사회였다. 지금도 물론 부의 대물림으로 인하여 계층이 나누어져있다. 하지만 신분이 아예 정해져버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노비가 있었다. 1886년 노비의 신분세습제가 폐지되고 1894년 갑오개혁으로 인하여 사노비제도까지 혁파되기 전까지는 노비가 있었다. (게다가 이는 법제상으로 노비의 신분해방이지, 실질적으로 노비가 완전히 없어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린다.) , 100여년 전만 하더라도 신분제라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 사람들은 신분에 따라서 생각하는 것도 배우는 것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고, 그래서 생각하는 것도 달랐다. 그래서 지금 왜 평범한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냐고 말하는 것은 너무 이상적인 일이다. 현재 북한 사람들이 소수의 몇몇 빼고는 노비같은 삶을 살지만 아직도 세습정권에 조용히 길들여져 있는 것을 보면, 체제 안에서 다르게 생각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양반 지배체제의 와해와 민중세계의 성장이고 2부는 외세 침력과 근대 민족국가 수립의 실패이다.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서서히 침략당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물론 이 부분을 읽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괴롭다. 전혀 유쾌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부분은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국제화시대라고 하지만 국가라는 조직에서 살아가는 한 국가의 운명은 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국권을 피탈당하고 그 후 고통당하는 사실은 반복해서 배워야, 또다시 그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아픔을 당했던 분들이 희생이 아쉽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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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s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