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부조리’ 전문가라고 불러도 좋을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를 통해 부조리를 설명한다. 카뮈가 부조리를 이야기하기 위해 시지프 신화를 선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부조리라는 개념이 워낙 난해해서 잘 와닿지 않을 수 있는 데 신화에 나오는 주인공 시지프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부조리에 대한 체감도가 확연히 높아진다.
잘 알려진 대로 시지프는 바위를 산 정상까지 굴려 올리는 형벌이 내려졌다. 시지프가 열심히 바위를 산 정상에 올려놓으면 불행하게도 그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그래서 시지프는 또다시 내려가서 그 바위를 산 정상으로 옮겨야 한다. 문제는 이것이 무한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어떠한 노력이 결실을 이룰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를 보면 마치 현재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워킹푸어(working poor)나 평생 노력해도 아파트하나 제대로 장만할 수 없는 청년들이 생각이 난다. 이는 개인의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부조리가 있는 것이다.
더욱 더 문제가 비극적인 것은 카뮈가 썼듯이 “주인공의 의식이 깨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없이 바위를 올리는 루틴을 무비판적으로 수행하면 그렇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구조적인 부조리를 인식하고 이를 수행하는 것은 한순간 한순간이 고욕이다. 그렇다고 이 구조적인 부조리를 극복하기에는 개인의 힘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시지프가 신들을 대항하여 바위를 옮기지 않고 태업할 수도 없는 일이다. 예전에 조선시대 때 노비는 자신의 처지를 많이 비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신분제도가 철폐되고 누구나 신분이 상승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현실의 무게는 이를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이럴 때 사람들은 좌절하고 슬픔에 처한다. 문제는 현재 사회구조는 쉽게 개인이 무거운 일상을 벗어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어느 정도 가난한 현대인들은 시지프와 닮아있다.
이러한 부조리를 타개하지 못하고 현실에 메어있는 사람들은 담배를 피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하면서 일상의 괴로움을 잊어보려고 한다. 하지만 담배나 술은 건강을 해치고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서 나이는 먹어가고 현실을 더욱 더 어두워진다. 그러면서 부조리에 처한 개인은 카뮈가 말한 한가지 질문에 당면하게 된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개인은 자살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평균적으로 하루에도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있다. 그들이 소중한 삶을 스스로 마감짓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 다양한 이유 중 하나가 개인이 느끼는 부조리일 것이다. 아무리 살아도 바뀌지 않은 세상에 차라리 살기보다는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시지프 신화>는 카뮈가 부조리에 대하는 다음과 같은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끝이 난다. “이제 나는 시지프를 산기슭에 남겨둔다! 우리는 항상 그의 짐의 무게를 다시 발견한다. 그러나 시지프는 신들을 부정하며 바위를 들어올리는 한차원 높은 성실성을 가르친다. 그 역시 만사가 다 잘 되었다고 판단한다. 이제부터는 주인이 따로 없는 이 우주가 그에게는 불모의 것으로도, 하찮은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그에게서는 이 돌의 부스러기 하나하나, 어둠 가득한 광물적 광채 하나 하나가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산정을 향해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프를 마음속에 그려보지 않으면 안된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나에게 카뮈의 마지막 말은 “갈 때까지 가보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쉽게 변하지 않은 현실이지만 현실의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현실이 바뀔 때까지 지금하는 일을 매우 성실히 하는 것이다. 이는 이 형벌을 내린 신을 위한 것도 아니고 시지프 스스로를 위한 것이다. 이러한 카뮈의 해결책에는 전반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름 개인적인 부조리한 일에는 나름 효과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에 사회적인 부조리하면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연대해야 한다.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질주하는 역사 철도> (0) | 2019.01.09 |
---|---|
<백인천 프로젝트> (0) | 2018.12.31 |
<기나긴 하루> (0) | 2018.12.21 |
<아Q정전> (0) | 2018.12.10 |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 (0) | 2018.12.05 |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