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본주의의 역사>

Book 2018. 12. 5. 03:01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는 아마도 내가 학부시절 교양으로 들었던 과목의 교재용으로 쓰였던 책이다. 내가 한 때 잘 쓰던 색연필로 밑줄이 많이 그어져 있었다. 그런데 다시 읽었을 때 놀랍게도 책 내용은 정말 처음 읽은 것처럼 새로웠다. 역시 책은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내용을 숙지할 수 있는 것 같다.


부제인 <빼앗긴 들에 서다>가 말해주듯이 읽는데 처음부터 마음이 아파왔다. 그 이유는 다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에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이 일본의 침략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작부터 불평등 조약이야기부터 시작하여 그 다음 장부터는 식민지 시절 경제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의 허구성에 대해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몇몇의 사람들이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면서 우리나라 경제를 근대화시켰다는 주장을 하면서 식민지 시절을 합리화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 주장의 기저에는 우리는 일본이 없었다면 철도도 깔지 못하고 공장도 짓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나는 이 생각에 완전히 반대한다. 일본이 없었더라도 우리는 시류에 맞게 신식 기술을 들여왔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 기술을 통해서 부흥할 만한 역량이 있다. 오히려 일본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철도를 놓고 공장을 지어서 우리 인력과 자원을 극렬하게 착취하느라 우리나라는 빈사상태에 빠지게 된다. 오히려 일본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는 훨씬 먼저 근대화 산업화를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역사는 다시 쓸 수 없었기 때문에 벌어지지 않을 일로 왈가왈부하는 것이 의미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식민지 근대화론같은 생각은 설득력이 없음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이 책의 내용을 잘 전파했으면 좋겠다.


식민지 시대 이후도 우리나라의 경제는 녹녹치 않다. 광복 후에 미군과 소련이 남북으로 진주하면서 나라가 갈라지고 끝내 전쟁이 난다. 광복 후 불과 5년 만에 전쟁이 터짐으로써 일본귀속재산불하를 비롯한 문제가 제대로 일단락되지도 못한채 극도의 가난으로 빠져든다. 그 후에도 사회는 정부의 무능과 부패 속에서 신음하다가 4.19로 전환을 맞이하나 싶더니 그 다음해에 5.16으로 오랜 군사정권시절로 들어간다. 그 후 우리나라는 놀라운 경제성장을 기록한다. 그러나 한 편에는 정경유착을 기반으로 재벌의 성장이 있었고 노동자에 대한 탄압이 있었다. 그 후에도 동아시아 외환위기, 세계금융위기 등등의 이야기가 있었지만 이 책은 2000년에 펴낸 책으로 일제부터 박정희 대통령 시절까지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 책은 대표저자인 강만길 교수를 필두로 아마도 그의 고려대학교 후학들인 학자들이 공동으로 집필하였다. 우리나라의 아픈 기억을 담담하게 적어나갔다. 약간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은 글쓴이를 글 제목 아래가 아니라 글 맨 뒤에 괄호 안에 적어두었다는 점이다. 대개 학술적인 글을 보면 제목 아래 저자이름을 써서 그 글의 책임을 지게 되어 있는데 이름이 맨 뒤에 마치 숨겨져 있는 것처럼 되어 있어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글 내용의 출처가 불분명하게 되어 있다. 신용옥이 쓴 발전국가론을 제외한 다른 글들에서는 마지막에 참고문헌은 제시했으나 구체적으로 각각의 내용이 어디에서 근거한 것인지가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대중서를 표방하더라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나라의 경제사적인 부분을 심층적으로 조망하였다. 그리고 좋았던 점은 용어, 개념, 인물 그리고 사건 정리이다. 본문 옆에 키워드로 해서 중요한 부분을 다시 설명해놓았는데 쉽게 반복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예를 들면, “백동화 남발”.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식산은행” “트루먼 독트린” “좌우합작위원회” “대충자금등등 우리나라 역사를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키워드를 간략하게 적어두어서 이해의 폭을 넓혔다. 역사라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에 기반하지만 매우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간다. 그래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 논란이 있더라도 그 배움을 필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논란을 논쟁의 장으로 만들고 공론화시키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제대로 된 사료가 잘 구축될 수 있도록 사학계에 많은 지원이 있었으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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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s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