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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중반 우리는 정말 어려운 세월을 거쳐왔다. 공식적인 지배기간이 1910년부터 1945년까지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1895년 청일전쟁 승리와 1904년 러일전쟁 승리 후 일본은 본격적으로 우리나라를 침략해왔고 약탈해왔다. 이러한 과정 속에 나라를 팔아먹은 악질인 사람도 있었지만 반대로 우리의 것을 지키고 보존하여 독립의 디딤돌을 만든 사람도 많았다. 이러한 독립운동가라고 하면 안중근, 김구, 유관순, 안창호, 윤봉길, 이봉창 등과 같은 굵직굵직한 이름들이 금방 떠오른다. 하지만 이러한 빅네임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우리나라를 위해 힘쓰고 있었으니 그 중 한명이 정세권이다.
정세권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된 것은 근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익선동에 가서였다. 익선동 한옥마을 설명해주는 간판에 정세권이 이 지역이 조성했다고 하길래 그런가 보다했다. 그런데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를 읽고 나서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줄을 알게 되었다. 1888년생인 정세권선생께서는 젊었을 때 이미 나라가 기울었다. 그래서 이미 그가 20대 시절, 일본인들은 서울의 중요지역에서 살기 시작했고 그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그리고 지배를 당한지 10년이 넘은 1920년대에는 이미 일본인의 토지소유가 조선인의 토지소유를 넘는 상태가 되었다. 혹자는 어차피 나라가 일본의 소유가 되었는데 무슨 소용인가 싶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개인소유 토지마저 일본인이 한다면 우리나라 사람은 정말 갈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집도 일본화되기 때문에 우리 고유의 집양식은 없어지는 문제가 생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세권은 근대적 의미의 1세대 디벨로퍼로서 한옥마을을 곳곳에 세운다. 이 때 대단위로 공급하다보니 예전보다는 작은 크기로 한옥이 많이 분양되었고 지금의 삼청동, 가회동, 익선동에서 볼 수 있는 스타일이 되었다. 아마 그가 열심히 활동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북촌한옥마을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1919년에 상경하여 크게 성공한 정세권은 건설업자로서 크게 이름을 날린다. 유통왕으로 불리던 박흥식과 광산왕이었던 최창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건축왕으로 불린다. 유통왕 박흥식은 반민특위 1호로 지정될 만큼 죄질이 좋지 않은 친일 기업가였다. 그리고 최창학도 친일단체를 지원하였다. 정세권 선생님이 다른 두 왕과는 다른 것이 친일하지 않았고 독립운동을 후원하다고 심각한 고초를 겪는다는 것이다.
그가 여러 활동에 참여하였는데 대표적인 예가 조선물산장려회와 조선어학회였다. 이미 나라의 국권은 넘어갔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일본물품들이 많이 수입되어서 팔리니 도무지 우리나라사람들은 자립하기 어려운 구조로 가기 시작하였다. 이 때 우리나라에서 만든 물품을 사자는 운동을 일어났는데, 이 운동이 꾸준히 지탱될 수 있었던 것은 정세권선생님의 후원덕분이었다. 그리고 <말모이>라는 영화로도 알려진 조선어학회의 경우에도 사무실을 지원하고 편찬사업을 돕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였다. 이러한 선생님의 활동을 일본이 곱게 봐줄리 만무하였다. 극심한 고문을 받고 선생님의 건강도 읽고 재산도 잃고 사업은 점차 기울어졌다. 선생님의 행적을 보면 감사함도 한편 느끼고 대새의 독립투사가 그렇듯이 고초를 겪으시고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 느낌이라 씁쓸하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담담하게 우리의 지나간 일을 써나간다. 교수출신답게 출처를 꼼꼼히 밝혀서 아주 좋았다. 가끔 역사책을 읽다보면 내용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궁금할 때가 있는데 이 책은 그런 점에서 탄탄하다. 그렇다고 내용이 지루한 논문같은 느낌은 전혀 나지 않는다. 건축왕 정세권의 행적과 그가 살았던 시대환경을 잘 설명해놓았다. 그리고 정세권 선생님의 슬하 자녀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더욱 글의 입체감을 살렸다. 그래서 책이 두껍지는 않지만 정세권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꽤 알 수 있는 느낌을 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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