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물건>

Book 2019. 2. 25. 01:21

김정운 작가의 <남자의 물건>은 성적으로 은유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물건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애착하는 물건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소지한 물건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기도 하고, 내적인 욕구를 풀기도 한다. <남자의 물건>에서는 절반은 김정운 박사의 컬럼을 모아둔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사회적 명사의 물건을 보고 인터뷰한 것을 토대로 김정운 작가가 느낀 점을 쓴 것이다. 명사로는 이어령, 신영복, 안성기, 차범근, 조영남, 유영구, 이왈종, 박범신, 김문수, 문재인(당시는 대통령이 되시기 전), 김갑수, 윤광준을 섭외하여 만났다.


부제가 김정운이 제안하는 존재확인의 문화심리학인 만큼 그의 컬럼 곳곳에는 심리학의 내용이 곳곳에 나와있다. “늙어보이면 지는 거다!”에서는 몸과 마음이 무너지면 인상조차 훨씬 나이 들어 보이게 된다고 말하면서 덴마크의 심리학자 크리스텐센의 연구를 말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08년까지의 종단 연구를 통해 같은 나이일지라도 늙어보이는 사람이 먼저 죽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는 것을 논거라 삼는다. 그리고 그 연구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주요 시사점을 알려준다. 이렇게 연구를 보여준다고 해도 눈에 거슬리지는 않고 오히려 그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준다.


연구결과 뿐만 아니라 심리학 개념도 잘 녹여낸다. “시키는 일만 하면 개도 미친다.”라는 글에서는 삶을 주체적으로 살자고 주장한다. ‘실험적 신경증(Experimental neurosis)’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의 개념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나라 남자가 이 신경증과 학습된 무기력에 사로잡혀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전문용어가 많이 나오는데도 글이 지루하지 않는 이유는 그의 글쓰는 스타일 때문인 것 같다. 상당히 구어체이다. 예를 들어 개도 시키는 일만하면 미친다. 이제라도 뭐든 스스로 결정하며 살자는 거다!(27)”이라고 말하듯이 글을 쓰니 심리학 용어가 나와도 그려려니 한다. 문제는 알려준 심리학 용어가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왕왕있다.


명사들의 인터뷰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인물은 김문수 전지사였다. 젊은 세대에게는 소방서에 긴급전화를 걸어 나 도지사요라고 했던 꼰대라고 기억된다. 그러나 그는 한 때 노동운동의 선봉장에 섰던 인물이다. 군사 정권에 맞서고 노동현장의 개선에 힘쓰던 그가 문민정부가 들어와서는 광화문 광장에 이승만, 박정희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을 하니 많은 사람들이 아연실색하였다. 김정운 박사도 이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만났는데 김문수는 수첩을 그의 물건으로 꺼내놓았다. 그의 수첩은 3색 볼펜으로 쓴 메모로 가득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천재의 기억보다 바보의 기록이 정확하다(274)”이라고 말한다. 그의 꼼꼼함과 철두철미함은 그를 강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인터뷰를 보면서 느낀 것은 그는 어떠한 입장이 서든 간에 매서운 추진력을 가지고 지향하는 바로 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가 노동운동가였을 때는 그가 추구하는 가치가 노동운동에 있다고 믿고 맹렬히 활동한 것이다. 그래서 노동운동가로서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그가 40살이 되던 해 사회주의가 무너져 내려버린 것이었다. 사회주의의 핵인 소련이 붕괴하여 러시아가 되었다. 이 때 아마도 그는 그동안 믿었던 신념체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느낌을 받은 것 같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다해 믿었던 사회주의가 패배했을 때 반응은 여러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어떠한 사람은 그러한 패배를 부인할 수도 있다. 또 어떠한 사람은 점진적으로 새로운 신념가치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어떠한 사람은 180도 입장을 바꾸어 맹진할 수도 있다. 김문수 전지사는 아마도 마지막 형태의 모습을 가진 것 같다. 마치 자신이 믿던 종교에 실망하여 급거 개종하여 개종된 종교를 추종하는 것처럼 김문수는 그렇게 그가 그렇게 반대했던 사람들을 찬양하기 시작한다. 그의 맹렬함은 그의 꼬장꼬장한 수첩에서 잘 나타난다. 그가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는 어수룩한 사람이었다면 노동계의 대부도 지금의 김문수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를 보면, 꼼꼼한 적어낸 수첩도 중요하지만 멀리보는 시야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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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s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