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서울은 이제 세계 10대 도시 안에 낄 정도로 규모와 세련됨을 갖추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러한 모습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조선시대부터 수도였던 서울은 원래 공식적인 크기는 4대문 안이었다. 그래서 왕십리라고 하면 도성에서 10리의 거리를 말하는 것이었고 도성 외에는 많이 발전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의 최고의 지역이 된 강남은 허허벌판의 논밭이었다. 실제로 압구정 현대와 한양아파트가 들어오던 80년대 초반까지 만해도 아파트 앞에 논이 있을 정도였다. 즉, 서울이 급속히 개발된 것은 불과 기껏해야 50년 정도된 이야기인 것이다. 가끔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도무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들이 서울에 있었는데, <서울도시계획이야기>는 5권에 걸쳐서 차분하면서도 재미있고 탄탄한 자료를 근거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여준다.
저자인 손정목은 1928년생으로서 1970년대 서울시에서 근무하면서 직접 서울이 개발하는 것을 실행하고 보아온 사람이다. 마치 할아버지께서 그동안 서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손자들에게 이야기하듯 글을 적어놓았다. 5권으로 된 시리즈인데 나는 일단 중간인 3권을 보았는데 아주 흥미로웠다. 3권에서는 능동 어린이공원, 강남개발, 잠실운동장, 고속터미널 등을 다루었다. 잠실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30년 넘게 살았는데도 모르는 것이 아주 많았다. 마치 그동안 몰랐던 과거를 알게 되는 기분이었다.
우선 능동 어린이공원의 경우에는 원래 골프장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서 어린이 대공원으로 바뀌게 되었다. 골프장 근처로 건국대학교와 세종대학교가 들어왔는데 사람들이 골프치는 것을 보는 것이 위화감을 느꼈다고 한다. 게다가 때가 새마을 운동을 한창 할 때라서 근검절약을 덕목으로 삼는데 골프는 새마을 운동의 취지와도 잘 맞지 ㅇ낳았다. 골프장 사장이 쌍용그룹의 김성곤씨였는데 서슬이 퍼런 박대통령의 명령 앞에서는 자신의 사유재산을 헐값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아직도 어린이 대공원에 가면 근처에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여사가 이끈 육영재단이 남아있다. 어린이 대공원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강남이 개발된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사실 강남 3구라고 불리는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는 최근에 만들어진 구이다. 예를 들어, 서초동은 영등포구였고, 삼성동, 대치동, 청담동같은 강남구의 핵심지역은 성동구였다. 그리고 잠실지역은 경기도 광주였다. 심지어 송파구와 서초구는 1988년에 만들어졌다. 즉 강남이 조성된 것은 30년 정도된 것이다. 이촌향도가 심했던 1970년, 터질 것 같은 강북은 인구를 주체하지 못하고 강남에 신도시를 만든다. 이것이 영동(영등포의 동쪽이라는 뜻)지역을 개발한다. 그 당시에는 돈이 없어서 미국에서 빌린 돈으로 아파트를 짓기도 했다. 예를 들어, 지금은 힐스테이트가 되었지만 예전에 삼성동 AID차관 아파트도 미국에게 준 돈으로 지어서 AID(Act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돕다라는 뜻의 aid와 중의적으로 쓰임) 차관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다. 이렇게 강남은 시작되었다.
책을 읽다보니 지금 신도시 개발하는 것에도 시의적으로 생각할 만한 사건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잠실에 대단위 단지가 들어섰는데 도심으로 갈만한 마땅한 대중교통이 부족해서 주민들이 불편함을 겪은 모양이다. 지금의 잠실을 생각하면 놀랍겠지만 그 당시에 주요 기업이 모두 도심에 있었고 강남은 지금으로 치면 양평마냥 시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직장에 가려면 움직여야했다. 게다가 지금처럼 도로가 잘 되어 있고 사람들이 차가 많은 것도 아니라서 대중교통에 많은 의존을 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지하철을 놓게된다. 특히 2호선이 잠실을 지나가는 데 우선 신설동과 종합운동장 구간이 개통된다. 지금도 많은 신도시가 생겨나고 있는데 대중교통 부족으로 신음하는 것을 보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차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외에도 다양한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예를 들어, 고속버스터미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아주 재미있다. 계획적으로 때로는 무계획적으로 발전한 서울이 이렇게 성장한 것도 놀라운 일이다. 앞으로 서울이 어떻게 변화, 발전할 지는 모르겠지만 30년 후에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지금을 어떻게 말할지 궁금하다.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자의 물건> (0) | 2019.02.25 |
---|---|
<뉴욕, 매혹당할 확률 104%> (0) | 2019.02.17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0) | 2019.02.07 |
<이방인> (0) | 2019.01.27 |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0) | 2019.01.21 |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