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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30 무라카미 하루키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 2020.06.09 박미라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 2020.06.03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2020.05.26 손자 <손자병법>
- 2020.05.03 강만길 <고쳐 쓴 한국근대사>
- 2020.04.14 <Think like a Billionaire>
- 2020.03.21 <바닷가 작업실에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2020.02.23 <표백>
- 2020.02.03 <상처받지 않을 권리>
- 2019.10.30 <노동의 종말>
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기는 언제나 기대가 된다. 박진감넘치지는 않지만 몰입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는 라오스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그리스 등지에서 하루키씨가 겪고 느꼈던 점을 적었다. 그 중에서 라오스 편이 제목으로 할 정도로 가장 재미 있었다. 특히 하루키의 솔직함이 돋보였다. 사실 유명작가가 라오스를 비하하는 듯한 뉘앙스가 들게 할 것 같은 글(하루키는 전혀 그런 의도가 없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을 쓰기 쉽지 않은데, 누구나 공감할 만 글을 썼다.
내 경우는 중간에 하노이에서 1박을 했는데, 그때 한 베트남 사람이 “왜 하필 라오스 같은 곳에 가시죠?”라고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 말의 이면에는 ‘베트남에는 없고 라오스에만 있는 것이 대체 뭐길래요’라는 뉘앙스가 묻어있었다.
자,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좋은 질문이다. 아마도 하지만 내게는 아직 대답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지금 라오스까지 가려는 것이니까. 여행이란 본래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런 질문을 받고 새삼 생각해보니, 내가 라오스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껏 라오스에 이렇다 할 흥미를 가진 적도 없었다. 그곳이 지도 어디쯤 위치하는지조차 제대로 몰랐다. 당신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상당히 내 맘대로) 짐작해보는 것이지만.
(159쪽~160쪽)
또한 그는 소소하게 이야기하면서 한번즈음 깊게 생각할 만한 거리를 툭하고 던져준다.
루앙프라방의 사원을 느긋하게 도보로 돌아보며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즉 ‘평소 우리는 그렇게 주의깊게 사물을 보지 않는구나’란 사실이다. 우리는 물론 매일같이 여러 가지를 보지만, 그것은 볼 필요가 있기 때문에 보는 것이지 정말로 보고 싶어서는 아닐 때가 많다. 전철이나 차에서 창밖으로 잇따라 흘러가는 경치를 멍하니 눈으로 좆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언가 한 가지를 찬찬히 살펴보기에는 우리 생활이 너무나 바쁘다. 진정한 자신의 눈으로 대상을 본다(관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조차 차츰 잊어가고 있다. (174쪽~175쪽)
그리고 라오스편에서 하루키는 여행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한다.
“라오스(같은 곳)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베트남 사람의 질문에 나는 아직 명확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라오스에서 가져온 것이라고는, 소소한 기념품 말고는 몇몇 풍경에 대한 기억뿐이다. 그러나 그 풍경에는 냄새가 있고, 소리가 있고, 감촉이 있다. 그곳에는 특별한 빛이 있고, 특별한 바람이 분다. 무언가를 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다. 그때의 떨리던 마음이 기억난다. 그것이 단순한 사진과 다른 점이다. 그곳에만 존재했던 그 풍경은 지금도 내 안에 입체적으로 남아 있고, 앞으로도 꽤 선명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 풍경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쓸모가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결국은 대단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한낱 추억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래 여행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181쪽~182쪽)
여행을 통해서 엄청난 깨달음을 얻거나 인생의 전환점이 될만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의 여행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다만, 잔잔하지만 시야를 넓혀주고 다르게 생각해볼 여지를 마련해줄 기회를 주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극적인 경험도 값지겠지만 그렇지 않고 차분하게 진행되는 여행도 나름 값지다. 그것들이 유용하지 않을 지언정 말이다. 인생을 유용하냐 무용하냐를 따지기만하고 살아가지는 않는다.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만약에 이득만 혹은 비용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비즈니스지 여행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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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두 번째 읽는데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너무 어려워서 니체가 무슨 뜻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짜라투스트라를 통해서 했는지 이해하는 것은 먼훗날로 또다시 미루어 두었다. 니체는 나에게 멋진 카피라이터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지금 만약 살아 있었으면 광고회사에서 강렬한 문구를 고민하고 있을 것 같다. 뜻은 잘 모르겠는데 느낌이 살아있는 문구가 아주 많다.
전에는 최대의 모독은 신에 대한 모독이었다. 그러나 신은 죽었다.
실로 인간은 하나의 오염된 강물이다. 오염된 강물을 받아들이지만, 자신이 오염되지 않기 위해서는 인간은 바다가 되어야 한다.
인간이란 동물과 초인 사이에 놓인 하나의 밧줄이고 심연 위에 놓인 밧줄이다.
악마도 없고, 또한 지옥도 없다. 그대의 육체보다도 그대의 영혼이 먼저 죽을 것이다. 그러니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대 영혼 속의 영웅을 버리지 마라! 그대의 최고의 희망을 신성한 것으로 간직하라!
그대들도 죽음의 설교에 알맞을 정도로 무르익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대들은 자신의 적을 찾아내야 한다. 그대들의 사상을 위하여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국가는 선악에 대해 모든 언어를 동원하여 거짓말을 한다. 국가가 하는 말은 모두가 거짓이면,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은 모두 훔친 것이다.
그대들은 그대들 자신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이웃에게 가며, 그대들은 그것을 덕으로 삼고 싶어한다. 그러나 나는 그대들의 이기심을 간파하고 있다.
이렇게 니체는 문학적이면서도 자극적인 문구로 독자들을 현혹한다.
허무맹랑한 부분도 꽤 있다. 예를 들어, 짜라투스트라가 무화과나무 아래서 자고 있는데 독사가 와서 그의 목을 물었다. 그래서 그가 뱀을 노려보니 뱀이 놀라서 도망가려고 했다. 그랬더니 그가 뱀에게 달아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황당하게도 그는 뱀에게 “너는 아직 내게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지 않았다. 너는 나를 적당한 시각에 깨워 주었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랬더니 뱀이 자신에게 독이 있다며 당신이 갈 길은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니 그가 웃으며 용이 뱀의 독에 의해 죽은 적이 있냐며 독을 다시 가져가라고 뱀에게 말했더니 뱀이 상처를 핥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짜라투스트라가 제자들에게 했더니 제자들이 이 이야기에 무슨 교훈이 있나고 물었더니 그는 나의 이야기는 교훈적인 것은 아니고 악에 대해서 선으로 보답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적이 그대들에게 어떤 선을 행했는지를 입증하도록 하라고 말했다. 나는 이 부분을 보면서 현실적으로 말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포장해서 하는 궤변가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특성은 사이비 종교 지도자나 허무맹랑한 정치인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그 어느 누가 자다가 뱀에게 물렸는데 감사하다고 이야기를 해야하는 지 모르겠다. 마치 폭행당했는데 가해자에게 자신을 깨워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변태적인 인간이 아니고서야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깊은 뜻을 이해를 못했다. 그렇다고 이해하는 것이 꼭 필요한가라는 생각을 한다. 어느 몽상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꼭 내 탓일 수도 있겠지만 아예 다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해를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마치 나는 기독교인이 이슬람인을 이해를 잘 못하고, 이슬람인이 기독교인을 잘 이해를 못하듯이 이해를 못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저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파악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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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손자병법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읽지는 않았어도 한번즈음 이름은 들어본 책일 것이다. 나 역시 오랫동안 이름만 알고 있었다가 40이 가까워 오는 이 시기에 손자병법을 읽었다. 중국 고대 군사학책을 읽는 다고 갑자기 나의 처세술이 갑자기 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책으로서 읽고, 이런저런 성찰을 얻을 수 있었다.
이 고전의 손자병법의 손자는 손무라는 설도 있고 손빈이라는 설도 있다. 기원전 500여년 전 사람이기 때문에 정확히 손자가 누구인지는 명확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일단 손무는 제나라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나라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 그 외의 그의 생애에 대한 것은 워낙 오래전 일이라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손자는 글을 간결하게 썼다. 예를 들어 壯者智信仁勇嚴也라고 썼다. 즉, 장수는 지혜, 신의, 인자, 용기, 엄정의 다섯 가지 덕목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짧은 글에 후세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 주석을 달아서 그의 뜻을 해석하였다. 학영사에서 나온 현대인을 위한 동양고전신서에서의 손자병법은 김석환씨가 주석을 단 것이다. 그래서 글을 읽다보면 우리나라의 역사적 예를 들어 손자의 말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도 하였다. 김석환씨 뿐만 아니라 고래로 많은 사람들이 주석을 남겼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조조가 남긴 것이라고 한다.
손자병법은 시계편, 작전편, 모공편, 군형편, 병세편, 허실편, 군쟁편, 구변평, 행군편, 지형편, 구지편, 화공편, 용간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편당 5개에서 20개 정도의 말들을 써놓았다. 워낙 오래 전에 쓰여졌기 때문인지 보편적인 말들이 많이 많다. 그래서 지금도 적용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親而離之라고 말했는데 적들이 친밀하면 그 사이를 벌어지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아주 간명하지만 지금도 어렵지 않게 현재의 상황에도 적용이 가능한 조언이다.
손자병법 중에서 가장 마음의 드는 문구는 故로 用兵之法이 無恃基不來하고 恃吾有以待也하며 無恃基不攻하고 恃吾有所不可攻也라. 뜻은 “그러므로 용병법은 적이 오지 않으리라고 믿어서는 안되고, 아군이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적이 공격하지 않으리라고 믿어서는 안되며, 우리에게 적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방비하는 능력이 있음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이다. 이 문구를 읽는데 영화의 존윅 3의 부제로 알려진 파라벨롬이 생각났다. “Si vis pacem, para bellum”에서 나온 문구인데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남을 믿고 대비를 하지 않으면 결과는 패배일 뿐이다. 물론 머리로는 이상주의적 생각을 할 수 있을 지언정 현실적으로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세상이다.
그리고 읽다보면 아주 익숙한 문구들이 나온다. 흔히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문구가 나오는데 상당히 반가웠다. 故로 曰 知彼知己하면 百戰不殆하고 不知彼而知己하면 一勝一負하며 不知彼不知己하면 每戰必敗라 하도다. 이는 그러므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운다 하더라도 위태롭지 않다. 적을 알지 못하고 나만을 알면 한번은 이기고 한번은 지게 된다. 그러나 적을 알지도 못하고 나도 알지 못하면 싸울 때 마다 반드시 지게 된다. 오늘날 경영학에서는 SWOT분석으로 자기가 누구인지 파악하고 처한 상황도 파악하고 상대방의 특성도 알고 상대방이 처한 특성도 연구한다. 지금이야 그런가 보다 싶은 말들이겠지만 기원전 500년, 글자를 쓸 줄 아는 사람이 많지도 않은 시절을 고려하면 얼마나 탁견인줄 알 수 있다.
손자병법과 같은 고전을 읽는다고 갑자기 세상이 바뀌거나, 돈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고전을 읽다보면 예전 사람들도 꽤나 고민을 하고 살았구나하면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부딪친 고민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게 된다. 그래서 좋은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마음의 위안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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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우리나라의 근대사는 어렵다.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다. 특별히 잘 되는 것이 별로 없던 시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사를 잘 살펴보아야지 지금 살아가는데 반추가 될 수 있다. 물론 학창시절에 국사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매우 간단한 사실도 망각하는 경우도 흔하다. <고쳐 쓴 한국근대사>는 예전에 읽었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신선하게 다가 왔다. 아마도 같은 책이라도 언제 읽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우선 조선의 국가경쟁력을 저하시켰다고 여겨지는 당쟁이 눈에 끌었다. 사실 당쟁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고,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사람이 모이면 다른 의견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다른 의견에 따라서 갈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미국정치학계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이슈 중에 하나도 당파성(partisanship)으로 인한 거버넌스의 붕괴인데 이런 것을 보면 당쟁이 우리의 고유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썼듯이 병자호란 이후 조선이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으로 인하여 신진문화의 유일한 수입로였던 중국과의 문화교류를 줄이고, 정치적 탄력성을 잃어버린 것은 앞으로 다가올 아픈 현실의 씨앗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새로운 문화의 도입을 차단한 채 유교주의적 명분을 정권 쟁탈과 그 유지의 수단으로 삼아서 왕위계승의 적서 문제 같은 일에나 골몰하는 등 백성의 현실개선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만 신경을 썼다. 이러한 문제는 지금도 꼭 생각해보아야 한다. 같은 주장이나 정책이라도 단순히 상대방이 주장한다는 일이라고 반대를 하고 트집을 잡아서 방해나 하면 나라의 현실을 암울해진다. 중국 산동성의 인구의 반정도 밖에 되지 않고, 중국 산동성의 크기보다 작은 이 나라에서 서로 편을 갈라서 당파의 이익을 위해 권력투쟁을 하고 있으면 우리의 운명은 예전의 불우했던 시절을 답습할 것이다.
조선시대 역사를 보면 답답한 구석 한두 군데가 아니다. 하지만 21세기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내가 그 때로 돌아가면 아마 어쩔 수 없었음을 느낄 것이다. 일단 신분사회였다. 지금도 물론 부의 대물림으로 인하여 계층이 나누어져있다. 하지만 신분이 아예 정해져버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노비가 있었다. 1886년 노비의 신분세습제가 폐지되고 1894년 갑오개혁으로 인하여 사노비제도까지 혁파되기 전까지는 노비가 있었다. (게다가 이는 법제상으로 노비의 신분해방이지, 실질적으로 노비가 완전히 없어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린다.) 즉, 100여년 전만 하더라도 신분제라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 사람들은 신분에 따라서 생각하는 것도 배우는 것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고, 그래서 생각하는 것도 달랐다. 그래서 지금 왜 평범한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냐고 말하는 것은 너무 이상적인 일이다. 현재 북한 사람들이 소수의 몇몇 빼고는 노비같은 삶을 살지만 아직도 세습정권에 조용히 길들여져 있는 것을 보면, 체제 안에서 다르게 생각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양반 지배체제의 와해와 민중세계의 성장이고 2부는 외세 침력과 근대 민족국가 수립의 실패이다.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서서히 침략당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물론 이 부분을 읽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괴롭다. 전혀 유쾌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부분은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국제화시대라고 하지만 국가라는 조직에서 살아가는 한 국가의 운명은 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국권을 피탈당하고 그 후 고통당하는 사실은 반복해서 배워야, 또다시 그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아픔을 당했던 분들이 희생이 아쉽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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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도널드 트럼프가 이 책을 쓸 때만 해도 나는 그가 미국 대통령이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그저 TV에 나와서 넌 해고야(You are fired!!)를 외치는 성공한 부동산 업자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Apprentice 가 끝난지 10년도 되지 않아서 그는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 그가 꽤나 한결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단 자기애가 엄청나게 강하다. 자신의 실패는 축소해서 이야기하고 자기의 성공은 확대발표하는 것은 예나지금이나 비슷하다. 특히 저자소개로 Donald J. Trump is the very definition of the American success story, continually setting standards of excellence while expanding his interests in real estate, gaming, sports, and entertainment. 라고 썼다. 그 스스로 미국 성공이야기의 정의라고 이야기할 정도는 말을 다했다. 책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함은 전혀없고 잘난 척으로 가득하다. 이러한 뻔뻔함이 어쩌면 그의 매력이라면 매력이겠다.
이 책은 도널드 트럼프의 부자가 되기위한 아주 간략한 조언들로 이루어져 있다. 주제는 아주 다양해서 “어떻게 재정관리자를 고용해야 하느냐”부터, “어떻게 일과 사랑을 조화시키느냐”까지 다채롭다. 자세히지는 않지만 각 주제에 대해서 간략한 자기의 생각을 적어놓았다. 트럼프는 그의 말투처럼 글을 써놓았다. 그래서 인지 일단 이해하기가 쉽다. 아마도 이것이 그의 매력일 수도 있겠다.
가장 뻔하면서 인상깊었던 대목은 “비즈니스에서 어떻게 상대방에게 인상을 남기는가?”인가에 대한 그의 대답이다. 1.시간을 엄수하라 2. 준비를 잘 하라. 3. 상대방을 알고 인정하라 4. 상대방의 이름과 작은 것들에 대해서 기억하라. 5. 정직하라. 6.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게 하라. 7. 겸손하라였다. 그 어느 것 하나 뺄 수 없는 금과옥조이다. 그런데 그 금과옥조를 트럼프가 써놓으니까 헛웃음이 나왔다. 특히 정직하라,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게 하라랑 겸손하라는 부분에서 사람이라는 존재는 자기 자신을 얼마나 기만하는 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쓴 부분에서 진솔함을 느꼈던 부분은 혼전계약서(prenup)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그는 결혼을 세 번 한 사람으로서, 결혼과 돈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조언해주기도 한다. 그는 첫째부인에게서 3명의 자녀, 그리고 둘째 부인에게서 1명의 딸, 그리고 셋째 부인에게서 1명의 아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아무리 잘 나가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가정을 꾸리면 나름 골치가 아팠을 것 같다.
이 책을 읽다보면 나름 트럼프의 귀여운 면도 발견할 수도 있다. 책에 소소하게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소개하는 면이 있다. 차는 벤츠, 옷은 Brioni, 샴푸는 헤드앤 숄더, 카드는 비자카드 등등 소소하게 썼는데 어떤 면에서 참 아이같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다가 나를 파안대소하게 한 부분은 최고의 책을 쓴 부분이었다. 최고의 책으로 자신의 책 “The Art of the Deal,” “How to get rich”을 소개했다. 정말 한결같이 자신을 사랑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외에도 그의 지명도를 전국구로 만든 Apprentice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나도 거의 모든 시리즈를 시청했었다. 이 때 나는 이 프로그램을 아주 흥미롭게 시청했었다. 추후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에 나오는 것을 보고 아주 놀랐었다. 일단 그가 문제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는 대중의 이목을 끌어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관심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도 잘 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끝끝내 대통령이 되고야 말았다. 그가 대통령이 된 후에 문제가 아주 많았지만 다행히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아마도 임기가 끝난 후, 그는 자신을 평화대통령이라면서 책을 또내서 돈을 벌 것 같다. 아무튼 대단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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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나는 김정운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일단 진솔하다. 물론 종종 현실부적응자마냥 자신이 잘 생겼다고 이야기하는 것 빼고는 잘난 체를 많이 하지 않아서 좋다. 소탈하게 이야기하는 듯이 글을 쓰기 때문에 글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줄어든다. 그리고 적절한 예, 현실적인 예를 잘 들기 때문에 이해가 더욱 쉽다. 사실 글을 어렵게 쓰는 것보다 쉽게 쓰는 것이 더 어려운데 그런 면에서 김정운 작가는 글을 대단히 잘 쓰는 것이다.
그리고 김정운 작가를 좋아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가 시시한 자기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심리학적 전공을 토대로 사회현상이나 개인이 느끼는 감정을 잘 설명한다. <바닷가 작업실에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에서도 그가 여수에서 터잡게 된 그의 사적인 이야기도 흥미를 끌지만 그가 심리학적인 렌즈로 바라보고 이해한 세상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이번 책의 부제는 슈필라움의 심리학이다. Spielraum라는 단어는 독일어로 놀이와 공간의 독일어의 합성어라고 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을 저자는 슈필라움이라고 주장한다. 사람은 자기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유대인들이 나치독일치하에 경험을 들어서 설명했다. 나도 이 개념이 중요성에 대해 크게 공감을 한다. 교수가 되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자신만의 연구실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크지도 않은 공간이지만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 딴 생각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하고 그 토대 위에서 남들과 다른 창의적인 생각도 할 수 있게 하게 한다. 반면에 내가 예전에 남들과 같이 공간을 나눈 사무실에서는 다른 사람이 내가 하는 일을 볼 수 있다는 염두하에 일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점차 자아를 잃고 평범한 사람이 되어감을 느낀 적이 있다.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률적이지 않은 어떠한 개체라고 보았을 때는 슈필라움이야 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조선일보에 작가가 글을 모은 것으로 너무 길지 않은 글들도 이루어져 있다. 그 글마다 1~2개의 이론이라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틀린 믿음 실험(false-belief-test),” “비자발적 기억(involunatary memory),” “교환가치(Tauschwert)와 사용가치(Gebrauchswert),” “동화(Assimilation), 조절(Akkommondation), 그리고 평형화(Aquilibration),” “열등감(Minderwertigkeitsgefuhl),” “정점-종점 규칙(Peak-end rule),” “인정투쟁(Kampf um Anerkennung),” “소외(Entfremdung),” 등의 개념을 현실의 예를 들어서 쉽게 설명하고 있다.
작가의 여러 통찰이 있었지만 내가 흥미롭게 보았던 것은 바로 “기억의 티테일”이다. 작가는 현재 우리사회의 문제중 하나가 스스로 추구한다고 주장하는 가치를 근본적으로 신뢰하지도 않고 주장하는 대로 살지도 않는 냉소적 이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냉소주의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했던 말들을 제대로 기억할 때 냉소주의가 극복된다고 보았다. 요즘 같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누구에게나 의견이 쉽게 다른 사람들에게 펼쳐질 수 있는 시대에 아무말 대잔치가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그 아무말이 오히려 표현의 자유의 본연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려면 기본적으로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한다.
이 책을 보면서 또 좋았던 점은 작가의 그림과 여수의 아름다운 사진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놀랍게도 작가가 생각보다 그림을 스타일있게 잘 그린다는 것이다. 물론 사고 싶은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자신만의 개성이 잘 들어났다. 그리고 사진도 상당히 느낌있게 잘 책에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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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장강명 작가의 표백을 다시 읽었다. 책을 다시 읽으면 신선함을 떨어지지만 그 내용을 더 명징하게 이해할 수 있어 좋다. 이 책이 출간된지는 어느덧 9년이 되었다. 아마도 작가가 이 소설을 쓸때는 2010년이 될태니 10년이 지난 내용이다. 그런데 10년이 지났지만 내용에는 전혀 이질감이 없다. 2020년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소설은 대학 졸업반 즈음 되는 20대 중반에서 갓 취직하고 나서의 20대 후반정도까지의 주인공이 나온다. 이제는 10년이 지났으니까 그들은 30대 중후반이 되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직 청년이라는 딱지를 떼지 못하고 미생으로 남아 있다. 표백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소설로도 재미가 있지만 그것보다도 그 내용이 던져주는 사회적인 메시지에 더욱 관심이 간다. 예를 들어, 취업한 선배가 후배들에게 밥을 사준다면서 요즘 젊은이들은 도전정신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 후배는 “저는요, 젊은이들더러 도전하라는 말이 젊은 세대를 착취하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뭣 모르고 잘 속는 어린애들한테 이것저것 시켜봐서 되는지 안되는지 알아보고 되는 분야에는 기성세대들도 뛰어들겠다는 거 아닌가요? 도전이라는 게 그렇게 수지맞는 장사라면 왜 그 일을 청년의 특권이라면서 양보합니까? 척 보기에도 승률이 희박해 보이니까 자기들은 안 하고 청년의 패기 운운 하는 거잖아요(27쪽)”라고 대답한다. 정말 발상의 전환이다. 어쩌면 너무 당연하게 도전정신과 청년을 동일시해왔는데 그것을 청년이 해야할 어떠한 의무라고 치부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나니 새로운 시각이 눈에 들어왔다.
더 핵심은 그 다음에 나온다. 이 말을 들은 선배가 “이름이 뭐랬지? 넌 우리 회사 오면 안 되겠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들은 후배가 “거 봐 아까는 도전하라고 훈계하더니 내가 막상 도전하니까 안 받아주잖아”라고 응수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상당히 공감을 했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하는 많은 조언은 대개 영혼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예전에 통했던 것이 요즘에는 통하지 않을 경우도 많다. 열마디 말보다 한가지 실질적인 도움이 꼰대를 벗어나는 지름길일 수 있다.
또한 중요하게도 표백세대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1978년 이후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유지, 보수자의 운명을 띠고 세상에 났다. 이 사회에서 새로 뭔가를 설계하거나 건설할 일 없이 이미 만들어진 사회를 잘 굴러가게 만드는 게 이들의 임무라는 뜻이다. 이들은 부품으로 태어나 노예로 죽을 팔자다(186쪽).” 확실히 예전 가난하던 시절 우리나라 사람들을 맹진하게 했던 경제화라든지, 어느 정도 먹고나서 우리가 바라던 바를 원했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지금은 없다. 경제화도 민주화도 어느 정도 이루었다. 그래서 큰 뜻없이 주인공처럼 7급 공무원을 하면서 조용히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특히 작가가 잘 꼬집었듯이 “표백세대들은 아주 적은 양의 부를 차지하기 위해 이전 세 개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경쟁을 치러야 하며, 그들에게 열린 가능성은 사회가 완성되기 전 패기 있는 구성원들을 기대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아주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196쪽).” 이미 어느 정도 완숙된 사회에서 나타나는 결과일 것이다.
소설에서는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이 자살을 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백 세대가 계속 암울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세계로 뻗어나가 정상급의 위치로 나가는 것이 하나의 길이 되겠다. 물론 우리나라가 그동안 많은 발전을 해왔지만 세계를 선도하는 위치에 선적은 단한번도 없었다. 단한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기 때문에 떨리기도 하지만, <기생충>영화를 보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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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박사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시중에서 많이 보이는 정서적인 위로에 관련된 책이 아니다.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의 이유에 대한 친절한 가이드 북이다. 2020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돈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해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부분에서 자본주의가 돌아가는 원리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자본주의의 원리가 일반 사람들의 삶의 곳곳에 이미 스며들었기 때문에 이 글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우선 사람들은 지금 당장 쓰지 않더라도 통장의 돈을 항상 의식하고 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는 것은 마치 공기가 없는 것처럼 절망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통장의 돈이 얼마있는 지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서 책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엇인가를 모아둔다는 것은 곧 미래에 대한 염려를 보여줍니다. 미래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자신의 손 안에 두기 위해 돈을 비축하려고 합니다. 화폐경제가 확립되어야 비로소 미래에 대한 염려가 가능하고, 미래를 염두에 둔 시간관념도 가능해집니다.” 자본주의적 시간의식에 대해서 저자는 잘 설명하고 있다. 영화 “In time”에서도 부자들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느긋하게 사는 가하면 가난한 자들은 항상 시간에 쫒기며 어렵게 살아간다. 과연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살지 않았다면 어떠한 시간관념을 가지고 살았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자본주의 사회에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울지는 몰라도 팍팍한 느낌을 주는 이유로 잘 설명해두었다. “화폐경제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 이루어졌던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와해시키고, 오직 돈으로만 개인들이 서로 연결되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 물론 모든 인간관계가 돈으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돈이 문제가 되는 것은 확실하다. 돈이 어떤 면에서는 공정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 어차피 사람은 타인을 판단할 때 어떠한 기준을 들게 마련이다. 돈이 없었다면 못생긴 사람이나 소수인종의 사람들은 차별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못생겨도 소수인종이라도 돈이 있으면 일단 존중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돈의 중요성이 너무 심해지다보니 그 사람이 무엇을 하든 돈만 많으면 된다는 배금주의 사상이 세상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확실히 자본주의는 명과 암이 있다.
또한 인상깊게 읽었던 구절은 “자본주의가 보장하는 자유란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아닙니다. 자본주의에서 자유는 돈을 가진 자의 자유, 소비의 자유에 불과할 뿐입니다. 소비의 자유란 결국 돈에 대한 복종의 이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이다. 대개의 사람은 자유를 꿈꾼다. 그런데 그 자유란 자본주의 안에서는 돈으로 이루어진다. 몇몇 소수의 사람을 빼고서야, 이 자유를 얻기 위해서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한다. 슬프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돈을 벌기 위해 한다. 즉, 자유를 위해 자유가 없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쥐꼬리만한 월급쟁이라면 이러한 역설에서 나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의 저자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렇다고 비판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안을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생산-소비협동조합”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용가치가 없음에도 사람들의 허영을 부추겨 기호가치를 소비하게 한다. 또한 필요이상의 돈을 모으려고 악착같이 욕심을 내서 불평등을 키우기도 한다. 생협의 세상에서는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생협의 돈은 축재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필요한 것을 교환할 수 있는 정도의 권능이 있을 뿐이다. 아직 이러한 세상이 도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자본주의 힘은 강대하다. 그래도 가끔은 다른 세상을 꿈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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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리프킨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5명안에 꼽히는 사람이다. 이 분의 글을 읽다보면 그의 탁월한 식견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져 진다. 그의 명저 <노동의 종말>역시 마찬가지이다. 1995년에 출간된 이 책은 24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전혀 이질감이 없이 당시에 미래인 지금을 잘 묘사하였다. 1995년에 출간되었다하면 글이 쓰여진 것은 그 전일 탠데 그래도 그 당시에는 아직은 노동의 종말까지는 걱정하지는 않았던 시기였는데 놀랍게도 앞으로의 일을 잘 진단하고 있다. 애먼 점쟁이를 찾는 것보다는 이러한 식견있는 학자들에게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미래를 비교적 잘 진단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역사에도 정통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온 인류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앞으로 어떻게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예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역사를 통해서 기술이 어떻게 인간에게 큰 영향을 주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도시문제가 심각해진 이유를 현대농업기술이라고 보았다. 목화따는 기계와 수확 기계가 발달할수록 남부의 흑인의 노동력의 가치는 떨어져 갔다. 이에 흑인들이 이촌향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흑인들이 도시로 몰려들면서 도시에 문제가 생겨난 것이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아마도 농업기술의 발전이 이러한 파급효과를 산출했을지는 잘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현재에도 많은 기술들이 발전하고 보급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아마도 그 기술이 어떻게 쓰일지에 대한 1차적인 생각만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술의 변화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기술의 변화가 사람들의 통신만 편하게 할 뿐만 아니라 정치의 지형을 바꾸어 놓고 공유경제를 가능하게 했듯이 말이다. 과거를 보다보면 어떠한 발명이나 발견이 새로운 사회적 지형을 만들어냈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노동의 종말>은 이미 현실이 되어서 이제 내용이 크게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인한 문제의 핵심은 지금도 동일하다. 그것은 바로 신기술에 의한 생산성 향상으로 인한 이익이 보통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발달된 기술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은 예전보다 싼 가격에 쉽게 물건을 살 수 있고 서비스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몇몇 소수의 탁월한 공급자들이 재화와 서비스 시장을 쓸어담을 수 있는 토대도 생긴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동네 슈퍼마켓도 나름의 시장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근래에는 압도적으로 편리한 업체들이 물건을 집앞까지 배달해주면서 동네마트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이는 단순히 마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렇게 되다보면 탁월한 소수만 살아남고 평범한 다수는 죽어갈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힘들게 살아가는 다수에 사람들을 시장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이다.
문제에 해결책으로 제레미 리프킨은 정부도 아니고 시장도 아닌 제3섹터를 제시하였다. 공동의 문제를 권위로 자원을 배분하는 것도 아닌, 가격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것도 아닌 공동체의 합의에 의해서 배분하는 시민사회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아주 아쉽게도 제3부문은 아직 노동의 종말에 대한 대처를 잘 하고 있지는 않다. 사람들은 법으로 강제하거나 이익으로 동기유발이 잘되는데 반해서 공동체 후생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활동을 보이게 마련이다. 물론 소수의 활동가가 있지만 그들의 힘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서 제3섹터는 대안이 제대로 되고 있지는 않다. 요즈음은 아예 더욱 파격적으로 노동의 종말로 인하여 시장이 말라버리고 정치가 형해화되는 것을 막기위해서 기본소득제도에 대해서 논의가 되고 있다.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하게 한다. 앞으로 또 어떠한 사회가 도래할지는 모르겠지만 노동의 종말이 유토피아의 도래가 되었으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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