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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건축만담>은 건축가 2명이 서울에 있는 어느 건물이나 공간에 대해 자신의 느낀 점을 쓴 것이다. 그런데 건축가라고 해서 건축에 대한 지식을 기대했다면 매우 실망할 수 있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글쓴이가 건축가가 아니라고 해도 무방하다는 것이었다. 반면 감수성있는 작가가 글을 쓴 것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읽을 만하다. 서울의 여러곳에 대한 개인의 상념을 이리저리 적었기 때문에 정보를 건지기 보다는(물론 내가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는 있다) 타인의 생각과 느낌을 읽을 수는 있다.
글을 읽다보면 아마도 글쓴이들이 대략 70년대 초반 정도의 나이로 추정된다. 이제 50에 가까워진 나이이다. 이 즈음이면 자신의 커리어도 어느 정도 단단해지고 어쩌면 어느 정도 지나온 세월을 돌아볼 여유도 조금 생기는 나이일 수 있다. 그래서 서울의 여러군데 돌아다니며 건축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흘러가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런 것을 보면 어쩌면 우리 인간이라는 것, 정체성이라는 것은 기억이 거의 대부분 결정 짓는 것 같다. 그리고 건축물도 개인의 기억을 투영하여 인식하는 것은 아닐 까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도 그러한 건축물이라든지 공간이 있음을 기억한다. 예를 들어 내가 청소년기에 오래살았던 반포미도아파트라든지 하교하면서 가끔 들른 고속터미널이라든지 대학교때 자주가던 강남역이라든지 하는 공간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가끔 반포에 가게되면 겉모습은 그대로인데 주위의 환경이라든지 내부 인테리어가 많이 바뀌면 마치 성형수술을 해서 예전모습을 잃어버린 친구를 보는 것 같은 아쉬움도 있다. 이제는 없어진지 오래되었지만 고속터미널에는 반포시네마라는 영화관이 있었다. 센트럴시티가 들어오고 그곳에 신식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들어오기 전에는 반포사람이라면 주로 가는 영화관이었다. 새로운 영화가 개봉되면 손수 직접 그려진 영화간판이 올라가고는 했다. 내가 고등학교 때 디지털 카메라가 널리 보급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찍어 놓지못해 아쉽기는 하지만 마지막으로 본 수제영화간판은 미션임파서블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았던 영화들도 생각난다. 학창시절 보았던 쥬라기 공원이, 다이하드부터 고등학교 CA시간에 보았던 스타워즈도 생각난다. 심지어 사복을 입고 갔다가 선생님에게 혼이 나고 교복으로 갈아입고 왔던 기억도 난다. 가끔 고속터미널 건물에 가면 이제는 흔적조차 없어진 그곳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세대 차이도 느껴진다. 글쓴이들이 70년대 초반의 사람들로서 90년대 대학생활을 보낸 X세대로서의 건축에 대한 공간에 대한 감회가 느껴졌다. 예를 들어, 가로수길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글의 제목이 아예 <응답하라 1994>인데 1994년은 바햐흐로 젊은이들의 전성시대였다. 일단 문민정부가 들어섰고(물론 삼당합당을 통해서 김영삼이 정권을 잡았지만 일단 군인출신은 아니고 들어서고 하나회 척결 등의 노력을 했으므로), 대중문화는 융성했고,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외국문화도 많이 들어왔다. 결정적으로 1997년 하반기 이전의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대체적으로 호황이었기 때문에 대학생들은 취업의 걱정도 지금처럼 어렵지 않았다. 정말 X세대는 젊은이들이 군사독재도 아니면서 만성적인 저성장 시대를 맛보기 전인 단 몇 년간의 달콤함을 누린 세대이다(물론 그 후 혹독한 경제위기로 고생을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인지 그 당시를 젊은 시절을 그리는 X세대들이 많은 것 같다. 전람회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 전 세대는 감히 하지 못했던 유럽배낭여행을 떠났던 그 때에는 가로수길이 지금처럼 융성하지 못했는데 이 꼭지의 글을 쓴 최준석씨는 그 당시가 꽤나 그리운 모양이었다. 세대에 따른 기억법은 세대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이제 X-세대가 무려 50줄에 접어들어 “나 때는 말이야”를 이야기하고 자녀취업걱정을 하는 나이가 되었다. 아마 X-세대의 자녀들은 같은 공간과 건물도 완전 다르게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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