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야구다>

Book 2019. 8. 31. 00:37

 

우리나라 프로야구는 1982년에 시작되어 이제 38년째를 맞이하였다. 지나온 38년만큼이나 그동안 많은 일이 프로야구에 있었다. 프로야구 출범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프로야구가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것이 야구다>는 스포츠 전문 언론인 스포츠서울에서 2011년에 프로야구 30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있었던 흥미로운 사건을 모은 책이다. 스포츠 전문 언론사에서 낸 책이므로 자료가 신빙성있고 풍성하여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좋아할 만한 책이다.

프로야구 초반에는 지금이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일어났다. 그 중 가장 최고는 역시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최동원 선수가 무려 41패를 한 것이다. 겉보기 기록도 믿을 수 없는데 실상은 더 놀랍다. 그는 1차전에서 무려 완봉승을 거둔다. 그리고 3일 후에 3차전에서 완투승을 거둔다. 이것만으로도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다. 그냥 승리가 아니라 3일 사이로 2경기를 모두 책임진 것이다. 그리고 5차전에 나왔는데 선발패를 당한다. 그리고 바로 6차전에는 구원으로 나와서 승리를 거둔다. 마지막으로 가장 맙소사스러운 부분은 7차전에 또다시 완투승을 거둔다. 7번 경기를 하는데 숏릴리프 선수도 아닌데 5번을 나온 것도 놀라운데 무려 3번이나 완투를 했고 롯데가 우승을 한 4번의 승리를 최동원 선수 혼자서 다 한 것이다. 과장을 조금 붙이면 최동원 혼자 야구를 한 것이다. 아마도 이 기록은 전무후무한 대기록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에 버금가는 기록이라고 한다면 1983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장명부일 것이다. 그는 100경기에서 무려 60경기를 등판했고 성적은 30166세이브를 거뒀다. 지금 선발, 중간, 마무리가 나누어져 있는 프로야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기록이다. 혼자서 선발, 중간, 마무리를 다 한 느낌이다. 30승 중 26승은 무려 완투승이다. 현재 선발투수들이 6회만 넘어가도 힘이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고, 완투승(혹은 패)는 그렇게 쉽지 않은 기록이 되었는데, 무려 26완투승을 거둔 것이다. 아마 이 기록도 전무후무할 것이라고 본다.

나는 프로야구를 꽤나 어렸던 1990년대 초부터 보았었는데 그 당시의 기억이 어렴풋했는데 책으로 읽으면서 확실해지는 것들도 많았다. 1995년도에 OB가 우승할 당시 가장 주력 투수는 김상진이었다. 그는 특히 LG 이상훈과 대결을 펼치면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고, 그 해 18승의 커리어 하이를 달성한 것을 책을 보면서 회상했다. 이 김상진 투수가 99년에 삼성으로 이적했다가 SK에서 은퇴를 한다. OB에 있을 때(91~98)보다 확연히 못했는데 SK코치와 삼성코치를 하고 있는데 왜 두산으로 오지 않는지 꽤 궁금하다.

그리고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역시 선동열 투수인데 1999년에 은퇴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11년 그리고 일본에서 4년을 뛰었는데 더 뛸 수도 있었는데 좋은 이미지로 끝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은퇴를 했다. 그가 뭔가 정상의 자리에서 깔끔하게 물러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몰랐던 사실들도 많이 알게되었다(물론 야구팬이 아니라면 전혀 중요하지 않겠지만 야구팬이라면 알아두면 의미있는 것들). 선동열과 최동원에 가려진 3인자로서 존재감이 적어보일지 모르겠지만 김시진의 활약도 대단했다. 김시진이 84년 한국시리즈 41패의 주인공인 최동원이나 국보투수 선동열보다 100승을 3년이나 먼저한다. 김시진은 왠지 저평가받는 느낌이 항상있다. 1986년 골든글러브 시상식때 유격수 부분에서 김재박이 수상하는데 호명할때는 김재전으로 잘못했다고 하는 데 그 이유는 수상자 표시란에 한자로 으로 잘못써서 그렇다고 한다. 그 당시 한자를 얼마나 많이 썼는지 알게하는 에피소드이다. 이 외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는데 2011년에 발간한 책인 만큼 지난 8년간 지난 이야기는 담겨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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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100장면>

Book 2019. 8. 26. 01:42

<한국사 100장면>은 꽤 두툼하지만 반만년 이어져 내려온 우리나라 역사를 한번 훝어보기에 딱 좋은 책이다. 물론 중고등학교때 역사를 이미 배우지만 역사라는 것은 학창시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읽어주면서 감각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현재를 살아가면서 쏠쏠한 재미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때로는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 우선 고구려를 건국한 사람은 고주몽이다. 그리고 백제를 건국한 사람은 온조이다. 그런데 이미 잘 알려진대로 온조는 주몽의 아들이다. 원래 고구려에서 잘 살고 있었는데 예전에 낳았던 유리가 급작스럽게 나타나면서 온조는 형인 비류와 함께 지금의 서울 쪽으로 내려와서 나라를 건국하게 된다. 이런 것을 보면 고구려와 백제는 한 형제와 같은 국가였을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국가의 정체성이 뚜렷해지고 형제간에도 갈등이 있는 것처럼 나라 간에도 갈등이 생긴다. 그러면서 작게는 외교적인 갈등 크게는 전쟁을 통해서 아픔을 겪기도 한다. 이러한 예는 세계사적으로도 많은데 멀리 찾을 필요도 없고 현재 우리나라와 북한을 생각을 해보면 된다. 같은 언어를 쓰고 불과 70여년 전만 하더라도 같은 사람이 었는데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하고 지금도 분단되어서 총을 겨누고 있다. 먼 훗날 지금을 아마도 남북국 시대라고 부를 날이 올 수 있을 탠데 그 때 지금을 굉장히 한심이 여길 지도 모르겠다. 마치 지금보면 고구려와 백제가 하나가 될 수도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 당시 고구려와 백제는 지금 남북한처럼 진지했을 것이다. 이러한 남북국 체제가 아무 것도 아닐 시기가 어서 도래했으면 한다. 게다가 고구려와 백제가 패망을 하고 많은 유민들이 일본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이 사람들이 가서 아스카 문화를 일으켰다고 한다. 그런데 후에 그 후예들이 우리 나라를 침범하여 살육하고 그 후에는 장기적으로 무단 점령하면서 극심한 고통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한 때 한반도에 살았던 후예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괴롭힌 것이다(물론 모든 일본인이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은 아니다). 이런 것을 보면 사람들이 세력을 형성하고 갈등을 겪고 상대방을 괴롭히는 존재인가 싶기도 하다. 어쩌면 그렇게 다른 존재가 아닐 탠데 말이다.

그리고 책을 읽다보면 예전에는 무심이 모르고 넘어갔던 것들을 알게된다. 예를 들면 혜초는 704년에 신라에서 태어나 723년 중국으로 간 후 인도로 넘어가서 <왕오천축국전>을 쓴다. 아는 이 책을 무비판적으로 암기했는데 천축이라는 것이 당시 인도를 말하는 단어였다고 한다. 지금도 인도를 가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데 700년에 신라에서 중국으로 그리고 인도로 가는 것은 꽤나 벅찬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외로움을 달리기 위해서 페이스북같은 데에다가 글이라도 남기지 그 당시에는 누구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묵묵히 메모를 남겼을 것이다. 물론 혜초가 승려였기 때문에 세속적인 욕망에 연연해 하지는 않았겠지만 네비게이션도 없는 어떻게 인도를 잘 찾아갔나 모르겠다. 게다가 번역기도 없는데 말은 잘 통했을 지도 궁금하다. 그렇다고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가서 알 고 싶지는 않지만 궁금하기는 하다.

그 외에도 현재와 연결지어서 고민해볼 거리들이 있다. 예를 들어 고선지 장군의 서역 원정을 소개하고 있다. 고선지 장군의 아버지 고사계는 고구려 사람이었는데 고구려가 망해서 당나라로 어쩔 수 없이 이주했다고 한다. 고선지는 즉 고구려 유민의 자손이었다. 그런데 이 고선지가 장군까지 올라서 활약한 것이다. 이것을 보면서 고선지는 고구려 사람인가? 아니면 당나라 사람인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가끔 미국에 있는 교포 2세들(한국계 미국인)이 활약하면 뉴스채널에서 보도를 해주는데 그런 것과 비슷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때로는 흥미로운 주제도 있었고 때로는 슬픈 주제도 있었다.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히 잘난 역사도 없다. 다만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잘 알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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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Book 2019. 8. 16. 22:32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유행어를 만든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별내용은 없지만 역시 볼만한 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SINRA>라는 잡지에 1994년부터 1995년까지 게재하였던 글들을 모아둔 책이다. 특히 그가 미국에서 지냈던 1993년부터 1995년의 2년간의 시간의 내용을 담았는데 매우 소소한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했지만 읽는 재미는 소소함을 넘어선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굉장한 소소한 재미라서 소소하지 않다고나 할까.

그 유명한 소확행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135~136)

 

그로부터 3년 뒤에 나는 보스톤의 한 중고가게에서 같은 레코드를 2달러 99센트에 파는 것을 발견했다. 레코드판의 질은 반짝반짝하는 신품과 똑같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이것을 손에 넣었을 때는 정말로 기뻤다. 손이 떨릴 정도의 흥분은 아닐지라도 나도 모르게 싱글벙글 웃음이 새어나왔다. 꾹 참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결국 구두쇠가 아니냐는 말을 들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았다. 개인적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철저한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같은 것이다. “그래 이 맛이야!”하고 혼자 눈을 감고 자기도 모르는 새 중얼거리는 것 같은 즐거움, 그건 누가 뭐래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참된 맛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없는 인생은 메마른 사막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부분에 크게 공감을 했다. 소확행에 필수조건은 때때로 적당한 금욕이다. 아무 것이나 모든 할 수 있고, 매번 하고 있으면 그것은 행복이 되지 않는다. 약간의 방해물이 있고, 그 어떤 것을 극복한 후에 성취할 수 있는 것이라면 긍정적인 감정은 배가 된다. 그가 표현했던 운동을 한 후에 마시는 맥주가 딱 인 것 같다.

이러한 소확행을 누릴 수 있는 것은 하루키씨의 절도있는 생활습관에 기인할 수 있다. 그는 사실 바른생활 사나이의 삶을 살고 있다. 책에 그의 작업 방식이 나와있는데 아침 5시에 일어나 작업에 몰두하다가 밤9시가 되면 잠든다는 것이다. 물론 계속 소설만 쓰는 것은 아니다. 아침을 먹고 10시 반까지 작업을 하다가 수영을 하거나 한시간 정도 달린 후 점심을 먹는 다고 한다. 그리고 오후에는 기분전환의 일을 하는 데 번역을 하거나 간단한 에세이를 쓴다고 한다. 혹은 사무적인 일을 처리하거나 시내를 산책한다고 한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음악을 듣는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바른생활 사나이의 생활패턴이 그가 롱런하는 비결일 수 있다. 혹자는 이러한 바른 생활이 재미없고 불행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바른 생활이 정착된 사람이야 말로 소확행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맥주한잔이라든지 동네에 있는 고양이와 교감을 나눈 다는지 하는 작지만 소박한 행복을 바른 생활 사나이는 만끽할 수 있다. 알코올 중독자는 맥주를 마시지 않으면 죽을 것 같지만 그 행복이 바른 생활 사나이가 열심히 운동을 하고 마신 맥주와 그 결을 달리한다.

이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씨의 생활을 적은 것이지만 미국에 있을 때 쓴 것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미국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러는 의미에서 어떠한 사람의 미국여행기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리고 그와 곁들여진 사진과 순박한 그림은 글을 읽는 데 있어서 즐거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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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페셔널의 조건>

Book 2019. 8. 16. 01:12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사람이 피터 드러커이다. 피터 드러커는 여러 글을 통해서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의 저작 <프로페셔널의 조건>은 경영인이 아니더라도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한번 즈음 읽어야할 수작이다. 서점에 널려있는 수많은 자기계발서보다 훨씬 낫다. 두껍다면 두껍고 얇다면 얇은 이 책에서 피터 드러커는 그의 탁월한 식견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피터 드러커가 경영학에 큰 영향을 미친 죠지프 슘페터를 만난 이야기이다. 이는 마치 리오넬 메시가 디에고 마라도나를 만나서 축구이야기하는 것보다 나에게 더 흥미로웠던 장면이었다. 피터 드러커는 그와 만나서 얻은 교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167~168).

 

첫째,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늙어가면서 그 대답을 바꾸어야만 한다. 그것은 차츰 성숙해 가면서 그리고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바뀌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꼭 기억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한 가지는, 사는 동안 다른 사람의 삶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할지 모를 때 진지하게 물어볼 질문으로 아주 적합하다. 그리고 나름 확신을 가지고 일을 하다가 가끔 회의감이 느껴질 때 이 질문을 다시 한번 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로패셔널의 조건>에서 금과옥조와 같은 말씀을 쏟아 냈는데, 그 중 관심이 가는 것은 시간의 중요성이다. “시간은 철저하게 소멸되는 것으로서 저장될 수도 없다. 어제의 시간은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야말로 단 하나의 참다운 보편적인 조건이다. 모든 일은 시간 속에서 일어나고 그리고 시간을 소모한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한정된, 대체 불가능한, 필수적인 자원을 당연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피터 드러커는 시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시간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 성공함을 주장하고 있는데,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시간을 잘 사용하고 있는가? 그는 효과적인 지식 근로자는 시간과 경쟁하지 않는다. 그들은 편안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쉬지 않고 나아간다.”라고 이야기하였는데, 나도 언젠가 이 경지에 올라섰으면 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거의 모든 부분에 동의를 하면서 읽었는데 한가지 불만이 있었다. 경영학자들의 문제점 중 하나는 어떠한 것을 예측하기보다는 이미 발생한 사건을 잘 풀이해주는 해설자같은 느낌이다. 예를 들어 단점없는 사람이 없다면서 강점이 확실한 사람을 등용하라면서 링컨 대통령과 그랜트 장군의 예를 든다. 링컨 대통령은 그랜트 장군이 알콜 중독자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진 능력을 보고 최고사령관으로 기용하고 북군은 전쟁에서 이긴다. 그리고 피터 드러커는 세상에 나무랄 데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어떤 분야에서 나무랄 데가 겂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을 뿐이다라는 멋진 말을 한다. 나는 이것이 전형적이 경영학자들의 해설가적인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삼국지의 장비가 술에 취해 부하에게 꼬장을 부리다가 살해당한 예부터 술 때문에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긴 결과를 두고 장점을 잘 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너무 경영학자 다운 스토리 텔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페셔널의 조건>은 삶의 도움이 될 읽을 거리가 풍부하고 번역이 아주 잘되어있어서 국어로 읽는 데 아주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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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

Book 2019. 8. 15. 01:24

 

아동교육의 명저라고 불리는 <한 아이>를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계속해서 우울했다. 일단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는 정말 불쌍하다. 이 책은 특수학교에서 술꾼인 아버지에게 학대받고, 어머니는 떠나버린 쉴라를 지켜보는 교사의 이야기이다. 물론 가끔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주인공인 쉴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단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에 다가 아이를 학대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슬프다. 가끔 뉴스에 어린이집 교사가 아이들을 학대하는 것이 나와 시민들의 분노를 사게 한다. 물론 이 문제는 큰 문제이고 반드시 시정되어야 하는 시급한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나는 우리가 또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친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는 아이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학대당하면 아이가 어떤 식으로든 부모에게 알리고(혹은 부모가 알아채고) 교사를 잡아내고 교사는 처벌당할 수 있다(물론 이런 문제도 원천적으로 없어야겠지만). 그런데 부모가 학대하는 것은 양육시설에서 학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잡기 어렵다. 일단 아이의 양육은 부모의 책임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왈가왈부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터부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부모가 게임을 하느라 아이를 굶겨 죽였다는 등, 혹은 홧김에 아기를 던져서 죽였다는 등의 일 정도는 아니지만 아이에게 정신적 혹은 육체적으로 학대하는 일이 꽤나 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막느냐이다. 우선 어디까지가 학대인지를 확실하게 정해야한다. 누구는 뺨을 때리는 것을 학대라고 생각하고 누구는 아니라고 생각하면 국가가 개입하기 아주 어려워진다. 그 후 학대의 기준이 확실하다면, 언제,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미국의 경우에는 일정 연령 이하의 아이가 혼자 있을 경우에 부모는 처벌받는다. 혼자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학대라고 보기 때문인데 이를 인지한 누구나 신고할 수 있고, 이를 알아챈 경찰은 바로 출동하게 된다. 이러한 확실한 프로토콜이 자리 잡혀야 한다. 그리고 학대받는 부모에게서 아동을 구출할 경우 어떻게 보육할 것인지도 제대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학대를 받는 다고 아이를 부모에게서 떨어뜨려 놓은 후 방치해 놓으면 국가가 또 다른 학대를 자행하는 것이다.

<한 아이>를 보면서 가장 슬펐던 장면은 쉴라가 성폭행당하는 것이다. 그 장면에서 너무 놀라 책을 떨어뜨릴 뻔했다. 문제는 이러한 아동 성폭행이 소설의 가상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꾸준히 아동성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응당 그 피해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어떤 것은 민사로 해결되기도 하지만 어떤 일은 형사사건이 되어 재판을 받는다. 세상의 여러 일이 있는 만큼 죄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아동 성범죄는 정말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앞 길이 창창한 인간의 인생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너무 야비하기 때문이다. 자기보다 훨씬 힘이 없는 아이를 꼬셔서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에게는 참형에 처해야 한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참수하여 아동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혹자는 사형제가 범죄률을 낮추지 못한다고 한다. 나는 그 이유가 사형을 안 보이는 곳에서 시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동성범죄(혹은 유괴 같은))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는 저지르면 끝장이라는 것을 반드시 사회가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바로 선다.

책을 보면서 신기했던 점은 중간에 <어린 왕자>를 읽는 대목이 나온다. 소설에서 소설을 읽으니 이 책이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한 아이>1980년에 나왔는데 그 당시에도 <어린왕자><어린 왕자>를 읽었구나 하는 사회상도 조금 느낄 수 있었다. 1943년에 나온 <어린 왕자>가 이미 1970년대에 고전의 반열에 오른 느낌이었다.

<한 아이>는 나레이터인 교사가 쉴라와 헤어지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래서 오픈 엔드 형식을 취하는데, 쉴라가 어떻게 살아나갈지 궁금했다. 검색을 조금 해보니 헤어진 후 7년 후를 그린 <한아이 2>가 있었다. 읽어야 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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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성지 역사 박물관>

Exhibition 2019. 8. 11. 19:35

중림동에 있는 <서소문 성지 역사 박물관>에 다녀왔다. 별기대하고 가지 않았다가 큰 감동을 받고 오게 되었다. 서울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 박물관은 위에는 서소문 역사공원 그리고 아래에는 박물관으로 어울어진 아름다운 장소이다. 종교가 없는 나도 크나큰 감동을 받았는데, 다른 유락시설에서 받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

일단 당연한 소리이지만 건축물이 상당히 천주교 느낌이 물씬 풍긴다. 성당에 온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들어가게 된다. 우리나라 성당은 외국의 성당, 특히 이탈리아 성당과는 또다른 느낌을 준다. 적갈색 스타일의 성당인데 지하에 있어서 그런지 예전에 이곳에서 박해를 받았던 천주교인들이 자신의 신념을 숨어서 지켰던 느낌도 준다. 그리고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끔 하는 예술작품들이 많았다. 상당히 무게감있는 작품들이 많았는데 살아가면서 우리가 느끼는 고통 그리고 외로움들을 잘 표현한 것들이 잘 어울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즐겁고 신날 때는 종교를 잘 찾지 않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 찾고는 하는데 천주교가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따듯하게 포옹해 주기 위한 것을 생각하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도 인상적이었지만 텅 비어있는 공간미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특히 중간에 뻥뚫려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하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준 것 같다. 특별히 무언가를 빽빽이 채워넣지 않더라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런 면에서는 약간 동양적인 요소가 가미된 느낌도 든다. 그리고 중간에 천주교 음악이 나오는 묵상의 공간이 있는데, 들어가는 순간 소름이 돋을 정도 였다. 엄청난 홀리함이 온몸을 휘감았는데 하마터면 종교를 가질 뻔 했다. 그 자리에서 멍한채로 몇 분간 아무 생각없이 있었는데, 무언 가를 하면서 느끼는 감정보다 훨씬 짜릿했다. 그리고 박물관에는 천주교 관련 서적을 중심으로 한 작은 도서관이 있다.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우리나라 천주교가 어떻게 들어왔고 어떠한 과정을 거쳤는지 보여주는 곳이었다. 이곳 서소문 근처는 사형이 집행되고 잘린 머리가 효수가 되는 곳이라고 한다. 당시 이교로서 낙인찍힌 천주교도 탄압을 받았고 많은 천주교도들이 이곳에서 사형당했다고 한다.

가장 알려진 박해는 우선 신유박해이다. 1801년에 있었던 이 탄압은 천주교에 관대하였던 정조가 죽고난 후 일어난다. 지금이야 천주교를 당연히 종교로서 인정하고 있지만 불과 200년 전만 해도 사정은 완전히 달랐다. 성리학 교조주의의 사회에서는 유교적 질서와는 사뭇 다른 천주교를 이상하게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상하게 보는 것까지는 괜찮은 데 믿지 말라고 사형하고 유배를 보낸 것이다.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사상에 대해서 가차없이 철퇴를 내린 것인데 그런 것이 불과 200년밖에 되지 않았음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상황은 별로 바뀌지 않고 30여년 후인 1839년 기해년에 박해가 또 일어난다. 이때는 단순히 종교적인 박해를 넘어서 세도정치 하의 당쟁으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이야 빠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10년이 다르게 사회가 바뀌어가고 있다. 그런데 19세기에는 아직도 30년정도의 시간은 사회의 변화를 주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은 1846년 병오박해가 일어난다. 이 때 종교인이 아닌 사람에게도 널리 알려진 김대건 신부께서 순교하신다. 19세기 중반인데도 나라를 허약한데 종교에 대한 탄압이나 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1864년 병인년에 다시 박해가 일어난다. 불과 150여년전 이야기이다. 물론 지나간 이야기에 대해서 왈가왈부하기는 쉽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타인의 종교에 대해서 얼마나 관용적인가 자성해볼 필요가 있다. 다르기 때문에 괄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되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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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윈프리>

Cartoon 2019. 8. 11. 00:52

오프라 윈프리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명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꽤 알려진 편이지만 그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워낙 독보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비교가 쉽지는 않지만 그의 영향력을 굳이 우리나라로 변환하자면 적어도 유재석 이상일 것으로 추측된다. 그가 영향력인 있는 것은 그의 쇼도 중요하지만 그의 살아온 배경, 그리고 방송 외에서 활동도 한몫을 한다. <오프라 윈프리> 만화전기에서는 깔끔하게 그가 살아온 길을 잘 정리하였다.

전기를 읽으면서 가장 진지하게 생각해볼 지점은 사람이 사회에서 바르게 크는 것은 과연 천성탓일까 혹은 환경탓일까하는 것이다. 오프라는 매우 가난한 집에서 자라났다. 그것도 모자라 어린 시절, 친척에게 성폭행까지 당했다. 그리고 오프라가 자라던 시절은 엄연히 인종문제가 심각하던 시절이었다. 흑인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도무지 좋을 것 하나 없는 배경에서 성장한 오프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 성장해서 지금의 위치에 섰다.

이런 것을 보면 개인의 중요성을 새삼느끼게 해준다. 불우한 환경에서도 어떠한 사람은 올바른 생각을 하고 어떠한 사람은 삐둟어진 생각을 가지고 산다. 반대로 유복한 환경에서도 어떠한 사람은 바람직하지 못한 길을 걷기도 하고 어떠한 사람은 기대대로 잘 자라기도 한다. 물론 오프라만 보면 역시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인 입장에서는 그렇다고 교육의 중요성이나 사회환경의 중요성을 낮추어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오프라는 오히려 아웃라이어이고 대부분에 오프라와 유사한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지금도 열악한 상태에서 어려운 삶을 겪었을 가능성이 크다. 일반 대중이 오프라같은 사람을 보고, 너는 왜 오프라같이 성장하지 못하니라고 핀잔을 주는 것은 어리 석은 일이다. 물론 오프라가 어려운 환경처한 사람들에게 희망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표본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오프라의 실력과 노력도 당연히 그의 성공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지만 보이지 않는 운도 작용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실력과 노력을 갖추었음에도 오프라는커녕 평균만 못한 삶을 살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오프라를 예외적인 상황으로 보아야하지 일반화적인 케이스로 보면 안된다.

읽으면서 알게된 충격적인 사실은 <블랙팬더>운동이다. 나는 <블랙팬더>라고 하면 마블시리즈의 와칸다밖에 떠오르지 않았는데, 1960년대~70년대 블랙팬더 운동이 실제로 있었다. Black Panther Party는 흑인운동가 말콤엑스가 암살된 후 1966년 오클랜드에서 Bobby Seale이라는 사람과 Huey Newton에 의해서 창설되었다. 이 당의 회원들은 검은색 베레모와 검은색 가죽자켓을 입고 다녔다. 이 당은 흑인인권향상을 부르짓으며 궁극적으로 인종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그런데 마틴루터 킹과는 다르게 다소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한 모양이다.

오프라 윈프리가 대학을 다닐 때 이 운동도 있었던 모양인데, 오프라 윈프리는 이 운동과는 거리를 둔다. 그리고 오프라는 꼭 폭력적인 방법만이 흑인인권을 향상시킨다고 보지는 않은 모양이다. 어떠한 사회적인 개혁을 달성하는 데에는 크게 온건파와 급진파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둘 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온건파는 점진적으로 보수세력의 관점을 바꾸고 개혁에 대한 반감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급진파는 개혁의 선명성과 메시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리고 어디에 속해서 활동하느냐는 사람의 성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그 어느 자라에 있더라도 자신의 몫을 해나아가는 것이다. 이 두 세력이 잘 조화되었을 때 사회의 변화는 야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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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시대의 경제학>

Book 2019. 8. 10. 02:22

 

고령화는 우리나라의 큰 근심거리로 다가오는 문제이다. 고령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의료기술의 발전인데, 이것은 한축이고 다른 한축은 저출산이다. 고령화라고 하면 노인인구의 절대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의 문제인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생존할 수 있는 연령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이거니와 새로운 세대가 유입이 잘 안됨으로 노인의 인구비율이 점차 늘어나는 것이다. George Magnus<고령화 시대의 경제학(The age of aging)>은 우리나라 고령화문제를 이야기 한 것은 아니지만(물론 우리나라 이야기도 나온다)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령화가 어떻게 사회적 변화에 영향을 주고 그것에 대처하는 여러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책을 보면서 이미 아는 내용도 있었고 뻔한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야 할 점도 꽤 많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여성노동의 활용이다. 고령화, 특히 우리나라 사회에 있어서 고령화가 문제가 되는 것은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 경제성장은 더뎌지고 각종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정부에서는 여러 대책을 쓰고 있는데 효과적인 것은 많지 않다. 저자는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를 늘리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나는 이에 크게 동감을 한다. 현재 우리나라 여성들이,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경력단절에 시달리고 있다. 입사를 해서 커리어를 쌓다가 결혼을 한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고 하면 휴직을 하게 되면 그 때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아직도 몇몇의 기업에서는 암묵적으로 퇴사를 종용한다. 그리고 아이 때문에 늦거나 일찍 퇴근하려면 눈치를 준다. 그리고 여성은 이래서 안되다는니 회사에 충성심이 없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궁극적으로는 여성을 채용하는 것을 꺼린다. 회사의 사정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윤을 극대화해야하는 입장에서 근로자가 온힘을 다해 회사일을 하는 것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보니 여성들은 불리한 입장에 쳐하고 일을 선택하거나 가족을 선택해야하는 양자택일의 사정이 봉착하게 된다. 물론 소수의 슈퍼맘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꽤나 예외적이고 많은 여성들이 가정을 택하게 된다.

이 누구나 아는 사실을 푸는 것은 어려워 보이지만 또 쉽게 풀 수 있다.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아기를 맡기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지 애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도록 시설을 확충하고 인력을 채용하는 것이다. 지금도 어린이집에는 대기순서가 길고, 또한 가끔 터져나오는 어린이집 학대사건을 보면 맡기면서도 찜찜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일단 정부는 아기를 언제든지 맡길 수 있도록 해야하면 보육시설에 CCTV를 확충하며, 문제있는 보육교사를 처절하게 처벌해야한다. 그래서 부모들이 안심하고 언제든지(24시간 언제든지!!, 보육퀄리티는 국회어린이집이나 삼성어린이집정도로) 맡길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는 저출산은 물론이거니와 여성들의 경력단절을 줄일 수 있다. 그렇다면 급속한 고령화에도 생산가능인구도 급격하게 줄지 않을 것이다. 각종 저출산 극복 예산이 있는데 이러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만 벗어나도 고령화문제는 많이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고령화 시대의 경제학>에서는 여성문제뿐만 아니라 이민문제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꽤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서 일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업무를 저렴한 비용을 수행해서 좋은 점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들어와서 사회문화적으로 여러 가지 갈등을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외국인 노동자를 인위적으로 막을 필요는 없지만, 특히 기업이 원한다면, 그렇다고 과도한 혜택을 줄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다만, 정당하게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그들의 권리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환경 조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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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의 제임스>

Cartoon 2019. 8. 7. 22:35

쿠당탕 선생님이 집필하고 있는 <언덕 위의 제임스>는 아주 재기 발랄한 웹툰이다. 기본적으로 B급 감성을 가지고 있는 그림체에 번듯이는 아이디어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필력이 엄청나다. 그리고 주로 한 주제에 여러 편으로 나누어서 그리는데 종종 반전에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가끔은 읽다가 다음 주 내용이 너무 궁금해지는 명품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2016년에 첫선을 보인 <언덕 위의 제임스>는 이제 3년을 넘긴 장수 웹툰의 반열에 올랐고, 그동안 굵직굵직한 작품시리즈를 선보이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언덕 위의 제임스>에서 가장 강렬한 캐릭터는 황순옥이다. 물론 매 시리즈 별로 나오는 것은 제임스이지만 워낙 제임스가 다양하게 나오기 때문에 제임스가 그 자체가 강렬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캐릭터인데 워낙 괴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인상이 깊게 남았다. 황순옥을 웃기게 그려서 재미있기도 하지만 결말이 뜻하지 않은 것으로 끝나는데에서 그 이상의 놀라움을 받을 수 있다. “황순옥의 손아귀황순원의 소나기를 나름 패러디해서 만들었다는 것도 재미있다.

그리고 최근 눈길이 갔었던 작품은 <도끼 살인마>이다. 여름에 걸맞는 남량특집인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몰입해서 보았다. 역시 폐쇄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은 독자에게 갖가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김전일이나 영화 <아이덴티티>같은 느낌이 많이 나는 작품이었는데 쿠당탕 스타일로 잘 풀어 내었다.

이외에도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만화로 표현한 것도 있다. 그 중 하나가 <신체몰빵>이다. 대결을 통해서 상대방의 원하는 신체부위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정말 만화이기 때문에 구현가능한 소재인 것 같다. 또한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창의적이고, 그것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구성해 내는 것도 상당한 능력이다. <양치는 소년 제임스>도 마찬가지로 기상천외하다. 양치기인 제임스가 상당히 근력있는 양들과 직접 권투를 한다. 늘상 피해당하는 입장인 양들이 능동적으로 일어나 제임스와 대결을 붙는데 상당히 재미있다.

때로는 원초적인 것에서 재미를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똥참기 대회>같은 것은 똥이라는 그 누구나 피해갈 수 없지만 대놓고 말하고 다니지 않는 소재를 통해서 큰 웃음을 준다. 똥이라는 것에 즉각적으로 웃음을 짓는 것이 유아적이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웃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언덕위의 제임스>와 라임이 비슷한 <엉덩이의 제임스>도 아주 유아적이기는 한데 매우 재미있다. <워킹쉿>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길에서 똥을 누었던 제임스가 똥이 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똥이 되어서 겪는 다채로운 일들인데 그 상황자체가 너무 재미있는데다가 그 소재가 똥이라서 더 재미를 가미시킨다.

그리고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아서 조금 슬프기는 하지만 작품으로 보면서 통쾌한 <무적 찐따 제임스>같은 류도 있다. 빵셔트를 당하는 제임스가 가해자들에게 철저히 보복을 하는 작품인데 정의를 구현하는 모습에 상당히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뜬금없이 선생으로 나오는 엄석대에도 놀랐고 그를 구타하는 것도 꽤 재미있다. 물론 이 작품에서도 반전은 독자들을 또 놀라게 한다.

그리고 <언덕 위의 제임스>에서 피식포인트 중 하나는 작명센스이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막지을 지모르겠지만 나름 재미있다. 예를 들어, 밥먹으러 가는 사람 이름을 혼밥(33, 회사원)’ 이라든지 틴틴(30, 형제도굴단’ ‘파이브(32, 형제도굴단)’ 같은 이름은 말도 안되지만 재미있다. <언덕 위의 제임스> 질리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제임스라는 주인공 이름을 제외하고는 작품마다 다른 설정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쿠당탕님의 작품이 지금처럼 재기발랄한 창의적인 작품으로 꾸준히 다가와 주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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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416회

TV 2019. 8. 6. 22:16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2010년에 방영되기 시작해 9년동안 방송된 장수예능프로그램이다. 처음에는 그렇다치고 9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간혹 가공된 고민이라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방영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세팀의 고민이야기를 듣고 가장 고민되는 사람에게 상금을 주는 웃어야할지 말아야할지 모르는 결말을 내는 프로그램이다. 이렇게 많은 사연이 가능할까하는데 5천만명 국민, 누구나 고민이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아마도 소재는 끊임이 없을 것이다.

여러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신동엽, 이영자, 정찬우, 김태균 콤비이기 때문에 심각한 고민도 일단 같이 논의해볼 수 있는 수준으로 내려간다. 같은 고민이라도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중요한데 전문가들이 총동원되어서 심각한 분위기를 조성하면 오히려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웃음으로 문제를 버무려서 상대방의 생각을 듣고 다른 시각을 갖어보는 시각을 가져보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기본 취지인 것 같다.

416회 안녕하세요에서도 꽤나 고민스러운 사람들이 나왔다. 가장 흥미로웠던 사연은 식당일을 하는 아주머니의 이야기이다. 식당을 잘 운영하는 아주머니는 늘 바쁘시다. 문제는 그의 남편에게 있다. 남편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음악을 너무 사랑해서인지 식당일을 전혀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음악으로 금전적인 수익을 얻는 것도 아니다. 순수히 스스로 음악을 듣고,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식당일이 바쁘지 않을 때는 그렇다치고 꽤나 바쁠 때에도 도무지 도와주지 않는다고 한다. 가정은 식당을 운영하는 아주머니의 온전한 몫이다.

이 이야기는 이미 결론이 나와 있었다. 아저씨에 대한 맹공을 시작되었다. 아주머니가 심지어 부상을 당해 아프신데도 불구하고 돕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아저씨가 22살로 음악으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도 매우 희박한 상태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아주머니를 도와서 식당일을 하라고 아우성이었다.

물론 이것을 보면서 아저씨가 식당일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아저씨가 자신의 꿈을 저버리고 식당일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혹은 음악에 쏟는 에너지를 줄이고 식당일에 매진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아저씨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최대한 마음껏했으면 좋겠다. 혹자는 아저씨의 음악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므로 식당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러한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실의 무게가 상당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남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에 대해서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왈가왈부하거나 한심이 여기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연장하면 돈이 안되는 일은 하찮은 일이 되고 돈되는 일만이 가치있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겠지만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이 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돈으로 모든 일을 평가한다면 돈이 안되는 일을 하는 사람조차도 평가절하되는 일이 속출하게 되어 있다. 사람들은 각자가 좋아하는 일이 따로 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사회가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정해진 일의 자본적 가치에 의해서 자신의 좋아하는 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면 인간은 스스로의 가치를 추구하면 사는 것이 아니라 돈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돈은 중요하다. 그런데 돈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편리함을 더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돈을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니다라는 당연한 명제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주머니가 고민상담을 하는데 저 나이가 되도록 음악에 빠져사는 아저씨를 한심히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의 폭력성을 느낀다. 그리고 또한 그들에 대한 측은지심도 든다. 방청객으로 고민을 듣는 사람들은 얼마나 경제적으로 수익적이길래 아저씨를 한심하게 여길까하는 생각이다. 기껏 호구지책이나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일탠데 차라리 하고 싶어하는 아저씨를 부러워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안녕하세요>는 갑자기 사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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