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관 <홍대용과 1776년>

Book 2022. 8. 27. 23:06

 

누구나 살아가는 데 있어서 시대의 제약을 받게 마련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 예전을 평가하면서 현재의 교훈을 얻기도 한다. 18세기 중후반을 살아간 담헌 홍대용이 북경을 가는 이야기를 통해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준다. 물론 250년 전의 담헌 선생이 몰랐던 것처럼 250년 후인 2270년 즈음에는 지금 21세기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인간은 시공간에 구애를 받기 때문에, 이전 일을 토대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고민해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18세기 중반만 하더라도 국경을 마주한 청나라에 가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홍대용도 어렵사리 기회를 얻어 북경으로 가게된다. 지금이야(적어도 코로나 이전에는) 세계 방방곳곳을 갈 기회가 있었다. 이러한 이동의 자유는 사람들의 시각에 큰 변화를 준다. 가끔 역사책을 보면 왜 저렇게 살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현재의 시각으로 과거를 이해하려면 어려울 때가 있다. 이는 현재 시점에서 보통 사람들이 우주탐사를 할 생각이 없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부자들이 우주여행을 가려고 하는 모양인데 250년 전만 그만큼이나 해외에 가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 시각이 국내에만 그리고 고을에 국한되었 있을 것이다.

심지어 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오랜시간이 필요했다. 홍대용만해도 북경까지 가는데 한달이 걸렸다. 지금 우리나라 반대편에 있는 남아메리카에 가려면 환승하고 해서 하루 정도 걸리는데 한달이나 걸린다는 것은 보통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자동차가 발명된 것도 1886년이고 비행기가 발명된 것은 1903년이다. 이 전에는 동서를 막론하고 장거리 여행이 매우 어려웠다. 250년 전 사람인 홍대용이 아마도 비행기를 상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나는 스타트렉에 나오는 순간이동 같은 것을 상상은 하기는 하지만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23세기에 새로운 기술이 나와서 이동이 어디든 순식간에 이루어 질 수 있다면 어떤 세상일지 궁금하다.

또한 언어의 장벽도 큰 문제였다. 홍대용은 중국에 가서 중국 학자들과 종종 필담을 나눈다. 조선시대에 이미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드셨지만 식자층에서는 계속 한자를 썼다. 문제는 한자를 쓴다고 해도 그것은 언문이지 말할 때 발음은 다르기 때문에 통역이 필요했다. 지금도 이 언어의 장벽이 꽤 큰데 그 장벽이 점점 허물어져 감을 느낀다. 예를 들어 내가 중국에 가서 답답하면 파파고를 꺼내서 번역 버튼을 누르면 쉽게 무슨 뜻인줄 알게 된다. 이러한 추세는 점점 강화될 것이다. 홍대용이 마치 구글번역기를 상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250년 후에는 정말 그 어떤 외국어를 쓰더라도 듣는 사람이 자기가 아는 언어로 저절로 바뀌어 주는 기능의 몸에 장착될 수도 있다.

홍대용은 북경에 가면서 새로운 것을 많이 보고 배운다. 그런데 당시 조선의 지도층은 청나라를 인정을 못하고 있었다. 중국의 근본은 한족 국가인 명나라인데 이민족의 청나라는 한 수 아래의 저열한 국가라고 생각한 것 같다. 상상컨대 명나라는 현재 우리에게 미국정도 되는 나라라고 생각된다. 가령 미국이 멕시코에게 점령당해서 망한 다고 하면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멕시코를 인정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미국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을 것 같다. 지금이야 명나라가 돌아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신해혁명이후 오랜 전제군주정이 끝나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보다는 명나라가 부활할 수 있다고 기원했을 것 같다. 하지만 홍대용은 직접 청나라를 보고 세상이 변했음을 감지했다.

조선시대에 수많은 선비가 있었지만 특별히 홍대용이 기억되는 것은 그의 연행록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물론 다음 업적도 많지만). 이런 면에서 글을 쓰고 남기는 일은 멋진 일 같다. 그 당시의 세상을 묘사함은 물론이고 이미 그는 죽었지만 그의 생각은 후손까지 알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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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 <우당 이회영 평전>

Book 2022. 8. 14. 13:05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서 많은 분들이 힘을 쓰셨지만 우당 선생님은 그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아마도 그가 아나키스트이면서도 명문가의 자제였다는 점이 더욱 그를 더 기억하게 만든다. 독립운동가분들의 인생은 한 분 한 분 역사드라마로 담을 수 있다. 우당 선생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당 선생님을 설명할 때 항상 따라 붙는 단어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사회 상위층이 보통 사람들보다 더 사회적 의무를 더 하는 것을 뜻하는 단어인데 사실 우리나라에서 부족하다고 흔히 지적되는 뼈아픈 부분이다. 나라가 위기가 왔을 때, 있는 사람들은 더 자신이 가진 것을 챙기고, 없는 사람이 희생을 더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으니 바로 우당 선생님이다. 사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말처럼 시행되기 어려운 것은 가진 것이 많을수록 잃고싶지 않아 발버둥치는 것이 사람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잃을 것이 많은 풍족한 사람이었다. 1867년 이조판서 이유승의 아들로 태어난 선생님은 병탄이 된 1910년 그 해 44세의 나이로 일가의 노비를 해방시키고 나라를 다시 구하고자 만주로 떠난다. 지금도 40세가 넘어서 가진 것을 버리고 새로 시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만주에 가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등의 활동을 하신 것이다. 이러한 일 자체가 놀라움이다.

우당선생님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은 그가 어렵게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후회하지 않고 변절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일제에 분개하여 독립운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지쳐가고 변절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특히 선생님 정도되는 지체있는 집안이라면 일제에 조금만 협력하더라도 편하게 평생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원래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에 비해서 독립한 것을 더 후회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재산을 모두 독립을 위해 투여하고 자신은 극빈층이 되었는데도 그는 마음을 바꾸지 않고 꾸준히 정진했다. 나는 이 선생님의 강건한 의지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물론 우당 선생님의 업적이야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 그 분의 업적이 혼자의 힘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여러 동지들이 있었고 가족이 있었다. 특히 부인 이은숙 선생님의 조력을 빼놓을 수가 없다. 우당 선생님과 이은숙 여사는 1908년에 결혼을 했다. 이 때는 이미 나라가 망국의 길로 접어든 상태였고 우당 선생님은 신민회를 조직하는 등 독립운동을 시작하시던 시기였다. 만약에 15년 즈음 만났더라면 잘 사는 집안 자제랑 결혼하는 것이니 특별한 고민거리가 없겠거니 했겠지만 이은숙 여사가 결혼한 후부터는 줄곧 고생길이었다. 가산을 팔아서 독립운동에 써버렸기 때문에 늘 가난했다. 그리고 남편은 독립운동에 헌신하기 위해서 경제활동을 등한시할 수 밖에 없었다. 가계를 꾸리는 것은 이은숙 여사의 몫이었다. 이러한 상황에 불만을 품을 수도 있건만 여사님도 선생님의 뜻을 지지하고 꾸준히 나아간다. 이러한 분들의 헌신이 없었더라면 우당 선생님의 업적도 적어졌을 것은 분명하다.

우당 선생님의 비극이라면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시고 돌아가신 것이다. 선생님은 1932년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어 고문으로 뤼순감옥에서 돌아가신다. 그의 나이 66세였다. 사람은 꿈과 희망이 있을 때 현실이 엄혹해도 버티어 나갈 힘을 얻는다. 아마도 선생님은 독립운동이후 하루하루 어려운 생활을 하셔도 조국이 독립할 수 있다면 그 어려움도 충분히 견디어 낼 만하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독립운동가 분들 중에서 그래서 끝내 광복의 기쁨을 누리신 분들은 그나마 다행인데 선생님처럼 끝내 광복하는 것을 보지 못하신 분들은 천추희 한을 품고 유명을 달리하신 것이다. 이러한 안타까운 아픔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닐 까 싶다. 우리가 더 잘 살고 선생님의 뜻을 기리는 것이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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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colm Gladwell <Outliers>

Book 2022. 4. 24. 23:40

많은 사람들이 성공의 비법에 대해서 알고 싶어한다. 반대로 실패한 이유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말콤 글래드웰은 사람들이 잘 생각지 못했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원인을 흥미롭게 이야기한다. 어떤 부분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라 지적으로 자극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성공이라고 하면 일단 노력과 재능의 총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부분도 성공에 영향을 준다. 운이라고 하면 운이라고 할 수 있는 측면이 성공에 체계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저자는 아이스 하키 선수 중에서 잘 되는 선수를 분석하면서 상반기에 태어난 사람들이 하반기에 태어난 사람들보다 유리함을 보였다. 이유는 상당히 논리적이다. 운동선수의 경우에은 어렸을 적의 성적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어렸을 적은 성장이 완료된 성인과는 달리 달에 따라서도 체격의 차이가 크다. 그래서 같은 학년에서 경쟁했을 때 상반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하반기에 태어난 아이들보다 유리하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상반기의 아이들은 자신감을 가지고 아이스 하키를 임할 수 있고 더 나은 성적을 올리게 된다. 이러한 성적이 누적되면서 상반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아이스 하키 선수로 성공하게 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요인이지만 충분히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뜻하지 않은 이유로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비행기 추락 사고를 예를 드는데 우리나라의 항공기 이야기를 한다. 비행기 추락의 원인이 조종사의 실력 문제가 아니라 소통문화때문이라는 것이다. 말콤 글래드웰은 우리나라가 상관에 대해 이의가 있을 경우에 표현하기가 어렵다고 보았다. 사실 한국인으로서 나는 이 사건분석에 대해서 크게 공감했었다. 실제로 문제가 있더라도 상급자가 그것을 원하는 분위기가 아니라면 대충 넘어가기 마련인데 이것이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문제 지적은 둘째치고 한국사람이 아닌 저자가 잘 포착한 것이다. 어쩌면 한국인이 아니라서 더 잘 포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크게 성공한 사람들의 패턴에 대해서 흥미로운 진단을 한다. 락펠러(1839년생), 카네기(1835년생), 모건(1837년생) 등 미국의 대부호들이 1830년대에 몰려있다. 그리고 빌게이츠(1955년생), 스티브 잡스(1955년생), 에릭 슈미트(1955년생) 등은 1950년대에 몰려있다. 약간 인위적인 조합같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젊었을 시절인 1860~70년대 1970~80년대 산업의 세대가 넘어가는 격변기를 살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살았을 때 패기있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기회를 잡고 대성공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면에서 저자가 성공에 대한 관점을 잘 들어낸 문장이 있는데 나도 이에 상당히 동의한다.

We pretend that success is exclusively a matter of individual merit...Their success was not just of their own making. It was a product of the world in which they grew up.

개인의 성공은 개인의 공으로만 돌리기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있다. 특히 언제 어디서 태어나는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앞서 언급한 쟁쟁한 이름들이 그 당시가 아니라 다른 시절, 예를 들면 지금 태어났다면 다른 인생을 살았을 수도 있다. 더 중요하게도 이들이 미국에서 태어난 것이다. 만약에 이들이 미국이 아니라 시에라 리온에서 태어났다면 이렇게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 노력과 재능만큼이나 태어난 운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꼭 이렇게 성공하는 케이스가 아니라 보통사람의 경우에도 어느정도 운이 중요한데 성공에 대해서 너무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만 몰아가지 않았으면 하다.

이 외에도 아시아 사람들이 수학을 잘하는 이유가 문화의 특징에 있다는 주장도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말콤 글래드웰이 주장하는 모든 것이 정답은 아니다. 그리고 책에서 논의되지 않은 성공과 실패의 여러 변수들이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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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Orwell <1984>

Book 2022. 4. 6. 01:38

<1984>는 어지간히 공부를 한 사람이면 다 아는 고전이다. 그런데 사실 <1984>를 직접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중요한 개념만 알아도 살아가는 데 문제는 없지만 <1984>정도되는 명작을 직접 읽는다면 그 의미는 더 커질 것이다. 특히 <1984>가 던지는 의미가 1984년은 지났지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1984>가 자유에 대한 이야기인데 자유가 아주 독특하게 표현되어 있다. <1984>에 나오는 당의 슬로건은 다음과 같다.

전쟁은 평화다.

자유는 노예다.

무지는 힘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의 관념을 당에서는 주입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며 깨어있는 시민이라면 정말 해서는 안되는 덕목과도 같다.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들은 이와 거꾸로 된 슬로건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1984>를 읽으면서 가장 섬뜩하다고 생각한 것은 사상범(Thought-criminal)과 그 사상범을 찾아내는 사상경찰(The Thought Police)이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사상의 자유다. 괜히 미국수정헌법 1조에 표현의 자유가 나온 것이 아니다. 지금은 당연히 여기지만 예전에는 불순한 생각들은 매우 많다. 예를 들어, 여성참정권만 하더라도 100여년전만 하더라도 가당치도 않은 생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모든 새로운 생각이 옳은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생각을 아예하지 못하게 된다면 바람직한 사회는 요원할 것이다.

혹시 국가가 아니지만 우리도 상대방에게 사상경찰같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든다. 때로는 다수가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다수결 원칙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그런데 자유로운 사상의 시장에서부터 소수의견을 묵살하는 경우가 있다. 중국처럼 정부가 개입하지 않더라도 악플같은 것으로 압박을 가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정부에서 사상경찰을 운영하지 않더라도 다수의 국민이 사상경찰의 역할을 하는 것일 수 있다. 참 어려운 것은 그렇다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비판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경찰은 아니지만 비합리적인 생각을 지적할 만한 수준의 무언 가는 무엇일까.

<1984>를 읽으면서 가장 간담이 서늘했던 문장은 “The past was alterable.”였다. 저명한 역사학자인 토인비가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그 대화가 가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현재에 따라서 과거가 다른 말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역사라고 하는 것이 자국내 역사도 있지만 타국과 연계되어 있는 역사가 있다. 이역시 현재의 국력에 따라서 다르게 과거가 회상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지금 내가 배우는 역사가 100% 실제로 일었난 일인가 하면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1984>를 읽고 약간 조사를 하면서 가장 충격을 받았는 것은 작가인 조지오웰이 가명이라는 것이었다. 원래 이름이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이라고 한다. 그는 독특하게 영국의 식민지에서 경찰로 5년 동안 활동하였다고 한다. 이 활동에서 영국의 식민지통치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작가로 전향했고 필명인 조지오웰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부터 작가가 꿈이 아니었던 바에야 작가가 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런데 일을 하다가 영국의 식민지 통치에 염증을 느끼고 작가가 되었다는데 역시 작가라는 직업은 현실의 무거운 짐을 이겨낼 정도의 강력한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그러한 에너지가 <동물농장>이나 <1984>같은 대작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 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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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규 <중국의 정책결정과 중앙-지방관계>

Book 2021. 12. 29. 01:19

중국은 우리나라와 아주 가까운 나라이지만 국정운영은 우리와 판이하다. 그래서 가끔은 우리는 그들을 도무지 이해 못하는 사태가 종종 일어나게 된다. 다른 점은 여러 군데에서 들어나는 데 중국의 정책결정이라든지 정부간 관계에 있어서도 우리와 많이 차이가 난다. 이로한 차이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국의 행동을 예측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김흥규 교수의 <중국의 정책결정과 중앙-지방관계>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이해의 폭을 넓힌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개념은 민주집중제이다. 사실 종종 중국이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실소를 금할 때가 있다. 하지만 중국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진지하게 말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에는 다양한 종류가 존재하고 그 폭도 매우 넓어서 국민이 있다면 어느 사회나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집중제는 중국이 생각하는 민주에 대한 생각의 단초를 얻을 수 있다. 저자는 민주집중제를 설명하면서 우선 서구에서 이야기하는 민주와는 다르게(대중을 지칭함) 중국에서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인 엘리트와 조직 내부의 민주를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공산당 내부에서 정책 결정을 할 때 민주의 부분을 중점을 두느냐 아니면 집중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서 결정의 양식이 달라진다고 한다. 물론 현대의 중국은 공산당 총서기의 힘이 막강하기 때문에 우리의 눈에는 항상 집중하는 모양새이지만 나름 리더에 따라서 합의와 협상을 강조하는 민주가 강세를 띄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중국은 저자가 언급한대로 서구 민주주의 국가와는 달리 밑으로부터의 정책 투입 요소가 미약하다. 이러한 중국모델이 서구모델보다 더 우수하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공산당이 옳은 방향의 결정을 내린 경우에는 일사분란하게 정책을 수행할 수 있어 더 효율적으로 일을 진행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모형의 우수성의 논란은 결과론이 될 것 같다.

중국의 정부간 관계에 대한 고정관념은 중앙집권제이다. 이는 맞는 말이면서도 틀린 말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중국의 재정분권화 수준은 우리나라보다 높을 정도로 자율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큰 나라들은 대개 분권화된 정치체계를 갖는다. 미국, 캐나다, 브라질 등이 그러하다. 이유는 일단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일까지 세세하게 지시하기에는 너무 나라가 크기 때문이다(물론 그렇다고 작은 나라라고 모두 중앙집권화 체제를 지니지는 않는다.) 중국도 마찬가지여서 정치분권화는 낮다고 할 수 있지만 행정분권화와 재정분권화는 꽤 높은 편이다. 그리고 이 분권화의 수준이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시간에 따라서 바뀌기도 한다. 이 점에 대해서 세수계약제와 분세제를 이야기하면 변화된 중국의 재정분권화를 잘 설명했다. 저자에 따르면 세수계약제는 중앙과 지방정부 사이의 일대일 협상을 기반을 두기 때문에 비교적 유연한데 분세제는 전국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세원과 분배의 원칙을 미리 정해 놓는다고 한다. 그리고 세수계약제의 경우에는 지방정부에 인센티브가 주어져서 지방정부가 자체적으로 경제 발전 및 재원 확보 노력을 독려하는데 비해 분세제는 좀 더 장기적인 재정 계획과 재원의 조달을 가능하게 한다고 한다. 각 제도에 따라서 지방정부의 재량의 정도가 달라진다. 분권화 논의에서 많이 나오듯이 정답은 없고, 다만 정부의 목표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세수계약제나 분세제를 고를 것이다. 우리나라 지방분권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입장이니 중국의 경우도 참고 삼을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2007년에 출간되었다. 기본적으로 이미 발행된 글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글의 내용이 15년이상되었다. 15년이라는 시간이 짧다면 짧지만 중국에서 최근 15년에 많은 일이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새로운 논의를 위해서는 이와 같은 기존의 내용을 기반으로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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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주 <일대일로의 모든 것>

Book 2021. 12. 28. 19:02

일대일로는 시진핑의 중국몽의 핵심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일대일로에 대해서 이야기한 사람은 많지만 일대일로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책은 거의 없다. 사실 우리는 중국을 옆나라로 두고 있지만 중국에 대해서 분노만 할 뿐 잘 알지 못한다. 이 책은 비교적 차분하게 중국이 하고 있는 일대일로에 대해서 쓰고 우리가 어떻게 대응을 해야할 지에 대해서도 쓴 좋은 책이다.

우선 일대일로라고 하면 중국의 세계진출 플랜을 이야기하는 물론 맞는 말이지만 모든 부분을 아우루는 것은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일대일로는 세가지 일체양익(한 개의 몸과 두 개의 날개) 전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10~11). 우선 중국 국내의 일체양익이 있다. 국내의 일체양익이 있는데 이는 양쯔강 경제 벨트를 하나의 몸으로 삼고 쓰촨성에서 상하이에 이르는 서부-중부-동부를 연계하고 동부 연해와 서부대개발 지역을 두 날개로 활용하는 개발 전략을 취한다고 되어 있다. 두 번 째 부분은 유라시아-아프리카를 걸치는 일체양익이라고 한다. 동아시아 지역과 유라시아-아프리카 전반을 관통하는 고대 실크로드 라인을 한 몸으로 보고 인도양, 환태평양 지역을 두 날개로 삼는 것이다. 세 번째는 글로벌 수준의 일체양익이 있다고 한다. 동아시아를 몸으로 삼고, 왼쪽은 유라시아-인도양-아프리카를 날개로 삼고 오른쪽은 환태평양-아메리카-대서양을 날개로 삼는 것이다. 이를 보면 일대일로가 단순한 전략이 아니라 중국의 거대한 야심이라고 볼 수 있다.

어느 나라나 야심을 가지고 살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야심이 문제가 되는 것은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이익과 가치관과 부딪치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워싱턴 컨센서스와 베이징 컨센서스와의 충돌이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1989년 라틴 아메리카가 처한 문제를 워싱턴에 기반을 둔 국제기구를 통해 해결할 목적으로 존 윌리엄스가 제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워싱턴 컨센서스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무역자유화, 인권, 민주화 등을 상징하는 거버넌스의 개념이 되었다고 한다. 반대로 베이징 컨센서스는 2004년 조슈아 라모가 구동존이, 내정불간섭, 균형발전, 점진적 발전을 주요 내용으로 논의한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 두 컨센서스의 장단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선 워싱턴 컨센서스의 경우에는 민주화, 시장경제, 인권 등의 가치를 내세워 현지 국민 정치 참여 저변을 확대하지만 상대방의 내정에 압박을 가하고 미국의 자본, 상품, 문화를 주입한다고 비판이 있다고 한다. 반면에 베이징 컨센서스는 상대방의 문화를 인정하는 점에서는 강점이 있지만 상대방이 독재정권일 경우에는 독재정부를 이용하여 부패를 조장하고 에너지 자원과 인프라 개발권을 획득한다는 문제가 있다고 한다. 나는 이 시간이 꽤 균형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중국의 투자를 받는 많은 국가들이 베이징 컨센서스를 선호하고 있다. 왜냐하면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는 정치도 후진적인 경우도 많은 데 일단 차이나 머니를 쉽게 받고 정치인 개인적으로 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궁극적인 문제는 현실적으로 어떻게 워싱턴 컨센서스가 잘 통용될 수 있게 하느냐이다. 왜냐하면 이상과는 달리 많은 국가는 베이징 컨센서스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많은 개발도상국 국가에서 베이징 컨센서스를 선호하지만 베이징 컨센서스가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기에는 갈 길이 아주 멀다. 결정적으로 일대일로로 인하여 중국이 하드파워를 갖게 될 지언정 소프트 파워는 크게 결여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권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세계의 많은 나라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할 것이다. 미국이 아무리 문제가 많다고 하더라도 현재 지구의 리더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하드파워 뿐만 아니라 앞서나가는 소프트 파워때문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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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엔데 <모모>

Book 2021. 12. 25. 20:57

현대인은 늘 시간이 부족하다. 각종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밤까지 시간을 쓸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늘 시간에 쫒긴다. 그리고 나이가 늘면 들수록 세월은 빨리가고,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과도 충분히 시간을 보내기 어렵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까.”라는 가슴에 꽂히는 말에서 보듯 모모는 우리에게 시간에 대해 물어보는 어른 동화다.

모모에서 나오는 이발사 푸지는 평범한 우리의 모습을 많이 닮아있다. “제대로 된 인생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막연히, 화려한 그림들이 가득 실린 잡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어떤 것, 무언가 중요한 것, 무언가 화려한 것을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는 우울해하며 생각했다.” 이렇게 현실에 불만족을 느끼니 시간저축은행 직원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죽고나면 당신이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아예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렇게 하고 이발사에게 필요한 건 바로 시간이라고 말하며 이발사가 어머니를 만나는 시간이라든지, 앵무새와 같이 하며 노래부르는 시간을 다 생략하라고 조언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발사는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안정을 잃어갔다. 시간을 알뜰하게 쪼개 썼지만 손톱만큼의 자투리 시간도 남지 않았다. 삶이 점점 빈곤해지고 획일화되고 차가워졌다. 그리고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가진 것이 점점 줄어들었다. 이 역설적인 상황은 현대인들도 쉽게 느낄 것이다. 자신의 욕구를 위해서 시간을 아끼고 또 아꼈지만 시간은 부족하고 삶은 팍팍하다. 어쩌면 해결책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의 주인공인 모모는 아주 다른 결의 삶을 살고 있다. 모모의 재주라고 하면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주는 재주라고 한다. 그런데 그 재주는 놀라운 것이라서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줄 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 재주가 발현가능한 이유는 모모가 얼마든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산인 시간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 그 누구나 이렇게 말할 것이다. 모모가 저렇게 남의 이야기나 듣고 살 수 있는 것은 그가 아이이기 때문이다. 이발소 아저씨가 힘들게 사는 것은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데 8시간 이상 쓰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모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 안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에 부닺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이발소 아저씨처럼 사는 것이다.

나도 일반인의 입장에서 이발소 아저씨의 입장에 더 공감이 간다. 사실 어른이 모모처럼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나도 살다보면 나의 인생에 불만족을 느끼고 인생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다보면 시간이 필요하고 분명히 현재 누리고 있는 것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때로는 무리를 해서 몸을 상하게 할 때가 있다. 이 때 모모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있기 어려운 존재이지만 꼭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않더라도 나만 생각하지 않고 남도 생각하려면 시간을 가지고 귀를 열어야 한다. , 이발사 아저씨처럼 살다가도 이따금 모모를 생각하고 브레이크를 잡아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늘 시간에 배고픈 사람처럼 허덕일 수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문구 중 하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물이 가득 쌓여 있는 동굴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분명히 시간을 아껴서 자기 일에 쏟는 사람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시간을 일에만 쏟다보면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게 될 수 있다. 그리고 성공 후에 공허함을 맛볼 수 있다. 시간을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물론 생활을 유지하고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나누는 삶이다. 이 사이에 균형을 잘 잡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인생의 시간의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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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중국몽의 추락>

Book 2021. 12. 25. 00:50

중국은 우리 시대의 문제이다. 중국이 문화대혁명, 대약진 운동 등으로 내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 중국은 정말 세계에 웃음거리였다. 하지만 그들이 개혁개방을 한 후 지난 40년 동안 꾸준히 비약적인 성장을 하면서 이제 세계의 이목을 잡았다. 하지만 그 이목은 긍정적이기 보다는 근심스러운 눈초리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미래에 대한 예측이 쏟아져 나왔는데 한쪽이 중국패권론이고 한쪽이 중국패망론이다. 양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데 <중국몽의 추락>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패망론에 서있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근거를 통해서 중국의 하락을 점치고 있다. 많은 논거 중에 가장 핵심에는 미국이 있다. 짧게 말해서 미국이 중국의 성장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한때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 미국이 중국을 도와 자본주의 체계에 포섭시켰는데 의도와는 달리 독재국가로 가고 자유민주주의의 국제질서를 위협하고 궁극적으로 미국의 국익에 침해를 가했다. 이를 미국은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것이며, 소련에게 체제승리를 했고, 예전에 미국을 한 때 위협하였던 일본에게 그랬던 것처럼 여러 정책을 통해서 대응을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당연히 맞는 말이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문제는 중국이 예전의 소련이나 일본과 같냐는 데 있다. 또한 미국도 예전같지 않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아직은 중국에 우위에 있고 정상의 자리를 내주지 않을 것 같다. 일단 향후 30년 사이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후는 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나는 저자와 미국이 우위에 설 것이라는 주장에는 논거부터 결론까지 동의를 한다. 하지만 나는 저자가 예측하는 내적인 붕괴에는 일리는 있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저자는 중국이 겪는 불평등, 정부부채, 그리고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중국이 붕괴할 것이라는 예측을 한다. 이 문제는 심각한 문제인데 중국이 충분히 감당할 것이라고 본다. 불평등 문제는 공산주의가 평등을 추구한 다는 것에도 역설적으로 예전부터 있었다. 중국정부는 놀랍게도 이 불평등을 통제하는 노하우가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의 시각으로 이 불평등을 파악하면 이해가 되지않겠지만 중국사람들은 그려려니하고 있다. 그리고 부채가 심각한 것도 사실인데 중국의 내수시장과 해외무역흑자를 생각하면 쉽게 망할 것 같지 않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도 우리 나라사람의 시각으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겠지만 공산당의 지도하에 안정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열망도 그만큼 크다. 그래서 이러한 이유로 중국이 내적인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망할 것 같지 않다. 그들은 심지어 대약진운동도 문화대혁명에도 망하지 않았다.

이 책은 거의 중국입장에서는 지옥의 묵시록같은 일 것이다. 여러 근거가 타당하게 제시되어 있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중국에 대한 가정이다. 이 책은 시종일관 중국은 가만히 당할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다. 거의 중국은 바보다라고 생각할 정도의 가정을 깔고 중국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과의 갈등이 커지면 중국입장에서는 다른 대책을 구상한다. 서구권과는 갈등을 겪고 있지만 아프리카 국가와의 연대는 아직 탄탄하다. 그리고 미국과 갈등을 겪고 있는 러시아와의 관계도 좋다. 미국의 대응이나, 그 외 여러 사회적 환경변화에 중국은 기민하게 반응하고 준비하고 있다.

책 뒤에 추천사로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보고 싶은 중국이 아니라 있는 그래도의 중국을 이해하고, 중국에 대한 편향된 담론의 균형을 잡는데 소중한 길잡이라도 써놓았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은 일리는 있지만 중국이 망하기 시나리오만 본 편향된 희망서라고 부르고 싶다. 사실 중국몽은 소강사회, 대동사회를 일구겠다는 시진핑의 의지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이미 소강사회는 달성하였다. 오히려 일방적인 저주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못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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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Dawkins <The God Delusion>

Book 2021. 12. 12. 00:10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Richard Dawkins는 영국의 진화생물학자이다. 기본적으로 생물학자이지만 생물학에만 관심이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 다방면, 특히 인간과 관련된 부분이라면 논리적인 통찰력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 중 하나가 우리나라에서는 만들어진 신이라고 불리는 <The god delusion>이다. 무신론자의 바이블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신의 존재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모든 내용을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곰곰이 생각해볼 점이 여럿 있었다.
우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주제다. 사실 신에 대해서 전방위적으로 부정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이 책은 한 종교를 공박하는 것이 아니라 신 자체에 대한 존재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기 때문에 신을 모시는 모든 집단에 대해 반응을 자아낼 수 있다. 그리고 이 반응은 대개 공격적으로 나타난다. 사실 신이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신이 없다고 널리 이야기하고 다니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괜찮지만 종교색이 강한 나라에서는 어려울 수 있다. 이 책을 출간한 후에 리차드 도킨스는 신을 믿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았는데 아마도 리차드 도킨스가 이를 모르고 이 책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비판이 온건한 경우에는 친절하게 답해주는 것이 꽤나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고, 비판이 공격적인 경우에는 생명의 안위를 걱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다행히 그는 80세가 넘게 잘 살아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종교를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광역 도발을 받을 것을 알면서 이러한 책을 쓴 그에게 존경을 보낸다. 아마도 그는 참을 수 없는 표현의 욕구를 느꼈을 것이다. 이를 통해서 그는 더욱 유명해졌지만 꽤나 피곤한 유명함이기 때문이다. 여러 욕을 먹을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차분히 개진하는 그 모습이 정말 훌륭했다.

나는 사실 신이라는 존재를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신이라는 존재가 있기에는 너무 세상은 착한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나쁜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꽤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나는 신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이 책을 보면서 신에 대하는 태도에는 여러 스펙트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마치 채식주의에도 여러 단계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첫 번째가 강한 신앙인(strong theist)이다. 이는 100퍼센트 신이 있다는 것고 믿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실상 신앙인(de facto theist)이다. 이는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신이 있다고 굳게 믿는 것이다. 세 번째는 엄밀히 말하면 불가지론자인데 약간 신앙에 가까운 사람(technically agnostic but leaning towards them)이다. 아주 불확실하지만 신이 있다고 대략 생각하는 사람이다. 네 번째는 정확한 불가지론자이다. 신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엄밀히 말하면 불가지론자인데 약간 무신론에 가까운 사람이다. 신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의심스럽다는 입장이다. 여섯 번째는 사실상 무신론자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신이 없다고 보고 신이 없다는 가정위에 삶을 살아온 것이다. 일곱 번째는 강한 무신론자이다. 신이 없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나는 아마도 여섯 번째에 가까운 부류의 사람이 아닐까 한다.

책에서는 신에 대한 존재에 대한 여러 주장에 대한 검증은 물론이거니와 종교의 효용에 대한 여러 주장도 논리적으로 접근을 한다. 가장 내 와닿았던 것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더 행실이 바르거나 사회를 위해 공헌을 하느냐에 대한 문제였다. 나도 생각하기를 종교를 가졌다고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적으로 더 나은 가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종교를 가진 사람 중에 뛰어나게 사회를 위해 공헌하는 착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나는 소박하게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 큰 공헌은 하지 않아도 되니 해나 끼치지 않았으면 하다. 그러면 아마도 신을 믿는 사람이 더 많아 질 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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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복 <먼나라 이웃나라: 오스만제국과 터키>

Cartoon 2021. 10. 24. 02:58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는 우리나라 만화의 고전이 되어가고 있다. 학습만화의 장을 활짝 연 이 시리즈는 30년 넘게 다양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원복 교수의 만화는 하나의 스타일이 되었는데 내용에 집중할 수 있게 최적화되어 있다. 먼나라 이웃나라의 독자라면 내용은 다르지만 형식이 같기 때문에 오스만제국이라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조금은 친숙하지 않은 내용도 어렵지 않게 다가 올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었지만 내용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내가 오스만 제국이나 터키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오스만 제국이나 터키에 대해서 잘 모를 까 생각을 해보았는데 제대로 이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사를 빼고서는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중학교, 고등학교 때 배우는 세계사가 전부일 것이다. 그런데 오스만 제국에 대해서는 별로 가르치지 않는 것 같다. 저자는 이에 대한 이유 중 하나가 서양중심의 역사시각이라고 보았다. 나도 크게 동의 하는데 그동안 내가 배운 세계사는 주로 중국이거나 유럽의 역사인 것 같다. 물론 중국이나 유럽의 역사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 외 나라의 역사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오스만 제국 정도되는 중량감이 있는 존재는 좀 더 부각되어서 교육되어야 된다고 본다. 나는 터키의 선조가 괵튀르크(튀르크의 나라-그리고 한자로는 돌궐)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단순 오랑케라고 생각했던 돌궐족이 터키의 시조라는 사실에 내가 그동안 참 무지했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역사를 배우면서 느끼는 것은 어쩌면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가 위대하면서도 잠시 지구별에서 지내는 여행자라는 생각이다. 지금 터키의 시작점을 552년으로 보고 있다. 지구의 역사가 45억년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터키의 역사는 1500년으로 굉장히 짧다. 그런데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또한 사람이 길어봐야 100년 정도 살기 마련인데, 어느 역사가 되었든 잠시 살아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런 것을 보면 지구별에 잠시 머물다가 가는 한 인간으로 좀더 너그러워지면서 살아야한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역사를 배우다보면 인생이라는 것이 꼭 마음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오스만 제국의 최전성기는 쉴레이만 1세 술탄(Suleiman the magnificent)이라고 한다. 그가 재임하던 마지막해인 1566년에는 오스만 제국은 지금의 터키는 물론이거니와, 북아프리카, 이집트, 헝가리, 그리스 전역 등 광활한 영토 다스리게 된다. 그는 쉴레이만 법접을 만들어 다민족, 다문화, 다언어의 제국을 체계적으로 통치하는 기틀을 확립한다. 이러한 기반위에 경제도 부흥하고 문화도 창달하게 된다. 그가 이렇게 키운 제국도 그가 죽자 점차 쇠약해진다. 그가 의도한 바는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자손이 그의 마음처럼 영민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 그가 계획할 수 있으랴. 이런 것을 보면 자녀교육의 걱정인 부모들이 어떻게 하든 간에 의도한 바가 잘 이루지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정말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허약해지지만 그래도 오스만 제국는 꽤 오래 지속된다. 하지만 세계1차대전때 치명상을 입게 되고 1923년 멸망하게 된다. 이로서 600년 넘는 제국은 막을 내리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터키공화국이 탄생하게 된다. 터키공화국의 초대대통령은 무스타파 케말인데 케말주의(Kemalism)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확실한 노선이 있는 사람이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600년 넘게 지냈던 오스만의 관습과 법을 바꾸는 것이었다. 특히 세속주의를 택한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탠데 그는 일단 강행한다. 이러한 강행이 가능한 것은 그가 독재적인 힘을 가졌기 때문인데 공화국에서 이러한 힘을 가진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세웠던 기조는 현재 에르도안 같은 이슬람주의가 득세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 터키가 어떻게 변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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