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 <먼나라 이웃나라: 오스만제국과 터키>

Cartoon 2021. 10. 24. 02:58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는 우리나라 만화의 고전이 되어가고 있다. 학습만화의 장을 활짝 연 이 시리즈는 30년 넘게 다양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원복 교수의 만화는 하나의 스타일이 되었는데 내용에 집중할 수 있게 최적화되어 있다. 먼나라 이웃나라의 독자라면 내용은 다르지만 형식이 같기 때문에 오스만제국이라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조금은 친숙하지 않은 내용도 어렵지 않게 다가 올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었지만 내용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내가 오스만 제국이나 터키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오스만 제국이나 터키에 대해서 잘 모를 까 생각을 해보았는데 제대로 이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사를 빼고서는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중학교, 고등학교 때 배우는 세계사가 전부일 것이다. 그런데 오스만 제국에 대해서는 별로 가르치지 않는 것 같다. 저자는 이에 대한 이유 중 하나가 서양중심의 역사시각이라고 보았다. 나도 크게 동의 하는데 그동안 내가 배운 세계사는 주로 중국이거나 유럽의 역사인 것 같다. 물론 중국이나 유럽의 역사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 외 나라의 역사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오스만 제국 정도되는 중량감이 있는 존재는 좀 더 부각되어서 교육되어야 된다고 본다. 나는 터키의 선조가 괵튀르크(튀르크의 나라-그리고 한자로는 돌궐)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단순 오랑케라고 생각했던 돌궐족이 터키의 시조라는 사실에 내가 그동안 참 무지했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역사를 배우면서 느끼는 것은 어쩌면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가 위대하면서도 잠시 지구별에서 지내는 여행자라는 생각이다. 지금 터키의 시작점을 552년으로 보고 있다. 지구의 역사가 45억년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터키의 역사는 1500년으로 굉장히 짧다. 그런데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또한 사람이 길어봐야 100년 정도 살기 마련인데, 어느 역사가 되었든 잠시 살아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런 것을 보면 지구별에 잠시 머물다가 가는 한 인간으로 좀더 너그러워지면서 살아야한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역사를 배우다보면 인생이라는 것이 꼭 마음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오스만 제국의 최전성기는 쉴레이만 1세 술탄(Suleiman the magnificent)이라고 한다. 그가 재임하던 마지막해인 1566년에는 오스만 제국은 지금의 터키는 물론이거니와, 북아프리카, 이집트, 헝가리, 그리스 전역 등 광활한 영토 다스리게 된다. 그는 쉴레이만 법접을 만들어 다민족, 다문화, 다언어의 제국을 체계적으로 통치하는 기틀을 확립한다. 이러한 기반위에 경제도 부흥하고 문화도 창달하게 된다. 그가 이렇게 키운 제국도 그가 죽자 점차 쇠약해진다. 그가 의도한 바는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자손이 그의 마음처럼 영민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 그가 계획할 수 있으랴. 이런 것을 보면 자녀교육의 걱정인 부모들이 어떻게 하든 간에 의도한 바가 잘 이루지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정말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허약해지지만 그래도 오스만 제국는 꽤 오래 지속된다. 하지만 세계1차대전때 치명상을 입게 되고 1923년 멸망하게 된다. 이로서 600년 넘는 제국은 막을 내리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터키공화국이 탄생하게 된다. 터키공화국의 초대대통령은 무스타파 케말인데 케말주의(Kemalism)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확실한 노선이 있는 사람이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600년 넘게 지냈던 오스만의 관습과 법을 바꾸는 것이었다. 특히 세속주의를 택한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탠데 그는 일단 강행한다. 이러한 강행이 가능한 것은 그가 독재적인 힘을 가졌기 때문인데 공화국에서 이러한 힘을 가진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세웠던 기조는 현재 에르도안 같은 이슬람주의가 득세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 터키가 어떻게 변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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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삭아삭 토지보상>

Cartoon 2019. 11. 9. 00:41

<아삭아삭 토지보상>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번즈음 관심이 있을 만한 부동산에 관련된 이야기를 백진수 평가사, 은교, 그리고 하남미사지구의 율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그렸다. 기본적으로 헌법 23조와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을 예를 잘 들어서 풀어서 그려놓았다. 확실히 법조문을 통해서 보면 딱딱해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만화를 통해서 보면 이해가 빨리되고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입문서로 읽어야지 깊은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책이나 직접 법조문을 읽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지방에 가다보면 가끔 개발에 반대하는 입장을 써붙인 현수막을 볼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현수막을 붙였겠지만 그 중 하나는 정부가 여러 공사를 해서 토지를 매입해야 하는데 토지보상가에 이견이 있기 때문이다. 행정부는 법에 근거해서 일을 한다. 이 토지매입과 관련하여 핵심적으로 관련이 있는 조항은 우선 헌법이다. 헌법 23조 1항에 따르면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2항은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3항이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 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 국민의 사유재산은 국가가 마음대로 건들일 수 없다. 필요한 경우에는 협의하고 그에 알맞은 대가를 반드시 국민에게 제공해야 한다. 문제는 정당한 대가가 얼마냐의 문제이다. 대개 국가는 그 대가를 적게 주려고 하고 국민은 많이 받으려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헌법에서는 미주알고주알 어떻게 정부가 보상해야 한다는 것을 적을 수 없다. 그래서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국가가 국민의 재산 특히, 토지를 취득할 때 어떻게 보상해야하는를 규정한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은 총 99조로 이루어진 법으로 공익사업에 필요한 토지 등을 협의 또는 수용에 의하여 취득하거나 사용함에 따른 손실의 보상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공익사업의 효율적인 수행을 통하여 공공복리의 증진과 재산권의 적정한 보호를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법이 가장 주목받는 이유는 토지에 관한 것이지만 그 외의 사유물도 포함하고 있다. 토지와 함께 공익사업을 위하여 필요한 나무, 건물, 그 밖에 토지에 정착된 물건 및 이에 관한 권리도 다룬다. 가끔 개발이 예정될 것이라는 곳에 뜬금없이 건물이 들어서는 이유는 이 조항 때문이다. 갑자기 싸게 건물을 대충짓고 많은 보상금을 받으려는 속셈인 것이다. 이외에도 광업권, 어업권, 양식업권 또는 물의 사용에 관한 권리도 포함되고 토지에 속한 흙, 돌, 모래 또는 자갈에 관한 권리까지 포함되는 포괄적인 내용이다. 그렇다면 애당초 국가는 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필요로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정부에서 하는 일은 아주 많다. 예를 들어, 국방부터 시작해서 교통(도로, 철도, 항만, 공항, 주차장, 화물터미널, 댐, 하수도), 공원, 화장장, 도축장, 시장, 운동장, 학교, 박물관 등 공공에 관련된 거의 모든 일에 땅이 필요하다. 특히 첨예의 관심사인 토지와 관련된 보상과 관련하여 국토교통부에 중앙토지수용위원회를 설치하여 운용하게 된다. 이 운용위원회도 사람이 하는지라 아무리 위원의 제척, 기피, 회피의 과정이 있지만 기계가 하는 것처럼 늘 객관적으로 일을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아무리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더라도 보상받는 입장에서는 웬만하면 만족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더욱이 감정평가사의 객관성도 중요하게 고려된다. 이들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지면 주민들 입장에서는 정부가 하는 그 어떠한 결정도 수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토지의 위치ㆍ형상ㆍ환경ㆍ이용상황 등을 고려하여 평가한 적정가격으로 보상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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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읽는 부자들의 사회학>

Cartoon 2019. 11. 9. 00:30

<부자들의 사회학>라는 만화책은 여러 내용을 다루었지만 어떻게 부자들이 부를 세습하는지를 센스있게 보여준다. 특히 경제적 부를 어떻게 세습하는지 보다는 어딘가에 태어나고 양육됨으로 세습되는 것들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보여준다. 이 책을 다보고 나면 진정으로 평등한 사회가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우선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문화적 자본이다. 일단 유전적으로 물려받는 것이 매우 크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차치하고라도 어떻게 자라느냐는 인간의 인격이나 지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전 동구유럽의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나라에서 아이는 부모가 키운다. 물론 학교라는 강력한 사회기관이 있지만 아이가 어렸을 때 부모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부모가 책을 읽는 습관이 있는지, 문화공연을 다니는지, 어떠한 이야기를 밥먹으면서 하는지는 시나브로 아이의 습관이나 생각하는 것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부모가 천차만별인 만큼 아이는 아주 다른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영향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다보면 저절로 느껴지게 되는데 대부분 교양이라는 단어로 함축되는 것 같다. 어떠한 사람은 교양이 있고 어떤 사람은 교양이 없어보이는 것은 오랜 시간동안 축적되어온 문화적 자본의 차이에서 비롯될 것이다.

또한 사회적 자본의 차이도 크다. 사회적 자본을 이루는 여러 요소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네트워크이다. 우리말로 굳이 바꾸면 연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 사회적 자본도 충분히 세습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부모의 도움으로 인하여 유력자를 만나고 그로인하여 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사회적 자본에 의한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를 뒤흔들어 놓았던 조국사건도 이와 관련이 있다. 조국사건과 관련하여 많은 이슈들이 있지만 특히 그의 딸이 의학논문에 제1저자로 실렸다는 것은 사회적 파장이 컸다. 나는 조국이 딸이 기본적으로 단국대 의대에 인턴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인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부모가 교수가 아닌 일반 동사무소 말단 직원이었다면 과연 그 팀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의심스럽다. 예전 대학입시의 경우에는 부모의 사회적 자본이 끼치는 영향이 적었다. 부모가 대통령이든 재벌이든 간에 주어진 문제를 풀어야 했고 그 결과에 따라 대학을 갔다. 그런데 지금은 부모의 사회적 자본이 자녀의 입시에 영향을 미치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고 분노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듣는 개념도 있었는데 상징자본이다. 그리고 저자는 상징자본을 점검하는 예로 당신은 상류사회 인명록에 수록되어 있습니까?”파리 또는 어딘가에 당신 가문에 속하는 누군가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하였다. 우선 당신은 상류사회 인명록에 수록되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상류사회 인명록이 뭐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옆에 상류사회 인명록이라는 것을 처음들어보았다면 바로 아니오를 체크할 것이라고 써있어서 웃었다. 역시 나는 아니었던 것일까하면서 정말 이러한 상류사회 인명록이 있는가하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거리에 당신 가문에 속하는 누군가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이 우리나라에 해당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 성(family name)을 듣고 어느 가문을 떠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아주 다양한 성씨가 있어서 케네디, 부시, 락펠러 같이 들으면 대번에 어떠한 가문에 속한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나는 오랫동안 상대적으로 몇 개 되지 않는 성씨에 불만을 가졌었었다. 그런데 외국처럼 다양했더라면 성씨에서부터 사회적으로 불평등한 일이 더 벌어졌을 것을 생각하지 평범한 김이박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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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는 쓰레기가 아니다>

Cartoon 2019. 10. 7. 17:43

현대사회에 있어서 많은 문제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쓰레기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인류는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들 중에 가장 풍족하게 살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지금도 이 세상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사하는 숫자는 그 어느 때보다 적다. 자본주의의 대량생산체계로 인하여 절대적인 빈곤보다는 상대적인 빈곤이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인간은 살아서 생존하면 쓰레기를 만들어 낸다. 과자봉지같은 인공적인 쓰레기부터 분뇨같은 자연적인 쓰레기까지 정말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기계같다. 이러한 쓰레기의 발생은 어쩔 수 없는데 인구가 70억명을 돌파하면서 지구는 크게 신음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러 정부를 비롯하여 비정부기구에서는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서 노력 중이다. <쓰레기는 쓰레기가 아니다>는 쓰레기 문제를 어렵지 않게 다가간 좋은 그림책이다.

쓰레기 문제를 글로만 읽으면 재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해도 잘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은 기본적으로 그림으로 다가가서 인지 재미도 있고 이해도 쉬웠다. 그림을 색연필로 그린듯한데 현란하지 않고 차분히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예를 들면, 가장 와닿았던 이미지는 인간이 똥을 누면 어떻게 처리되는지 보여준 그림이었다. 대번에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 수 있게 잘 표현되었다.

내용에서는 아는 부분도 있었고 당연히 모르는 부분도 있었다. 지금은 하늘공원이 된 상암동 지역은 원래 난지도 쓰레기장이 었다. 내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그곳은 쓰레기 산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자연친화환경공원으로 바뀌었다. 나는 이에 대해서 항상 궁금해했는데 이 책이 약간 답을 주었다. 현대식 매립장에는 밀폐 비닐이 깔려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위로 쓰레기가 층층이 쌓이고 독성을 지난 썩은 물은 파이프를 통해서 밖으로 내보내 진다고 한다. 그리고 쓰레기가 썩으면서 나오는 메탄가스는 에너지원으로 이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쓰레기가 쌓인 다음에는 비닐과 흙을 덮어서 공원으로 만든다고 한다. 하늘공원도 그 예이다. 보면서 들었던 궁금증은 쓰레기를 덮는 비닐의 두께이다. 일반인이 쓰는 비닐마냥 얇으면 쉽사리 찢어질 수 있고 찢어진 틈을 통해서 유독물질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꽤 두툼한 비닐을 써야하는데 아직 두툼한 비닐을 생각해본적이 없어서 궁금하다. 10cm되는 비닐두께이면 충분할지 아니면 1m되는 두꼐의 비닐일지 궁금하다.

외국인(아마도 독일인)이 그렸기 때문에 우리나라 현실에 대한 궁금점을 다 풀어주지는 못했다. 예를 들어, 음식물 쓰레기의 경우에는 음식물 쓰레기 자원화 시설로 보내져서 밀폐된 공간에 음식물 쓰레기를 두고 몇 주동안 저절로 썩게 둔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퇴비가 되어서 거름이나 배양토로 판매된다고 한다. 그리고 바이오 가스가 생성되는 경우에는 이 가스를 통해서 전기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버리기도 한다(특히 아파트가 아닌 가정집인 경우). 나는 항상 궁금한 것이 이 음식물 쓰레기 봉투는 어떻게 처리하는 가이다. 혹시 이 음식물 쓰레기 봉투는 특이하게 썩는 재질인지 아니면 어떠한 노동자들이 이 쓰레기 봉투를 일일이 뜯어서 버리는 지 궁금하다. 이러한 우리나라 일상이 반영된 쓰레기 그림책이 나오면 좋을 것 같다.

쓰레기 문제는 심각하다. 우리나라도 쓰레기를 수출하는 입장입니다(물론 수출하면서 돈을 내야한다). 그래서 필리핀에서는 우리나라 쓰레기를 보이콧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중국에서 쓰레기를 태우면 우리나라로 넘어올 수 있다. 발전하는 중국경제에 따라서 중국에서 쓰레기양이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쓰레기는 전세계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욕심상 쓰레기가 줄 것 같지는 않고, 이를 해결해줄 과학기술이 살 길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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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윈프리>

Cartoon 2019. 8. 11. 00:52

오프라 윈프리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명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꽤 알려진 편이지만 그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워낙 독보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비교가 쉽지는 않지만 그의 영향력을 굳이 우리나라로 변환하자면 적어도 유재석 이상일 것으로 추측된다. 그가 영향력인 있는 것은 그의 쇼도 중요하지만 그의 살아온 배경, 그리고 방송 외에서 활동도 한몫을 한다. <오프라 윈프리> 만화전기에서는 깔끔하게 그가 살아온 길을 잘 정리하였다.

전기를 읽으면서 가장 진지하게 생각해볼 지점은 사람이 사회에서 바르게 크는 것은 과연 천성탓일까 혹은 환경탓일까하는 것이다. 오프라는 매우 가난한 집에서 자라났다. 그것도 모자라 어린 시절, 친척에게 성폭행까지 당했다. 그리고 오프라가 자라던 시절은 엄연히 인종문제가 심각하던 시절이었다. 흑인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도무지 좋을 것 하나 없는 배경에서 성장한 오프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 성장해서 지금의 위치에 섰다.

이런 것을 보면 개인의 중요성을 새삼느끼게 해준다. 불우한 환경에서도 어떠한 사람은 올바른 생각을 하고 어떠한 사람은 삐둟어진 생각을 가지고 산다. 반대로 유복한 환경에서도 어떠한 사람은 바람직하지 못한 길을 걷기도 하고 어떠한 사람은 기대대로 잘 자라기도 한다. 물론 오프라만 보면 역시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인 입장에서는 그렇다고 교육의 중요성이나 사회환경의 중요성을 낮추어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오프라는 오히려 아웃라이어이고 대부분에 오프라와 유사한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지금도 열악한 상태에서 어려운 삶을 겪었을 가능성이 크다. 일반 대중이 오프라같은 사람을 보고, 너는 왜 오프라같이 성장하지 못하니라고 핀잔을 주는 것은 어리 석은 일이다. 물론 오프라가 어려운 환경처한 사람들에게 희망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표본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오프라의 실력과 노력도 당연히 그의 성공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지만 보이지 않는 운도 작용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실력과 노력을 갖추었음에도 오프라는커녕 평균만 못한 삶을 살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오프라를 예외적인 상황으로 보아야하지 일반화적인 케이스로 보면 안된다.

읽으면서 알게된 충격적인 사실은 <블랙팬더>운동이다. 나는 <블랙팬더>라고 하면 마블시리즈의 와칸다밖에 떠오르지 않았는데, 1960년대~70년대 블랙팬더 운동이 실제로 있었다. Black Panther Party는 흑인운동가 말콤엑스가 암살된 후 1966년 오클랜드에서 Bobby Seale이라는 사람과 Huey Newton에 의해서 창설되었다. 이 당의 회원들은 검은색 베레모와 검은색 가죽자켓을 입고 다녔다. 이 당은 흑인인권향상을 부르짓으며 궁극적으로 인종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그런데 마틴루터 킹과는 다르게 다소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한 모양이다.

오프라 윈프리가 대학을 다닐 때 이 운동도 있었던 모양인데, 오프라 윈프리는 이 운동과는 거리를 둔다. 그리고 오프라는 꼭 폭력적인 방법만이 흑인인권을 향상시킨다고 보지는 않은 모양이다. 어떠한 사회적인 개혁을 달성하는 데에는 크게 온건파와 급진파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둘 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온건파는 점진적으로 보수세력의 관점을 바꾸고 개혁에 대한 반감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급진파는 개혁의 선명성과 메시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리고 어디에 속해서 활동하느냐는 사람의 성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그 어느 자라에 있더라도 자신의 몫을 해나아가는 것이다. 이 두 세력이 잘 조화되었을 때 사회의 변화는 야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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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의 제임스>

Cartoon 2019. 8. 7. 22:35

쿠당탕 선생님이 집필하고 있는 <언덕 위의 제임스>는 아주 재기 발랄한 웹툰이다. 기본적으로 B급 감성을 가지고 있는 그림체에 번듯이는 아이디어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필력이 엄청나다. 그리고 주로 한 주제에 여러 편으로 나누어서 그리는데 종종 반전에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가끔은 읽다가 다음 주 내용이 너무 궁금해지는 명품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2016년에 첫선을 보인 <언덕 위의 제임스>는 이제 3년을 넘긴 장수 웹툰의 반열에 올랐고, 그동안 굵직굵직한 작품시리즈를 선보이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언덕 위의 제임스>에서 가장 강렬한 캐릭터는 황순옥이다. 물론 매 시리즈 별로 나오는 것은 제임스이지만 워낙 제임스가 다양하게 나오기 때문에 제임스가 그 자체가 강렬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캐릭터인데 워낙 괴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인상이 깊게 남았다. 황순옥을 웃기게 그려서 재미있기도 하지만 결말이 뜻하지 않은 것으로 끝나는데에서 그 이상의 놀라움을 받을 수 있다. “황순옥의 손아귀황순원의 소나기를 나름 패러디해서 만들었다는 것도 재미있다.

그리고 최근 눈길이 갔었던 작품은 <도끼 살인마>이다. 여름에 걸맞는 남량특집인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몰입해서 보았다. 역시 폐쇄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은 독자에게 갖가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김전일이나 영화 <아이덴티티>같은 느낌이 많이 나는 작품이었는데 쿠당탕 스타일로 잘 풀어 내었다.

이외에도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만화로 표현한 것도 있다. 그 중 하나가 <신체몰빵>이다. 대결을 통해서 상대방의 원하는 신체부위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정말 만화이기 때문에 구현가능한 소재인 것 같다. 또한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창의적이고, 그것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구성해 내는 것도 상당한 능력이다. <양치는 소년 제임스>도 마찬가지로 기상천외하다. 양치기인 제임스가 상당히 근력있는 양들과 직접 권투를 한다. 늘상 피해당하는 입장인 양들이 능동적으로 일어나 제임스와 대결을 붙는데 상당히 재미있다.

때로는 원초적인 것에서 재미를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똥참기 대회>같은 것은 똥이라는 그 누구나 피해갈 수 없지만 대놓고 말하고 다니지 않는 소재를 통해서 큰 웃음을 준다. 똥이라는 것에 즉각적으로 웃음을 짓는 것이 유아적이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웃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언덕위의 제임스>와 라임이 비슷한 <엉덩이의 제임스>도 아주 유아적이기는 한데 매우 재미있다. <워킹쉿>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길에서 똥을 누었던 제임스가 똥이 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똥이 되어서 겪는 다채로운 일들인데 그 상황자체가 너무 재미있는데다가 그 소재가 똥이라서 더 재미를 가미시킨다.

그리고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아서 조금 슬프기는 하지만 작품으로 보면서 통쾌한 <무적 찐따 제임스>같은 류도 있다. 빵셔트를 당하는 제임스가 가해자들에게 철저히 보복을 하는 작품인데 정의를 구현하는 모습에 상당히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뜬금없이 선생으로 나오는 엄석대에도 놀랐고 그를 구타하는 것도 꽤 재미있다. 물론 이 작품에서도 반전은 독자들을 또 놀라게 한다.

그리고 <언덕 위의 제임스>에서 피식포인트 중 하나는 작명센스이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막지을 지모르겠지만 나름 재미있다. 예를 들어, 밥먹으러 가는 사람 이름을 혼밥(33, 회사원)’ 이라든지 틴틴(30, 형제도굴단’ ‘파이브(32, 형제도굴단)’ 같은 이름은 말도 안되지만 재미있다. <언덕 위의 제임스> 질리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제임스라는 주인공 이름을 제외하고는 작품마다 다른 설정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쿠당탕님의 작품이 지금처럼 재기발랄한 창의적인 작품으로 꾸준히 다가와 주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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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물방울>

Cartoon 2019. 8. 4. 23:48

<신의 물방울>은 와인을 대표하는 만화이다. 나는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데 <신의 물방울>을 읽고 와인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물론 끝끝내 와인을 실제로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확실히 와인에 대한 매력을 높이 평가하게 된 작품이다. 내가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일단 기존 지식이 많이 있어야 한다는 선입관 때문이었다. 몇 년도 산이 좋다느니, 테루아가 어떻다느니, 그리고 마실 때는 레드와인은 어떠한 음식과 먹어야한다느니 하는 과도한 지식을 요구하는 것 같아 반감이 심했다. <신의 물방울>에서도 그러한 과도한 지식이 쏟아져 나오지만 불쾌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칸자키 시즈쿠와 토미네 잇세의 대결로 칸자키 유카타가 남긴 12사도를 따라가면서 지식이 자연스럽게 분출되기 때문이다.

와인의 지식은 물론이거니와 흥미로운 것은 와인의 대가 칸자키 유카타의 친아들인 칸자키 시즈쿠와 와인의 정통한 젊은 비평가인 토미네 잇세와의 대결이다. 시즈쿠는 아버지와 달리 맥주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와인은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으로 멀리하고 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께서 남기신 유서로부터 모든 일이 시작된다. 아버지의 유산을 친아들인 시즈쿠에게 바로 주는 것이 아니고 와인의 양야들 잇세와의 대결에서 이겨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잇세가 이기면 잇세가 그 유산을 차지하게 된다.

<신의 물방울>의 주인공은 시즈쿠이므로 이야기의 전개도 시즈쿠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잇세는 주인공의 대척점에 서있는 사람으로 나온다. 그리고 보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시즈쿠의 입장에서도 시즈쿠가 이기기를 마음 속으로 약간 기원(?)을 하게 된다. 결과는 6:6으로 끝나고 시즈쿠와 잇세는 약간의 동맹(?)같은 것을 맺고 신의 물방울을 찾아나서는 것으로 끝을 맺게 된다.

나는 이것을 보면서 다소 잇세에게 동정심이 갔다. 애당초 와인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시즈쿠가 친자라는 이유로 대결에 참여하게 된다. 게다가 시즈쿠는 어려서부터 와인의 대가인 칸자키 유카타의 교육을 알게모르게 받으면서 자랐다. , 문화적 자본도 상당히 물려 받은 것이다. 반대로 잇세는 스스로 와인에 대해서 터득하고 철저히 배운 노력파이다. 그런데 단시간에 시즈쿠는 당대 최고의 와인가인 잇세를 따라잡고 승부를 무승부로 돌린다. 이런 것을 보면 역시 어떻게 태어난 것인가가 중요한 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모님이 누구인가라든지 천부적인 재능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또한 고민되는 사항은 와인 업계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어쩌면 잇세에게 칸자키 유카타의 와인을 주는 것이 낫지 않았나 싶다. 물론 만화에서는 비현실적으로 빠른 속도로 시즈쿠가 와인에 빠져들고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잇세에게 필적할 만큼 되지만 그것은 만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만약에 현실에서 이러한 상황이 있었다면 와인을 제대로 감별하지도 못하는 친아들보다 그것의 진가를 제대로 아는 사람에게 넘겨져야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치 한진그룹이 조양호씨에서 조원태씨로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한진의 유능한 직원에게 회장직을 맡게 할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선태의 문제이기는 하다.

<신의 물방울>을 읽으면서 경탄했던 것 중 하나는 대사의 예술성이다. 특히 와인을 표현할 때의 문구들은 아주 문학적이다. 예를 들어. “혼연일체된 마그마처럼 복잡한 액체가 혀 위에서 뒤섞여 달콤하게 변한다.” “힘차지만 우아하고 톡톡 튀는 기포와 멋진 턴을 연상시키는 품위 있는 산. 이것은 피겨 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의 화련한 연기가 떠오르는 와인.” “매력이란 모순을 앉고 있는 것. 그리고 인생이란 상극의 반복.” 등등 여러 가지 와인을 표현하는 문구가 시적이다. 나는 맥주를 좋아하는데 누군가 <신의 물방울>같은 맥주 만화를 그려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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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 Keaton>

Cartoon 2019. 7. 30. 23:36

우리사와 나오키는 이제 거장이다. 내가 읽은 작품은 <몬스터>, <20세기 소년> 그리고 <마스터 키튼>뿐이지만 작품마다 깊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몹시 매력적이다. 그래서 도무지 끝까지 읽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웃은 기억은 없다. 그런데 매우 재미있다. 진지하게 빨려들어가는 흡입력이 <마스터 키튼>에게도 있었다.

<마스터 키튼>에서 주목해야할 사람은 역시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옥스퍼드 대학교 고고학과 박사출신으로 영국 특수부대 SAS교관의 경력이 있는 이혼한 보험조사원라는 독특한 배경의 사람이다. <마스터 키튼>을 읽으면서 2가지에 주목했는데 첫째는 인문학의 어려움이다. 우리나라에서 인문학을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의 일만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인문학은 어렵다. 고고학도 마찬가지이다. 일단 돈이 전혀 안된다. 오히려 돈이 되는 사업을 방해하는 학문으로 찍혀서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명맥을 이어가기 어려운 학문이다. 물론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보는 중요한 학문임에는 분명하다. 주인공도 도나우강 유역에서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가설을 가지고 조사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것은 녹녹치 않은 일이다. 루마니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하고 대규모로 조사를 해야하기 때문에 비용이 몹시 많이 든다. 학계에서 주류가 아닌 키튼은 보험회사에 다니면 삶을 꾸려나가고 부수적으로 꾸준히 연구를 해나간다. 마스터 키튼의 마지막 18권 부제가 꿈을 캐는 사람이다. 키튼이 모든 일을 해결한 후, 마지막 장면이 마스터 키튼이 도나우강 유역에 직접 가서 삽을 들고 유적을 발굴하려는 모습이다. 이런 것을 보면 인문학을 하는 것은 내적 동기(Instrinsic motivation)이 충만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도무지 할 수 없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스터 키튼>을 보면서 인문학에 종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파이팅을 외치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까.

<마스터 키튼>을 보면서 슬펐던 것은 아마도 동구권의 처절한 몰락이다. 공산주의는 망했다. 자본주의에게 너무 철저히 패배하여 보는 사람이 슬픈 지경이었다. 그러나 공산주의 시작은 밝았다.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빈부격차나 신분계급의 격차로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고 시기했다. 그리고 순수자본주의는 돈이면 무엇이면 다되는 비인간적인 모습에 공산주의에 열광했다. 그리고 한 때 세계를 양분할 만큼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하지만 공산주의는 이기심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를 무시해서였을까 생산성에 있어서 자본주의에 있어서 경쟁이 되지 않았다. 이론적으로는 멋져보였던 계획생산경제는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오히려 자본주의보다 더 돈을 밝히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력층은 부패했다. 그들을 자본가들보다 더 맹렬하게 민중들을 수탈했고 동구권은 가난으로 휘청거렸다. 그리고 다가온 개방은 혼란을 가중시켰다. <마스터 키튼>의 경우에는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크가 몰락한 얼마 후를 그리고 있다. 경찰을 비롯한 공직자들은 공공연히 돈을 요구하였고 법의 질서는 붕괴되고 민중들의 삶은 도탄으로 빠져버렸다. <마스터 키튼>에서는 1989년 이후 혼란스러웠던 동구유럽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어느덧 30년이 지난 지금은 그 당시를 평온하게 회상할지 모르겠지만 그 당사자들에게는 스트레스 그 자체였음을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렇게 정치체계가 중요하다.

키튼은 유리코라는 딸이 있다. 전셰게를 떠돌아다니느라 딸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지만 항상 딸에 대한 걱정을 하기는 한다(작품의 배경이 1990년대 초반이라 인터넷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리코도 아버지처럼 옥스퍼드에서 고고학을 공부하기를 희망한다. 훗날 유리코가 커서 아버지 키튼과 함께 유적을 발굴하면 다니면 흥미로울 것 같다. 그 때는 <마스터 키튼>에 나왔던 위험한 사건들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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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로운 생활>

Cartoon 2019. 7. 25. 00:48

서나래선생님의 <낢이 사는 이야기>가 끝나고 자까선생님의 <대학일기>도 끝나고 약간 생활형 웹툰에 목이 말라있었던 나는 츄카피선생님의 <자취로운 생활>을 찾았고 역주행해서 다 읽었다. <자취로운 생활>은 이제 100회를 맞이한 아직은 초년의 웹툰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20188월부터 수요일, 금요일에 연재되고 있는 <자취로운 생활><낢이 사는 이야기><대학일기>만큼이나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가끔은 빵터트려주는 생활웹툰이다.

<자취로운 생활>에서 우선 눈길이 가는 것은 츄카피라는 케릭터이다. 츄카피는 기본적 몸체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데 얼굴은 동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츄카피의 여러 친구의 모습도 비슷한 형식이다. 인간의 모습이지만 동물의 모습도 갖추고 있다. 이 반인반수의 모습이 그렇다고 불쾌하지는 않고 귀엽게 표현되어 있다. <낡이 사는 이야기>에서는 실제 모습은 모르겠지만 서나래가 인간으로 나온다. 반대로 <대학일기>의 주인공은 아예 얼굴이 이 세상 인간도 아닌 가상의 곰같은 모습으로 나온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매력이 있고 스토리를 진행시키는데 있어서 지장이 없다.

<낢이 사는 이야기>, <대학일기>, 그리고 <자취로운 생활>의 공통점은 여러 가지인제 하나는 생활형 웹툰이고 둘째는 모두 여성작가이고 마지막은 치부를 희화화한다는 점이다. 사실인지 내숭인지는 모르겠지만 세 작가 모두 스스로를 털털하다고 묘사하고 있다. 게으로고, 깔끔하지 못하고, 멍청한 에피소드를 통해서 많은 공감을 사고 있다. 만약에 이들이 아주 부지런하고 깔끔하고 똑똑한 자기 자랑으로 이야기를 구성했다면 인기는커녕 욕을 바가지로 먹었을 것이다. 어쩌면 공감대를 형성하려면 작가나 독자가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임을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자취로운 생활>이 다른 웹툰과 달리하는 여러 특징이 있지만 작가의 직업이 코메디언이다. 안가연씨는 웹툰작가이기도 하지만 희극인이다. 그래서 작품을 읽다보면 가끔 공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혹은 내가 작가가 희극인인 것을 알고 봐서 그런지 그렇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점이 작가의 매우 큰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내용의 소재면에 있어서 방송가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넣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있어하기 때문에 인기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자취로운 생활>의 초점은 혼자 사는 생활에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방송이야기를 넣어주면 내용이 확 살아날 것 같다.

<낢이 사는 이야기><대학일기>는 그 작품들만의 공감포인트가 있었다. 예를 들어 <낢이 사는 이야기>는 사회초년생의 이야기(물론 작품연재가 길어지면서 연애 그리고 결혼문제까지 넘어가지만) 다루었다. 그 누구나 겪을 이야기이다. 그리고 <대학일기>의 경우에는 작품에서는 고학년 때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우리나라의 아주 높은 대학진학율을 고려해보면 <대학일기>의 소재도 공감을 얻기 쉬웠다. <자취로운 생활>은 앞의 <낢이 사는 이야기><대학일기>보다는 공감하는 사람이 적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차 늘어나는 1인 가구의 추세를 생각해보면 <자취로운 생활>을 공감하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자취로운 생활>을 먼훗날 후손들이 보면 2019년 변해가는 대한민국의 가구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1인 가구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경제적으로도 그게 편하고(결혼하고 출산하고 양육하기에는 내몸하나 건사하기 힘들기에) 감정적으로 그게 편하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이것이 현실이다. 물론 1인 가구 중에서 아주 멋진 삶을 사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취라는 단어는 스스로 밥을 만들어 생활한다는 뜻으로 화려한 삶을 뜻하지는 않다(잘 살면 셰프를 고용했을 태니까 말이다.) 앞으로 작가가 자취를 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주는 재미있는 내용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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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없는 방>

Cartoon 2019. 7. 19. 22:37

 

전태일 열사께서 분신으로 유명을 달리하신지 어느덧 50년이 다되어간다. 그동안 우리나라 노동환경은 어느 부분은 개선되었다. 하지만 2020년을 목전에 둔 지금도 많은 노동자들이 아주 열악한 근로환경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삼성노동자 문제를 다룬 <먼지없는 방>은 이러한 면을 부각시켜 보여주고 있다.

삼성전자는 우리나라의 대표 기업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으로 세계 어디에서나 삼성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해외에 나가서 삼성로고를 볼 때면 내면의 어느 부분에서 자랑스러운 감정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우리나라 대표기업으로서 많은 부분에서 자랑스러워할 만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부분이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노동자에 대한 처우문제에 있어서는 초일류 기업이라고 불리기 부끄러운 부분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먼지없는 방>에서는 삼성전자에 다니면 백혈병에 걸린 이야기를 담담하게 잘 그려냈다. 처음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입사하는 과정 그리고 일하는 모습을 마치 옆에서 생생히 본 것처럼 알 수 있었다. 특히 일하는 사람들의 심리묘사도 아주 잘 되어 있다. 삼성에 다닌 다는 자긍심(?)을 잘 표현한 것도 좋았다. 또한 문제가 생겼을 때 입막으려고 하는 삼성의 모습도 잘 묘사해놓았다.

반도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그 어떠한 먼지도 들어가면 되지 않으므로 꼼꼼하게 방진복을 입는다. 이러한 방진복 때문인지 반도체라고 하면 아주 깨끗한 산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화학처리가 필요하다. 이러한 화학처리 과정에서 근로자들이 병에 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수십명의 사람이 이로인해 죽어나갔다. <먼지 없는 방>에서는 단순히 이러한 문제를 감성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반도체가 만들어지는 공정을 자세하게 알려주면서 이성적으로 왜 이것이 문제가 되는 지 설명해주어서 좋았다. 물론 반도체에 대한 지식을 책을 읽는 단시간 안에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이러한 문제가 삼성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삼성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물론이거니와 전세계 곳곳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위험에 노출된 채 일을 하고 있다. 물론 궁극적으로 이러한 문제는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기계들이 자동화되고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인간이 직접 위험에 노출되어서 일할 일은 점점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미래가 될 때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그 과도기적인 시간 속에 기업들은 안전한 근로환경을 위해 노력해야한다. 삼성은 초일류기업으로 그 모범이 될 만하다.

삼성을 비판하는 것에 대한 강한 노이로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삼성 스스로를 포함해서). 삼성은 물론이거니와 아마존, 구글, 폭스바겐 등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기업의 경우에는 완벽한 경우가 아닌한 욕을 먹게 되어 있다. 이러한 비판 혹은 비난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관건이다. 비판이 곧 그 회사의 가치를 줄인다는 가정은 버려야 될 것이다. 그 비판를 기반으로 어떻게 현재 문제를 개선할지 고민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삼성 백혈병 문제의 경우에도 문제를 쉬쉬하기 보다는 작업장 개선을 하는 데 힘을 더 쏟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돈이 든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분명한 손해이다. 하지만 길게 보자면 그것이 더 이익 아닐 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삼성이 대단하다는 것에는 우리나라사람이라면 모두들 알고 있다. 하지만 삼성을 존경한다고 함에는 이견이 있다. 나는 삼성이 우리나라에서 단순히 기술로만 대표하는 기업이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우리나라를 선도하는 대표기업이 되었으면 하다. 삼성이 우리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생각하면 삼성의 긍정적인 움직임은 단순히 삼성 임직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들에게도 바람직한 방향의 변화를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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