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작업실에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Book 2020. 3. 21. 02:20

 

 

나는 김정운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일단 진솔하다. 물론 종종 현실부적응자마냥 자신이 잘 생겼다고 이야기하는 것 빼고는 잘난 체를 많이 하지 않아서 좋다. 소탈하게 이야기하는 듯이 글을 쓰기 때문에 글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줄어든다. 그리고 적절한 예, 현실적인 예를 잘 들기 때문에 이해가 더욱 쉽다. 사실 글을 어렵게 쓰는 것보다 쉽게 쓰는 것이 더 어려운데 그런 면에서 김정운 작가는 글을 대단히 잘 쓰는 것이다.

그리고 김정운 작가를 좋아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가 시시한 자기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심리학적 전공을 토대로 사회현상이나 개인이 느끼는 감정을 잘 설명한다. <바닷가 작업실에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에서도 그가 여수에서 터잡게 된 그의 사적인 이야기도 흥미를 끌지만 그가 심리학적인 렌즈로 바라보고 이해한 세상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이번 책의 부제는 슈필라움의 심리학이다. Spielraum라는 단어는 독일어로 놀이와 공간의 독일어의 합성어라고 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을 저자는 슈필라움이라고 주장한다. 사람은 자기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유대인들이 나치독일치하에 경험을 들어서 설명했다. 나도 이 개념이 중요성에 대해 크게 공감을 한다. 교수가 되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자신만의 연구실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크지도 않은 공간이지만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 딴 생각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하고 그 토대 위에서 남들과 다른 창의적인 생각도 할 수 있게 하게 한다. 반면에 내가 예전에 남들과 같이 공간을 나눈 사무실에서는 다른 사람이 내가 하는 일을 볼 수 있다는 염두하에 일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점차 자아를 잃고 평범한 사람이 되어감을 느낀 적이 있다.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률적이지 않은 어떠한 개체라고 보았을 때는 슈필라움이야 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조선일보에 작가가 글을 모은 것으로 너무 길지 않은 글들도 이루어져 있다. 그 글마다 1~2개의 이론이라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틀린 믿음 실험(false-belief-test),” “비자발적 기억(involunatary memory),” “교환가치(Tauschwert)와 사용가치(Gebrauchswert),” “동화(Assimilation), 조절(Akkommondation), 그리고 평형화(Aquilibration),” “열등감(Minderwertigkeitsgefuhl),” “정점-종점 규칙(Peak-end rule),” “인정투쟁(Kampf um Anerkennung),” “소외(Entfremdung),” 등의 개념을 현실의 예를 들어서 쉽게 설명하고 있다.

작가의 여러 통찰이 있었지만 내가 흥미롭게 보았던 것은 바로 기억의 티테일이다. 작가는 현재 우리사회의 문제중 하나가 스스로 추구한다고 주장하는 가치를 근본적으로 신뢰하지도 않고 주장하는 대로 살지도 않는 냉소적 이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냉소주의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했던 말들을 제대로 기억할 때 냉소주의가 극복된다고 보았다. 요즘 같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누구에게나 의견이 쉽게 다른 사람들에게 펼쳐질 수 있는 시대에 아무말 대잔치가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그 아무말이 오히려 표현의 자유의 본연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려면 기본적으로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한다.

이 책을 보면서 또 좋았던 점은 작가의 그림과 여수의 아름다운 사진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놀랍게도 작가가 생각보다 그림을 스타일있게 잘 그린다는 것이다. 물론 사고 싶은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자신만의 개성이 잘 들어났다. 그리고 사진도 상당히 느낌있게 잘 책에 실려있다.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만길 <고쳐 쓴 한국근대사>  (0) 2020.05.03
<Think like a Billionaire>  (0) 2020.04.14
<표백>  (0) 2020.02.23
<상처받지 않을 권리>  (0) 2020.02.03
<노동의 종말>  (0) 2019.10.30
posted by yslee

<남자의 물건>

Book 2019. 2. 25. 01:21

김정운 작가의 <남자의 물건>은 성적으로 은유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물건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애착하는 물건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소지한 물건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기도 하고, 내적인 욕구를 풀기도 한다. <남자의 물건>에서는 절반은 김정운 박사의 컬럼을 모아둔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사회적 명사의 물건을 보고 인터뷰한 것을 토대로 김정운 작가가 느낀 점을 쓴 것이다. 명사로는 이어령, 신영복, 안성기, 차범근, 조영남, 유영구, 이왈종, 박범신, 김문수, 문재인(당시는 대통령이 되시기 전), 김갑수, 윤광준을 섭외하여 만났다.


부제가 김정운이 제안하는 존재확인의 문화심리학인 만큼 그의 컬럼 곳곳에는 심리학의 내용이 곳곳에 나와있다. “늙어보이면 지는 거다!”에서는 몸과 마음이 무너지면 인상조차 훨씬 나이 들어 보이게 된다고 말하면서 덴마크의 심리학자 크리스텐센의 연구를 말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08년까지의 종단 연구를 통해 같은 나이일지라도 늙어보이는 사람이 먼저 죽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는 것을 논거라 삼는다. 그리고 그 연구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주요 시사점을 알려준다. 이렇게 연구를 보여준다고 해도 눈에 거슬리지는 않고 오히려 그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준다.


연구결과 뿐만 아니라 심리학 개념도 잘 녹여낸다. “시키는 일만 하면 개도 미친다.”라는 글에서는 삶을 주체적으로 살자고 주장한다. ‘실험적 신경증(Experimental neurosis)’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의 개념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나라 남자가 이 신경증과 학습된 무기력에 사로잡혀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전문용어가 많이 나오는데도 글이 지루하지 않는 이유는 그의 글쓰는 스타일 때문인 것 같다. 상당히 구어체이다. 예를 들어 개도 시키는 일만하면 미친다. 이제라도 뭐든 스스로 결정하며 살자는 거다!(27)”이라고 말하듯이 글을 쓰니 심리학 용어가 나와도 그려려니 한다. 문제는 알려준 심리학 용어가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왕왕있다.


명사들의 인터뷰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인물은 김문수 전지사였다. 젊은 세대에게는 소방서에 긴급전화를 걸어 나 도지사요라고 했던 꼰대라고 기억된다. 그러나 그는 한 때 노동운동의 선봉장에 섰던 인물이다. 군사 정권에 맞서고 노동현장의 개선에 힘쓰던 그가 문민정부가 들어와서는 광화문 광장에 이승만, 박정희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을 하니 많은 사람들이 아연실색하였다. 김정운 박사도 이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만났는데 김문수는 수첩을 그의 물건으로 꺼내놓았다. 그의 수첩은 3색 볼펜으로 쓴 메모로 가득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천재의 기억보다 바보의 기록이 정확하다(274)”이라고 말한다. 그의 꼼꼼함과 철두철미함은 그를 강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인터뷰를 보면서 느낀 것은 그는 어떠한 입장이 서든 간에 매서운 추진력을 가지고 지향하는 바로 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가 노동운동가였을 때는 그가 추구하는 가치가 노동운동에 있다고 믿고 맹렬히 활동한 것이다. 그래서 노동운동가로서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그가 40살이 되던 해 사회주의가 무너져 내려버린 것이었다. 사회주의의 핵인 소련이 붕괴하여 러시아가 되었다. 이 때 아마도 그는 그동안 믿었던 신념체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느낌을 받은 것 같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다해 믿었던 사회주의가 패배했을 때 반응은 여러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어떠한 사람은 그러한 패배를 부인할 수도 있다. 또 어떠한 사람은 점진적으로 새로운 신념가치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어떠한 사람은 180도 입장을 바꾸어 맹진할 수도 있다. 김문수 전지사는 아마도 마지막 형태의 모습을 가진 것 같다. 마치 자신이 믿던 종교에 실망하여 급거 개종하여 개종된 종교를 추종하는 것처럼 김문수는 그렇게 그가 그렇게 반대했던 사람들을 찬양하기 시작한다. 그의 맹렬함은 그의 꼬장꼬장한 수첩에서 잘 나타난다. 그가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는 어수룩한 사람이었다면 노동계의 대부도 지금의 김문수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를 보면, 꼼꼼한 적어낸 수첩도 중요하지만 멀리보는 시야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나의 네버엔딩 스토리>  (0) 2019.03.13
<저널리즘의 미래>  (0) 2019.03.05
<뉴욕, 매혹당할 확률 104%>  (0) 2019.02.17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0) 2019.02.11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0) 2019.02.07
posted by yslee

<에디톨로지>

Book 2017. 10. 2. 21:29

김정운 박사의 글은 아주 살아있다. 그래서 읽는데 아주 수월하다. 그리고 그 의견이 아주 뚜렷하다. 이런 이유로 반감을 가질 수도 있지만, 이런 이유로 더 매력적이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는 상황이라면, 적은 생기지 않겠지만 매력은 그만큼 떨어지기 마련인가보다.

김정운 박사의 요지는 이제는 지식을 단순히 습득하던 시절은 갔고, 조합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에디톨로지(Editology)라는 단어를 조어(造語)한다. 그리고 그는 창조는 곧 편집이다(7).”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이야기를 써놓았다.

우리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예(마우스, 예능자막, 하이퍼텍스트)를 통해서 설명하는데 설득력이 있고, 나는 충분히 설득 당했다. 그래서 편집이라는 것이 수동적인 모방이 아니라 능동적인 창조활동임에 동의하였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주장하려는 내용을 알아서 유익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했지만 글을 읽는 과정도 자체가 아주 즐거웠다. 문화심리학자인 저자는 어렵게 쓸 수도 있는 내용을 거의 구어체로 썼다. 그렇다보니 글읽는 속도도 날 뿐만 아니라 이해도 잘 되었다. 가끔 같은 내용도 어렵게 써서 힘들게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저자는 어려운 내용도 쉽게 다양한 예를 잘 들어가면서 쉽게 쓰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이럴때 책을 읽는 즐거움은 배가된다.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클리드가 들려주는 삼각형이야기>  (0) 2017.10.15
<퇴계가 우리에게>  (0) 2017.10.09
<이말년씨리즈>  (0) 2017.09.18
<딜레마와 행정>  (0) 2017.09.10
<시민>  (0) 2017.09.04
posted by ys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