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강신주의 역사철학 정치철학>

Book 2021. 8. 12. 03:25

강신주는 우리나라 간판 철학자로 나는 그의 이름만으로 내용과 관계없이 책을 산다. 그의 책은 단 한번도 나를 실망한 적이 없는데 나날이 진화하는 것 같다. 문사철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그에게 딱 맞는 것 같다. 문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으로 이어지는 인문학의 뼈를 그는 아주 제대로 습득하고 그의 생각에 날개를 달았다. 그의 저작 <강신주의 역사철학 정치철학 1: 철학 vs 실천>800쪽이 넘는 분량이 조금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분명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그의 통섭된 인문학적 관점은 그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통찰력이 있었고 덕분에 지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은 파리꼬뮨이다. 우리는 세계사를 배울 때 프랑스 대혁명을 빼놓지 않고 배운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은 서구역사를 뒤바꾼 대형사건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을 덜 배우고 바로 세계1차대전을 공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레미제라블>같은 대작을 보는데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1789년부터 세계1차대전이 있었던 1914년 사이에 프랑스에서는 수많은 역동적인 일들이 있었다(물론 그 후에도 있었지만). 그리고 그 진통의 과정이 지금의 프랑스를 만들고 우리에게도 영향을 주었는데 파리꼬뮨은 그 활동시기는 짧았지만 분명히 확인해야할 아주 중요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강신주는 이 역사적인 사건의 중요성을 인문학적으로 그리고 우리 실정에 맞추어서(특히 동학과 비교를 하면서) 설명을 한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일어난 굵직굵직한 일들을 나열을 잠시하자면 혁명 이후에 로베스피에르 같은 사람이 나타나 공포정치가 일어난다. 그 후 나폴레옹이 나타나 집권을 한다(1804~1814). 그런데 나폴레옹이 실각을 하고 부르봉가에 의한 왕정복고가 일어나고 루이 13(1814~1824)와 샤를 10세가 재위한다(1824~1830). 그런데 또다시 혁명이 일어나고(프랑스 7월혁명, 1830). 그 후 루이 필리프 1세가 재위한다(1830~1848). 그런데 또다시 혁명이 일어나고 (18482월 혁명) 나폴레옹의 친척인 나폴레옹 3세가 집권한다(1848~1870). 그런데 또다시 혁명이 일어나는데 그 때 잠깐 프랑스를 파리를 지배했던 단체가 파리코뮌이다(1871318~528). 그 후 띠에르가 파리코뮌을 궤멸시키고 2대 대통령으로 오르게 된다.

저자는 2개월의 짧은 기간을 보낸 파리코뮌에 큰 관심을 기울인다. 그에 따르면 코뮌은 제정, 왕정, 교회, 의회주의, 중앙집권에 대랍되는 공동체라고 한다. 그리고 변방에 속하는 모든 사람이 중앙일 수 있는 공동체를 꿈꾼다고 하였다. 그리고 코뮌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파리코뮌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토지와 자본을 공동 소유하는 원칙인 사회가 코뮌인 것이다. 사실 이러한 숭고한 생각에서 시작된 공산주의는 잘 알 듯이 실패하고 말았다. 자본주의는 완전히 승리하였고 자본주의는 현시대의 종교가 되었다. 강신주도 이에 대해 인식하고 자본주의 작동원리에 대해서도 ㅈ세하게 설명을 한다.

이제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수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태생적인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평등하게 태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돈에 따라서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말이다. 이 자본주의는 꼭 민주주의 뿐만 아니라 (명칭상)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잘 통용되는 만국의 종교가 되었다. 문제는 이 돈의 분배가 평등하게 되어 있지 않다. 극소수의 사람이 많은 돈을 가지고 있고 다수가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살 수 없다. 책에서는 이 점을 통렬하게 지적하고 파리코뮌의 숭고함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 숭고함보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분수령에 더 관심이 있다. 국제화된 시대에 기술의 발전은 극단적인 불평등을 가져올 수 있는데 나는 기술을 잘만 사용한다면 유토피아에서 그린 것처럼 조금만 일하고 자아실현일 가능하다고 본다. 시간이 흘러야 알겠지만 미래의 철학자는 지금의 기술발전이 어떻게 인류의 자유에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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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을 권리>

Book 2020. 2. 3. 01:10

강신주 박사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시중에서 많이 보이는 정서적인 위로에 관련된 책이 아니다.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의 이유에 대한 친절한 가이드 북이다. 2020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돈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해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부분에서 자본주의가 돌아가는 원리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자본주의의 원리가 일반 사람들의 삶의 곳곳에 이미 스며들었기 때문에 이 글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우선 사람들은 지금 당장 쓰지 않더라도 통장의 돈을 항상 의식하고 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는 것은 마치 공기가 없는 것처럼 절망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통장의 돈이 얼마있는 지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서 책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엇인가를 모아둔다는 것은 곧 미래에 대한 염려를 보여줍니다. 미래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자신의 손 안에 두기 위해 돈을 비축하려고 합니다. 화폐경제가 확립되어야 비로소 미래에 대한 염려가 가능하고, 미래를 염두에 둔 시간관념도 가능해집니다.” 자본주의적 시간의식에 대해서 저자는 잘 설명하고 있다. 영화 “In time”에서도 부자들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느긋하게 사는 가하면 가난한 자들은 항상 시간에 쫒기며 어렵게 살아간다. 과연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살지 않았다면 어떠한 시간관념을 가지고 살았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자본주의 사회에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울지는 몰라도 팍팍한 느낌을 주는 이유로 잘 설명해두었다. “화폐경제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 이루어졌던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와해시키고, 오직 돈으로만 개인들이 서로 연결되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물론 모든 인간관계가 돈으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돈이 문제가 되는 것은 확실하다. 돈이 어떤 면에서는 공정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 어차피 사람은 타인을 판단할 때 어떠한 기준을 들게 마련이다. 돈이 없었다면 못생긴 사람이나 소수인종의 사람들은 차별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못생겨도 소수인종이라도 돈이 있으면 일단 존중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돈의 중요성이 너무 심해지다보니 그 사람이 무엇을 하든 돈만 많으면 된다는 배금주의 사상이 세상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확실히 자본주의는 명과 암이 있다.

또한 인상깊게 읽었던 구절은 자본주의가 보장하는 자유란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아닙니다. 자본주의에서 자유는 돈을 가진 자의 자유, 소비의 자유에 불과할 뿐입니다. 소비의 자유란 결국 돈에 대한 복종의 이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이다. 대개의 사람은 자유를 꿈꾼다. 그런데 그 자유란 자본주의 안에서는 돈으로 이루어진다. 몇몇 소수의 사람을 빼고서야, 이 자유를 얻기 위해서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한다. 슬프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돈을 벌기 위해 한다. , 자유를 위해 자유가 없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쥐꼬리만한 월급쟁이라면 이러한 역설에서 나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의 저자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렇다고 비판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안을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생산-소비협동조합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용가치가 없음에도 사람들의 허영을 부추겨 기호가치를 소비하게 한다. 또한 필요이상의 돈을 모으려고 악착같이 욕심을 내서 불평등을 키우기도 한다. 생협의 세상에서는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생협의 돈은 축재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필요한 것을 교환할 수 있는 정도의 권능이 있을 뿐이다. 아직 이러한 세상이 도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자본주의 힘은 강대하다. 그래도 가끔은 다른 세상을 꿈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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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ions>

TV 2019. 7. 28. 23:24

지금까지 빌리언스는 시즌 4까지 나왔다. 한 시즌당 12회로 구성된 이 미국드라마는 기본적으로는 억만장자 헤지펀드회사 사장인 바비 액설로드와 검사장(물론 뒤에는 직업이 바뀌지만) 찰스 로드 주니어의 대결구도로 이끌어가는 극이다(물론 뒤에 협력관계가 되기도 하지만). 극단적으로 단순화시키면 공적권력과 사적권력의 대척점에 서있는 사람이다. 정부에서는 무분별하게 자본권력을 사용하는 것을 제지하려고 하고 자본권력은 자기증식에 여념이 없다.

자본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자본위주로 돌아가는 사회이다. 예전 순수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면 말그대로 다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기도 했고 사람을 죽을 때까지 일을 시킬 수도 있었다(물론 지금도 어느 정도 남아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시장에는 여러 가지 규칙들이 들어섰다. 그리고 정부는 시장의 행위자들이 규칙을 준수하게 하는 심판으로서 역할을 한다. 규칙을 무시하고 돈을 벌려고 하는 회사와 그것을 잡으려는 검사의 모습이 <빌리언스>에서는 아주 잘 묘사되어 있다.

사실 검사들은 가진 능력에 비해 박봉의 생활을 한다. 그리고 검사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사명감이 크다. 예를 들면, 바비가 브라이언 코네티 검사를 영입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거절한다. 반면에 스피로스는 바비의 돈을 보고 엑스 케피탈에서 일하게 된다. 이를 보면서 공무원들, 특히 시장권력을 감시해야하는 공무원들에 대한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아주 쉽게 시장을 감시해야할 관리자가 시장권력에 빠져들어서 시장경제를 망치는 일이 있다. 꼭 현직에서 일뿐만 아니라 퇴직 후를 생각해서 기업에게 호의적일 수도 있다. 이러한 것을 막기 위한 어렵겠지만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빌리언스>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검사들의 뜨거운 사명감이 변질되어서 불법을 저지르는 것이다. 바비를 감옥에 넣고 싶었던 찰스는 무리수를 던져서 스스로를 위기에 처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변해버린 찰스를 감옥에 넣고 싶었던 브라이언은 무리를 해서 스스로가 형벌을 받게 된다. 시장권력이 규칙을 지켜야하는 만큼 공적인 권력도 규칙을 지켜야한다. 시장권력이 불법하는 것같다고 스스로 불법을 저지르면서 시장권력을 처벌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것이 검사들이 갖는 맹점이다. 시장권력은 돈을 쏟아부어 최고의 인재를 영입해서 법망을 빠져나간다. 이런 모습을 그저 봐야하는 입장에서는 허탈하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자본주의가 손을 미친 어디에서나 고민되는 지점이다.

어려운 것은 국가권력뿐만 아니라 시장권력도 마찬가지이다. 사세를 키워가던 바비는 자신이 후계자급으로 키우던 테일러 메이슨에게 일격을 당한다. 테일러 메이슨이 퇴사하고 스스로 회사를 차려서 엑스 케피탈의 수익에 타격을 날리는 것이다. 테일러 메이슨뿐만 아니라 시장에는 바비 엑설로드를 호시탐탐 노리는 수많은 투자자들이 있다. 허점을 보이면 자비없이 공격해서 스스로 이익을 취한다. 이것을 보면 시장이란 마치 정글의 법칙이 통하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익이라는 목표아래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공간이다. <빌리언스>는 이러한 정글같은 공간을 잘 묘사하였다.

시즌 4까지 모두 긴장감을 가지면 시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빌리언스>에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었다. 첫 번째는 우선 웬디의 존재이다. 찰스의 부인인 웬디는 찰스의 숙적인 바비의 회사에 다닌다. 물론 웬디가 엑스 케피탈의 창립멤버라고 하지만 보면 볼수록 현실감이 떨어지는 설정이었다. 물론 웬디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이지만 아예 빼버리는 거라 찰스가 평범한 여성과 부부생활을 유지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둘째 이해안되는 부분은 찰스가 대중에게 스스로 성변태자라는 것을 밝혔는데 별 설명 없이 법무부 장관에 당선되었다는 것으로 나온다. 이 역시 너무 비현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5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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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

Book 2019. 7. 9. 01:07

예전 학부시절 들었던 강의의 교재로 사용했었던 교과서를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되었다. 벌써 15년 넘는 일인데 그동안 단 한번도 다시 읽지 않았다. 다시 읽는데 정말 처음보는 내용같았다. 사람은 역시 망각의 동물이다. 그리고 내용을 숙지하고 체내화하기 위해서는 반복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또한 이 무한한 지식을 모두 체내화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 때 그 때 계속 읽어가고 다만 아이디어를 첨가하여 자신만의 지식을 구축해야 한다는 생각을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을 보고 느꼈다.

<경제사>라고 하면 어쩌면 자본주의의 역사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전에도 경제는 있었다. 지금처럼 자본이 세상의 원리가 된 것은 인류의 역사상 최근의 일이지만 그 전에도 경제는 우리 삶에 중요한 축으로 역할을 해왔다. 책에서는 기본적으로 경제를 바라보는 사관을 우선 이야기하고 그 후 고대생산양식부터 중세봉건시대, 중상주의의 발전, 자본주의 도약, 산업혁명 그리고 대공황까지의 일을 세계사적인 입장에서 교과서적으로 설명했다.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우리가 지금 평범하게 쓰고 있는 단어의 역사적 어원을 알 수 있어서 이다. 우리가 쓰는 여러 단어는 들은 각기 역사적인 배경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을 뜻하는 컴퍼니(company)라는 단어는 영국에서 나왔다. 영국의 경우 양모수출을 목적으로 한 상인조합이 조직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점차 직물업이 발달하여 상인이 모직물공업질르 흡수하여 객주제 가내공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인들이 조합을 만들 었는데 라이버리 컴페니(Livery company)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러한 조직이 현대 회사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읽으면서 흥미롭게 본 부분은 영국의 융성과 쇠퇴이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곳 답게 영국은 19세기 지구의 최강자였다. 각종 산업에서 선두를 달렸다. 예를 들어, 1878년 화학공업 46%의 비중이 영국 몫이었고, 면업의 경우에도 183469% 등등 1820년에는 세계 공업의 절반을 차지했다고 한다. 우선 영국의 위상이 정말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는 말이 맞을 정도였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이야 브렉시트로 난항을 겪고 있는 유럽의 한나라에 불과하지만 한때는 세계를 호령했던 국가였음을 실감케하는 생산량이다. 문제는 이러한 수치를 도대체 어떻게 구했냐는 것이다. 지금이야 세계은행이나 OECD같은 국제기구에서 객관적인 수치를 구하는 노력을 하고 있고 이는 국제적으로도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19세기의 생산량 같은 것은 어떻게 측정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것을 하는 것이 역사학자가 하는 일이기는 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예전 역사적인 자료가 미비한 상태에서 어떻게 영국의 생산량이 세계의 50%가 되게 되는지 알고 싶다.

그리고 생경한 단어들도 많이 접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보나파르티즘(Bonapartism)이란 나폴레옹 3세 하의 프랑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브르조아와 프로레타리아의 세력이 균형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중간적인 소시민적 사회층을 기반으로 독재적인 국가권력이 성립된 상태라고 한다(200). 요맨(yeoman)이라는 개념도 있다. 잰틀맨(gentelman)과 허즈밴드(husband: 농민)의 중간에 위치하는 신분이라고 한다. 요맨이라는 개념자체라는 것도 놀랍지만 허즈밴드가 남편이 아니라 농민의 뜻도 있다는데 놀랐다. 물론 몰라도 사는데 지장은 하나도 없다. 알아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는 일은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소한 사실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물론 경제의 역사를 배운다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중무역전쟁이나 일본의 무역조치에 직접적으로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를 배워 지금을 살아가는 혜안을 얻을 수 있지 않나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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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주의의 역사>

Book 2018. 12. 5. 03:01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는 아마도 내가 학부시절 교양으로 들었던 과목의 교재용으로 쓰였던 책이다. 내가 한 때 잘 쓰던 색연필로 밑줄이 많이 그어져 있었다. 그런데 다시 읽었을 때 놀랍게도 책 내용은 정말 처음 읽은 것처럼 새로웠다. 역시 책은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내용을 숙지할 수 있는 것 같다.


부제인 <빼앗긴 들에 서다>가 말해주듯이 읽는데 처음부터 마음이 아파왔다. 그 이유는 다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에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이 일본의 침략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작부터 불평등 조약이야기부터 시작하여 그 다음 장부터는 식민지 시절 경제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의 허구성에 대해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몇몇의 사람들이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면서 우리나라 경제를 근대화시켰다는 주장을 하면서 식민지 시절을 합리화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 주장의 기저에는 우리는 일본이 없었다면 철도도 깔지 못하고 공장도 짓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나는 이 생각에 완전히 반대한다. 일본이 없었더라도 우리는 시류에 맞게 신식 기술을 들여왔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 기술을 통해서 부흥할 만한 역량이 있다. 오히려 일본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철도를 놓고 공장을 지어서 우리 인력과 자원을 극렬하게 착취하느라 우리나라는 빈사상태에 빠지게 된다. 오히려 일본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는 훨씬 먼저 근대화 산업화를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역사는 다시 쓸 수 없었기 때문에 벌어지지 않을 일로 왈가왈부하는 것이 의미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식민지 근대화론같은 생각은 설득력이 없음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이 책의 내용을 잘 전파했으면 좋겠다.


식민지 시대 이후도 우리나라의 경제는 녹녹치 않다. 광복 후에 미군과 소련이 남북으로 진주하면서 나라가 갈라지고 끝내 전쟁이 난다. 광복 후 불과 5년 만에 전쟁이 터짐으로써 일본귀속재산불하를 비롯한 문제가 제대로 일단락되지도 못한채 극도의 가난으로 빠져든다. 그 후에도 사회는 정부의 무능과 부패 속에서 신음하다가 4.19로 전환을 맞이하나 싶더니 그 다음해에 5.16으로 오랜 군사정권시절로 들어간다. 그 후 우리나라는 놀라운 경제성장을 기록한다. 그러나 한 편에는 정경유착을 기반으로 재벌의 성장이 있었고 노동자에 대한 탄압이 있었다. 그 후에도 동아시아 외환위기, 세계금융위기 등등의 이야기가 있었지만 이 책은 2000년에 펴낸 책으로 일제부터 박정희 대통령 시절까지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 책은 대표저자인 강만길 교수를 필두로 아마도 그의 고려대학교 후학들인 학자들이 공동으로 집필하였다. 우리나라의 아픈 기억을 담담하게 적어나갔다. 약간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은 글쓴이를 글 제목 아래가 아니라 글 맨 뒤에 괄호 안에 적어두었다는 점이다. 대개 학술적인 글을 보면 제목 아래 저자이름을 써서 그 글의 책임을 지게 되어 있는데 이름이 맨 뒤에 마치 숨겨져 있는 것처럼 되어 있어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글 내용의 출처가 불분명하게 되어 있다. 신용옥이 쓴 발전국가론을 제외한 다른 글들에서는 마지막에 참고문헌은 제시했으나 구체적으로 각각의 내용이 어디에서 근거한 것인지가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대중서를 표방하더라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나라의 경제사적인 부분을 심층적으로 조망하였다. 그리고 좋았던 점은 용어, 개념, 인물 그리고 사건 정리이다. 본문 옆에 키워드로 해서 중요한 부분을 다시 설명해놓았는데 쉽게 반복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예를 들면, “백동화 남발”.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식산은행” “트루먼 독트린” “좌우합작위원회” “대충자금등등 우리나라 역사를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키워드를 간략하게 적어두어서 이해의 폭을 넓혔다. 역사라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에 기반하지만 매우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간다. 그래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 논란이 있더라도 그 배움을 필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논란을 논쟁의 장으로 만들고 공론화시키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제대로 된 사료가 잘 구축될 수 있도록 사학계에 많은 지원이 있었으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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