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Exhibition 2019. 2. 25. 01:30


서울 행촌동에는 딜쿠샤(Dilkusha)라는 독특한 이름의 건물이 있다. 나는 이곳을 <동네한바퀴>라는 프로그램에서 보고 갔었는데 도심에 이러한 오래된 건물이 있다는 점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한 적이 있다. 서울이 지난 50년 동안 급격히 도시화되면서 이전에 있었던 건물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이 딜쿠샤라는 건물은 100년넘게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놀라운 일이다.


이 딜쿠샤를 주제로 한 전시회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딜쿠샤는 샨스크리트어로 기쁜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렇게 샨스크리트어로 지은 이유는 이 집의 주인이 인도에 살았기 때문이다. 이 집 주인은 알버트 테일러라는 미국인이었다. 이 사람은 조선에서 광산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따라서 1897년에 우리나라에 왔다고 한다. 그는 일본에 출장갔다가 만난 메리와 1917년에 인도에서 결혼을 했다. 그의 부인이 인도여행을 눈여겨본 궁전이름이 딜쿠샤라고 한다. 그들은 이 이름을 따서 자신의 집의 이름으로 하였다고 한다. 지금이야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이 비교적 쉬운일이 되었다. 그렇지만 20세기 초만해도 세계여행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미국 라이트형제가 처음 비행기를 만든 것이 1903년의 일이다. 이 비행기가 상용화되어 일반사람들이 이용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이 시대때 딜쿠샤 주인이 일본에 출장가고 인도가 가서 결혼하고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것도 모두 배와 기차에 의존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동하는 것 자체가 번거로운 일이었다. 이러면에 알버트 테일러나 그의 아버지는 상당히 국제화의 앞선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알버트 테일러가 우리에게 기억되는 가장 큰 이유는 AP통신원으로 우리나라 3.1 운동을 세계에 알렸다는 점에 있다. 지금이야 인터넷이 발달하여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비교적 용이하게 전세계로 송고할 수 있다. 기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카메라로 찍어서 있었던 일들을 인터넷에 올려서 전세계적인 반응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때는 정보통신 시설이 아주 빈약했던 시절이었다. 전화기가 1876년에 발명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세계 각지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듣는 일은 매우 지난했던 일이었다. 1919년 우리나라에서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이에 대해서 세계적으로 알기는 매우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때 알버트 테일러가 이 사실을 통신원으로서 알려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고통을 알렸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그 당시 소식을 알릴 뿐만 아니라 이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서도 중요한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나 일본사람이 아닌 제3국인의 입장으로서 객관적으로 있었던 사실을 알리는 것은 역사적 사료로서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알버트 테일러는 3.1 운동뿐만 아니라 제암리 학살사건 등과 같은 일들 보도하였는데 일본은 그를 1942년에 미국으로 추방해버린다. 그는 이미 30년 넘게 우리나라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어나 한국에 대해서 꽤나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경험과 능력이 우리나라가 독립국가로서 설 수 있는데 일조한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1948년에 죽었는데 유해가 우리나라로 돌어와 서울에 뭍혔다. 이런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우리나라를 생각하는 지 가늠할 수 있다.


지금 딜쿠샤는 재난위험시설(D등급)지정되어 있다. 즉 붕괴의 위험에 처해있다. 문화재청같은 곳에서 보수 공사를 하겠지만 사람이 살기보다는 전시회장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알버트 테일러는 이 세상에는 없지만 그가 한 행적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너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알버트 테일러라는 이름은 그리고 딜쿠샤라는 건물에서 다시 회자되고 100년전 우리가 어떠한 일을 겪었는지를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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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 입체사진으로 본 서울풍경>

Exhibition 2018. 7. 27. 19:10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렸던 <1904 입체사진으로 본 서울풍경>을 관람하고 왔다. 서울역사박물관에는 간혹 가는데, 전시물이 잘 바뀌지 않는 상설전시실과 철마다 내용에 변화를 주는 기획전시실이 있다. 기획전시실의 규모는 상설전시실에 비해 작지만 내용은 튼실하고 새로워서 항상 서울역사박물관을 찾게 된다.

 

입체사진은 약간의 간격을 두고 동시에 찍은 후 입체경이라는 도구를 통해 보면 평면적인 모습이 아니라 마치 그 공간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들게하는 입체감을 선사하는 사진이다. 전시실에는 여러 입체사진이 전시되어있었고, 고정된 입체경이 부착되어있어서 서울의 여러 곳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었다.

 

입체사진이라는 다소 생소한 사진도 흥미거리였지만, 불과 114년 전의 서울의 모습은 지금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이었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 사회적 진통의 한 원인은 우리 사회가 정말 급속하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114년 후인 2132년에 2018년을 보면 어떨까? 아마도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그 때까지 2018년을 겪은 사람도 살아있을 가능성이 크고, 입체사진보다는 이미 많이 남겨진 동영상을 통해서 2018년을 볼 것이다. 분명한 것은 마치 1904년에 2018년을 제대로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처럼 2018년에 2132년을 그려보기는 쉽지 않다. 같은 서울이라는 공간은 이렇게 세월에 따라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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