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을 권리>

Book 2020. 2. 3. 01:10

강신주 박사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시중에서 많이 보이는 정서적인 위로에 관련된 책이 아니다.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의 이유에 대한 친절한 가이드 북이다. 2020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돈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해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부분에서 자본주의가 돌아가는 원리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자본주의의 원리가 일반 사람들의 삶의 곳곳에 이미 스며들었기 때문에 이 글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우선 사람들은 지금 당장 쓰지 않더라도 통장의 돈을 항상 의식하고 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는 것은 마치 공기가 없는 것처럼 절망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통장의 돈이 얼마있는 지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서 책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엇인가를 모아둔다는 것은 곧 미래에 대한 염려를 보여줍니다. 미래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자신의 손 안에 두기 위해 돈을 비축하려고 합니다. 화폐경제가 확립되어야 비로소 미래에 대한 염려가 가능하고, 미래를 염두에 둔 시간관념도 가능해집니다.” 자본주의적 시간의식에 대해서 저자는 잘 설명하고 있다. 영화 “In time”에서도 부자들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느긋하게 사는 가하면 가난한 자들은 항상 시간에 쫒기며 어렵게 살아간다. 과연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살지 않았다면 어떠한 시간관념을 가지고 살았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자본주의 사회에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울지는 몰라도 팍팍한 느낌을 주는 이유로 잘 설명해두었다. “화폐경제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 이루어졌던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와해시키고, 오직 돈으로만 개인들이 서로 연결되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물론 모든 인간관계가 돈으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돈이 문제가 되는 것은 확실하다. 돈이 어떤 면에서는 공정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 어차피 사람은 타인을 판단할 때 어떠한 기준을 들게 마련이다. 돈이 없었다면 못생긴 사람이나 소수인종의 사람들은 차별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못생겨도 소수인종이라도 돈이 있으면 일단 존중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돈의 중요성이 너무 심해지다보니 그 사람이 무엇을 하든 돈만 많으면 된다는 배금주의 사상이 세상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확실히 자본주의는 명과 암이 있다.

또한 인상깊게 읽었던 구절은 자본주의가 보장하는 자유란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아닙니다. 자본주의에서 자유는 돈을 가진 자의 자유, 소비의 자유에 불과할 뿐입니다. 소비의 자유란 결국 돈에 대한 복종의 이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이다. 대개의 사람은 자유를 꿈꾼다. 그런데 그 자유란 자본주의 안에서는 돈으로 이루어진다. 몇몇 소수의 사람을 빼고서야, 이 자유를 얻기 위해서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한다. 슬프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돈을 벌기 위해 한다. , 자유를 위해 자유가 없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쥐꼬리만한 월급쟁이라면 이러한 역설에서 나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의 저자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렇다고 비판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안을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생산-소비협동조합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용가치가 없음에도 사람들의 허영을 부추겨 기호가치를 소비하게 한다. 또한 필요이상의 돈을 모으려고 악착같이 욕심을 내서 불평등을 키우기도 한다. 생협의 세상에서는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생협의 돈은 축재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필요한 것을 교환할 수 있는 정도의 권능이 있을 뿐이다. 아직 이러한 세상이 도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자본주의 힘은 강대하다. 그래도 가끔은 다른 세상을 꿈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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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s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