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든: 세기의 내부고발자>

Cartoon 2019. 7. 13. 18:55

 

에드워드 스노든. 나는 이 남자가 한 행위에 대해서 지난 몇 년간 고민해왔다. 2013년 그가 NSA가 미국국민을 대상으로 불법적으로 정보를 취득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에 폭로한 후, 그의 행동이 과연 영웅적이냐 반역적이냐에 대해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꽤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시사만화가 테드 롤(Ted Rall)은 핵심을 중심으로 잘 정리하여 스노든에 대한 만화를 그렸다. 이 만화는 내가 스노든 사건에 대해 관점을 세울 수 있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내부고발자는 기본적으로 조직 내에 있으면 외부인이 알 수 없는 불법적인 내용을 조직 내에 있는 사람이 언론 등 기타 외부의 단체에 알리는 것을 뜻한다. 이 내부고발은 사회에서 부패의 자정효과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정부 모르게 기업이 불법적인 일을 행할 수 있다. 이 때 내부고발자가 정부에 이를 알리게 되면 정부에서는 그 정보를 가지고 불법적인 일을 처벌하고 추후에 예방할 수 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기업의 내부고발을 독려하고 내부고발자를 지키려는 노력을 적어도 겉으로는 한다.

문제는 정부에 대한 내부고발이다. 정부도 불법적인 일은 한다. 그 불법적인 일이 우발적인 경우에는 정부에서도 종종 사과를 하고 일어난 피해에 대해 책임을 진다. 문제는 불법적인 일이 체계적으로 일어날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 이다. 스노든 사건의 경우에는 정부가 저질은 일에 대해 책임을 부인하고 불법적인 일을 한 사람을 매도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NSA에서 하는 일을 대개 국가기밀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계약할 때, 기밀누설을 하면 되지 않게 되어있다. 누설을 하면 그것은 불법으로 처벌 받는다. 그런데 그 안에서 불법적인 일을 하고 있고, 그 일이 비밀리에 진행되기 때문에 내부에서 일하는 사람이 이야기하지 않으면 밖에 있는 사람은 도무지 알 방도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부에서 일어나는 불법적인 일을 이야기를 꺼내면 바로 불법이 되는데, 사회적으로 불법적인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었을 때는 그것은 불법이 아니라는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 조직이 정부가 되었든 기업이 되었든 제3 섹터가 되었든 말이다.

스노든이 폭로를 한 후에 오바마 정부에서는 스노든을 잡기위해 혈안이 되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을 좋아하는데 그에 대해 실망한 점 중 하나가 되었다. 잘못된 점이 있으면 있다고 진실하게 인정하고 고쳐도 모자란데 그를 잡기 위해서 전세계를 들쑤시고 다닌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단기적으로 국익에 손해가 될 수 있다. 우선 미국의 이미지에 먹칠이 되었으며 공개된 정보가 타국에 의해서 악용될 소지도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불법적인 행동이 합리화되는 것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스노든의 행위는 영웅적이라고 추앙받을 만하다.

세상은 이론적으로 돌아가지 않던가. 스노든이 미국의 체포를 피해서 꽤나 자유로운 언론을 차단하는 러시아로 피신했으니 말이다. 이런 것을 보면 미국이 러시아나 중국에 대해서 투명한 정부를 요구할 근거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기껏해야 자신의 불법이 절 엄중하다고 같은 불법을 행하는 정부를 욕하는 꼴이랄까. 스노든 사건을 대처하는 미국정부를 보면 러시아나 중국정부와 전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업의 불법적인 행위라든지, 범죄집단에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서 정부는 내부고발자를 십분 활용하다. 그런데 정부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내부고발자에 대해서는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한다. 기껏해야 적대국의 정부에게 간신히 살 곳을 받을 뿐이다. 물론 적법한 일을 누설하는 것은 분명히 불법이다. 문제는 불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을 시민들이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는 기밀이라는 허울 안에 계속해서 불법적인 일을 감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노든은 그러한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일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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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사이언스: 김택진>

Cartoon 2019. 7. 10. 21:05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 가서 아이가 다른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김택진>을 읽었다. <Who?>시리즈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분야별로 위인전 형식의 만화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사이언스 분야에는 퀴리부인, 파스퇴르, 테슬라 등 과학의 거성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에 NC Soft의 수장인 김택진도 있었다. 김택진이라는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그에 대해 잘 모르는 나로서는 궁금해서 후딱 읽었다.

읽으면서 근본적으로 생각한 것은 살아있는 사람에 대해서 위인전 형식으로 만들어도 좋을까하는 점이다. 우선 이 책을 발간하는 데 있어서 김택진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한다. 김택진씨의 허락을 받았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위인전의 특성상 좋은 이야기로 가득하기 때문에 김택진씨가 굳이 반대하지는 허락 요청이 와도 반대하지는 않았을 것 같기는 하다(물론 제3자가 보기에는 오글거리는 부분도 있다). 다시 논점으로 돌아가서 현재 잘 나가고 훌륭하다고 여겨지더라도 그 사람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바뀔 수 있다. 예를 들어, 시인 고은이라든지 SBS앵커 김성준 같은 경우에는 각각 폭로와 검거가 있기까지는 각 분야의 덕망있는 사람으로서 평가받았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위인전 스타일의 만화를 그리면 김택진씨가 죽을 때까지 윤리적인 행동을 꾸준히하고 사회의 공헌을 하는 잘 나가는 사람이면 모를 까 그렇지 않다면 꼭 본받을 사람일까라는데 의구심이 들 수 있다. 물론 정보전달의 차원에서 책을 보는 것은 좋지만 생존의 사람에 대해서 위인전 형식을 가지고 글을 아이들 대상으로 쓰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김택진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빌게이츠도 이 시리즈에 있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돌아가신 분은 더 이상 돌발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안전하다.

<김택진>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게임산업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문제는 이 김택진이 그것도 같은 시리즈에 있는 페러데이, 튜링, 아인슈타인, 장영실 같은 기라성 같은 사람들의 반열에 낄 수 있느냐 이다. 물론 김택진이 이루어놓은 여러 업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업적이 특히 근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게임산업의 초석을 다지고 발전시켰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는 아직 어리고(위인전에 들어가기에) 다른 노벨상을 타거나, 관념을 바꿀 정도의 이론을 제시하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인물 사이언스의 들어갈 정도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생존인물이라는 찜찜함을 제외하고는 들어가고 괜찮다고 생각한다.

물론 인물 사이언스 시리즈가 대놓고 위인전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인전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예전 초등학교 때 읽었던 위인전 스타일과 굉장히 비슷한 스타일의 네러티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김택진의 어려서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의 총명함과 노력 그리고 용기로 인하여 그 어려움을 뚫고 성과를 얻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지긋지긋한 위인전의 레파토리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른 점이 없어서 아쉽고도 안타까웠다. 이 교훈을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스타일의 위인전은 없는 것일까.

1960년대생 중 우리나라 인터넷이라든지 게임업계의 생태계를 조성하고 발전시킨 여러 사람이 있다. 지금은 당장은 어렵지만 50년 정도 후에 이들이 세상을 떠나면 본격적으로 역사적인 인물들로 평가받을 것이다. 마치 정주영, 김우중, 이병철 회장 등이 우리나라 산업화와 연계되어 평가되는 것처럼 말이다. 게임도 중요한 유희의 수단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우리나라 게임산업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만약에 살아있다면 미래의 평가가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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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롱뽀롱 뽀로로>

Cartoon 2019. 3. 31. 22:31

아이를 키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분(?)이 뽀로로이다. 감히 말하건대 우리나라 부모는 뽀로로의 덕분에 육아의 고충을 많이 덜었을 것이다. 뽀로로 장난감을 사는 것은 정말 아깝지 않은 소비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뽀로로님께서 해주신 것을 생각하면 정말 나의 작은 소비는 어쩌면 약소하다고 할 수도 있다. 뽀로로가 왜 인기인지는 어른이 내가 판단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어린 아기들에게 왜 뽀로로가 좋냐고 물어보아도 제대로 표현할 사고능력이 갖추어져 있지 있기 때문에 알 수 없다. 게다가 뽀로로가 2003년에 나와서 내가 어릴 때 뽀로로를 보지 못해서 왜 좋은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이제는 조금 흘렀으니 2000년대 중반에 태어난 지금은 청소년들에게 기억을 더듬어서 왜 좋냐고 물어볼 수는 있겠다.

 

정식이름은 <뽀롱뽀롱 뽀로로>인 속칭 뽀로로는 펭귄을 의인화하였다. 아주 특이한 점은 안경을 썼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주인공이 안경을 쓰고 나온 만화영화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제는 안경이 없는 뽀로로를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설정이 파격이라면 파격일탠데 워낙 공전의 성공을 거두어서 그의 안경은 그의 시그니쳐가 되었다.

 

안경 외에 특이한 것은 뽀로로의 성격이다. 주인공이라고 하면 모름지기 착하고, 남을 배려하는 대인배이기 마련인데 뽀로로는 밴댕이 소갈머리같은 성격을 가졌다. 남들이 잘하는 것을 시기하고 친구들에게 장난치는 어쩌면 지극히 현실적인 소인배의 모습이다. 이러한 주인공 답지 않은 성격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나름 친구들에게 절교당하지 않고 잘 살아간다. 아이들이 왜 이러한 뽀로로를 좋아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적이기는 하다. 너무 영웅적인 모습만을 비추는 기존의 만화와는 확실히 차이점이 있다.

 

<뽀롱뽀롱 뽀로로>에는 뽀로로와 그의 친구들이 나온다. 에디, 패티, 크롱, 루피, 포비 등이 있다. 그 중 가장 신기한 친구가 크롱이다. 크롱은 말을 못한다. 시종일관 크롱이라고 밖에 말을 못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친구들이 알아서 다 알아듣는 다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들과 잘 어울려서 산다. 이렇게 말을 아예 못하는 친구도 잘 살수 있다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마음이 따듯해지기도 한다.

 

어른의 입장에서 뽀로로를 보면서 이해가 가지 않은 점은 여기 나오는 출연인물들이 다들 아동인 것 같은데 보호자가 없다는 것이다. 대개 동물을 의인화해서 나오는데 부모는 한번도 보이지 않는다. 어른의 감독없이 자기들끼리 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물질적으로는 부족해 보이지도 않는다. 기본적으로 집도 있고 먹을 것도 있다. 그래서 의식주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다. 그리고 주제가에서 나오는 것처럼 노는 것이 젤 좋아를 모토로 살아가는 친구들이다. 어쩌면 이러한 상태가 인류가 염원하는 유토피아에 가깝지 않나 싶다. 물론 친구들끼리 아웅다웅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걱정이 없는 세상이 인간이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이상향이라는 점에서 원초적으로 끌리는 면이 있다.

 

회를 거듭하면서 동물을 의인화한 친구들로 시작한 <뽀롱뽀롱 뽀로로>는 로디, 뽀삐 같은 기계와 외계인같은 친구들도 포함된다. 이렇게 다양한 종류인종(?!)의 친구들이 포함되면서 잘 융화되는 것을 보다보면 인류가 가야할 지향점도 보게 된다. 다양한 인종, 종교, 사상, 민족 등등의 70억 넘는 사람들이 이 지구에 살고 있다. 이렇게 다르다보니 불가피하게 분쟁이 일어나고 때로는 전쟁이라는 참상을 겪게 된다. 인류는 서로 공존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왔지만 지금도 지구 어딘 가에서는 여러 차이로 인해 차별하고 폭력을 가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아마도 뽀로로가 그리는 세상은 그야말로 만화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선입견없고 순수한 아이들의 세상에서만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아기들이 뽀로로에 매료되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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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일기>

Cartoon 2019. 3. 21. 00:24

<대학일기>가 막을 내렸다. <낢이 사는 이야기>이후에 소소하면서 따듯하면서도 재미있는 웹툰을 목말라했었을 때 <대학일기>는 큰 즐거움을 주었다. 물론 <낢이 사는 이야기>의 작가 서나래는 내 또래인 것 같기도 해서 더 공감이 되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학일기>의 작가인 자까님은 나와 근 10여년 차이가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아직 10년 차이여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대학에서 일을 해서 요즘 사람들을 보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크게 이질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다만 <대학일기>를 보면서는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보았지만 말이다.


<대학일기>의 가장 중요한 성공 포인트 중 하나는 우선 귀여운 캐릭터이다. <낢이 사는 이야기>도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기본적으로 주인공과 그의 가족들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일기>는 거의 인간의 꼴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인종을 만들었다. 개도 아니고 곰도 아닌데 그렇다고 사람은 아니다. 가히 그 정도가 심슨의 정도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일손이 부족해서인지 색칠을 하지 않고 하얀색으로 남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귀여운 캐릭터를 만들었다. 일단 이 동그란 신인류를 잘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미 절반의 성공을 하였다고 본다.


캐릭터만 있고 내용이 없으면 롱런할 수 없다. <대학일기>는 내용면에서도 성공이었다. 기본적으로 작가인 자까님이 현역대학생인 것이 주효하였다(물론 학업과 병행하면서 그리는 데 굉장히 힘들었겠지만).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대학진학률이 1위이다.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대학을 많이 간다. 등록금이 싼 것도 아닌데 무슨 의무교육기관처럼 많이 가기 때문에 웹툰을 볼 정도의 사람이라면 대학생활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래서 공감을 하기 더욱 쉬웠다. 수강신청, 과제, 팀플, 엠티, 공강, 복학생, 학식, 고학번 등등과 같은 소재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을 것이다. 특이한 점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자까님이 수의학과라는 데 이 점은 오히려 플러스로 작용하였다. 물론 수의학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나오지 않지만 문과를 나온 나에게는 조금은 신선한 소재였다. 그래서 진부하지 않게 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대학일기>가 성공한 이유에는 자학적 개그가 종종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낢이 사는 이야기>에서도 성공요인으로 여겨지는데 일단 스스로를 희화화를 많이 한다. 일단 잘난 채, 아는 채, 있는 채를 하지 않는다. 소탈하게 자신의 욕구(특히 식욕)를 적나라하게 그리고 생활에서 나오는 노곤함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코믹 생활툰을 보는 입장에서 주인공이 뽐내면 짜증이 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낮추어 독자가 보는 데 편안함을 주는 것이다.


<대학일기>의 한계는 역시 제목에서 나온 것처럼 대학일기이기에 대학생을 그만 두면 웹툰도 끝날 수 있다는 것이었고 실제로 20192월에 자까님이 졸업을 하고 연재중단을 선언하였다. 안그래도 작년 내내 졸업반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독자들이 <대학일기>의 종영을 걱정하였다. 중간에는 혹시 대학원을 진학하여 <대학일기>의 수명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혹은 다행히도 <대학일기>는 막을 내렸다. 내가 다행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최고일 때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천하의 자까님이라고 하더라도 생활툰의 특성상 소재의 고갈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재미의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날이 신선한 소재를 찾아 헤메야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아무리 재미있는 소재라도 한 번 쓰고 나면 신선도가 떨어졌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미가 떨어지면 독자들은 공짜로 웹툰을 보지만 준엄한 평가를 내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자까님의 선택을 꽤 지혜롭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자까님의 하는 일이 다 잘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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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평전 스피노자>

Cartoon 2019. 3. 11. 17:00

스피노자라고 하면 고등학교 윤리시간(그렇다 윤리시간에는 철학부분도 상당히 들어갔다)에 잠깐 나오는 유럽의 철학자로 나에게는 기억된다. 내신이나 수능시험을 위해서 외워야하는 스피노자의 부분은 이 분이 범신론(汎神論)의 입장을 견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신이다라는 뉘앙스가 나오면 스피노자를 찍고는 했다. 하지만 그는 아쉽게도 다른 철학자 칸트, 헤겔, 루소 급으로 다루지지 못하고 나에게는 그가 정확히 했는지 안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더라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긍정적인 인물로 기억이 된다. 그 외에는 스피노자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뜻하지 않게 읽게 된 <그래픽 평전 스피노자>는 그를 다시 보게된 계기가 되었다.


<그래픽 평전 스피노자>를 읽고 나서 느낀 그에 대한 감정은 당대 최고의 쿨가이라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1632년에 네델란드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났다. 나는 유태인들을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이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지금의 이스라엘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2000년 가까이 전세계를 떠돌아 다니면 자신의 문화와 관습을 지켜나갔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어디에서나 환영받지 못하였는데 스피노자 가족이 포르투갈에 있을 때에서는 가톨릭교로 개종하기를 강요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조부모는 겉으로는 가톨릭인 척을 하고 집에서는 유대교의 관습을 지켰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지배를 받은 것이 35년인데도 거의 주체성을 잃어버릴 뻔했다. 그런데 민족의 주거지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살면서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지킨다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 유태인들은 강력한 유대감으로 이를 지켜낸다.


이렇게 그들의 문화를 지킨 것도 놀라운 데 스피노자는 그에 못지 않은 놀라운 일을 한다. 스스로 유태인이지만 유태교를 부인한 것이다. 스피노자는 배우면 배울수록 자신과 맞지 않은 유태교와 점차 멀어진다. 그래서 유대인 공동체를 이끄는 파르나짐들도 이를 걱정하고 그를 설득하려 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는다. 결국 스피노자는 유대인 공동체에서 쫒겨 나는 데 그는 오히려 스스로 나왔다고 당당히 이야기를 한다. 이것은 상당한 용기와 자기 확신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유대인 공동체는 그를 잘 봐주고 있었는데 이러한 든든한 지원을 끊고 홀로서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생계를 꾸리기 위하여 렌즈를 만드는 사람이 된다. 렌즈를 세공한다고 철학을 게을리 한 것은 아니었다. 렌즈 외에는 철학에 심혈을 쏟아가면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킨다. 나는 이 점을 인상깊게 보았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공부를 한다고 그 공부에만 힘을 쏟는다고 꼭 비례해서 결과가 산출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공부와는 아예 다른 일을 하면서 한쪽으로 공부에 남은 시간을 매진하는 것이 오히려 더 성과에는 도움이 되는 느낌이 있다. 공부는 절대적인 양도 중요하지만 집중력이 기반으로 된 상대적인 양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오히려 생활이 안정이 되니 더 안정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쿨가이라고 생각이 드는 대목은 하이델베르크 교수직을 걷어차는데에서 더 들어난다. 그가 쓴 <, 인간, 그리고 인간의 행복에 관한 소론>, <신학정치론>등이 인정받아 그는 유명해졌고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는 그를 초빙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이 제안을 교수직은 자신의 사상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학문을 하는 입장에서 교수직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교수를 하게 되면 나름대로 고충이 있고, 기관에 속해 있기 때문에 자유인에 비하면 오히려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다. 이를 감안하고 스피노자는 교수직을 거절한 것이다. 그의 철학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의 삶의 궤적은 400년이 지난 지금도 상당히 울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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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punch man>

Cartoon 2019. 3. 3. 22:00

<원펀치맨>은 일본 히어로 만화이다. 기본적인 설정이 주먹 한방이면 그 어떤 적수도 해치울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해치운다. 이것은 그동안의 히어로물에서는 볼 수 없는 설정이다. 물론 잠깐 원펀맨(사이타마)이 어떻게 강력해졌는지는 나온다. 그에 따르면 팔굽혀 펴기 100, 윗몸일으키기 100, 10키로 달리기를 매일 했더니 지금처럼 힘이 세졌다고 주장한다. 원펀맨의 수제자인 제노스는 이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 만화니까 가능한 일이다.


이 만화는 만화다움을 아예 대놓고 보여준다. 대부분 히어로물의 주인공은 처음에는 약했으나 차근차근 단계를 올라가면서 강해진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만화가 <드레곤볼>이다. 손오공은 물론 자질이 있었지만 차근차근 수련을 해나가면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물로 거듭난다. 하지만 <원펀맨>은 이와 반대로 비교적 짧은 수련을 통해서 머리카락을 잃고 이미 완성형 히어로로 거듭난다. 그래서 괴물들을 해치우는 데 거침이 없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극중의 긴장감이 전혀 없어지는데 놀랍게도 <원펀맨>은 재미있다.


<원펀맨>이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주인공이 생활밀착형이라는 것이다. 대부분 히어로가 거대한 이유를 가지고 악당들과 싸우는데 비해서 원펀맨은 사소한 것으로 화를 내고 싸움에 참전한다. 예를 들어 상대방과 싸워서 화가 몹시난 이유가 싸우느라 토요일 슈퍼마켓 세일 놓칠 수 있다라는 사실 때문이다. 또한 대머리들이 도심에서 난동을 일으키는데 자신도 대머리이기 때문에 오해받기 싫어서 그들을 제거하려고 나선다. 이 어처구니 없는 이유는 실소를 자아낸다. 어쩌면 작가는 어차피 주인공이 이길 거라는 것이 확실한 히어로물이라면 아예 대놓고 이기는 것을 상정하고 다른 곳에서 웃음을 찾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원펀맨>이 재미있는 다른 이유는 세상을 재미있게 풍자하기 때문이다. 극중에서는 히어로 자격시험이라는 것이 있다. 시험과목은 좌우반복뛰기, 1500 미터 달리기, 역기들기, 포환던지기, 제자리뛰기, 두더지 잡기, 펀칭머신 등을 본다. 물론 이러한 과목들이 히어로가 수행하는 일들과 아예 관계가 없지는 않지만 실제 히어로가 하는 일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이 말도 안되는 히어로 자격시험을 보면서 현실에 있는 수많은 자격시험을 떠오르게 한다. 취업을 하기 위해서 혹은 진학을 하기 위해서 많은 자격증을 따야 한다. 이 자격증은 기본적으로 정보의 비대칭을 줄여준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컴퓨터를 잘 하는지를 알고 싶으면 컴퓨터 관련 자격증이 있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자격증 없이 말로만 컴퓨터를 잘 한다고 말하면 당사자가 아닌 이상에야 알 수 없다. 그리고 자격증없이 실제 능력을 보여주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자격증은 빠른 시간 안에 자격증자가 어떠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문제는 이 자격증이 그 사람이 가진 기술의 일부분만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토익고득점자가 영어를 실제로는 못하는 경우가 더러있는데 이유는 고득점을 맞기 위해서 시험에 맞추어서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시험과 실제는 불가피하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원펀맨도 히어로 자격시험에서 C를 받는다. 실제로 그의 능력은 특S이상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성적은 C에 불과하다. 주위를 보면 실제 실력보다 점수가 높은 사람이 있고 반대로 실제의 실력보다 성적이 낮은 경우도 있다. 이러한 사실을 도외시한채 자격증이나 시험점수에 목을 매어야 하는 상황이 원펀맨이 C를 받고 풀죽어있는 모습을 나오는 장면에서 잘 보여준다.


이 외에도 원펀맨은 자신이 히어로서 인지도가 없음을 한탄하기도 하고, 살고 있는 집의 집세를 걱정하기도 하는 평범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이외에도 계속해서 다양한 류의 악당들이 나타나는데 작가의 창의성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촉수물, 사이보그, 괴수, 미남미녀 등등 끝이 없이 나오는데 이러한 악당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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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로자>

Cartoon 2019. 2. 27. 00:22



지금 세상이 어수선하고 살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만 혼란스러웠다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100여년 전에는 더 혼란스러우면 혼란스러웠지 덜 혼란스러운 시절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18세기 1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후 유럽에는 근대적 의미의 자본주의가 싹을 띄운다. 기계화를 원동력삼아 많은 상품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19세기말 있었던 2차 산업혁명은 자본주의가 득세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구를 극대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힘을 원동력 삼아서 자본을 증식하면서 스스로를 확장시킨다. 이러한 확장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이 있었다. 그래서 그 반대태제로서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와 맞서게 되었다.


지금이야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와의 대결에서 패배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거나 명목상으로만 남는 경우가 많아졌다. 물론 공산주의가 패배한 이유는 다양하지만 많은 경우 공산주의가 독재와 결부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고, 자본주의가 자유민주주의와 연결되었기 때문도 있다. 그렇다고해서 자본주의가 완벽한 사회체계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대부분 국가가 수정자본주의를 택하고 있지만 불평등이나 노동착취같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고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순수자본주의가 완강했던 100여년 전은 그 폐해가 더 노골적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폐해에 맞서 싸웠는데 그 중 한명이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이다. 1871년생인 로자 룩셈부르크는 당시대에 활동했던 레닌이나 트로츠키에 비한다면 그 유명세가 덜 할 수도 있지만 그의 영향력은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반추되고 있다. <레드로자>는 그에 대한 전기를 만화로 그린 책이다.


<레드로자>에서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이야기를 연대별로 개인적인 이야기와 그의 사회적 이야기를 잘 섞어서 그렸다. 로자의 생이 투쟁으로 점철된 만큼 만화를 보면서 웃을 수 있는 장면은 거의 없고 진지하게 읽게된다. 게다가 글쓴이이자 그린이인 케이트 에반스(Kate Evans)의 그림체가 세상을 미화해서 그리지 않아서 더욱 깊은 숨을 들여마시고 읽게되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사회주의로서 힘들게 살았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이었고, 여자였기 때문에 더 힘들게 살았다(심지어 그는 다리도 저는 상태로 살았다). 기본적으로 유대인은 유럽전역에서 백안시당하는 민족이었다. 게다가 19세기말 20세기초 여성의 지위는 참정권조차 없었을 만큼 낮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대인 여성이 학교를 가서 박사를 따고 국가가 탐탁지 않아하는 사회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유무형의 반대에 부딪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이 책은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로자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주장한다. 이러한 로자의 주장은 건강한 자본주의를 위해서라도 도움이 되는 지적이 많다. 흔히 볼 수 있었던 사용자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자본의 야욕이 인간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이끄는 것을 경고하였다. 실제로 로자가 살았던 시절에 이미 세계 1차대전(1914~1918)이 벌어진다. 물론 여러 가지 요인이 세계대전을 촉발시켰지만 기저에는 자본의 팽창이 서로 갈등을 이룬 점도 있다. 이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수백만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었다. 로자가 예측한대로 자본주의는 내적한계로 인하여 붕괴하지는 않았다. 자본주의는 여러 가지 비판사항을 받아들여서 생명력을 연장했을 뿐만 아니라 그 영향력을 가세하였다. 올해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사망한지 100년이 된 해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아직 불행히도(?) 힘을 가지고 있다. 만약에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점이 사라졌다면 어쩌면 로자를 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3차를 넘어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부가 극소수에게 집중되는 시대에서 그의 생각이 지금 어떠한 시사점을 줄 수 있는지 볼 필요가 있다. 그의 저작을 바로 읽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럴 때 <레드로자>로 그의 생각과 만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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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Cartoon 2019. 2. 17. 19:58

이미 <이끼>, <미생>, <내부자들> 등으로 대가의 반열에 오른 윤태호 작가의 또다른 걸작 <인천상륙작전>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번즈음 꼭 보아야할 작품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읽기 유쾌한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읽을 때마다 느끼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보는 내내 무거운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보아야 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인천상륙작전>이 다른 역사작품, 적어도 국사책과는 다른 점은 기본적인 관점이 소시민에게 가있다는 점이다. 일반 역사책에는 1945815일 광복, 1948510일 총선거, 1950625일 한국전쟁 같은 일들이 일자로 나열되어 있고, 그에 관련된 굵직굵직한 정치인의 행보가 나오는 데 초점을 둔다. 물론 <인천상륙작전>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이야기한다. 하지만 주요 초점은 철구 네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것이 우리나라 현대사

를 보는 시각을 전환시켜준다.


우리나라의 20세기는 정말 격동이었다. 우선 세기의 벽두부터 일본에게 지배를 당했다. 물론 공식적인 식민치하는 1910년부터 1945년이라고 하지만 일본은 그 전부터 우리나라에 와서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고 1904년에 일본이 러시아를 이기면서는 본격적으로 독자적으로 우리나라를 간섭했다. 이러한 일본의 부당한 침해에 우리나라 사람들을 분연히 일어났다. 하지만 무능한 지도층과 이미 기울어진 국운으로는 식민화를 거스르지 못했고 35년이 넘는 세월의 일제의 치하로 살게 된다. 35년은 꽤 긴 기간이다. 식민치하가 시작할 때 태어난 사람이 35살이 될 정도이니 이 때 태어난 사람들은 일본에게 지배당하는 것이 당연히 여겼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보이지 않는 독립의 꿈은 많은 사람들을 친일파로 만들었고, 한국인이 한국인을 괴롭히는 사태까지 야기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말보다 더 현실에서는 더욱 비극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원자폭탄 2대를 맞고 항복한 다음의 혼란은 엄청났을 것이다. 급작스러운 일본의 항복은 그동안 친일을 하던 사람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 때, 정상적인 사법체계는 붕괴되었고, 경찰도 허둥지둥하던 사이에 사람들 사이에 갈등을 아주 컸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인천상륙작전>에서 그리고 있는데 있었던 일이라지만 너무 가슴이 아팠다.

가슴이 더 아픈 것은 미군이 진주하면서 기존 친일파 세력을 그대로 기용했다는 것이다. 35년동안 일제치하에서 신음했던 것도 굉장히 화가나는 일인데 친일파가 처벌받지 않고 자리를 지키면서 권력을 차지한 점은 대한민국 역사의 뼈아픈 오점이다. 이러한 친일파들이 또다시 선량한 시민들을 괴롭히고 가렴주구하는 모습은 정말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슬픈 일이다.


설상가상으로 남한과 북한이 갈라져서 이념대결을 하게된다. 그래서 친일파를 척결하기 보다는 남한에서는 공산주의자를 북한에서는 자유주의자를 색출하는 데 바쁘게 된다. 김구선생님이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가서 각각의 정부가 세워진다. 이 모든 것들이 광복한지 3년만에 벌어진 일이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세계적으로도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과의 대결에서 체제의 승리를 거두기 한참전이라 갈등은 더욱 더 심각했다. 또한 사람들이 교육수준도 낮았고 방송통신의 수준도 낮았다. 그래서 실제로 무슨 일이 돌아가고 있는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상황에서 갈라졌다. 이 상황에서 한국전쟁이 벌어졌고 본격적인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졌다. 말이 전쟁이지 실제로 전쟁을 하게 되면 인간성을 말라버리고 증오만이 남는다. 전쟁이 끝나지 6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큰 후유증을 남긴 채 우리 사회에 남아있다. 이러한 현대사가 어떻게 개인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지 잘 보여줘서 더욱 와 닿았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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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Cartoon 2019. 2. 11. 01:08

윤태호 작가의 <미생>은 단순히 재미로서의 만화가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에 화두를 던져준 작품이다. 웹툰으로 시작한 <미생>은 추후 드라마로도 잘 만들어져 그 파급력은 배가되었다. 이에 수십편이 넘는 논문이 <미생>을 주제로 쓰여졌다. <미생>을 다각도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윤태호 작가가 무슨 의도로 그렸는지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읽는 독자는 자유롭게 의의를 해석할 자유가 있다.


가장 크게 다가온 문제는 비정규직 문제이다. 주인공 장그래는 일단 인턴으로 윈인터네셔날에 들어간다. 인턴이라는 제도가 언젠가부터 우리 노동시장에는 너무나도 친숙한 단어로 쓰이고 있지만 사실 인턴이라는 단어자체는 원래 의료계에서나 쓰이던 단어였다. 그런데 1990년대말 외환위기 후에 고용유연성을 늘린 다는 취지로 인턴이 들어와서 우리 사회에 정착되었다.


사실 인턴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서구사회에서 전반적으로 쓰는 제도이다. 원래 취지는 임시직으로 젊은 노동자들이 회사에 일하며 경험을 쌓고 적성에 맞는다면 이미 정직원으로 일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취업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인턴제도는 아무 경력이 없는 사람을 정직원으로 뽑아서 적성에 맞지 않아서 퇴사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여러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문제는 인턴제도를 악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는 것이다. 애당초 의미있는 경험을 쌓게 해주거나, 적성에 맞는 사람을 뽑을 의도없이 허드렛일을 시키고 버릴 의도로 버리기 위해 인턴을 뽑는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회사가 사회적 기업이 아니므로 회사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인턴은 상대적으로 을()이기 때문에 뾰족한 수가 없다. 냉혹한 현실만 맛보고 자신의 노동은 착취되기 마련이다. 이것은 노동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근본적인 이유는 노동자가 많기 때문이다. 장그래가 인턴자리조차 간신히 얻고, 장그래가 아니더라도 그 자리를 채워줄 사람은 아주 많기 때문에 회사입장에서는 장그래에게 잘 해줄 필요를 잘못 느끼는 것이다. 이런 것을 목도한 많은 노동자들이 아기를 많이 낳을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많기 때문에 노동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일자리조차 구하기 어려운 이 시기에 결혼하고 출산하는 것은 마치 끈 없이 번지점프하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출산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저출산이 지속되어 인구가 줄면 노동이 대접받는 시대가 올 것인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왜냐하면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로 인하여 많은 부분을 로봇이 수행할 것이고 인간이 하던 작업들이 무인화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같은 업무량도 적은 사람으로 수행이 가능하다. 심지어 예전과는 달리 장그래같은 사무직조차 무인화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이 대접받는 사회는 정말 요원하다.


힘들게 인턴생활을 끝내고 정규직으로 채용되더라도 노동자의 삶의 고단함을 줄지 않는다. <미생>은 이런 부분을 너무나도 가혹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려놓았다. 일을 해서 피곤한 것은 둘째치고 그 안의 구성원과의 관계가 회사를 전쟁터처럼 만든다. 대개의 회사는 기본적으로 피라미드형 구조로 되어 있는 조직구조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승진할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는 나가야하는 숙명에 빠져있다. 물론 오차장, 천과장, 김대리 같은 사람들을 만나서 나름의 의미를 찾고 회사생활을 하면 다행이겠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는 운인데다가 무한경쟁시대에 환경은 점점 척박해져서 즐거운 회사생활을 유토피아처럼 실제로는 없는 세상이 된다.


<미생>을 읽으면서 기쁨보다는 처연함을 더 많이 느꼈다. 그만큼이나 작가는 세상을 미화하지 않았다. 작품 곳곳에서 바둑에 빗대어서 상황을 설명하는데, 바둑을 배운 사람은 아니지만 많은 공감을 했다. 아직 <미생>은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또 어떠한 스토리가 그려질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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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낢이 사는 이야기>

Cartoon 2019. 2. 5. 00:00

<낢이 사는 이야기>는 작가 서나래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재미있게 그려낸 생활툰이다. 나이 드신 분들이 보기에 근래 젊은이들이 도무지 책을 읽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예전에는 문학작품을 읽으며 세상에 대한 관점을 확장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소설이나 수필 그리고 시를 읽는 사람이 예전보다는 줄어들기는 했지만 분명히 남아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문학에 대한 갈망은 변하지 않았고 다만 전달하는 방식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웹툰은 하나의 문학장르로도 자리잡고 있다. 현세대의 희노애락을 담는다는 의미에서 웹툰은 상당히 성공적인 분야가 되었다. 그리고 <낢이 사는 이야기>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를 살아가는 어느 한 대한민국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이야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낢이 사는 이야기>2019년 인기리에 연재되는 <대학일기>의 전범이라고 볼 수 있다. 소소한 생활의 아이템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재미를 준다. 특히 딸인 서나래와 어머니와의 투닥거리면서 나름 챙겨주는 관계는 남자가 보아도 재미있다. 남자인 독자로서 <낢의 사는 이야기>를 보다보면 모녀관계는 모자나 부자관계와 많이 다름을 알 수 있음을 깨달게 된다. 물론 모든 모녀관계가 낢과 그의 어머니관계 같지는 않겠지만, 이런 면에서 웹툰은 간접경험의 기능을 한다.


그리고 <낢이 사는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과장법에 있다. 특히 낢 스스로를 과장되게 그려서 웃음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힘을 쓸 때, 낢의 근육을 과장되게 크게 그린다는 든지, 혹은 얼굴을 포함한 외모를 포악하게 그려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낢 작가를 본적은 없으나 실제로 이렇게 우스꽝스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스스로 망가지는(만화상에서) 독자에게 긍정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타인을 깍아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웃음을 위해서 타인을 깍아내리는 표현을 하면 웃기더라도 기분이 찝찝한 경우가 더러있는데 <낢이 사는 이야기>에서는 그러한 감정을 느낀적이 단 한번도 있지 않았다.


또한 <낢이 사는 이야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종종 등장하는 친구 혹은 지인이 귀여운 캐릭터로 나오기 때문이다. 낢과 가까운 사람들이 아예 동물로 둔갑해 나오기 때문에 지인도 정체가 탄로나지 않아서 좋고, 보는 입장도 부담이 없어서 좋다. 팬더도 나오고, 병아리같은 것으로도 나오고 심지어 이제는 남편이 된 이과장도 원숭이로 나온다. 이러한 동물캐릭터로 더 자유롭게 내용을 표현할 수 있었다.


더불어 가족 구성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간혹 등장하는 아버지도 훌륭한 재미를 가미하는 요소이다. 아버지가 에피소드 중 큰 역할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종종 나타나서 귀여움을 발휘해서 웃음을 촉발한다. 그리고 사람은 아니지만 가족인 고양이 2마리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웅이와 뚱이가 나오는데 애묘인들이 보면 아주 좋아할 것 같다. 고양이와의 애착관계는 왜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많이 키우는 지 알 수 있게 한다.


<낢이 사는 이야기>10년 정도 연재되다 보니, 생활툰이면서 한편으로는 성장툰이기도 하다. 처음시작할 때는 대학생 복학생으로 시작해서 사회초년생 그리고 결혼까지 하면서 2015년 시즌 4를 끝으로 지금 연재가 되고 있지 않다. 인생의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그 때마다 느끼는 고민들도 이따금 에피소드에 반영되는데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받았다. 하지만 이렇게 성장하는 것을 공개한다는 것은 어떠한 면에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2015년 마지막 후기 글에 그에 대한 고충이 잘 적혀 있다. 생활툰이라는 것이 상상력이 아닌 사생활을 기반으로 그려지다 보니 잘못 표현하면 작품뿐만 아니라 개인 사생활까지 욕을 먹게되는 상황이 오게 된다고 밝혔다. 그리고 결혼을 하다보니 더 이상 자신의 생활, 개인의 것만은 아니게 된 상황에서 많은 부담을 느낀 것 같다. 연재가 종료된지 4년이 흘렀다. 아마도 그 사이에 작가 낢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할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끝까지 알아내기보다 장수미드 <Friends><How I met your mother>같이 아쉽지만 예전 그대로 냅두었으면 어떨까한다. 그리고 가끔 예전 에피소드를 보면서 그 당시 자신의 생활은 어떠했는지 생각하는 것이 더 낭만적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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