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ly Fiorina <Tough Choices>

Book 2021. 10. 10. 03:14

칼리 피오리나는 루슨트 테크놀로지와 휴렛-팩커드를 거친 미국의 대표 경영인 중 한명이었다. 2016년에 공화당 대선주자로도 얼굴을 알리면 정치인으로 면모를 보인 적이 있는데 이 책에서는 그 부분은 다루지 않고(2006년에 출간됨) 그가 경영인으로 은퇴하기까지 있었던 일을 적어놓은 것이다.

이 책은 세종대왕, 간디, 마틴루터킹, 링컨 같은 대단한 역사적 위인급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평사원부터 시작해서 최고경영자 자리까지 오른 어느 회사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회사에서 일을 해보면 알겠지만 최고경영자는 물론이거니와 임원이 되는 것조차도 너무 힘든 것도 사실이다. 이 점을 감안한다면 초인적인 사람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정말 대단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게다가 칼리 피오리나가 입사했을 때부터 승진하고 이직하는 면을 가감없이 소개를 했는데 말처럼 순탄치 않았다. 동료랑 싸운일부터 시작해서 꽤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는 그 자리에 맡는 어려운 고민들로 눈시울을 붉힌 일들이 꽤 소상하게 나와있다. 물론 이러한 갈등들과 고민들이 전인류애적인 영감을 줄 정도의 사건은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어서 더 공감이 간다. 예를 들어, 윤봉길 의사님 평전을 읽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쉽지만 당장의 현실에서 공감이 가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가 많은 기업 경영인과 달리 주목을 받는 이유는 역시 여자이기 때문인 점도 있다. 우리나라 보다 양성평등에 있어서 앞서갔다고 하는 미국에서도 여성은 아직은 상대적으로 약자인 것은 사실이다. 물론 그도 이 점을 인지하고 있지만 그것을 너무 부각시키지 않고 한 인간으로 일하는 면을 봐주기를 원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기업경영인으로 비교적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졌던 것은 개인의 영달에도 도움되었겠지만 여성 기업인 전반에도 도움이 되었다.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 일단 현재 여성경영자의 수가 적다. 이렇다보니 사람들에게는 은연중에 여성은 기업경영에 부적합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칼리 피오리나같은 사람들이 등장해서 적어도 기업을 망치지만 않는다면 성별에 따라서 색안경을 끼는 경향일 줄어들 것이다. 또한 여성이 경력단절이 일어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아마도 남성중심적인 문화가 있을 수 있다. 책에서도 간간이 이러한 사례가 나온다. 예를 들어, 이사회 구성원이 모두 남자인 경우라든 지 하면 아무래도 여성 혼자가 가면 위축될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해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사람이 여자인데 남자가 혼자가서 일을 하면 대단히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정진해서 경영자 자리까지 오른 것을 보면 아마도 후배 여성들도 영감을 받고 앞으로 전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가 의도를 했든 하지 않았든 그가 열심히 살았던 모습은 여성기업인에게 감화를 주고 크게는 사회 전반적에 내재되어 있는 여성에 대한 시선에도 조금은 변화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양성평등이 실현된다면 이런 것을 의식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 되겠다.

한국인으로 이 책을 보다가 흥미롭게 보았던 지점은 칼리 피오리나가 AT&T 업무리더로 우리나라 재벌인 LG에 협상을 하러 한국에 온 부분이다. 1990년대 초반에 오게 되는데 그 당시 우리나라 여성근로자의 위치는 지금과 달리 더 낮았던 것 같다. 일단 인솔단장이 여자라는 점에 대단히 놀랬고, 칼리 피오리나는 여성이 엘리베이터 운용이나 비서밖에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점은 우리도 많이 변한 것 같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특유의 술문화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뭔가 술이 취해야 친해지고 협상도 잘 되는 문화를 이야기했는데 이 점은 많이 변하지 않은 것 같다. 3자의 눈으로 우리의 과거를 보는 재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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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준 <매헌 윤봉길>

Book 2021. 10. 9. 20:34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윤봉길이라는 이름 석자는 안다. 하지만 우리가 윤봉길 의사에 대해서는 홍커우 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진 것 외에는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윤의사님께서 짧은 인생을 불꽃같이 살아간 것은 사실이지만 폭탄의거를 제외하고도 나라를 위해 다양한 일을 하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의거 전에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거사를 치러내실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른다. <매헌 윤봉길>은 윤봉길 의사가 걸어온 길을 담담히 적어놓았는데 그의 발자취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영감을 준다.

윤의사님께서 24세에 돌아가시기 때문에 아무리 그 당시 평균나이를 생각한다고 하지만 상해에서의 거사만 하셨을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그가 거사를 치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일단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에는 고향에서 농촌운동을 한다. 매헌은 농촌에서 야학 활동을 하는데 교육을 위해서 <농민독본>을 직접 집필한다. 그 책을 기초로 우리나라 농민을 일깨우려는 노력을 한다. 사실 나는 이 부분을 전혀 알지 못했는데 아마도 폭탄의거라는 큰 사건에 매헌이라고 하면 공격적인 독립운동을 한 분으로만 알았던 것이다.

또한 우리는 윤의사님이 도시락 폭탄을 냅다 던진줄로만 알 수도 있다. 그런데 그 폭탄을 던지지까지는 극강의 인고의 시간이 있었다. 물론 의거를 자체적으로 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윤의사님은 단계를 밟아서 임무를 맡았다. 우선 중국으로 망명하고 독립운동의 중심이었던 김구선생님을 찾아가게 된다. 그런데 임시정부 입장에서 윤의사님같은 의기로운 젊은이가 모여드는 것은 좋지만 확실한 실력와 타이밍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다. 윤의사님은 어떻게든 일본정부에 타격을 주기 위해서 빨리 무언 가를 하고 싶어했는데 지도부에서는 일단 적당한 때를 기다려보자고 한다. 나라를 빼앗긴 아픔에 시달리던 윤의사님은 괴로웠지만 분기를 다스리면서 자신의 때를 기다린다. 그리고 기다린 끝에 때는 찾아왔고 오랜 기다림이 떨릴 수도 있었겠지만 담담하게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윤의사님은 때를 보내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 중 하나는 아마도 고국에 있는 가족때문일 것이다. 사나이로 조국을 위해 큰 일을 하겠다고 가족을 떠나 중국으로 왔는데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 뜻을 접지 않았다. 그리고 거사를 성공했을 때에는 가족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이 뻔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25세였던 그에게는 두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남긴다.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윤의사님 아들은 아버지를 보지 못한 한이 있겠지만 아버지께서 남긴 업적을 생각하면 그 어느 집안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자긍심이 될 것이다.

그의 고결한 위엄은 그가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그가 죽기 전에 아직은 우리가 힘이 약해 외세의 지배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세계의 대세에 의해 나라의 독립은 머지않아 꼭 실현되리라 믿어 마지 않으면, 대한남아로서 할 일을 하고 미련 없이 떠나가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정말 남자다운 풍모이다. 힘없는 여자들을 성폭행하는 거지같은 남자의 반대의 모습같다. 진짜 사나이가 윤봉길이다.

그가 거사를 치르고 이 세상을 뜬 것이 1932년이다. 벌써 90년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우리가 지금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에는 윤의사님같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우리는 의사님 같은 분들게 빚을 지고 있다. 우리가 그 빚을 갚는 방법은 독립적으로 더 잘 사는 수 밖에 없다. 만약에 또다시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다면 윤의사님은 테러리스트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우리땅에서 우리 마음대로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국력을 길러 그의 이름이 더렵혀지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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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외 <중국에게 묻다>

Book 2021. 10. 6. 22:45

중국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도저히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영향을 주고받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두 나라 간에는 공통점도 많다. 하지만 이웃 나라인가 싶을 정도로 다른 점도 있다. 그리고 중국은 나라 사이즈가 크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공부는 게을리 하면 안된다. <중국에게 묻다>는 중국의 전문가들과의 대담으로 이루어져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도시화, 다민족, 인구, 과학정책, 교육정책 등 다양하다. 그래서 책을 읽고나면 전반적으로 돌아가는 대략적인 형태를 파악할 수 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인구와 관련된 글이었다. 중국도 저출산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일단 이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중국의 인구는 14억으로 도무지 사람이 부족하다는 말이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구가 많은 만큼 국가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사람도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중국경제발전을 견인했던 것도 많은 인구였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로 세계의 공장이 되면서 중국경제의 견인차가 되었다. 그런데 저출산이 심화되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 대안으로 많은 정책을 내놓고 있는데 무인 택시같은 자동화도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이 인구감소로 인한 대책을 내놓는 것을 보면서 극심한 저출산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도 눈여겨볼 만하다. 물론 아직 중국의 과학기술이 미국만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막대한 투자는 몇몇 분야에서는 우리를 넘어섰다. 우리가 중국보다 잘 산지는 대략 40여년 정도 된다. 개화기 전에는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중국을 가기도 했다. 그리고 개화기 이후에는 우리나라와 중국보다 암흑의 시간을 보냈고 우리나라가 산업화를 먼저 성공한 후 중국보다 잘 살게 되었다. 그것이 길게 잡아서 70년대 이후라고 하면 40년이 된 것이다. 이 시간을 통하면서 우리는 중국이라고 하면 후진국이라는 관념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빠르게 발전하면서 우리를 따라오고 있다. 그리고 우리와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은 수준까지 왔다고 본다. 그리고 어쩌면 우위를 보일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된 사실을 감지하지 못하고 중국의 뒤처지는 모습만 집중한다면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변화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만하다가 큰 아픔을 겪은 적이 우리는 있다. 1600년대 떠오르는 청나라를 오랑케라고 파악하고 무시하다가 국가적인 치욕을 당한 적이 있다. 그리고 개화기 때 빠르게 변화하지 못하고 일본을 무시하다가 식민지 생활을 한적도 있다. 그런데 이를 망각하고 중국을 한심한 나라라고 치부했다가는 또다시 슬픔을 겪을 수 있다. 중국은 우리보다 더 치열하게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투자하고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20127월에 발간되었다. 이 말은 내용은 대부분 2011년에 기반으로 작성되었다는 것이다. 10년이 지난 2021년에 보면 중국이 또 달라져 있는 면은 확인할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예를 들어, 교육 부분에서 중국에 세계적인 일류대학이 없다고 아쉬워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10년 사이에 베이징대, 칭화대 같은 중국의 간판대학은 욱일승천하여 세계적인 명문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준으로 올라섰다. 그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중국의 학교수준이 많이 좋아졌고 체계화되었다. 이 책이 작성될 때는 후진타오 정권의 말기였는데 이제는 시진핑 정권이 영속화가 된 시절이되었다. 이 시진핑 정권의 영속화는 중국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것이 중국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지 부정적인 영향을 줄지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글로벌 스탠다드에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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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영진 외 <딜레마와 제도의 설계>

Book 2021. 10. 5. 23:07

개인이 되었든 국가가 되었든 매일 의사결정을 한다. 수많은 의사결정 중에 어떤 것은 쉽게 할 수 있고 어떤 것은 몹시 어렵게 해야만 한다. 많은 학자들이 특히 어렵게 내려지는 의사결정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다. 대개는 정보가 부족하거나 정보는 충분한데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서 의사결정자가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런데 때로는 가용할 정보도 충분하고 정보를 이용할 능력도 충분한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그 경우를 깊게 고민하여 나온 이론이 딜레마 이론이다.

의사결정자가 충분한 정보과 능력이 있어도 딜레마를 느끼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책에서는 4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나온다. 첫째, 분절성(discreteness)이다. 의사선택의 대안이 분절되어 있어야 한다(논의의 편의를 위해서 대안이 2개라고 하자). 즉 선택 대안이 절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약에 분절성이 없다면 의사결정자는 대충 선택대안을 혼합하여 선택하면 되고 그렇게 되면 딜레마가 생기지 않는다. 두 번째 조건은 상충성(trade-off)이다. 두 대안을 모두 선택할 수 없다. 만약에 대안을 모두 고를 수 있다면 고민이 있을 때 둘 다 선택하면 되므로 의사결정자에게는 딜레마가 생기지 않는다. 세 번째 조건은 균등성(equality)이다. 대안들의 결과가치가 동일해야 한다. 만약에 A라는 대안이 B라는 대안보다 더 큰 효익을 가져온다면 의사결정자는 특별한 고민없이 A를 고르게 될 것이다. 네 번째 조건은 선택불가피성(unavoidability)이다. 만약에 의사결정자가 절충할 수도 없고, 둘 중에 하나만 골라야 하며, 같은 결과를 내놓는 대안이 있더라도 고르지 않을 자유가 있다면 선택을 포기하면 된다. 하지만 현실상 반드시 선택을 해야만 한다면 의사결정자에게는 딜레마가 생기게 된다.

딜레마 이론은 사회과학 전반에서 응용되고 있다. 이 책에서도 노동위원회 분쟁제도, 전자정부특별위원회, 수도권 입지규제, 전자정부 추진 등이 소개되어 있다. 딜레마 이론이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이윤수의 영남권 신공항에 대한 2019년 논문을 통해서 알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지금도 갈등이 제대로 봉합되지 않은 영남권 신공항 문제는 시작은 영남권에 공항이 더 필요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신공항의 후보지로 경북 밀양과 부산의 가덕도가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이 두 후보지 간의 경쟁이 시작되고 중앙정부에서는 선택의 압박이 느끼게 된다. 이 경우가 의사결정자인 중앙정부에게 딜레마가 되는 이유는 첫째, 가덕도와 밀양이라는 선택지를 혼합할 수 없다. 공항을 대충 밀양에서 조금 짓고 가덕도에 조금 지을 수는 없는 느릇이다. 둘째, 밀양과 가덕도를 모두 선택할 수도 없었다. 물론 수요가 아주 많고 중앙정부가 아주 재원이 풍부하다면 밀양은 밀양대로 공항을 짓고 가덕도는 가덕도대로 공항을 지으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미 우리나라에 공항은 충분하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공항을 짓는 데에는 수조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공항을 2개를 지을 수 없었다. , 공항을 지으려면 둘 중에 하나만 지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셋째, 기대 결과가 아주 비슷했다. 밀양에 공항을 지으나 가덕도에 공항을 지으나 기대되는 결과가 비슷하였다. 만약에 한쪽이 압도적으로 우위를 보이는 선택지라면 중앙정부에서도 큰 고민없이 우월한 선택지를 고를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중앙정부가 시간내에 결정을 내려야 했었다. 실제로 그래서 이명박 정부에서는 정치적인 부담에도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선언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대안에도 없는 김해공항 증축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는 가덕도에 영남권 신공항을 짓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물론 현실이 이론에서처럼 예측되지는 않는다. 위의 영남권 신공항의 경우도 대안에 없던 결정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는 조금 체계화해서 분석한다면 앞으로 있을 일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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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ald Kettl <The divided states of America>

Book 2021. 9. 9. 00:00

우리나라에서는 분권화는 정도의 차이만 있지 대체적으로 공감하는 정책방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동안 서울중심 혹은 수도권 중심으로 짜여진 국정운영원리를 지방정부에 권한을 배분하는 것이 골자이다. 그래서 1995년부터는 지방자치선거도 시행되고 있다. 이러한 지방분권화의 모델은 미국을 따라하는 부분이 있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처음부터 분권화가 잘 되어있는 연방제 국가였고 우리나라는 처음은 중앙집권제였고 지금도 중앙집권제이지만 점차 분권화하여 낮은 수준에서의 연방제를 계획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연방제급의 분권화가 바람직하냐의 문제이다.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분권화의 장점은 상당하다. 우선 정부성과를 증진시킬 수 있다. 중앙정부가 일괄적으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면 지방의 사정을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방정부가 공공서비스를 책임지고 제공한다면 시민들이 원하는 공공서비스를 지역에 맞게 누릴 수 있게 된다. 결국 전반적으로 시민들의 만족도가 올라갈 수 있다. 또한 정부의 책무성이 증가될 수 있다. 모든 일이 중앙정부에서 처리된다면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에 시민 개인이나 공무원을 책임지게 하게 만들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권화되어 보일 수 있는 수준으로 일이 진행된다면 책임규명도 쉬워질 것이다.

이러한 분권화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불평등이다. 중앙집권 국가에서는 지역간 격차가 심해질 경우에 중앙정부가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런데 연방제 국가에서는 지방정부에 권한이 비교적 강해서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잘 사는 지역은 더 잘 살 수 있고 못사는 지역은 더 못살게 되는 지역간 부익부 빈익빈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연방제 국가인 미국에서 벌어지는 지역간 격차를 다방면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격차가 미국을 병들게 하고 있다고 진지하게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상태가 된 것은 미국의 시작 자체가 연방제로 디자인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예전 조선시대의 영토를 그대로 받은 것과는 달리 미국은 처음 시작할 때는 지금의 미국영토의 모습이 아니었다. 영국이 지배하는 영토도 있었고 프랑스, 스페인이 지배하는 영토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무주공산같은 곳도 있었다. 그러다가 18세기 중엽에 독립운동이 서서히 일어나서 영국과 독립전쟁을 펼쳐서 미국이 세워지게 된다. 일단 아메리카 대륙 영토가 광활하여 지역색이 아주 뚜렷하였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교통, 통신수단도 변변치 않은데중앙정부가 지방을 통치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지방정부가 자체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게 더 현실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현재가 되고 보니 이 연방제가 여러 문제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 대척점에 서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은 미국만한 영토를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나라보다 더한 중앙집권제 국가로 운영 중이다. 물론 중국도 중앙집권의 폐해를 깨달았는지 혹은 중앙집권이 비현실적인지 재정분권화는 미국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분권화는 여러 자치영토가 있음에도 제약되어 있다. 그렇다면 연방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인 불평등 문제가 중국에는 없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중국의 경우에는 동쪽의 연안지역은 매우 잘 살고 서쪽의 내륙지방은 매우 못산다. 그 격차가 미국못지 않다. 이를 보면 격차는 연방제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도주의 입장에 따르면 한나라가 어느 형태의 국가거버넌스를 갖느냐는 행정이 운영되는데 큰 영향을 준다. 미국의 경우에는 법치국가이기 때문에 이러한 점이 더 크게 부각될 수 있다. 그럼에도 완벽한 제도는 없고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연방제 국가라도 운용의 묘를 찾다보면 핵심적인 문제인 지역격차의 문제도 해결될 수는 없을 지언정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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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할 독서

Myself 2021. 9. 7.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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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0) 2018.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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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Book 2021. 9. 7. 17:33

어느 책이 고전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당시대의 인기를 넘어서 시간이 흘러읽어도 변치않고 의미가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닐까한다. 그런 의미에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고전이 될 후보로 적합하다(물론 유홍준이 사망시까지 문제가 없어야한다). 1990년대에 나온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우리나라 자연과 문화재는 물론 이거니와 이제는 북한, 중국, 일본까지 그 영역을 넓혔는데 그의 전문지식이 배여든 여행기는 언제 읽어도 재미있고 유익하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1994년에 나왔다. 그래서인지 문화재를 제외한 사회 풍겨이 들어가있는 사진들이 예전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리고 흑백사진으로 들어가 있어서 예전 느낌이 물씬 난다. 나는 이 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답사기의 중요한 점중 하나는 그 당시의 상황을 잘 담아내는 것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더 오래된 문화재를 설명하지만 곁들여서 1990년대 초반의 모습을 잘 담아냈다는 사료로 가치가 충분히 있다. 마치 정철의 <관동별곡>1500년대 말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좋아하는 또다른 이유는 오류가능성을 저자가 흔쾌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것이다. 이 책의 말미에는 첫 번째 답사기의 정정과 보완의 섹션을 만들었고 제목으로 나의 오류에 대한 사과와 변명이라는 제목을 써놓았다. 지금이야 독자와 작가가 온라인으로 실시간으로 소통을 할 수 있지만 1990년대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무슨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정답을 쓴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작가도 충분히 실수할 수 있고 몰랐던 점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솔직 담백하게 인정하고 때로는 양해를 구하는 것이 도리이다. 나는 이러한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 더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자가 우리나라 문화재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저자가 하루는 독자에게 문의를 받았다고 한다. “다름아니라 우리 문화가 고유한 특색을 갖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그것이 혹 국수적인 자기고집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일어나서 여쭙고 싶습니다...우리나라엔 마야의 제단 같은 것도 없고 이집트의 피라미드, 로마의 꼴로쎼움, 중국의 자금성, 인도의 타지마할 같은 세계적인 유물과 비교하면 초라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어요.(157).” 충분히 가능한 생각이다. 우리나라에 다른 나라의 유물을 눌러버릴 압도적인 문화재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의 현답이 이러한 우문에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 맞습니다. 우리에겐 피라미드도 타지마할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 없는 나라가 왜 우리나라뿐인가요? 일본에 있습니까, 프랑스에 있습니다? 마야의 제단은 마야제국 이외의 나라엔 없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세계에서 제일가는 유물만 골라서 우리와 비교하며 스스로 비참에 빠집니까?...그렇게 비교해서 견딜 수 있는 나라와 민족이 어디 있겠습니까?(158)” 물론 우리나라 문화재만 고집하고 숭앙하는 독선을 피해야겠지만 우리 문화재는 아무 것도 없다고 자조할 필요도 없다(실제로도 아니고). 타인의 것도 인정하고 나도 인정하면 된다.

이 책의 석굴암편에 나와있는 석굴암 복원사업에 대한 문제는 지금도 충분히 숙고해볼 만하다. 석굴암이 발견된 후, 일제 강점기, 군사정권 시대를 거치면서 아쉽게 제대로 복원되지 못했다고 한다. 석굴암에 대한 정치권의 지대한 관심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정치권의 관심은 어떤 일을 진행시키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의 관심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재적소에 전문가를 등용하여 너무 조급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개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문화재 발굴, 복원의 일이 많을 탠데 이 원칙을 지킨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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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한지테마파크>

Exhibition 2021. 9. 6. 21:53

21세기가 도래한지도 20. 어느덧 우리는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데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종이의 존재를 점차 잊고 있다. 15년전만 하더라도 지하철에서 무가지를 들고 신문을 보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모두 스마트폰을 들고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이란 무슨 의미일까. <원주한지테마파크>에서는 21세기의 종이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하는 공간이다.

나는 학창시절에 컴퓨터를 배우기는 했지만 대개 종이책을 본 세대로서 종이가 아주 익숙하다. 이러한 종이의 역사는 생각보다는 짧다. 서기 105년에 중국에서 채륜이라는 사람이 발명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불교가 전해지면서 종이기술도 같이 들어왔다고 여겨지는데 그것이 375년정도라고 한다.

종이의 역사는 그렇다치고 종이와 원주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 수 있다. 나는 그동안 전혀 몰랐는데 원주가 한지의 본고장이라고 한다. 우선 한지의 원료가 되는 닥나무가 원주에서 많이 난다고 한다. 게다가 원주는 조선시대부터 강원감영이 있었는데 종이의 수요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지를 만드는 곳이 많았다고 한다. 현대에는 한지공장도 많았다고 하는데 점차 수요가 줄어들어서 지금은 간신히 명맥을 유지한다고 한다.

이 원주한지테마파크에서 나는 한지와 종이와의 차이를 알 수 있었다. 물론 기본적으로 한지는 종이의 한종류이다. 그런데 한지는 우리나라종이라는 뜻으로 닥나무를 주재료로 물과 닥풀을 혼합하여 한지발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손으로 떠낸 종이라고 한다. 그래서 손이 많이 가는 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일반 사무 A4용지와는 다른 질감을 대번에 알 수 있다.

물론 원주가 한지로 유명하다지만 다른 곳도 충분히 한지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다른 한지와 다른 특징으로는 원주한지는 공예품에 적합하다고 한다. 심지어 종이인데 700년 넘게 보관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점이 21세기 종이의 중요성과 맥을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종이는 실용적인 의미로 사용된다기 보다는 예술적인 의미로 더 사용될 것이다. 종이는 다른 재료와는 다른 종이만의 독특한 질감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점을 십분활용하여 예술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원주한지테마파크에서는 종이의 역사와 한지를 제작하는 것에 대해 전시를 했을 뿐만 아니라 한지를 주제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시간관계상 아쉽게 전시만 보았지만 한지공예 체험활동이 있었다. 또한 현장에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체험키트도 판매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지아카데미라고 해서 여러 수업도 있었는데 이것은 여러번 하기 때문에 원주에 사는 사람들이 하기에 적합할 것 같다. 이러한 다채로운 행사가 종이가 한물간 매체로 남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살아있는 매력적인 존재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한다.

한지테마파크는 한지개발원이라는 사단법인에서 운영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단순히 한지테마파크를 운영하는 것 뿐만 아니라, 한지에 대한 연구와 교류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한지대전을 개최한다든지, 한지활성화 전문인력을 양성한다는 일을 하고 있다. 사실 한지가 대단히 돈이 되는 사업은 아니다. 하지만 돈이 되지 않는다고 한지와 같이 우리의 문화가 담겨있는 것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몇 세대가 지나고 나면 우리는 한지의 아름다움은 물론이거니와 한지가 있는지도 모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사업은 중요하다.

이러한 매력적인 활동에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름이다. 물론 요즈음 세계공용어인 영어를 쓰는 것이 낯설지는 않다. 그런데 왠지 한지라면 테마파크라는 이름보다는 다른 예쁜 우리나라 말을 썼으면 어떠했을 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게다가 테마파크라고 하니까 뭔가 탈 것이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도 용어가 부적합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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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therington과 Rudolph <Why Washington Won’t Work >

Book 2021. 8. 27. 02:17

정치는 어렵다. 사람들의 복잡다단한 생각과 욕구를 결집시켜서 공동체를 잘 이끌어 나가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물론 시민들의 역할이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정치의 핵심에는 시민의 대리인인 정부가 있다. 이 정부에 대한 신뢰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다면 국정운영이 원활히 운영되기 어렵다. 정부신뢰에 대한 근심은 우리나라에도 있지만 미국에도 심각한 문제이다. HetheringtonRudolph의 저작 <Why Washington Won’t Work>은 미국이 당면한 저조한 정부신뢰 원인에 대한 진단이다.

미국의 유수의 기관에서 매년 정부신뢰를 조사한다. 대부분의 조사에서 나오는 결과는 조사가 시작된 1960년대보다 현재 (9.11 테러때 잠깐 오른 것을 빼고는) 전반적으로 하락세라는 것이다. 이 이유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설파하였는데 그 중에서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역시 정치형국의 대변화이다. 1960년만 하더라도 세계대전이 끝난지도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냉전시국이었다. 지금이야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하여 힘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1980년대까지 공산권 국가와의 대치는 미국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인들의 이목은 자잘한 국내정치보다는 외교에 집중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국민들은 대체적으로 왠만한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자국의 정부를 지지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신뢰도 덩달아 높았는데 냉전시대가 끝나면서 구심점이 사라졌고 미국인은 국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정부에 불만을 토로하는 형국이 된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 모습이 낮설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정부신뢰를 체계적으로 측정한 것이 21세기 이후여서 이승만 정권이나 박정희 정권시절 정부신뢰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추측건데 아무리 지금이 살기 좋더라도 그 때 정부신뢰가 더 높았을 것 같다. 아무래도 정부에 대한 기대도 지금보다 낮았을 뿐만 아니라 그 때는 한국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정부에 불만이 있더라도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정부를 지지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 정부신뢰형상을 잘 파악할 수 있다.

저자들이 이러한 역사적인 맥락이외에 정부신뢰하락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당파성이다. 간단히 말해서 공화당과 민주당이 상대방을 더 싫어해서 상대방 정부가 집권했을 때 정책내용이 무엇이든 동의하지 않고 반대하는 경우다. 이러한 당파성이 신뢰에 미치는 것을 아래와 같이 잘 설명했다.

“...when their party is in power, partisans employ criteria favorable to their side when asked to evaluate the government, causing them to express more trust. When their party is out of power, however, partisans employ criteria that are unfavorable to their opponents, causing them to express less trust. (p.73)”

아주 간단히 표현하면 정부성과나 정책 그 자체를 평가할 때 다른 잣대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우리말로 내로남불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자신의 편이 하는 성과는 후하게 평가하고 상대방이 하는 성과는 깍아내리는 것이 우리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팽배하여 국정운영에 차질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당파성을 해결하는 것은 어렵지만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초당파적인 정책을 내놓는 것은 바람직하다. 당파적으로 이해가 갈리는 정책말고 국가기간사업투자같은 정치색이 다른 정치인들도 호응할 만한 정책으로 우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겠다. 그런데 만약에 이러한 선택지가 없다면 정치색으로 중립적인 사람들로 구성된 평가들을 꾸려서 객관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기관이 있으면 바람직할 것이다. 물론 정치색이 없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공염불에 그칠 만한 제안이지만 그래도 노력을 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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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편) <현대사회와 인권>

Book 2021. 8. 18. 21:27

인간의 권리라는 단어 인권. 인권이라는 단어는 쉽게 쓸 수 있지만 사실 현실에서는 다양하게 나타날뿐더러 논쟁도 많다. <현대사회와 인권>에서는 아동인권, 외국인노동자 인권, 청소년 인권, 여성인권, 장애인 인권, 수형자 인권부터 국가보안법, 보건의료제도, 환경적 약자에 있어서 인권까지 현대사회에서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인권문제에 대해서 논의를 하였다. 책이 발간된지 20년이 지나서 어떤 문제는 철지난 이야기도 있지만 대부분의 문제의 경우에는 지금도 충분히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어떠한 문제는 20년전의 취지와는 달리 인권의 보장되었는데 반발이 거세어진 것이 있는데 그것도 논의될 만하다.

최근 탈레반 정권이 아프가니스탄을 정령하면서 많은 논란이 일어났다. 여러 문제 중 하나가 여성의 인권이다. 우리나라 여성인권이 낮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물론 서유럽에 비하면 맞는 말이겠지만 이슬람 국가와는 비교하면 훨씬 높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 이슬람 중에서 탈레반은 여성의 인권을 극심히 탄압한다. 그래서 탈레반을 비판하면 문화상대주의를 든다. 인권이라는 것이 서구의 개념이고 서구권 기준으로 평가를 하니 이슬람의 여성 인권이 낮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권이라는 것이 보편적인 개념일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부터 잘 정립해야 한다.

책에 있는 노라니 오트만이 쓴 <이슬람 문화와 여성의 시민권>에서 약간의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Sister in Islam의 창립멤버로 말레이시아 사람인 것 같다. 그의 글에 따르면 우선 서구권의 시각으로 보면 이슬람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서구권 개념을 비서구사회에 강요하는 것은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양성평등이 서구권의 개념만은 아니고 이슬람적인 개념이기도 하다고 한다. 그들의 경전인 코란에 따르면 성적 평등을 추구한다고 한다. 다만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탈레반 같은 근본주의자들이 오히려 양성평등을 해치고 있다고 말한다.

이 글을 보면 서구권의 시각을 가지고 보면 이슬람의 여성인권이 낙후되어 있을 것이지만 이것은 근본주의자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사실 나는 한국인이지만 미국식 교육을 은연중에 받고 자라왔기 때문에 서구식 인권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슬람 여성이라고 하면 탄압받는 존재로만 생각된다. 그렇다면 여성이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못하는 것은 소수일까? 일부의 이슬람에서만 여성의 인권이 억압되고 있을까? 너무 헐리우드 영화를 보아서 이슬람하면 무조건 테러리스트라고 생각되는 것까하는 자문을 해본다.

내가 아무리 서구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고, 이슬람 근본주의 지역이 일부라고 하더라도 나는 이슬람 세계에서 여성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을 한다. 이슬람 국가에 가보지도 않은(갈 생각이 별로 없다) 내가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이 오만한 것일까? 이슬람 여성들은 행복하게 사는데 내가 서구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어서 필요없는 걱정을 한 것일까? 여성인권지수를 만드는 국가는 일단 서구국가여서 이 기관에 만든 지수를 신뢰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노라리 오트만의 말대로 코란이 양성평등적이라면 어느 국가가 이 코란의 말씀을 제대로 구현하였는지도 궁금하다.

나는 여자가 아니지만 선택을 하라면 서구권 인식을 선택할 것이다. 내가 무지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슬람권에서 여자가 사는 것은 유럽이나 미국에서 사는 것보다는 더 불편할 것 같다. 물론 미국이라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벌어진 뉴욕주지사 엔드류 쿠오모의 성추행 사건을 보면서 아무리 서구권이라지만 여성인권이 제대로 보장되었는지 의심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개방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고 비판할 수 있는 사회가 더 바람직하지 않을 까 싶다.

 

posted by ys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