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선 <해방촌의 채식주의자>

Book 2021. 6. 21. 01:34

 

 

나 스스로는 그렇지 않아서 그런지 뻔한 사람보다는 독특한 사람이 매력이 있다. 독특하다라는 점에서 전범선은 아주 성공한 사람이다. 그의 이력은 아주 범상치 않다. 민족사관고등학교, 다트머스대학교, 그리고 옥스퍼드에서 석사 그 후 카투사로 군복무를 했다. 그 후에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오래전부터 록음악을 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기후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동물에 대한 권리를 중시하고 그래서인지 채식주의를 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실만을 나열해도 범상치 않음을 느낀다.

좋은 학교를 가는 이유가 대개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함이라는 상식이 있다. 그런데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음에도 그렇지 않은 길을 걷을 때 사람들은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가끔 멀쩡한 학교, 직장을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나와서 종교인이 되면 그 이유를 알고 싶어한다. 그 이유는 분명히 그렇지 않은 이유와는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전범선씨의 <해방촌의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 왜 그가 로스쿨을 가지 않고 역사학으로 석사까지 했는지 그리고 돈이 잘 되지 않는 서점을 운영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약간은 알 수 있었다. 그가 살아온 대략 30여년의 세월에서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잘 서술되어 있어서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200쪽 정도의 짧은 책이지만 한번 즈음 생각해볼 이야기를 여러개 던져놓았다. 그 중 하나는 민족사관학교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나라 소수영재교육의 대표주자인 민족사관학교는 아주 똑똑한 학생들이 간다. 그런데 과학고나 외고와는 달리, 수업을 국어, 국사를 빼고는 영어를 쓴다. 나도 이점을 알고 있었는데 국제화에 발맞추었거니하고 크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약간만 더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학교 이름이 민족인데 영어로 수업을 하다니. 더 놀라운 것은 영어를 쓰지 않으면 벌점을 받는 다는 점이다. 그리고 영어이름을 권장한다고 한다. 100년전 우리 선현들이 우리 말을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고 이름조차 강제로 바꾸어야 했는데 자발적으로 우리말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이름도 바꾸는 것이었다. 이러한 학교가 무슨 민족사관학교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에 대한 그의 해석 매우 흥미로웠다.

미합중국이 대영제국에서 나왔듯이, 대한민국도 미합중국에서 나왔다.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와넌 독립하는 데 150년 넘게 걸렸고 이제는 서로 든든한 우방으로 잘 지낸다. 한국은 건국 100주년이지만 아직도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의 일부다. 그게 반드시 나쁜 건 아니다. 남한이 북한보다 잘 살고, 나아가 선진국 반열에 오른 기저에는 미국의 도움이 컸다. 미국 모델을 잘 따라왔기 때문에 한국이 지금처럼 부유하고, 자유롭고, 민주적인 나라가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로큰롤 역시 미국 문화다. 좋든 싫든 미합중국은 대한민국의 뿌리고 나의 정체성이다 (42).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 조금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수긍하고 말았다. 물론 우리나라가 미국과는 다르다. 하지만 광복 후 지금까지 미국에서 받은 영향을 생각하면 대한민국의 뿌리가 어쩌면 미국이라는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내가 사고하는 방식은 미국인과 더 비슷하지 북한사람하고 더 비슷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민족사관학교의 영어교육철학(민사고에서는 영어는 앞서간 선진문명 문화를 한국화하여 받아들여 한국을 최선진국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수단이며 그 자체는 결코 학문의 목적이 아니라라고 본다)에 대한 의문은 물론이고, 민족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또한 미국에 대한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다. 이 책이 매력적인 점은 사고의 솔직함이다. 실제로 어느 정도 그렇더라도 미국이 대한민국의 뿌리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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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보로망 삼국지>

Exhibition 2021. 6. 17. 01:51

삼국지가 또다시 태어났다. 삼국지는 기본적으로 한나라가 쇠락해가는 시절부터 새로운 진나라가 세워지기 전까지의 시기를 그린 작품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역사 중에서 이 시기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삼국지라는 작품때문일 것이다. 물론 삼국지가 역사에 기반을 하고 있지만 일단 소설작품이다. 왜냐하면 삼국지를 본격적으로 작품으로 승화시킨 나관중이 이미 원나라 말 때 사람이기 때문이다(정확히 언제 태어나고 죽은지도 잘 모름). 이 때가 1300년때니까 삼국시대가 있었던 시절보다 1000여년 후에 글이 쓰여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했지만 대부분은 많은 상상력이 덧붙여져서 작품이 된 것이다. 아무리 역사적인 기록이 잘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근본 배경이 된 시대가 200년대이기 때문에 자세하게 기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조조가 관우를 포섭하려고 했던 대화를 어떻게 다 기록할 수 있으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상상력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이 점이 삼국지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몇 개의 역사적 사실를 근본으로 두고 다양하게 역사적인 연출이 가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한다면 큰 문제가 되겠지만 삼국지 정도 때의 일을 응용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허락이 되는 부분이 된다. <누보로망 삼국지>도 현대적으로 또 예술적으로 삼국지를 재해석한 전시였다. 누보(nouveau)가 프랑스어로 새롭다는 뜻이고 로망(Roman)이 중세 유럽에서 발생한 통속 소설을 뜻하는 프랑스어라고 생각할 때 누보로망은 새롭게 재해석된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전시회에서 삼국지의 내용을 배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미 삼국지를 아는 사람이 와서 재해석된 삼국지를 느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특히 전시회이미로 색다르게 시각화된 것이 많았다. 그리고 마치 연애소설처럼 로맨틱하게 그려낸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겠다. 이런 면에서 삼국지 골수팬들은 오히려 싫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삼국지 시대의 실제적인 거리와는 너무 멀리 떨어진 현대와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골수팬은 아니어서 그런지 이러한 현대적이 시도가 오히려 삼국지의 매력과 생명을 연장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삼국지가 나관중 버전 하나로만 끝났다면 이렇게까지 인기가 있는 고전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삼국지는 다루어졌다. 글로도 쓰여졌고, 만화로도 그려졌고, 영화로도 촬영되었고 게임으로도 제작되었다. 그리고 <누보로망 삼국지>처럼 전시회로도 만들어졌다. 한가지 원재료로 다채롭게 만들어지면서 작품의 매력도는 더 커진다.

작품의 형태뿐만 아니라 해석도 아주 다양하다. 예를 들어, 글도 한 사람만이 쓴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이문열씨도 쓰고 김홍신씨도 쓰고 다양한 사람이 이에 대해 썼다. 그리고 다양한 작가가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삼국지를 파악한다. 어떠한 사람은 조조를 빌런으로 어떠한 사람은 그를 영웅으로 그린다. 정답은 없다. 자신이 바라보는 시각이 있을 뿐이다. 아마 삼국지가 벌어진 시대가 200년대가 아니라 1900년대만 되더라도 다양한 시각에는 꽤나 심각한 정치적인 압박이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거의 1900년전 일이기 때문에 아무나 다양하게 해석해도 크게 흠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삼국지의 매력이 된다.

이 전시회를 보면서 멋지고, 감각있고, 세련되게 시각화된 삼국지에 매력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러는 의미에서 우리나라 여러 작품도 새롭게 태어났으면 하다. 물론 새롭게 태어나다보면 원전을 내용과 의도를 해칠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다. 그러므로 조금 오래 전 예를 들어, 우리나라 삼국시대 전의 내용을 각색해서 현대화시킨다면 우리도 그 내용을 알 수 있고 분쟁도 적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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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 <도올의 중국일기 4>

Book 2021. 6. 13. 19:03

내가 도올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그 당시 내 기억으로는 방송국에서 노자강의를 하셨는데 매우 흥미진진하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아쉽게도 강의 내용은 거의 대부분은 망각해버렸지만). 그 후 도올선생님은 철학자로 대중들이 다가가기 어려운 고전을 아주 쉽게 풀어서 전달해주셨다.

나는 이런 대중친화성을 다른 철학자들과 가장 다른 점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학식과 재미를 둘다 잡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연구를 많이 하다보면 진지해고 사변적이 되어 대중들과 거리가 멀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자신이 한 연구가 (특히 인문학인 경우) 현실에서 별 쓸모가 없어지게 된다. 인문학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그 학문의 지혜를 알고 현실에서 반영시켜야 하는데 학문의 외길을 걷다보면 일반사람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외계어를 쓰고 있게 마련이다.

반대로 대중적이다보면 학문에 정진할 시간이 없어지고 결과적으로 깊이가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중들과 자꾸 만나다보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주로하고 쓴소리는 점차 줄여서 인기에 영합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학자라기보다는 그저 연예인에 불과한 위치가 된다. 그래서 학문정진과 대중소통을 둘다 잘하기는 매우 어려운데 우리나라에서는 도올선생님이 가장 그 균형을 가장 잘 잡는 것 같다.

또한 도올선생님의 독특한 점은 통섭의 학자라는 것이다. 그의 학력을 보아도 그럴 만한 것이 우선 생물학과로 입학했다가 신학대학교를 다녔다가 철학과를 다녔다. 그래서인지 사고하는 방식이 아주 폭넓다. 기본적으로 철학에 근간을 두지만 한학에서 밝고 종교, 역사 등등 조예가 밝은 부분이 많다. 그래서 파편화된 지식을 한 곳에 꿰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는 한국에서 대만에서 일본에서 미국에서 다녔다. 이러한 다양한 배경이 그가 이 세계를 단일한 시각이 아니라 폭넓게 보는데 일조한 것 같다.

도올선생님의 여러 저작 모두 흥미롭지만 다섯권으로 된 <도올의 중국일기>는 대중들이 읽기 가장 쉽게 되어 있다. 일단 기행문이기 때문에 여행하는 느낌을 준다. 주로 그가 중국 동북지방을 돌면서 느낀 소회를 적었다. 일반 기행문과는 달리 그의 깊고 넓은 식견이 두루두루 녹여져 있다. 그래서 인문학 교양서 느낌도 준다. 책을 보면 역시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누군가는 그저 지나갈 만한 낡은 성관도 그의 시선으로는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독자에게 다가온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은 4권에 나와있는 고구려와 당나라의 관계이다. 역사책을 읽으면서 당태종 이세민이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친 사실은 누구나 배운다. 그리고 안시성에서 양만춘 장군의 공을 배운다. 그런데 단 한번도 당나라가 건국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굳이 고구려를 정벌하러 갔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도올선생은 이 점을 통해서 고구려가 당나라에게 어떠한 존재였는가를 이야기한다.

도올선생님께서 명확히 지적하셨듯이 삼국시대에 대한 내용의 많은 부분은 고려시대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를 통해서 배우게 된다. 문제는 김부식이 너무 사대주의자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늘 당나라가 중심이고 고구려가 변방이었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고구려가 중심이었고 당나라가 변방으로 볼 여지는 없었을까. 당나라가 고구려를 무리해서 정벌하려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도올선생님은 흥미로운 의견을 개진한다.

인문학을 배운다고 돈이 갑자기 생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얻는 다는 점에서 돈보다 더 값진 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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