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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여러 걸작이 있지만 페스트는 근래 코로나 사태와 관련되어서 많이 회자되는 작품이다. 카뮈가 페스트와 같은 대규모 감염병 사태를 직접 겪은 것은 아니지만(2차 세계대전에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코로나와 같은 대규모 감염병이 퍼졌을 때 일어나는 사회와 인간군상에 대해서 아주 잘 그린 작품이다. 페스트가 1947년 작품이므로 벌써 70여년이 흘렀다. 그만큼이나 전염병을 대처하는 인류의 자세도 바뀌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공통점도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페스트에 나오는 상황이나 코로나 상황이 비슷한 것은 역시 공포다. 그동안 과학기술이 급격하게 진보했다. 그래서 인류는 어느 정도 질병을 통제관리하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 상황에서 보는 것처럼 완전히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백신을 개발하는데도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걸렸다. 그 사이에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당혹스러움이었다. 새로운 질병, 그것도 전염속도가 무척 빠르고 치명률도 꽤나 높은 상황에 사람들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나만해도 약간 기침을 해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졸인 적이었고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사람만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감염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활 전반을 지배했고 개운치 않은 기분을 가지고 살아야만했다. 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인간의 본원적인 감정일 것이다. 아마도 앞으로도 이러한 원초적인 감정은 계속 될 것이다. 미지의 질병에 대처 방안이 나오기 까지 인류가 가질 수 밖에 없는 감정을 변하지 않을 것이다.
페스트 상황보다 더 안좋아진 면도 있다. 소설에서 나오는 상황은 오랑시라는 곳에서 질병이 발생하고 도시가 봉쇄된다. 일단 소설은 이 안을 중심으로 그리기 때문에 다른 곳의 상황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반면에 코로나의 경우에는 중국 우한에서 발생하여 지구 곳곳에 퍼져나갔다. 이는 교통의 발달로인한 세계화로 인한 결과이다. 예를 들어, 1918년에 발생하여 수천만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스페인 독감의 경우에는 다른 곳에서 영향이 적었다. 유렵에만 강타했을 뿐이다. 100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지구촌 어디에서 바이러스가 나타나면 지구 어디더라도 안전한 곳이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이 세계화가 가져온 문제라면 문제라고 볼 수 있겠다.
그래도 지금 예전보다 상황이 나아진 것은 역시 의료기술의 발전이다. 100년전과 확연히 다르게 발전된 의료기술 덕에 문제를 파악할 수 있었으면 일단 백신은 없었으나 문제를 완화하는 대책도 내놓게 되었다. 다만 이 문제가 각종 경제적이나 정치적인 문제로 인하여 제대로 풀리지 않은 면이 있다. 예를 들어, 강력한 봉쇄를 하여 단시간 안에 바이러스를 통제하면 좋겠지만 이렇게 되면 경제가 고사하게 된다. 경제는 마치 피의 흐름과 같은데 바이러스를 막겠다고 피의 흐름을 막아버리면 사회전체가 큰 파국에 처한다. 이러한 문제로 인하여 어느 정부나라 쉽사리 문제를 풀지 못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우리 모두 전염병의 심각성을 인지하였다. 그래서 이번 코로나 사태때 음압시설의 부족함을 개탄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물론 코로나급 사태가 터지면 음압시설을 비롯한 각종 대비시설이 절실하다. 하지만 평소에는 이러한 각종 대비시설이 별 효용이 없다. 각종 대비시설을 만들고 유지하는 비용이 상당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턱대고 대비시설을 증강하자고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동시에 코로나같은 상황은 대비해야 한다.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정부는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코로나 사태때도 느꼈지만 방역과 경제를 동시에 잡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 이번 경우에는 시민들의 높은 정책순응으로 비교적 다른 나라에 비해 잘 넘어가고 있지만 앞으로도 그럴 지는 장담할 수는 없다. 참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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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치학을 배운다고 해서 정치를 갑자기 더 잘한다거나, 갑자기 정치의 흐름이 잡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양질의 정치학 책을 읽다보면 현상에 대해서 좀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나름대로의 의견을 세우는데 도움이 된다. 물론 이것이 실생활에 금전적으로 도움이 직접적을 되지 않아서 허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라는 것이 우리 생활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정치에 대한 소양을 쌓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임혁백 교수의 <세계화시대의 민주주의>는 임교수가 그동안 써온 글을 모은 것인 데 그의 탁월한 식견과 글솜씨로 책을 읽을 맛이 난다. 그리고 그의 의견을 토대로 여러 아이디어를 새롭게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책에 여러 생각해볼 만한 개념이 나오지만 가장 눈길을 끌었던 개념은 제도화된 불신(institutionalized distrust)이다. 임교수는“자유민주주의는 불신의 제도화를 통해서 신뢰를 구축한다”라고 이야기하는 데 정말 공감이 가는 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의민주주의에서는 어쩔 수 없이 공무원이 있고 일반시민을 대표하는 입법자가 있다. 그런데 이미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시민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지 않기도 한다. 물론 시민을 위해서 헌신을 다하는 공무원과 정치인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정책을 입안할 때나 국정을 운영할 때, 공무원이나 정치인을 ‘성선설’ 입장에서 바라보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철저히 ‘성악설’의 기반하여 통제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행정학에서는 공공봉사동기(Public Service Motivation)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 개념은 다양한 하위요소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익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일한다는 것이다. 소방관이나 국립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진을 보면 이러한 동기를 느낄 수 있다. 반면에 니스칸넨을 비롯한 경제학자들은 공무원은 이기적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고 본다. 물론 본 이론에서는 부처의 크기를 크게하고 자신의 권력을 증강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지만 요즈음 LH공사 직원이 부동산 투기 행위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각종 정책을 쓸 때 시민의 입장에는 후자의 입장에 서야한다고 본다.
공직자들의 각종 비리와 비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책에서도 언급이 되지만 투명성을 높여야한다. 최근 공군에서 여성부하를 성폭행하여 여성장교가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은 성폭행하는 것이 증거로 남겨져 있었다. 아마 이러한 증거가 없었더라면 분명히 공군에서는 그런일이 없었다고 쉬쉬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요즘 군인들에게 나오는 밥의 질이 엉만진창이라는 것도 휴대폰이 반입이 되고나서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다. 아마 휴대폰이 없었다면 그런 일이 없었다고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이렇게 썩어 있는 곳에 햇빛을 쐬게 하면 문제는 완화될 여지가 있다.
아마 그저 사람을 신뢰한다면 문제는 반드시 재발한다. 아주 사람을 믿지 못하는 기본적인 생각을 가지고 이를 철저히 제도화하고 정책화시켜야 한다. 그래야 역설적으로 신뢰로운 사회가 나타날 수 있다. 물론 앞서 공직자의 경우를 이야기했는데 일반 시민들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CCTV는 사회 신뢰를 증가시키는데 획기적인 역할을 한다. 물론 CCTV가 있다는 것은 사람을 못믿겠다는 것이다. 모두 믿을 수 있다면 CCTV는 필요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기계가 없었을 때 얼마나 많은 거짓말이 있었을 것이며, 억울함이 있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불신을 기반으로 한 CCTV가 사람들 서로를 배려하게 만든다.
불신을 통해서 신뢰를 만든다는 말이 어불성설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항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거래비용이 적게드는 방식으로 불신을 제도화 시킨다면 사회는 더 신뢰가 번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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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이 이 지구상에 살았다. 정말 이런 사람이 인간인가 싶은 사람부터 이런 사람이 혹시 신이 아닐까 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이 살았다. 그 중 인류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배우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정치적으로 유명한 사람을 중심으로 배우게된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정치인도 있지만 정치인이 아닌 다른 사람도 다양하게 많다. 그리고 잘 몰랐지만 훌륭한 사람을 알아가는 것은 좋은 사람을 아는 것 만큼이나 큰 기쁨이다.
나는 <땅콩박사>라는 책을 15여년 전에 아는 분에게 받았다. 그 후 전혀 읽지 않고 15년 넘게 방치하였다. 아마도 그 이유 중 하나는 부제로 붙은 “조지 워싱턴 카버 전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나는 조지 워싱턴도 아니고 조지 워싱턴 카버는 처음 듣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난 후에 나는 내가 참 무식한 사람이었음을 또다시 자각하게 된다. 이 책을 통해서 훌륭한 분이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뻤다.
조지 워싱턴 카버(George Washington Carver)는 누구인가? 그는 1864년에 태어나 1943년에 돌아가신 분이다. 책에도 나와있듯이 그는 노예해방이 되는 해에 태어났다. 물론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공식적으로 공언하기는 했고 남북전쟁에서 노예제를 지지하던 남부군이 전쟁에서 지기는했찌만 실상 갑자기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흑인에 대한 차별은 공공연한 것이었다. 흑인에게는 엄혹한 시절을 살아온 과학자였다.
흑인위인이라고 하면 마틴 루터킹이나 말콤 엑스, 로자 팍스같은 흑인인권운동가가 먼저 떠오른다. 물론 그들이 한 일은 대단하다. 하지만 꼭 인권운동가가 아니더라도 위인이 될 수 있다. 조지 카버가 바로 그러한 인물 중 하나이다. 그는 특별히 목소리를 내서 흑인의 인권은 드높이는 일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묵묵히 걸어온 길이 바로 흑인인권을 개선했다. 예를 들어, 그가 대학을 가려고 했는데 백인 교수가 거부를 했다. 하지만 그는 불굴의 향학열로 대학교육을 받는다. 그가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었다면 지금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가 교육을 받고 연구를 하면서 사회에 공헌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한다. 물론 중간에 단순히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되는 일이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그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사실 자신의 길을 사회적인 분위기로 인하여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의 담담한 걸음걸이가 흑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땅콩이 지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당시로는 비주류적인 연구를 하는데 흑인이라는 비주류 인종이 비주류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정말 어려웠을 탠데 정말 대단하다. 연구자라면 한번 즈음 그의 길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런 것이 가능한 이유 중의 하는 신앙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대한기독교서회에서 나와서 그런지 그의 신앙에 대해 언급이 나온다. 나는 종교가 없다. 그래서 사실 신앙의 힘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그런데 조지 카버가 걸어온 고난의 길을 보면 아마도 신앙이라는 힘이 그를 버티게 한 것 같다. 각종 말도 안되는 모멸을 겪으면서도 그의 길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현실적인 정신상태로는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마도 마틴 루터 킹도 목사였다는 것이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신앙은 긍정적으로 개인이나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앞으로도 신앙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렇게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해서 개인이나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었으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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