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문화> 2018년 여름호

Book 2018. 10. 17. 14:53

이제 졸업한지 10년이 가까이 되었다. 그래도 가끔 학교에 가면 익숙한 건물들 뿐만 아니라 교지도 반갑게 맞이한다. 내가 졸업한 후에도 많은 건물들이 없어지고 새로 지어져서 학교가 낮설다 싶을 때가 있는데, 고려대학교 교지 <고대문화>은 큰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물론 내용은 시류에 맞게 매번 바뀌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글의 퀄리티는 양질을 자랑한다. 학교에 <낢과 진> 카페가 생겼다고 해서 들렸을 때 <고대문화> 2018년 여름호를 읽었는데 또다시 나의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었다.

좋은 글들이 많았지만 가장 색다른 시각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편집위원 제인이 쓴 <평화올림픽은 없다>였다. 나는 올해 평창동계올림픽에 전혀 기대가 없었다. 그런데 상당히 운영도 잘되고 남북경색을 풀어줄 도구로 효과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올림픽에 대한 호감도가 많이 상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아마도 올림픽의 긍정적인 측면을 집중해서 생각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런데 <평화올림픽은 없다>는 이런 생각을 다시 해보게끔 했다.

이 글이 평창올림픽을 특정하여 비판한 것은 아니지만, 평창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 상태에서 올림픽에 대한 비판의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았을 탠데, 차분하게 올림픽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쓴 것이 아주 좋았다. 이 글은 올림픽 이전의 스포츠라는 것에 대한 생각부터 시작한다. 일반인에게 스포츠라고 하면 건전한 신체단련과 경쟁을 통한 기량향상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글쓴이는 경쟁의 부작용을 이야기하면서 스포츠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하나의 상품으로 치부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밀리면 도태되어버리는 점을 지적한다.

기본적으로 글쓴이가 중시하는 가치관은 자연스러움이다. 인간은 나름의 개성을 가지고 편안하게 자신의 기량을 펼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스포츠는 정해진 규칙속에서 기량을 극대화시켜야 함으로 인간은 자신의 개성을 잃고 기계화된다는 점을 잘 쓰고 있다. 자본주의의 상식에 매몰된 사람이라면 달리 생각하기 어려운 관점이지만 분명히 우리가 생각해보아야할 지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경쟁 속에서 괴로워하고 자신의 인간성을 팔아야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더욱더 울림이 있는 주장이다.

이 외에도 이번 호에서는 제주 4.3 문제라든지 빅데이터에 의한 감시하든지 중요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 중 눈길을 끄는 부분은 이번 호의 제호이기도 한 <외모지상주의>였다. 외모지상주의 관련한 4개의 글이 있었는데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었다. 읽기가 편한 것은 아니었다. 진실이 모두 아름다운 것이 아니듯이 지금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불편한 부분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읽은 사람도 불편한 감정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이러한 불편한 감정을 통해서 문제되는 점을 가시화시키고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본적인 문제의식에 동의하면서도 의문이 드는 점이 있었다. 예를 들어 여성들이 남자들에 비해 예쁨노동의 강도가 훨씬 심하다는 점은 십분 이해한다. 그런데 여성들이 이렇게 치장하는데 곤욕스럽다면 연대해서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이 부분은 특별히 어려움 없이 바로 실행할 수 있지 않을 까하는 의문이다. 19세기의 청나라의 여성들이 전족을 해야만 했던 시절이 아니다. 지금은 21세기이고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여성인데 여성들이 다같이 우리 화장 좀 하지 맙시다!”라고 하면 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탈코르셋운동을 그냥 하면 됐지, 남자를 적대시 할 필요까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름답지 않은 자, 모두 유죄인 곳>이라는 글에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외모는 끊임없이 어떤 적당한 기준 안에서 관리되어야 하는 것은 존재한다(41).”고 썼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제는 남자의 시선과 관계없이 여성들이 자기 하고 싶은 생김새대로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살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남자를 위해서 외모를 가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외모를 가꾸는 시대가 아닌 가 싶다. 더 이상 가부장적 사회를 이유로 외모지상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만약에 가부장적 사회의 분위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제 여성은 그것을 극복할 만한 충분한 능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모지상주의가 남자 때문이라고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여성을 무시하는 이야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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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s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