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을 보았다. 아주 좋은 영화였다. 원저를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감동을 충분히 받을 만한 영화이다. 이 영화에 대한 찬사와 역사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미디어를 통해 알려졌다. 그래서 특별히 이 영화내용이라든지 레미제라브 원작에 대한 내용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한가지 나의 관심을 끈 점은 이 영화의 원작이 프랑스 저자인 빅토르 위고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내용의 배경 역시 모두 프랑스이고, 프랑스 역사를 알아야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는 영화인다. 그런데 모두 영어로 극이 진행된다. 이제 영어가 국제공용어로서 위치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영어로 진행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아마도 불어로 영화를 보았다면 왠지 예술영화느낌이 나고 이해하는데 좀 더 힘들 수도 있었겠다 (물론 프랑스인을 제외하고 말이다).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는 물론이거니와 세계적인 대문호이다. 프랑스인들은 이런 대문호인 빅토르 위를 자랑스러워 할 만하다. 그런데 이런 프랑스가 낳고 키운 대문호의 작품이 영어로 사람들이 읽고, 뮤지컬로 즐기고, 영화로 보면, 프랑스인들은 어떠한 느낌일까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짐작하건데 100% 유쾌한 감정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열하 박지원 선생님께서 지은 허생전을 후대에 일본인들이 각색하여 뮤지컬로 만들고, 영화로 만들어 전세계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박지원선생님의 허생전이 전세계적으로 알려져서 좋아할 것인지 아니면 일본인이 허생전을 뺏어갔다고 생각할 지 생각하면 비슷할 수 있다고 본다. 대개 화를 낼 가능성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김치를 일본인들이 자기네들의 입맛으로 바꾸어 기무치로 세계에 소개하는 것에 화가 난다면 이 경우에도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빅토르 위고가 살았던 1800년대에는 영어와 불어가 가지는 언어적인 위상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영어가 공용어가 된 계기가 영국의 국력때문도 있겠지만, 20세기의 강자 미국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그동안 세계를 패권을 잡은 여러 나라가 있었다. 하지만 20세기에 때마친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고 1990년대 소련이 몰락한후 정보화 시대에 발맞추어 미국이 최강 패권국가 되면서 영어는 세계어로 위치를 확립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레미제라블 같은 프랑스 문학의 족적을 남긴 작품도 영어로 번역되어 전세계로 퍼져나간 것이다. 제목자체가 워낙 불어느낌이 나서 다행(?)일지 모르겠지만, 빅토르 위고는 살아 생전에 자신의 작품이 영어로 전세계에 퍼져나갈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문화도 마찬 가지의 입장일 수도 있겠다. 영어로 변환되서라도 세계무대로 나갈 것인지, 한글을 고수하면서 순수성을 지킬지. 정답은 없을 것이다. 다만 선택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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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s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