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진 외 <딜레마와 제도의 설계>

Book 2021. 10. 5. 23:07

개인이 되었든 국가가 되었든 매일 의사결정을 한다. 수많은 의사결정 중에 어떤 것은 쉽게 할 수 있고 어떤 것은 몹시 어렵게 해야만 한다. 많은 학자들이 특히 어렵게 내려지는 의사결정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다. 대개는 정보가 부족하거나 정보는 충분한데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서 의사결정자가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런데 때로는 가용할 정보도 충분하고 정보를 이용할 능력도 충분한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그 경우를 깊게 고민하여 나온 이론이 딜레마 이론이다.

의사결정자가 충분한 정보과 능력이 있어도 딜레마를 느끼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책에서는 4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나온다. 첫째, 분절성(discreteness)이다. 의사선택의 대안이 분절되어 있어야 한다(논의의 편의를 위해서 대안이 2개라고 하자). 즉 선택 대안이 절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약에 분절성이 없다면 의사결정자는 대충 선택대안을 혼합하여 선택하면 되고 그렇게 되면 딜레마가 생기지 않는다. 두 번째 조건은 상충성(trade-off)이다. 두 대안을 모두 선택할 수 없다. 만약에 대안을 모두 고를 수 있다면 고민이 있을 때 둘 다 선택하면 되므로 의사결정자에게는 딜레마가 생기지 않는다. 세 번째 조건은 균등성(equality)이다. 대안들의 결과가치가 동일해야 한다. 만약에 A라는 대안이 B라는 대안보다 더 큰 효익을 가져온다면 의사결정자는 특별한 고민없이 A를 고르게 될 것이다. 네 번째 조건은 선택불가피성(unavoidability)이다. 만약에 의사결정자가 절충할 수도 없고, 둘 중에 하나만 골라야 하며, 같은 결과를 내놓는 대안이 있더라도 고르지 않을 자유가 있다면 선택을 포기하면 된다. 하지만 현실상 반드시 선택을 해야만 한다면 의사결정자에게는 딜레마가 생기게 된다.

딜레마 이론은 사회과학 전반에서 응용되고 있다. 이 책에서도 노동위원회 분쟁제도, 전자정부특별위원회, 수도권 입지규제, 전자정부 추진 등이 소개되어 있다. 딜레마 이론이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이윤수의 영남권 신공항에 대한 2019년 논문을 통해서 알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지금도 갈등이 제대로 봉합되지 않은 영남권 신공항 문제는 시작은 영남권에 공항이 더 필요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신공항의 후보지로 경북 밀양과 부산의 가덕도가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이 두 후보지 간의 경쟁이 시작되고 중앙정부에서는 선택의 압박이 느끼게 된다. 이 경우가 의사결정자인 중앙정부에게 딜레마가 되는 이유는 첫째, 가덕도와 밀양이라는 선택지를 혼합할 수 없다. 공항을 대충 밀양에서 조금 짓고 가덕도에 조금 지을 수는 없는 느릇이다. 둘째, 밀양과 가덕도를 모두 선택할 수도 없었다. 물론 수요가 아주 많고 중앙정부가 아주 재원이 풍부하다면 밀양은 밀양대로 공항을 짓고 가덕도는 가덕도대로 공항을 지으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미 우리나라에 공항은 충분하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공항을 짓는 데에는 수조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공항을 2개를 지을 수 없었다. , 공항을 지으려면 둘 중에 하나만 지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셋째, 기대 결과가 아주 비슷했다. 밀양에 공항을 지으나 가덕도에 공항을 지으나 기대되는 결과가 비슷하였다. 만약에 한쪽이 압도적으로 우위를 보이는 선택지라면 중앙정부에서도 큰 고민없이 우월한 선택지를 고를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중앙정부가 시간내에 결정을 내려야 했었다. 실제로 그래서 이명박 정부에서는 정치적인 부담에도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선언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대안에도 없는 김해공항 증축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는 가덕도에 영남권 신공항을 짓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물론 현실이 이론에서처럼 예측되지는 않는다. 위의 영남권 신공항의 경우도 대안에 없던 결정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는 조금 체계화해서 분석한다면 앞으로 있을 일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posted by ys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