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강신주의 역사철학 정치철학>

Book 2021. 8. 12. 03:25

강신주는 우리나라 간판 철학자로 나는 그의 이름만으로 내용과 관계없이 책을 산다. 그의 책은 단 한번도 나를 실망한 적이 없는데 나날이 진화하는 것 같다. 문사철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그에게 딱 맞는 것 같다. 문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으로 이어지는 인문학의 뼈를 그는 아주 제대로 습득하고 그의 생각에 날개를 달았다. 그의 저작 <강신주의 역사철학 정치철학 1: 철학 vs 실천>800쪽이 넘는 분량이 조금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분명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그의 통섭된 인문학적 관점은 그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통찰력이 있었고 덕분에 지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은 파리꼬뮨이다. 우리는 세계사를 배울 때 프랑스 대혁명을 빼놓지 않고 배운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은 서구역사를 뒤바꾼 대형사건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을 덜 배우고 바로 세계1차대전을 공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레미제라블>같은 대작을 보는데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1789년부터 세계1차대전이 있었던 1914년 사이에 프랑스에서는 수많은 역동적인 일들이 있었다(물론 그 후에도 있었지만). 그리고 그 진통의 과정이 지금의 프랑스를 만들고 우리에게도 영향을 주었는데 파리꼬뮨은 그 활동시기는 짧았지만 분명히 확인해야할 아주 중요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강신주는 이 역사적인 사건의 중요성을 인문학적으로 그리고 우리 실정에 맞추어서(특히 동학과 비교를 하면서) 설명을 한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일어난 굵직굵직한 일들을 나열을 잠시하자면 혁명 이후에 로베스피에르 같은 사람이 나타나 공포정치가 일어난다. 그 후 나폴레옹이 나타나 집권을 한다(1804~1814). 그런데 나폴레옹이 실각을 하고 부르봉가에 의한 왕정복고가 일어나고 루이 13(1814~1824)와 샤를 10세가 재위한다(1824~1830). 그런데 또다시 혁명이 일어나고(프랑스 7월혁명, 1830). 그 후 루이 필리프 1세가 재위한다(1830~1848). 그런데 또다시 혁명이 일어나고 (18482월 혁명) 나폴레옹의 친척인 나폴레옹 3세가 집권한다(1848~1870). 그런데 또다시 혁명이 일어나는데 그 때 잠깐 프랑스를 파리를 지배했던 단체가 파리코뮌이다(1871318~528). 그 후 띠에르가 파리코뮌을 궤멸시키고 2대 대통령으로 오르게 된다.

저자는 2개월의 짧은 기간을 보낸 파리코뮌에 큰 관심을 기울인다. 그에 따르면 코뮌은 제정, 왕정, 교회, 의회주의, 중앙집권에 대랍되는 공동체라고 한다. 그리고 변방에 속하는 모든 사람이 중앙일 수 있는 공동체를 꿈꾼다고 하였다. 그리고 코뮌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파리코뮌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토지와 자본을 공동 소유하는 원칙인 사회가 코뮌인 것이다. 사실 이러한 숭고한 생각에서 시작된 공산주의는 잘 알 듯이 실패하고 말았다. 자본주의는 완전히 승리하였고 자본주의는 현시대의 종교가 되었다. 강신주도 이에 대해 인식하고 자본주의 작동원리에 대해서도 ㅈ세하게 설명을 한다.

이제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수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태생적인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평등하게 태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돈에 따라서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말이다. 이 자본주의는 꼭 민주주의 뿐만 아니라 (명칭상)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잘 통용되는 만국의 종교가 되었다. 문제는 이 돈의 분배가 평등하게 되어 있지 않다. 극소수의 사람이 많은 돈을 가지고 있고 다수가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살 수 없다. 책에서는 이 점을 통렬하게 지적하고 파리코뮌의 숭고함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 숭고함보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분수령에 더 관심이 있다. 국제화된 시대에 기술의 발전은 극단적인 불평등을 가져올 수 있는데 나는 기술을 잘만 사용한다면 유토피아에서 그린 것처럼 조금만 일하고 자아실현일 가능하다고 본다. 시간이 흘러야 알겠지만 미래의 철학자는 지금의 기술발전이 어떻게 인류의 자유에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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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을 권리>

Book 2020. 2. 3. 01:10

강신주 박사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시중에서 많이 보이는 정서적인 위로에 관련된 책이 아니다.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의 이유에 대한 친절한 가이드 북이다. 2020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돈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해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부분에서 자본주의가 돌아가는 원리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자본주의의 원리가 일반 사람들의 삶의 곳곳에 이미 스며들었기 때문에 이 글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우선 사람들은 지금 당장 쓰지 않더라도 통장의 돈을 항상 의식하고 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는 것은 마치 공기가 없는 것처럼 절망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통장의 돈이 얼마있는 지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서 책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엇인가를 모아둔다는 것은 곧 미래에 대한 염려를 보여줍니다. 미래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자신의 손 안에 두기 위해 돈을 비축하려고 합니다. 화폐경제가 확립되어야 비로소 미래에 대한 염려가 가능하고, 미래를 염두에 둔 시간관념도 가능해집니다.” 자본주의적 시간의식에 대해서 저자는 잘 설명하고 있다. 영화 “In time”에서도 부자들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느긋하게 사는 가하면 가난한 자들은 항상 시간에 쫒기며 어렵게 살아간다. 과연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살지 않았다면 어떠한 시간관념을 가지고 살았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자본주의 사회에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울지는 몰라도 팍팍한 느낌을 주는 이유로 잘 설명해두었다. “화폐경제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 이루어졌던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와해시키고, 오직 돈으로만 개인들이 서로 연결되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물론 모든 인간관계가 돈으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돈이 문제가 되는 것은 확실하다. 돈이 어떤 면에서는 공정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 어차피 사람은 타인을 판단할 때 어떠한 기준을 들게 마련이다. 돈이 없었다면 못생긴 사람이나 소수인종의 사람들은 차별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못생겨도 소수인종이라도 돈이 있으면 일단 존중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돈의 중요성이 너무 심해지다보니 그 사람이 무엇을 하든 돈만 많으면 된다는 배금주의 사상이 세상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확실히 자본주의는 명과 암이 있다.

또한 인상깊게 읽었던 구절은 자본주의가 보장하는 자유란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아닙니다. 자본주의에서 자유는 돈을 가진 자의 자유, 소비의 자유에 불과할 뿐입니다. 소비의 자유란 결국 돈에 대한 복종의 이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이다. 대개의 사람은 자유를 꿈꾼다. 그런데 그 자유란 자본주의 안에서는 돈으로 이루어진다. 몇몇 소수의 사람을 빼고서야, 이 자유를 얻기 위해서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한다. 슬프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돈을 벌기 위해 한다. , 자유를 위해 자유가 없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쥐꼬리만한 월급쟁이라면 이러한 역설에서 나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의 저자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렇다고 비판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안을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생산-소비협동조합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용가치가 없음에도 사람들의 허영을 부추겨 기호가치를 소비하게 한다. 또한 필요이상의 돈을 모으려고 악착같이 욕심을 내서 불평등을 키우기도 한다. 생협의 세상에서는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생협의 돈은 축재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필요한 것을 교환할 수 있는 정도의 권능이 있을 뿐이다. 아직 이러한 세상이 도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자본주의 힘은 강대하다. 그래도 가끔은 다른 세상을 꿈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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