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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장강명 작가의 표백을 다시 읽었다. 책을 다시 읽으면 신선함을 떨어지지만 그 내용을 더 명징하게 이해할 수 있어 좋다. 이 책이 출간된지는 어느덧 9년이 되었다. 아마도 작가가 이 소설을 쓸때는 2010년이 될태니 10년이 지난 내용이다. 그런데 10년이 지났지만 내용에는 전혀 이질감이 없다. 2020년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소설은 대학 졸업반 즈음 되는 20대 중반에서 갓 취직하고 나서의 20대 후반정도까지의 주인공이 나온다. 이제는 10년이 지났으니까 그들은 30대 중후반이 되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직 청년이라는 딱지를 떼지 못하고 미생으로 남아 있다. 표백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소설로도 재미가 있지만 그것보다도 그 내용이 던져주는 사회적인 메시지에 더욱 관심이 간다. 예를 들어, 취업한 선배가 후배들에게 밥을 사준다면서 요즘 젊은이들은 도전정신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 후배는 “저는요, 젊은이들더러 도전하라는 말이 젊은 세대를 착취하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뭣 모르고 잘 속는 어린애들한테 이것저것 시켜봐서 되는지 안되는지 알아보고 되는 분야에는 기성세대들도 뛰어들겠다는 거 아닌가요? 도전이라는 게 그렇게 수지맞는 장사라면 왜 그 일을 청년의 특권이라면서 양보합니까? 척 보기에도 승률이 희박해 보이니까 자기들은 안 하고 청년의 패기 운운 하는 거잖아요(27쪽)”라고 대답한다. 정말 발상의 전환이다. 어쩌면 너무 당연하게 도전정신과 청년을 동일시해왔는데 그것을 청년이 해야할 어떠한 의무라고 치부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나니 새로운 시각이 눈에 들어왔다.
더 핵심은 그 다음에 나온다. 이 말을 들은 선배가 “이름이 뭐랬지? 넌 우리 회사 오면 안 되겠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들은 후배가 “거 봐 아까는 도전하라고 훈계하더니 내가 막상 도전하니까 안 받아주잖아”라고 응수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상당히 공감을 했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하는 많은 조언은 대개 영혼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예전에 통했던 것이 요즘에는 통하지 않을 경우도 많다. 열마디 말보다 한가지 실질적인 도움이 꼰대를 벗어나는 지름길일 수 있다.
또한 중요하게도 표백세대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1978년 이후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유지, 보수자의 운명을 띠고 세상에 났다. 이 사회에서 새로 뭔가를 설계하거나 건설할 일 없이 이미 만들어진 사회를 잘 굴러가게 만드는 게 이들의 임무라는 뜻이다. 이들은 부품으로 태어나 노예로 죽을 팔자다(186쪽).” 확실히 예전 가난하던 시절 우리나라 사람들을 맹진하게 했던 경제화라든지, 어느 정도 먹고나서 우리가 바라던 바를 원했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지금은 없다. 경제화도 민주화도 어느 정도 이루었다. 그래서 큰 뜻없이 주인공처럼 7급 공무원을 하면서 조용히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특히 작가가 잘 꼬집었듯이 “표백세대들은 아주 적은 양의 부를 차지하기 위해 이전 세 개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경쟁을 치러야 하며, 그들에게 열린 가능성은 사회가 완성되기 전 패기 있는 구성원들을 기대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아주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196쪽).” 이미 어느 정도 완숙된 사회에서 나타나는 결과일 것이다.
소설에서는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이 자살을 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백 세대가 계속 암울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세계로 뻗어나가 정상급의 위치로 나가는 것이 하나의 길이 되겠다. 물론 우리나라가 그동안 많은 발전을 해왔지만 세계를 선도하는 위치에 선적은 단한번도 없었다. 단한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기 때문에 떨리기도 하지만, <기생충>영화를 보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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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박사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시중에서 많이 보이는 정서적인 위로에 관련된 책이 아니다.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의 이유에 대한 친절한 가이드 북이다. 2020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돈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해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부분에서 자본주의가 돌아가는 원리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자본주의의 원리가 일반 사람들의 삶의 곳곳에 이미 스며들었기 때문에 이 글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우선 사람들은 지금 당장 쓰지 않더라도 통장의 돈을 항상 의식하고 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는 것은 마치 공기가 없는 것처럼 절망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통장의 돈이 얼마있는 지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서 책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엇인가를 모아둔다는 것은 곧 미래에 대한 염려를 보여줍니다. 미래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자신의 손 안에 두기 위해 돈을 비축하려고 합니다. 화폐경제가 확립되어야 비로소 미래에 대한 염려가 가능하고, 미래를 염두에 둔 시간관념도 가능해집니다.” 자본주의적 시간의식에 대해서 저자는 잘 설명하고 있다. 영화 “In time”에서도 부자들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느긋하게 사는 가하면 가난한 자들은 항상 시간에 쫒기며 어렵게 살아간다. 과연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살지 않았다면 어떠한 시간관념을 가지고 살았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자본주의 사회에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울지는 몰라도 팍팍한 느낌을 주는 이유로 잘 설명해두었다. “화폐경제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 이루어졌던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와해시키고, 오직 돈으로만 개인들이 서로 연결되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 물론 모든 인간관계가 돈으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돈이 문제가 되는 것은 확실하다. 돈이 어떤 면에서는 공정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 어차피 사람은 타인을 판단할 때 어떠한 기준을 들게 마련이다. 돈이 없었다면 못생긴 사람이나 소수인종의 사람들은 차별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못생겨도 소수인종이라도 돈이 있으면 일단 존중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돈의 중요성이 너무 심해지다보니 그 사람이 무엇을 하든 돈만 많으면 된다는 배금주의 사상이 세상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확실히 자본주의는 명과 암이 있다.
또한 인상깊게 읽었던 구절은 “자본주의가 보장하는 자유란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아닙니다. 자본주의에서 자유는 돈을 가진 자의 자유, 소비의 자유에 불과할 뿐입니다. 소비의 자유란 결국 돈에 대한 복종의 이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이다. 대개의 사람은 자유를 꿈꾼다. 그런데 그 자유란 자본주의 안에서는 돈으로 이루어진다. 몇몇 소수의 사람을 빼고서야, 이 자유를 얻기 위해서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한다. 슬프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돈을 벌기 위해 한다. 즉, 자유를 위해 자유가 없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쥐꼬리만한 월급쟁이라면 이러한 역설에서 나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의 저자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렇다고 비판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안을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생산-소비협동조합”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용가치가 없음에도 사람들의 허영을 부추겨 기호가치를 소비하게 한다. 또한 필요이상의 돈을 모으려고 악착같이 욕심을 내서 불평등을 키우기도 한다. 생협의 세상에서는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생협의 돈은 축재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필요한 것을 교환할 수 있는 정도의 권능이 있을 뿐이다. 아직 이러한 세상이 도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자본주의 힘은 강대하다. 그래도 가끔은 다른 세상을 꿈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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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 한번 이상 대변을 본다. 그리고 3차례 이상 소변을 본다. 이는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이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러운 활동이다. 충분한 영양을 섭취한 인간이라면 배출은 필수적인 활동이다. 문제는 이 배출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이다. 아무리 향긋한 음식을 먹더라도 나오는 배출물은 어김없이 냄새가 난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5000만명이 배변을 매일같이 하는데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그 자체로 세상은 지옥이 될 것이다. 다행히 이를 잘 처리해주는 하수도가 있어서 다행이다. <서울하수도 박물관>은 어떻게 오폐수가 걸러져서 깨끗한 물로 재탄생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박물관이다.
<서울하수도 과학관>은 장한평역 근처에 있다. 그런데 장한평역에서 약간 떨어져 있다. 거리는 크게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데 찾기가 은근히 어렵다. 그래서 셔틀버스를 이용해서 이용객을 나르고 있다. 옆에 있는 서울새활용센터와 함께 있기에 무료인 셔틀버스를 타면 새활용센터와 하수도박물관을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
과학관은 일단 상하수도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예전에도 사람들은 배설하고, 세탁을 했으며, 설거지 등을 했으므로 생활하수는 나오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관리되지는 못했다. 가끔 현대의 환경오염을 이야기를 종종한다. 그런데 어쩌면 어떤 면에서는 지금의 환경이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하수만 하더라도 예전에는 생활하수를 그대로 버렸다. 나는 사람들이 과거에 대한 환타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면 다 좋았을 것이라는 환상 말이다. 과거 서울의 청계천에서 사람들은 빨래도 하고 머리도 감고 오줌도 누고 했다. 내가 생각하건데 하수처리가 안된 청계천은 정말 더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전의 청계천은 맑은 물이 저절로 흐르는 곳이라고 여긴다. 예전 사람들의 기대수명이 아주 짧았던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더러운 생활용수 때문이었을 것이다.
현대적 의미에 하수도가 생긴 것은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전시관에서 예전에도 하수도가 있었다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이 하수도가 사실 별로 없었고 아주 원초적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 전시의 느낌은 마치 예전 우리의 선조는 일찍이 하수시설의 중요성을 알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나는 과거를 미화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러한 미화가 현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빈번하게 잊게하는 사고방식이라고 본다. 지금은 녹물이 조금만 나와도 화를 버럭 낼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녹물만도 못한 물로 생활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전시가 있었으면 하다.
그렇다고 현재를 찬양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현재 서울 하수도 시스템이 어떻게 되어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우리가 매일같이 배출하는 오수가 잘 처리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앞으로의 과제도 많이 다루어야 한다. 특히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하수 시스템이 발전할 수 있을 지를 그렸으면 좋았을 것 같다.
하수처리는 정부에서 하는 중요한 일 중에 하나이다. 이 부분은 민영화되서는 안되는 부분이다. 수익을 창출해보겠다고 하수서비스를 민영화시키면 일반 시민의 삶은 아주 피폐해질 것이다. 하수처리는 경제성장과는 달라서 하수처리를 잘 해도 티가 나지 않는다. 반면에 잘못될 경우에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이러한 면에서 국방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다. 국방의 경우에도 전쟁을 스스로 일으키지 않는 한 잘해도 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다. 문제는 시민들이 이러한 정부성과에 대해서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시민들이 정부를 신뢰할 때, 정부성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하수도 같은 성과는 잘 반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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