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머리 앤>

Exhibition 2019. 8. 2. 23:19

<빨강머리 앤>의 드높은 이름은 예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으나 사실 나는 이 책 혹은 만화영화를 본 적이 없다. 아마도 남자여서 그런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도 성별에 따라서 아이에게 가르쳐주는 내용이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남자아이에게는 로봇을 손에 쥐어 주고 여자아이에게는 인형을 손에 쥐어 준다든지 하는 식의 차이 말이다. 그래서 일까 <빨강머리 앤>은 늘 나의 관심 밖의 무엇인가였다. 그래도 늦었지만 빨강머리 앤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좋은 전시였다. 물론 아마도 어렸을 적 <빨강머리 앤>을 접했던 사람들은 향수에 젖어서 전시회를 보았겠지만 나는 오히려 빨강머리 앤의 쓰여진 상황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보게 되었다.

<빨간머리의 앤>의 원어 제목은 왠지 Red Hair Anne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Anne of Green Gables>이다. Green Gables는 친척의 농장이름이라고 한다. 이 소설은 캐나다 작가인 몽고메리가 1908년에 출간한 작품이라고 한다.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읽혀지는 것을 보면 글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 가를 불현 듯 느끼게 된다. 주인공 앤에게 저자의 모습이 얼마나 많이 투명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가상적인 인물이지만 영원을 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고전인 <빨간머리의 앤>도 출판사에게 여러 번의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작가가 여러 번의 거절에 의기소침해서 출간을 포기했다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이 되어주고 가상의 친구가 되어준 앤은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내 이름은 빨강머리 앤> 전시회에서도 이 작품에 영감을 받아서 많은 작가들이 예술품을 출품하였는데 각기 다른 느낌에 보는 사람은 또 다른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도 각 장(chapter)로 구분하여 앤이 거쳐온 삶의 여정, 그리고 느꼈던 감정들을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또한 촉각적으로 표현한 여러 작품을 보았는데 역시 예술의 끝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사람의 창의성은 얼마나 대단한 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했다. 마치 스타워즈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9편으로 되어 있지만 그 사이 사이마다 스핀오프를 제작해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는 것처럼 <빨강머리 앤>이라는 단일 저작에서 수많은 또다른 작품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또한 <빨강머리 앤>이라는 작품을 두고 여러 해석도 가능하고 의미부여도 가능하다. 이것이 예술의 위대함이 아닐까한다. 아무리 작가가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창작을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다르게 해석하면 그만이고 그것이 또 효용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오히려 장려될 수 있다. 만약에 단순히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타인에게 전하고 싶으면 명료한 몇 문장으로 표현하면 그만이다. 마치 양희은의 <아침이슬>이 사실 결혼축하곡으로 쓰여졌지만 추후 민주화 운동가로 쓰였는데 그 가사가 어떻게 해석되느냐는 받아들이는 입장의 것이다. <빨강머리 앤>의 결말은 굉장히 똑똑했던 앤이 대학입학허가까지 받았지만 여차저차한 이유로 대학을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당시 열악했던 여성인권을 생각해볼 수도 있고, 고향에 남아서 사람들과 오순도순사는 삶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소설을 그걸로 끝나기 때문에 처음에는 대학진학을 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할 수도 있는 것이고, 혹은 대학은 진학하지 않지만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추측을 할 수 있고, 결말이후의 앤의 삶에 대해서 상상해 볼 수도 있다. 앤은 가상의 인물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상상도 가능하고 그의 의도에 대해서도 나만의 추측도 가능하다. 만약에 앤이 역사적 실존인물이었다면 이런저런 추측과 상상은 조금 더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이번 전시회는 서울숲 겔러리아 포레에서 열리고 있다. 나는 겔러리아 포레에 전시장이 있는 것을 처음알게되었는데 나름 괜찮은 것 같다. 특히 서울숲에 들렀다가 전시회도 보면 일석이조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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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slee

<제인 에어>

Book 2019. 7. 23. 00:20

이름은 이미 익숙하게도 들었으나 이제야 제인에어(Jane Eyre)를 읽었다. 나는 이 제인에어를 읽고 이것이 어떻게 초등학교 고학년을 위한 필독서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혹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을 너무 미성숙하게 보던지 아니면 제인 에어의 내용이 너무 파격적이라서 크게 놀라고 말았다.

제인에어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줄이면 다음과 같다. 제인 에어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외삼촌에게 자라다가 그 외삼촌도 죽고 다른 친척들에게 엄청나게 구박받으며 살다가 고아학교에 보내져서 양육되는 데 그 고아학교도 굉장히 억압적인 분위기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히 성장한 제인에어는 손필드에 가서 가정교사를 일하는 데 그곳의 주인인 로체스터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래서 로체스터랑 결혼하려고 하는데 로체스터에게 이미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충격을 받은 제인에어는 손필드를 떠나고 여차저차해서 선교사랑 사랑을 나누는데 선교사가 청혼하는데 거절하고 로체스터에게 돌아간다. 돌아갔을 때 손필드는 로체스터의 광인인 아내가 불을 내고 자살해서 로체스터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이를 극복하고 그와 잘되는 것으로 소설을 끝이 난다. 이 내용만 보면 지금 나오는 웬만한 막장 드라마 뺨치는 시놉시스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을 읽고 초등학생에게 사랑의 아픔과 기쁨을 느껴보라는데 내 딸에게 제인에어를 초등학교때 보여줄 용기가 전혀 없다. 특히 중간부분에 저택에 나오는 미친 웃음소리를 내는 여자가 로체스터의 아내인 것은 정말 깜짝 놀랐다. 지금 읽어도 꽤나 반전포인트인데 그 당시에는 상당한 충격있을 수도 있겠다. 미쳤던 로체스터의 아내가 나중에 방화하고 자살하는 것도 꽤 충격이었다. 더 충격인 것은 제인에어가 로체스터에게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물론 자기의 인생을 자기가 선택하고 살지만 조금 아쉬웠다. 이러한 파격적인 전개를 보면 근래 나오는 드라마의 전개도 꽤나 이해가 되었다.

1800년대 중순 소설답게 그 당시의 배경도 많이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그 때나 지금이나 많이 변하지 않은 것은 고아의 어려운 처지이다. 부모님이 없는 아이들은 운이 좋은 경우에는 친척에게 맡겨지거나 좋은 곳에 입양을 가게 된다. 하지만 평범한 경우에는 시설에 맡겨진다. 시설의 환경이 좋으면 좋겠지만 어려서부터 군대같은 단체생활을 하게 되면서 삭막하게 살아간다. 현재 우리는 저출산 시대에 돌입했다. 하지만 버려지는 아이들이 부지기수로 있다. 조금은 갑작스럽기는 하지만 <제인에어>를 읽으면서 현재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어떻게 되고 어떻게 키워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제인에어>를 읽으면서 몇 번 빵터지게 웃었던 포인트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번역때문이었다. 내가 본 책은 강선영씨가 번역했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번역해서 읽는 내내 불편함이 없었다. 그런데 가끔 초월번역을 해서 나를 웃음짓게 하였다. 예를 들어, “넌 공자님 딸이니? 아니면 맹자님 조카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니?”라는 부분에 아주 많이 웃었다. 원전에 공자님이니 맹자님같은 이름이 나올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원래 어떻게 말을 했길래 공자님이니 맹자님같은 이야기가 나왔는지 궁금하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번역은 제2의 창작으로서 외국서적을 읽을 때 매우 중요하다. 번역하는 사람이 어떠한 단어를 어떻게 쓰냐에 따라서 내용의 질감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자님과 맹자님이라는 단어를 쓰는 순간 화자가 무슨 말을 쓰려는지 가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러한 초월번역은 나름대로 위험한 면도 있다. 자칫 잘못하면 아예 뜻을 바꾸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번역에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잘된 번역과 그렇지 못한 번역이 있다. 제대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두 언어에만 정통한 것이 아니라 두 사회의 배경에 대해서도 정통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인에어가 잘 이해된 것은 번역가 덕분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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