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건축만담>

Book 2019. 7. 21. 20:41

 

<서울건축만담>은 건축가 2명이 서울에 있는 어느 건물이나 공간에 대해 자신의 느낀 점을 쓴 것이다. 그런데 건축가라고 해서 건축에 대한 지식을 기대했다면 매우 실망할 수 있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글쓴이가 건축가가 아니라고 해도 무방하다는 것이었다. 반면 감수성있는 작가가 글을 쓴 것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읽을 만하다. 서울의 여러곳에 대한 개인의 상념을 이리저리 적었기 때문에 정보를 건지기 보다는(물론 내가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는 있다) 타인의 생각과 느낌을 읽을 수는 있다.

글을 읽다보면 아마도 글쓴이들이 대략 70년대 초반 정도의 나이로 추정된다. 이제 50에 가까워진 나이이다. 이 즈음이면 자신의 커리어도 어느 정도 단단해지고 어쩌면 어느 정도 지나온 세월을 돌아볼 여유도 조금 생기는 나이일 수 있다. 그래서 서울의 여러군데 돌아다니며 건축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흘러가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런 것을 보면 어쩌면 우리 인간이라는 것, 정체성이라는 것은 기억이 거의 대부분 결정 짓는 것 같다. 그리고 건축물도 개인의 기억을 투영하여 인식하는 것은 아닐 까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도 그러한 건축물이라든지 공간이 있음을 기억한다. 예를 들어 내가 청소년기에 오래살았던 반포미도아파트라든지 하교하면서 가끔 들른 고속터미널이라든지 대학교때 자주가던 강남역이라든지 하는 공간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가끔 반포에 가게되면 겉모습은 그대로인데 주위의 환경이라든지 내부 인테리어가 많이 바뀌면 마치 성형수술을 해서 예전모습을 잃어버린 친구를 보는 것 같은 아쉬움도 있다. 이제는 없어진지 오래되었지만 고속터미널에는 반포시네마라는 영화관이 있었다. 센트럴시티가 들어오고 그곳에 신식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들어오기 전에는 반포사람이라면 주로 가는 영화관이었다. 새로운 영화가 개봉되면 손수 직접 그려진 영화간판이 올라가고는 했다. 내가 고등학교 때 디지털 카메라가 널리 보급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찍어 놓지못해 아쉽기는 하지만 마지막으로 본 수제영화간판은 미션임파서블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았던 영화들도 생각난다. 학창시절 보았던 쥬라기 공원이, 다이하드부터 고등학교 CA시간에 보았던 스타워즈도 생각난다. 심지어 사복을 입고 갔다가 선생님에게 혼이 나고 교복으로 갈아입고 왔던 기억도 난다. 가끔 고속터미널 건물에 가면 이제는 흔적조차 없어진 그곳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세대 차이도 느껴진다. 글쓴이들이 70년대 초반의 사람들로서 90년대 대학생활을 보낸 X세대로서의 건축에 대한 공간에 대한 감회가 느껴졌다. 예를 들어, 가로수길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글의 제목이 아예 <응답하라 1994>인데 1994년은 바햐흐로 젊은이들의 전성시대였다. 일단 문민정부가 들어섰고(물론 삼당합당을 통해서 김영삼이 정권을 잡았지만 일단 군인출신은 아니고 들어서고 하나회 척결 등의 노력을 했으므로), 대중문화는 융성했고,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외국문화도 많이 들어왔다. 결정적으로 1997년 하반기 이전의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대체적으로 호황이었기 때문에 대학생들은 취업의 걱정도 지금처럼 어렵지 않았다. 정말 X세대는 젊은이들이 군사독재도 아니면서 만성적인 저성장 시대를 맛보기 전인 단 몇 년간의 달콤함을 누린 세대이다(물론 그 후 혹독한 경제위기로 고생을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인지 그 당시를 젊은 시절을 그리는 X세대들이 많은 것 같다. 전람회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 전 세대는 감히 하지 못했던 유럽배낭여행을 떠났던 그 때에는 가로수길이 지금처럼 융성하지 못했는데 이 꼭지의 글을 쓴 최준석씨는 그 당시가 꽤나 그리운 모양이었다. 세대에 따른 기억법은 세대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이제 X-세대가 무려 50줄에 접어들어 나 때는 말이야를 이야기하고 자녀취업걱정을 하는 나이가 되었다. 아마 X-세대의 자녀들은 같은 공간과 건물도 완전 다르게 기억할 것 같다.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미FTA 국민보고서>  (0) 2019.07.24
<제인 에어>  (0) 2019.07.23
<법학입문>  (0) 2019.07.19
<Freakonomics>  (0) 2019.07.18
<두개의 시선 하나의 공감>  (0) 2019.07.17
posted by yslee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Book 2019. 2. 11. 01:10



서울은 이제 세계 10대 도시 안에 낄 정도로 규모와 세련됨을 갖추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러한 모습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조선시대부터 수도였던 서울은 원래 공식적인 크기는 4대문 안이었다. 그래서 왕십리라고 하면 도성에서 10리의 거리를 말하는 것이었고 도성 외에는 많이 발전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의 최고의 지역이 된 강남은 허허벌판의 논밭이었다. 실제로 압구정 현대와 한양아파트가 들어오던 80년대 초반까지 만해도 아파트 앞에 논이 있을 정도였다. , 서울이 급속히 개발된 것은 불과 기껏해야 50년 정도된 이야기인 것이다. 가끔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도무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들이 서울에 있었는데, <서울도시계획이야기>5권에 걸쳐서 차분하면서도 재미있고 탄탄한 자료를 근거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여준다.


저자인 손정목은 1928년생으로서 1970년대 서울시에서 근무하면서 직접 서울이 개발하는 것을 실행하고 보아온 사람이다. 마치 할아버지께서 그동안 서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손자들에게 이야기하듯 글을 적어놓았다. 5권으로 된 시리즈인데 나는 일단 중간인 3권을 보았는데 아주 흥미로웠다. 3권에서는 능동 어린이공원, 강남개발, 잠실운동장, 고속터미널 등을 다루었다. 잠실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30년 넘게 살았는데도 모르는 것이 아주 많았다. 마치 그동안 몰랐던 과거를 알게 되는 기분이었다.


우선 능동 어린이공원의 경우에는 원래 골프장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서 어린이 대공원으로 바뀌게 되었다. 골프장 근처로 건국대학교와 세종대학교가 들어왔는데 사람들이 골프치는 것을 보는 것이 위화감을 느꼈다고 한다. 게다가 때가 새마을 운동을 한창 할 때라서 근검절약을 덕목으로 삼는데 골프는 새마을 운동의 취지와도 잘 맞지 ㅇ낳았다. 골프장 사장이 쌍용그룹의 김성곤씨였는데 서슬이 퍼런 박대통령의 명령 앞에서는 자신의 사유재산을 헐값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아직도 어린이 대공원에 가면 근처에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여사가 이끈 육영재단이 남아있다. 어린이 대공원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강남이 개발된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사실 강남 3구라고 불리는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는 최근에 만들어진 구이다. 예를 들어, 서초동은 영등포구였고, 삼성동, 대치동, 청담동같은 강남구의 핵심지역은 성동구였다. 그리고 잠실지역은 경기도 광주였다. 심지어 송파구와 서초구는 1988년에 만들어졌다. 즉 강남이 조성된 것은 30년 정도된 것이다. 이촌향도가 심했던 1970, 터질 것 같은 강북은 인구를 주체하지 못하고 강남에 신도시를 만든다. 이것이 영동(영등포의 동쪽이라는 뜻)지역을 개발한다. 그 당시에는 돈이 없어서 미국에서 빌린 돈으로 아파트를 짓기도 했다. 예를 들어, 지금은 힐스테이트가 되었지만 예전에 삼성동 AID차관 아파트도 미국에게 준 돈으로 지어서 AID(Act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돕다라는 뜻의 aid와 중의적으로 쓰임) 차관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다. 이렇게 강남은 시작되었다.


책을 읽다보니 지금 신도시 개발하는 것에도 시의적으로 생각할 만한 사건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잠실에 대단위 단지가 들어섰는데 도심으로 갈만한 마땅한 대중교통이 부족해서 주민들이 불편함을 겪은 모양이다. 지금의 잠실을 생각하면 놀랍겠지만 그 당시에 주요 기업이 모두 도심에 있었고 강남은 지금으로 치면 양평마냥 시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직장에 가려면 움직여야했다. 게다가 지금처럼 도로가 잘 되어 있고 사람들이 차가 많은 것도 아니라서 대중교통에 많은 의존을 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지하철을 놓게된다. 특히 2호선이 잠실을 지나가는 데 우선 신설동과 종합운동장 구간이 개통된다. 지금도 많은 신도시가 생겨나고 있는데 대중교통 부족으로 신음하는 것을 보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차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외에도 다양한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예를 들어, 고속버스터미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아주 재미있다. 계획적으로 때로는 무계획적으로 발전한 서울이 이렇게 성장한 것도 놀라운 일이다. 앞으로 서울이 어떻게 변화, 발전할 지는 모르겠지만 30년 후에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지금을 어떻게 말할지 궁금하다.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자의 물건>  (0) 2019.02.25
<뉴욕, 매혹당할 확률 104%>  (0) 2019.02.17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0) 2019.02.07
<이방인>  (0) 2019.01.27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0) 2019.01.21
posted by ys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