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혁백 <세계화시대의 민주주의>

Book 2021. 7. 5. 23:40

사실 정치학을 배운다고 해서 정치를 갑자기 더 잘한다거나, 갑자기 정치의 흐름이 잡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양질의 정치학 책을 읽다보면 현상에 대해서 좀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나름대로의 의견을 세우는데 도움이 된다. 물론 이것이 실생활에 금전적으로 도움이 직접적을 되지 않아서 허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라는 것이 우리 생활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정치에 대한 소양을 쌓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임혁백 교수의 <세계화시대의 민주주의>는 임교수가 그동안 써온 글을 모은 것인 데 그의 탁월한 식견과 글솜씨로 책을 읽을 맛이 난다. 그리고 그의 의견을 토대로 여러 아이디어를 새롭게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책에 여러 생각해볼 만한 개념이 나오지만 가장 눈길을 끌었던 개념은 제도화된 불신(institutionalized distrust)이다. 임교수는자유민주주의는 불신의 제도화를 통해서 신뢰를 구축한다라고 이야기하는 데 정말 공감이 가는 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의민주주의에서는 어쩔 수 없이 공무원이 있고 일반시민을 대표하는 입법자가 있다. 그런데 이미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시민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지 않기도 한다. 물론 시민을 위해서 헌신을 다하는 공무원과 정치인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정책을 입안할 때나 국정을 운영할 때, 공무원이나 정치인을 성선설입장에서 바라보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철저히 성악설의 기반하여 통제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행정학에서는 공공봉사동기(Public Service Motivation)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 개념은 다양한 하위요소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익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일한다는 것이다. 소방관이나 국립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진을 보면 이러한 동기를 느낄 수 있다. 반면에 니스칸넨을 비롯한 경제학자들은 공무원은 이기적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고 본다. 물론 본 이론에서는 부처의 크기를 크게하고 자신의 권력을 증강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지만 요즈음 LH공사 직원이 부동산 투기 행위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각종 정책을 쓸 때 시민의 입장에는 후자의 입장에 서야한다고 본다.

공직자들의 각종 비리와 비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책에서도 언급이 되지만 투명성을 높여야한다. 최근 공군에서 여성부하를 성폭행하여 여성장교가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은 성폭행하는 것이 증거로 남겨져 있었다. 아마 이러한 증거가 없었더라면 분명히 공군에서는 그런일이 없었다고 쉬쉬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요즘 군인들에게 나오는 밥의 질이 엉만진창이라는 것도 휴대폰이 반입이 되고나서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다. 아마 휴대폰이 없었다면 그런 일이 없었다고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이렇게 썩어 있는 곳에 햇빛을 쐬게 하면 문제는 완화될 여지가 있다.

아마 그저 사람을 신뢰한다면 문제는 반드시 재발한다. 아주 사람을 믿지 못하는 기본적인 생각을 가지고 이를 철저히 제도화하고 정책화시켜야 한다. 그래야 역설적으로 신뢰로운 사회가 나타날 수 있다. 물론 앞서 공직자의 경우를 이야기했는데 일반 시민들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CCTV는 사회 신뢰를 증가시키는데 획기적인 역할을 한다. 물론 CCTV가 있다는 것은 사람을 못믿겠다는 것이다. 모두 믿을 수 있다면 CCTV는 필요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기계가 없었을 때 얼마나 많은 거짓말이 있었을 것이며, 억울함이 있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불신을 기반으로 한 CCTV가 사람들 서로를 배려하게 만든다.

불신을 통해서 신뢰를 만든다는 말이 어불성설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항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거래비용이 적게드는 방식으로 불신을 제도화 시킨다면 사회는 더 신뢰가 번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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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slee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Book 2021. 7. 1. 01:43

정치는 우리 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미친다. 정치인이 어떠한 정책을 진행시키고 법을 만드냐에 따라서 사회의 질은 좌지우지된다. 문제는 정치는 그다지 깨끗하지 않은 과정이다. 일단 사람마다 원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 갈등을 노정하고 봉합하는 과정은 마치 깨끗한 수술이 드문것과 마찬가지로 어렵고 때로는 꺼려지는 과정이기는 하다. 그리고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신념체계에 따라서 이성적인 숙의가 어려운 것도 정치이기도 하다. 정치뉴스 댓글에 가면 별의별 말도 여과되지 않은 의견들이 범람하고 있다. 그래서 정치하면 진절머리가 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이 숙명을 받아들이고 더 나은 길을 개척하려면 약간의 정치 해설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차분히 읽어볼만 양서이다.

책 제목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이지만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훨씬 전인 대한민국 건국때부터 이 책은 거슬러 올라간다. 그래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설명하기 위해서 민주화 이전의 민주주의를 알아볼 필요가 있는 책은 현상태에 이르게 한 우리나라의 여러 중요한 포인트를 잘 정리해두었다. 나는 우리나라만 지금 상태에 이를 때까지 역사적 고통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식민치하를 겪었고, 동족상잔의 아픔도 겪었고, 군부독재도 거쳤다. 이 모든 것 어느 것 하나 극복하는 것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는 여러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 국가도 식민지, 내전, 독재를 경험하였기 때문에 우리만의 독특한 경험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대단한 것은 이것을 겪어 내고 선진국 대열에 선 것이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이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역사적인 전진을 이룩한 것에 대한 자긍심을 느꼈다.

 

우리 사회가 어떤 영웅적 해결자를 갈구하게 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이런 사회 심리적 경향은 과도한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게 만드는 부정적 효과를 가질 수 있으며, 이는 현실적이고 건전한 대안을 조직하고 제도화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255).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대통령제인 우리나라는 아직도 대통령의 권한이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강력하다. 그래서인지 시민이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상당하다. 최장집 교수는 이러한 기대가 실망을 가져온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한발 더 나아가려면 누구한명이 바뀌어서 갑자기 선진화를 꿈꾸기 보다는 시스템으로 사회가 움직여야 한다. 여기서 시스템으로 사회가 움직인다는 것이 기득권을 위한 사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에게 납득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나라가 운영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도 더 깊이 우리나라에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사회적 합의는 만장일치의 개념이 아니라, 여러 대안들 간의 경쟁을 통해 다수 의사를 만들어 내는 과정과 그 결과를 말한다(251).

 

근래 걱정스러운 부분은 사회적 갈등이 첨예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갈등이 있는 것은 사회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갈등은 건강하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극단적인 갈등은 병이다. 일단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 타인의 생각을 바꿀 생각을 하면 안된다. 일단 인정은 하되 현실적이 상황에 가장 적합한 방안을 찾고 그것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 갈등이 병적인 수준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말은 쉽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갈등을 사회적 합의로 승화시키는 시민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posted by ys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