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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전태일 열사께서 돌아가신지 40년이 다되어가는 이 시점에 <전태일기념관>이 청계천에 생겼다. 1948년에 태어나 1970년 22살에 나이에 스스로를 불태워 노동의 문제를 온몸으로 알린 그 분의 이름으로 기념관이 세워졌다. 우리나라가 노동집약형 산업으로 고도성장을 할 시기에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하루에 15시간이 넘는 시간을 일해가면 살았다. 물론 전태일열사와 동일한 모습은 아마도 중국이나 베트남으로 많은 부분 넘어거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이 문제도 사실 관심을 가져야한다) 있지만 인간다운 노동에 대한 고민은 지금도 치열하게 해야한다.
1층과 3층에서는 고 노회찬 의원의 추모전시가 있었다. 노회찬 의원같은 분은 작은 양심의 가책에도 스스로 목숨을 거두는데 오히려 큰 과오가 있는 자들은 오히려 떵떵거리고 사는 이 세상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의 발전을 기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노동현실의 개선을 위해 헌신한 노회찬 의원님같은 분을 기리고 그 분의 지향한 바를 계승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 있어서 노회찬 의원 추모전시는 <전태일 기념관>과 결을 같이한다.
그리고 3층과 4층에서는 전태일 열사 상설전시관이 있다. 그가 살아온 길과 그 분의 유품 그리고 그 분의 뜻을 기렸던 조영래 변호사님에 대한 설명이 잘 나와있다. 전태일이라는 사람은 이제 죽고 없지만 그의 숭고한 뜻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전태일이라는 이름은 무수한 노동자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쓰여지고 버려지는 하나의 부속품같은 존재였던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 누구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다운 노동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인하여 근로여건은 개선되어 왔다. 이제는 국가권력보다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의 영향으로 인하여 동자들은 어려운 처지에 몰려있다.
<전태일 기념관> 앞에는 <미생>의 주인공의 장그래와 전태일열사가 같이 서있는 모습이 있다. 형태는 바뀌었을 지언정 하루하루를 불안으로 채우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사는 모습은 근본적으로 많이 닮아 있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구의역 역사 사고참사라든지 삼성백혈병 문제 같은 사회적 약자로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태일 기념관>은 단순히 전시실로서만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진행형인 노동문제를 풀기위하여 교육을 하고 연구를 한다. 또한 노동운동에 대한 자료도 잘 관리하고 있다.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그 과거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단순히 아픈 과거라고 덮어두기만 하면 또다시 그러한 아픔이 미래에도 일어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일어난 일을 잘 적시하고 그것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을 현재와 미래에 적용해서 해석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전태일 전시관>에서는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기계가 인간의 노동의 부분을 모두 대체하기 전까지는 아마도 노동문제는 계속 될 것이다. 가끔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모두 대체하는 것이 좋을까라는 의문은 일단 차치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남아있는 인간의 노동이 될 수 있으면 개인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쪽으로 발현되었으면 하다. 물론 이것이 매우 이상적이라 실현이 잘 안되겠지만 이러한 꿈을 꾸고 그 꿈에 비슷하게만 가더라도 꽤 성공적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아마도 전태일 열사께서 바라던 그러한 미래가 아닐까 싶다. 약간 오래된 방법같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방법으로 국민 모두에게 적어도 헌법과 근로기준법에 대해서는 특별히 강조되어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것만 잘 지키더라도 지금의 많은 노동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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