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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아가는 데 있어서 시대의 제약을 받게 마련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 예전을 평가하면서 현재의 교훈을 얻기도 한다. 18세기 중후반을 살아간 담헌 홍대용이 북경을 가는 이야기를 통해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준다. 물론 250년 전의 담헌 선생이 몰랐던 것처럼 250년 후인 2270년 즈음에는 지금 21세기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인간은 시공간에 구애를 받기 때문에, 이전 일을 토대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고민해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18세기 중반만 하더라도 국경을 마주한 청나라에 가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홍대용도 어렵사리 기회를 얻어 북경으로 가게된다. 지금이야(적어도 코로나 이전에는) 세계 방방곳곳을 갈 기회가 있었다. 이러한 이동의 자유는 사람들의 시각에 큰 변화를 준다. 가끔 역사책을 보면 왜 저렇게 살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현재의 시각으로 과거를 이해하려면 어려울 때가 있다. 이는 현재 시점에서 보통 사람들이 우주탐사를 할 생각이 없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부자들이 우주여행을 가려고 하는 모양인데 250년 전만 그만큼이나 해외에 가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 시각이 국내에만 그리고 고을에 국한되었 있을 것이다.
심지어 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오랜시간이 필요했다. 홍대용만해도 북경까지 가는데 한달이 걸렸다. 지금 우리나라 반대편에 있는 남아메리카에 가려면 환승하고 해서 하루 정도 걸리는데 한달이나 걸린다는 것은 보통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자동차가 발명된 것도 1886년이고 비행기가 발명된 것은 1903년이다. 이 전에는 동서를 막론하고 장거리 여행이 매우 어려웠다. 250년 전 사람인 홍대용이 아마도 비행기를 상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나는 스타트렉에 나오는 순간이동 같은 것을 상상은 하기는 하지만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23세기에 새로운 기술이 나와서 이동이 어디든 순식간에 이루어 질 수 있다면 어떤 세상일지 궁금하다.
또한 언어의 장벽도 큰 문제였다. 홍대용은 중국에 가서 중국 학자들과 종종 필담을 나눈다. 조선시대에 이미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드셨지만 식자층에서는 계속 한자를 썼다. 문제는 한자를 쓴다고 해도 그것은 언문이지 말할 때 발음은 다르기 때문에 통역이 필요했다. 지금도 이 언어의 장벽이 꽤 큰데 그 장벽이 점점 허물어져 감을 느낀다. 예를 들어 내가 중국에 가서 답답하면 파파고를 꺼내서 번역 버튼을 누르면 쉽게 무슨 뜻인줄 알게 된다. 이러한 추세는 점점 강화될 것이다. 홍대용이 마치 구글번역기를 상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250년 후에는 정말 그 어떤 외국어를 쓰더라도 듣는 사람이 자기가 아는 언어로 저절로 바뀌어 주는 기능의 몸에 장착될 수도 있다.
홍대용은 북경에 가면서 새로운 것을 많이 보고 배운다. 그런데 당시 조선의 지도층은 청나라를 인정을 못하고 있었다. 중국의 근본은 한족 국가인 명나라인데 이민족의 청나라는 한 수 아래의 저열한 국가라고 생각한 것 같다. 상상컨대 명나라는 현재 우리에게 미국정도 되는 나라라고 생각된다. 가령 미국이 멕시코에게 점령당해서 망한 다고 하면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멕시코를 인정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미국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을 것 같다. 지금이야 명나라가 돌아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신해혁명이후 오랜 전제군주정이 끝나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보다는 명나라가 부활할 수 있다고 기원했을 것 같다. 하지만 홍대용은 직접 청나라를 보고 세상이 변했음을 감지했다.
조선시대에 수많은 선비가 있었지만 특별히 홍대용이 기억되는 것은 그의 연행록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물론 다음 업적도 많지만). 이런 면에서 글을 쓰고 남기는 일은 멋진 일 같다. 그 당시의 세상을 묘사함은 물론이고 이미 그는 죽었지만 그의 생각은 후손까지 알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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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독립을 위해서 많은 분들이 힘을 쓰셨지만 우당 선생님은 그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아마도 그가 아나키스트이면서도 명문가의 자제였다는 점이 더욱 그를 더 기억하게 만든다. 독립운동가분들의 인생은 한 분 한 분 역사드라마로 담을 수 있다. 우당 선생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당 선생님을 설명할 때 항상 따라 붙는 단어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다. 사회 상위층이 보통 사람들보다 더 사회적 의무를 더 하는 것을 뜻하는 단어인데 사실 우리나라에서 부족하다고 흔히 지적되는 뼈아픈 부분이다. 나라가 위기가 왔을 때, 있는 사람들은 더 자신이 가진 것을 챙기고, 없는 사람이 희생을 더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으니 바로 우당 선생님이다. 사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말처럼 시행되기 어려운 것은 가진 것이 많을수록 잃고싶지 않아 발버둥치는 것이 사람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잃을 것이 많은 풍족한 사람이었다. 1867년 이조판서 이유승의 아들로 태어난 선생님은 병탄이 된 1910년 그 해 44세의 나이로 일가의 노비를 해방시키고 나라를 다시 구하고자 만주로 떠난다. 지금도 40세가 넘어서 가진 것을 버리고 새로 시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만주에 가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등의 활동을 하신 것이다. 이러한 일 자체가 놀라움이다.
우당선생님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은 그가 어렵게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후회하지 않고 변절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일제에 분개하여 독립운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지쳐가고 변절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특히 선생님 정도되는 지체있는 집안이라면 일제에 조금만 협력하더라도 편하게 평생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원래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에 비해서 독립한 것을 더 후회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재산을 모두 독립을 위해 투여하고 자신은 극빈층이 되었는데도 그는 마음을 바꾸지 않고 꾸준히 정진했다. 나는 이 선생님의 강건한 의지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물론 우당 선생님의 업적이야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 그 분의 업적이 혼자의 힘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여러 동지들이 있었고 가족이 있었다. 특히 부인 이은숙 선생님의 조력을 빼놓을 수가 없다. 우당 선생님과 이은숙 여사는 1908년에 결혼을 했다. 이 때는 이미 나라가 망국의 길로 접어든 상태였고 우당 선생님은 신민회를 조직하는 등 독립운동을 시작하시던 시기였다. 만약에 15년 즈음 만났더라면 잘 사는 집안 자제랑 결혼하는 것이니 특별한 고민거리가 없겠거니 했겠지만 이은숙 여사가 결혼한 후부터는 줄곧 고생길이었다. 가산을 팔아서 독립운동에 써버렸기 때문에 늘 가난했다. 그리고 남편은 독립운동에 헌신하기 위해서 경제활동을 등한시할 수 밖에 없었다. 가계를 꾸리는 것은 이은숙 여사의 몫이었다. 이러한 상황에 불만을 품을 수도 있건만 여사님도 선생님의 뜻을 지지하고 꾸준히 나아간다. 이러한 분들의 헌신이 없었더라면 우당 선생님의 업적도 적어졌을 것은 분명하다.
우당 선생님의 비극이라면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시고 돌아가신 것이다. 선생님은 1932년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어 고문으로 뤼순감옥에서 돌아가신다. 그의 나이 66세였다. 사람은 꿈과 희망이 있을 때 현실이 엄혹해도 버티어 나갈 힘을 얻는다. 아마도 선생님은 독립운동이후 하루하루 어려운 생활을 하셔도 조국이 독립할 수 있다면 그 어려움도 충분히 견디어 낼 만하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독립운동가 분들 중에서 그래서 끝내 광복의 기쁨을 누리신 분들은 그나마 다행인데 선생님처럼 끝내 광복하는 것을 보지 못하신 분들은 천추희 한을 품고 유명을 달리하신 것이다. 이러한 안타까운 아픔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닐 까 싶다. 우리가 더 잘 살고 선생님의 뜻을 기리는 것이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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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성공의 비법에 대해서 알고 싶어한다. 반대로 실패한 이유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말콤 글래드웰은 사람들이 잘 생각지 못했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원인을 흥미롭게 이야기한다. 어떤 부분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라 지적으로 자극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성공이라고 하면 일단 노력과 재능의 총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부분도 성공에 영향을 준다. 운이라고 하면 운이라고 할 수 있는 측면이 성공에 체계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저자는 아이스 하키 선수 중에서 잘 되는 선수를 분석하면서 상반기에 태어난 사람들이 하반기에 태어난 사람들보다 유리함을 보였다. 이유는 상당히 논리적이다. 운동선수의 경우에은 어렸을 적의 성적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어렸을 적은 성장이 완료된 성인과는 달리 달에 따라서도 체격의 차이가 크다. 그래서 같은 학년에서 경쟁했을 때 상반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하반기에 태어난 아이들보다 유리하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상반기의 아이들은 자신감을 가지고 아이스 하키를 임할 수 있고 더 나은 성적을 올리게 된다. 이러한 성적이 누적되면서 상반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아이스 하키 선수로 성공하게 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요인이지만 충분히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뜻하지 않은 이유로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비행기 추락 사고를 예를 드는데 우리나라의 항공기 이야기를 한다. 비행기 추락의 원인이 조종사의 실력 문제가 아니라 소통문화때문이라는 것이다. 말콤 글래드웰은 우리나라가 상관에 대해 이의가 있을 경우에 표현하기가 어렵다고 보았다. 사실 한국인으로서 나는 이 사건분석에 대해서 크게 공감했었다. 실제로 문제가 있더라도 상급자가 그것을 원하는 분위기가 아니라면 대충 넘어가기 마련인데 이것이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문제 지적은 둘째치고 한국사람이 아닌 저자가 잘 포착한 것이다. 어쩌면 한국인이 아니라서 더 잘 포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크게 성공한 사람들의 패턴에 대해서 흥미로운 진단을 한다. 락펠러(1839년생), 카네기(1835년생), 모건(1837년생) 등 미국의 대부호들이 1830년대에 몰려있다. 그리고 빌게이츠(1955년생), 스티브 잡스(1955년생), 에릭 슈미트(1955년생) 등은 1950년대에 몰려있다. 약간 인위적인 조합같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젊었을 시절인 1860~70년대 1970~80년대 산업의 세대가 넘어가는 격변기를 살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살았을 때 패기있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기회를 잡고 대성공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면에서 저자가 성공에 대한 관점을 잘 들어낸 문장이 있는데 나도 이에 상당히 동의한다.
We pretend that success is exclusively a matter of individual merit...Their success was not just of their own making. It was a product of the world in which they grew up.
개인의 성공은 개인의 공으로만 돌리기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있다. 특히 언제 어디서 태어나는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앞서 언급한 쟁쟁한 이름들이 그 당시가 아니라 다른 시절, 예를 들면 지금 태어났다면 다른 인생을 살았을 수도 있다. 더 중요하게도 이들이 미국에서 태어난 것이다. 만약에 이들이 미국이 아니라 시에라 리온에서 태어났다면 이렇게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즉, 노력과 재능만큼이나 태어난 운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꼭 이렇게 성공하는 케이스가 아니라 보통사람의 경우에도 어느정도 운이 중요한데 성공에 대해서 너무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만 몰아가지 않았으면 하다.
이 외에도 아시아 사람들이 수학을 잘하는 이유가 문화의 특징에 있다는 주장도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말콤 글래드웰이 주장하는 모든 것이 정답은 아니다. 그리고 책에서 논의되지 않은 성공과 실패의 여러 변수들이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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