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콘>

Book 2019. 3. 25. 03:55

진중권 교수의 글을 즐겨 본다. 글을 재미있게 쓴다기 보다는 읽으면 지적으로 포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공기를 마시지 않으면 수분 만에 죽고 단식을 하면 길어야 한달이면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 그런데 진교수의 글을 읽지 않는다고 죽을 일은 없다. , 그의 글은 살아가는 데 직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으면 빈곤했던 머리가 촉촉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안타깝게도 읽은 후 나의 탁월한 망각능력으로 인하여 그가 글에서 무엇을 말했는지는 얼마지 않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치 점심에 피자를 많이 먹어서 배불렀지만 저녁에 또다시 배고픈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다행인 것은 먹은 피자는 배에 들어가서 똥이 되어 다시 먹을 수는 없지만 진교수의 글은 까먹으면 다시 보면 된다. 진교수의 <아이콘>5년 전에 읽었다. 그리고 5년 후에 다시 읽었는데 새책처럼 유익하게 읽을 수 있었다.


진교수의 글이 매력적인 이유는 우선 그는 훌륭한 안내자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어렵다. 특히 철학에서 나오는 개념은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오롯이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철학이 우리의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생각하는 곳에 철학이 있다. 그래서 철학이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삶에 대한 이해도 풍족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깊어 질 수 있다. 그래서 철학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많은 철학과 교수들은 너무 이론에 치우쳐 평범한 사람들과 거리가 멀어졌다. 진교수는 그러한 면에서 그동안의 한계를 극복하였다.


그는 평소에는 절대 쓸 일이 없는 파타피직스(pataphysic)부터 쓸 수도 있는 범주의 오류까지 다양한 주제를 현실의 소재와 잘 연관지어서 설명을 한다. 파타피직스는 우리말로 사이비 과학을 말한다. 이 개념만 들으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그는 예를 잘 들어서 설명한다. 예를 든 것이 섭지니어스 교회(Church of subgenious)이다. 밥 돕스라는 사람에 의해 설립되었다고 주장되는데 밥돕스라는 사람은 만화 캐릭터라고 한다. 그리고 이 교회는 세상의 각종 종교를 페러디한다고 한다. 그리고 신도들이 이단종교를 만들도록 장려된다고 한다. 그는 이런 것을 파타피지컬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개념만 보면 잘 와닿지 않을 것이 그의 예시로 인해서 조금은 이해가 되는 지경까지 내려온 것이다.


범주의 오류의 경우에도 예전 민주노동당의 북한 세습에 대한 견해를 예를 들어 설명한다. 북한 3대 세습에 침묵하는 민주노동당은 북한과의 외교적 관계를 유지하려면 체제에 대한 비판은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에 대해 진교수는 북한과 남한의 외교적 관계를 관리하는 것은 민노당이 아니라 외교부의 역할인데다가 3대 세습에 비판적 견해를 갖는 것과 3대 세습에 비판을 삼가는 것이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이 두 범주를 섞음으로써 공당의 이념적 성향을 대중에게 은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게다가 비판한 점은 신앙고백을 강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정에서 묵비권이 행사되는 것처럼 개인은 원하지 않는 질문에 답변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정당은 그렇지 않다. 개인과 정당은 범주가 다른 것이다. 개인에게는 자신의 양심을 말하지 않을 자유가 있지만 공당에게 그러한 자유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범주의 오류를 이용한 궤변론적인 예라고 진교수는 이야기한다. 이 부분을 읽는데 그동안 답답했던 부분이 시원하게 해결이 되었다. 안그래도 대기업의 세습은 맹렬히 비판하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하는 정치인을 의아해 여겼는데 말이다. 책을 다 읽고 갑자기 부자가 된 것은 아니지만 시야가 넓어진 것이 느껴질 수 있었다. 이것이 독서의 순기능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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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s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