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옥 <도올의 중국일기 4>

Book 2021. 6. 13. 19:03

내가 도올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그 당시 내 기억으로는 방송국에서 노자강의를 하셨는데 매우 흥미진진하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아쉽게도 강의 내용은 거의 대부분은 망각해버렸지만). 그 후 도올선생님은 철학자로 대중들이 다가가기 어려운 고전을 아주 쉽게 풀어서 전달해주셨다.

나는 이런 대중친화성을 다른 철학자들과 가장 다른 점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학식과 재미를 둘다 잡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연구를 많이 하다보면 진지해고 사변적이 되어 대중들과 거리가 멀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자신이 한 연구가 (특히 인문학인 경우) 현실에서 별 쓸모가 없어지게 된다. 인문학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그 학문의 지혜를 알고 현실에서 반영시켜야 하는데 학문의 외길을 걷다보면 일반사람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외계어를 쓰고 있게 마련이다.

반대로 대중적이다보면 학문에 정진할 시간이 없어지고 결과적으로 깊이가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중들과 자꾸 만나다보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주로하고 쓴소리는 점차 줄여서 인기에 영합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학자라기보다는 그저 연예인에 불과한 위치가 된다. 그래서 학문정진과 대중소통을 둘다 잘하기는 매우 어려운데 우리나라에서는 도올선생님이 가장 그 균형을 가장 잘 잡는 것 같다.

또한 도올선생님의 독특한 점은 통섭의 학자라는 것이다. 그의 학력을 보아도 그럴 만한 것이 우선 생물학과로 입학했다가 신학대학교를 다녔다가 철학과를 다녔다. 그래서인지 사고하는 방식이 아주 폭넓다. 기본적으로 철학에 근간을 두지만 한학에서 밝고 종교, 역사 등등 조예가 밝은 부분이 많다. 그래서 파편화된 지식을 한 곳에 꿰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는 한국에서 대만에서 일본에서 미국에서 다녔다. 이러한 다양한 배경이 그가 이 세계를 단일한 시각이 아니라 폭넓게 보는데 일조한 것 같다.

도올선생님의 여러 저작 모두 흥미롭지만 다섯권으로 된 <도올의 중국일기>는 대중들이 읽기 가장 쉽게 되어 있다. 일단 기행문이기 때문에 여행하는 느낌을 준다. 주로 그가 중국 동북지방을 돌면서 느낀 소회를 적었다. 일반 기행문과는 달리 그의 깊고 넓은 식견이 두루두루 녹여져 있다. 그래서 인문학 교양서 느낌도 준다. 책을 보면 역시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누군가는 그저 지나갈 만한 낡은 성관도 그의 시선으로는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독자에게 다가온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은 4권에 나와있는 고구려와 당나라의 관계이다. 역사책을 읽으면서 당태종 이세민이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친 사실은 누구나 배운다. 그리고 안시성에서 양만춘 장군의 공을 배운다. 그런데 단 한번도 당나라가 건국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굳이 고구려를 정벌하러 갔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도올선생은 이 점을 통해서 고구려가 당나라에게 어떠한 존재였는가를 이야기한다.

도올선생님께서 명확히 지적하셨듯이 삼국시대에 대한 내용의 많은 부분은 고려시대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를 통해서 배우게 된다. 문제는 김부식이 너무 사대주의자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늘 당나라가 중심이고 고구려가 변방이었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고구려가 중심이었고 당나라가 변방으로 볼 여지는 없었을까. 당나라가 고구려를 무리해서 정벌하려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도올선생님은 흥미로운 의견을 개진한다.

인문학을 배운다고 돈이 갑자기 생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얻는 다는 점에서 돈보다 더 값진 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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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slee